긴 성벽 길을 따라 온종일 어슬렁거리고픈

‘참 자연스러워졌구나.’

입 안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감탄은 그저 편안함에서 오는 것이었다. 오전 내내 성 안을 걷고 보고 먹고 노는 즐거움은 성문을 빠져나올 때까지 이어졌다.

전남 순천 낙안읍성민속마을. 1990년대 후반 세간에 알려지면서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를 않았고, 그러자 한동안 이런저런 정비 사업으로 ‘상품 만들기’에 요란했고, 잘 다듬어진 그곳은 솔직히 부자연스럽고 어색했다. ‘그저 그런 신상 관광지’로 비치기도 했다. 비로소 경제적·정치적 여유를 갖게 된, 혹은 먹고 살만해진 국민들이 문화기행·체험여행으로 목에 힘이 갈 때쯤이라 이곳 낙안읍성은 맞춤한 듯 목적지로 선택되었다. 한동안 잘 나갔다. 전국의 관광버스를 불러들일 정도로.

그렇게 요란해진 낙안읍성 앞에서 자연스레 걸음을 끊게 되었다. 옛 정취와 멋스러움은 사라지고 다만 기억 속에서 아쉬움으로 남았다.

/권영란 기자

20년쯤 지켜봐온 내 눈에는 적어도 그랬다.

그리고 2013년 12월 다시 낙안읍성. 지나는 걸음이었다. 시간은 여유로웠고 산책하듯이 한 바퀴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은 건 분명했다.

이른 아침녘, 읍성은 소박하고 평화롭고 따뜻했다.

읍성에 들어서니 처음인 듯 새로워

낙안읍성(樂安邑城).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남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마을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읍성이다. 성곽은 임경업 장군이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마을에는 실제 주민들이 주거생활을 하고 있다. 1983년에 사적 302호 지정됐고 현재 대한민국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되었다 한다.

/권영란 기자

성문은 이미 열려있고 낮은 지붕의 초가들마다 문이 열리면서 하나둘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마을 초입에 있는 작은 점포들이 문을 열고 간밤에 안으로 들여 놓았던 물건들을 다시 바깥 좌판 위로 진열한다. 어디서 삶은 번데기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건너편에선 떡방아를 찧는다. 한 사람은 공이를 잡고 한 사람은 절구 안 쌀가루를 뒤집어두며…. 옆의 다른 사람은 떡판에서 반듯하게 떡을 잘라낸다. 한약재 가게와 작은 찻집도 문을 연다. 대장간에서는 대장장이가 쇠를 달구어 호미를 만들고 있다. 탕탕 두드리는 소리가 한참동안 따라 왔다.

때늦은 은행잎이 노랗게 깔려 있어 시선을 두니 바로 임경업 장군 비각이다. 임경업이 군수로 있을 때 그 공덕을 기리는 비각이라고 한다. 낙안읍성의 축제들이 임경업 추모제를 빠지지 않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문은 읽기 힘들 정도로 깎이고 닳았지만 주변 단장을 보니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아끼는 곳인지 느껴진다.

임경업 장군 비각 뒤로는 객사가 있고, 다시 너른 마당을 지나면 동헌이 나온다. 동헌 안을 살펴보면 옛 관리들의 업무를 엿볼 수 있고, 동헌 뒤 내당이 있어 살림살이도 알 수가 있다. 다시 그곳을 지나면 조촐한 민속자료관이 나오는데, 이곳에는 사계절의 농경생활과 관혼상제, 옛 사람들이 생활에 사용하던 것들이 아기자기하게 전시돼 있다. 작은 전시관이지만 전시품 하나하나 신경 쓴 흔적이 있어 나름 기분 좋게 구경할 수 있었다.

/권영란 기자

마을 고샅길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보면 민속자료로 지정된 옛 가옥들을 만날 수 있다. 얼치기인지라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연히 알 수는 없으나, 이방 등 관리가 살던 집이나 선비가 살던 집, 평민이 살던 집 등을 조금은 느낄 수 있다. 이곳 대부분의 집들은 민박을 업으로 하고 있어 관광객들이 하룻밤 정도 잘 수 있다. 읍성 안에는 40곳 정도의 민박집이 운영되고 있다. 그외 집들은 가옥체험이나 식당으로 운영되고 있고, 작은 먹을거리나 옛 물건들을 기념품으로 팔고 있다.

/권영란 기자

성벽에 올라서면 ‘아, 낙안이구나’

성문 위 깃발들은 금방 날아갈 봉황의 꼬리처럼 바람을 타고 움직였으며, 성벽은 높고 낮았으며 돌들은 단단하나 부드러웠다. 성벽에 오르면 낙안 일대가 눈에 꽉 찬다. 사방이 너른 들판이다.

1킬로미터가 넘는 성벽 길은 사람들이 다니기에 좋은 둘레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길이 낙안을 유람하는 길이었다. 길에는 돌 위에다 부드러운 흙을 깔아 걸음 떼기가 좋다. 하지만 겨울밤 얼었던 땅이 풀리면서 신발창에 젖은 흙이 뭉텅뭉텅 달라붙는 곤혹스러움은 있다.

빈 들판은 겨울 햇살로 가득하고, 낮은 지붕의 초가들은 벌교 꼬막처럼 엎드려 있고, 사립문 밖 텃밭에는 겨울 푸성귀들이 파랗게 차오르고, 마당에는 빨래가 한 가득 널려 있다. 드문드문 굴뚝에는 때를 잊은 연기가 오르고….

성벽 둘레길을 따라 걷는 이들의 얼굴이 어느새 한결 부드러워지고 한결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다.

‘아, 낙안(樂安)이구나.’ 

낙안 풍경 하나.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는 할머니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줄을 쳐놓은 안에서 은행을 줍고 있었다. 한 알 한 알, 나무에서 떨어진 은행들은 굴러서 제 가고픈 곳으로 가 있을 것이다. 할머니는 땅을 기다시피 엎드린 채 용케도 그 은행들을 줍고 있다.

마을 안 500년 된 은행나무 아래였다. 낙안읍성 안 11그루의 노거수 중 하나다.

/권영란 기자

눈길이 할머니를 따라가는 바람에 놓치고 있던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장정 예닐곱이 둘러싸 안을만한 둥치에서 두 마리 고양이를 보았다. 한 마리는 밑동에, 또 다른 한 마리는 울퉁불퉁한 큰 혹에 몸을 얹어 마치 벼랑 중간 틈에 끼어있듯 그렇게 누워 겨울 햇볕을 한껏 받으며 자고 있었다.

낙안 풍경 둘.

초가지붕의 이엉을 새로이 갈고 있나보다.

초가와 초가 사이 짚단 더미가 산을 이루고,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다. 지붕에는 이미 일꾼들이 올라가 해묵은 볏단을 걷어내고 있다.

자세히 보니 깡마른 노인들이다. 새끼줄을 꼬고 초가 이엉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70이 넘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권영란 기자

‘어이-’ 지붕 위 노인이 소리를 하자 땅에 있는 또 다른 노인이 고개를 치켜들어 뭐라 대꾸를 한다. 묵은 짚단들이 땅으로 내던져지고 사다리가 놓이고 새 짚단들이 올라간다.

어느새 몰려온 관광객들이 목을 세우고 올려다본다.

3대축제는 시기별 적절한 콘텐츠

낙안은 1년에 3개의 큰 축제를 연다. 매년 5월 낙안민속문화축제, 10월 남도음식문화큰잔치, 정월대보름 민속한마당큰잔치가 그것이다.

낙안민속문화축제는 조선 인조 때 낙안군수로 선정을 베푼 임경업 군수의 부임을 기원하는 행렬을 시작으로 낙안두레놀이 등이 펼쳐지는데 옛 사람들의 생활과 놀이를 보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축제이다. 전국 팔씨름대회, 똥장군 져보기 등은 관광객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 금방 흥미를 확 끌어당기는 놀이 중 하나다.

남도음식문화큰잔치는 풍년을 감사하며 하늘에 음식을 바치는 상달제를 시작으로 20여 시·군 전국 대표음식을 한 자리에서 구경할 수 있다. 요리 경연과 전시, 맛체험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는 이점이 크다.

/권영란 기자

정월대보름 민속한마당큰잔치는 임경업 군수 추모제를 비롯, 액막이굿, 큰줄다리기 등 민속행사와 동제가 구경할 만하다. 동제는 3번의 제로 이뤄져 있는데, 객사 뒤 팽나무에서 상당제를 지내고, 다시 임경업 군수 비각에서 중당제를 지내고, 마지막으로 마을 가운데 500년 된 은행나무에서 하당제를 지낸다. 여기에다 어두워질 무렵이면 달집을 태우고 다시 햇불을 들고 1400미터가 되는 긴 성곽을 도는 것으로 정월대보름 잔치를 마무리한다. 그때쯤이면 휘영청한 달빛이 낙안마을 한가운데 떠있을 것이고 더러 어느 집에선가 투닥거리는 소리, 개 짖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올 것이다.

낙안 3대 축제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내용으로, 낙안의 역사와 문화를 살리면서 적절히 배치한 좋은 상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 현장을 둘러보면 또 부족한 뭔가가 보이겠지만 적어도 낙안읍성을 일 년 내내 찾을 수 있는 ‘꺼리’는 고만고만하게 만들어냈다는 생각이다. 어느 지역을 예를 들면 10월 한 달 동안 4개, 5개의 축제가 겹치면서 오히려 각각의 축제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그저 북적대는’ ‘그저 앞 사람 뒤통수만 쳐다보는’ 그런 축제로 만들어버린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작은 축제들을 한꺼번에 모아두면 그 시너지가 클 거라는 ‘판매로서의 축제’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축제를 즐기는 여유는 사라졌다. 그 축제들을 시기별로 분산해두면 2~3달에 한 번씩 축제를 즐기면서, 시민의 삶을 축제처럼 여길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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