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과 겸손으로 더 낮은 곳에서 봉사임하는

“저는 봉사중독자예요. 일주일에 하루라도 봉사를 하지 않으면 몸이 아플 정도라고 할까요. 봉사는 남을 돕는 일이기도 하지만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다시 고마움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한 것이거든요. 그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니까 몸이 아프게 되는 거 같아요.”

자신을 ‘봉사중독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 일주일에 3일 이상은 꼭 봉사활동을 가는 것이 일상이 된 그는 비공식 집계로 국내에서 정부가 인정하는 공인 봉사활동 시간이 가장 많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 주인공은 경남봉사미회 이순자(56) 회장이다.

경남봉사미회는 경남지역 웬만한 행사장에 절대 빠지지 않는 미용봉사단체다. 지난 2003년 미용 봉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동아리 모임에서 시작해 2004년 정식으로 비영리단체로 등록했다. 현재 380여 명의 회원이 2013년 상반기 현재까지 3492회 봉사를 했다. 1회 당 4시간으로만 쳐도 1만 4000시간에 가까운 봉사를 해오고 있다. 이 단체 봉사활동으로 수혜를 입은 사람만 12만 2257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경남봉사미회는 경남지역 이·미용사로 구성된 봉사단체로 이·미용봉사는 물론 염색, 메이크업, 드라이, 영정사진 촬영 등을 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헌옷 수집, 충남 태안 기름제거, 자연보호 캠페인, 국화축전을 포함해 각종 걷기 또는 마라톤 대회 자원봉사 등 일일이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로 다방면에서 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정기적으로 들러 이·미용봉사, 목욕봉사, 청소봉사를 하는 곳만 해도 창원, 함안, 의령 등 도내 복지시설과 요양병원을 모두 더하면 29곳에 달한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활동하다 보니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도 인정받는 봉사단체로 거듭났다.

이순자 경남봉사미회 회장(왼쪽)./김구연 기자

지난 2007년 이순자 회장이 마산시 자원봉사 수기부분 우수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2009년 마산시 자원봉사 경진대회 최우수상 수상,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국무총리 표창, 2011년 경상남도 자원봉사대상 최우수, 지난해 안전행정부 장관 표창 등을 받았다. 모두 이순자 회장이 휴일도 잊은 채 회원들과 함께 봉사 활동을 하면서 얻은 보람이다.

도내 미인대회 휩쓴 실력파 미용사

이순자 회장의 본업은 미용사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에서 신세계 헤어프라자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장이 미용에 뛰어든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다. 의령군 의령읍에서도 북쪽 끝에 외따로 떨어진 시골인 봉수면에서 나고 자란 이 회장은 어려서 남부럽지 않게 자랐다. 아버지가 전통 한지를 만들어 의령은 물론이거니와 전국에 한지 창호를 파는 일을 한 덕분이었다. 이 회장이 어렸을 당시만 해도 시골은 콘크리트 건물에 유리창을 단 서구식 주거 환경이 보편화되기 훨씬 전이었기에 전국에 창호 수요가 대단했다. 집 한편에는 한지를 만드는 작업장이 따로 있었다. 게다가 한지로 유명한 의령에서 만들어진 창호니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척박한 시골이지만 굉장히 부자로 살았어요. 집에 머슴도 있고, 식모도 있고, 집안에 가진 땅도 꽤 넓었죠. 배움의 기회가 모자란 산골에서 여성으로서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정도였다면 이해가 되나요?”

이순자 경남봉사미회 회장./김구연 기자

봉수국민학교와 신반중학교를 거쳐 신반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 이 회장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이모 권유로 미용업에 몸담게 된다. 일찍이 이모가 하는 미용일에 관심을 보여 온 터였다. 학교에서 직업반은 교외에서 실습을 하도록 허용해 주는 제도를 십분 활용해 부산 남포동 이모 곁에서 미용 기술을 제대로 익힐 수 있었다. 약 3년 동안 부산 남포동과 용호동 등지로 옮겨 다니며 미용 실습 기간을 지냈다. 그러다가 마산 산호동 현 양지주차장 맞은편 코너 건물 1층에 자신만의 미용실을 세웠는데 이때가 1979년이다. 이름은 ‘나나 미용실’로 지었다. 산호동 일대는 언제나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주요 고객인 여성이 많이 사는 것이 특징이었다. 미용실 인근에 있던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은 경영의 큰 버팀목이었다. 산호동 지역은 수출자유지역이나 한일합섬 내에서도 중간 간부 이상 급이 주로 사는 나름 고급 주택가였던 덕에 나름 자신을 꾸미는데 관심이 많은 여성 고객도 많았다. 이처럼 자연스러움과 고급스러움이 공존하는 산호동은 웬만한 미용 기술 가지고는 버티기 어려운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은 이 회장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부산에서 갈고 닦은 미용 실력을 바탕으로 이듬해 1980년 미스경남선발대회 지정 업소로 선정되는 등 인근 다른 미용실과는 차별화된 길을 걸었다. 특히 미인 대회에 강점을 보였는데 진영단감 미인선발대회 진·선·미, 창원수박아가씨 선발대회 진·선·미, 미스경남 선발대회 진·선·미를 배출할 만큼 실력으로 명성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제1회 경상남도지사배 신부메이크업 부문 금상 수상, 1991년 일본 미용국제대표선발대회 심사위원, 1993년 필리핀대통령배 제14회 미용선발대회 심사위원 역임 등 국제적으로도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봉사에 전념 가능한 가위손 가족

이런 이순자 회장은 이른바 ‘가위손 가족’으로도 유명하다. 자신은 물론 남편과 두 딸 모두 함께 운영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순자 회장은 1980년 남편 전청수(58) 씨와 결혼했다. 결혼 전인 73~77년까지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던 전 씨는 이 회장과 결혼 한 뒤 어깨 너머로 미용기술을 배우기 시작, 도내에서 남자로는 ‘미용사자격증 1호’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후 1984년 마산 가야백화점 근처에 ‘새나나 미용실’을 차려 독립했다. 나나 미용실 2호점이던 셈이다. 그러다 마산지역 경기호황이 끝나면서 두 군데를 유지하기 버거워지자 2002년 산호동에 ‘신세계 헤어 프라자’로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의 피는 못 속이는 법. 큰 딸 전지영(33) 씨와 전혜영(32) 씨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하는 미용일을 어깨너머로 보고 자라다가 미용을 직업으로 삼게 됐다. 지영 씨는 어릴 때부터 ‘바리캉’을 들로 다니며 동생 머리를 깎을 정도였고, 혜영 씨는 한 달 1만 원 밖에 안 되는 용돈이 아쉬워 이를 더 벌고자 일을 거들게 됐다. 계속하다보니 손에 일이 익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님의 끈질긴 설득과 권유도 미용업계에 발을 들이는데 한몫했다. 두 사람 모두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미용사 자격증을 땄다. 이 회장이 생업을 제쳐놓고 봉사에 정성을 쏟을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런 가족들 덕분이다.

“남편과는 30년 넘게 같이 미용 일을 하고 있고, 남편의 외조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봉사활동을 하기가 어려웠을 거예요. 봉사활동도 함께하면서 나를 밀어주는 남편과 딸들에게 몹시 고마운 마음이죠.”

이순자 경남봉사미회 회장./김구연 기자

더 낮고 낮은 곳으로

이 회장이 이렇게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약 35년 전부터다. 이 회장은 어릴 때부터 봉사활동을 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자랐다. 당시 가정주부였던 어머니는 복지기관에 성금을 꼬박꼬박 전달하는 것은 물론 틈만 나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몸소 앞장섰다. 아버지는 모교인 봉수국민학교에 돈이 없어 학업을 잇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하고, 역사의식을 고취하고자 세종대왕 동상을 기부할 정도로 지역 사회를 위한 봉사 활동에 헌신했다. 이 회장이 미용사가 되고 나서도 아버지의 봉사와 선행은 계속됐다. 1980년 이 회장과 함께 일하던 종업원이 가정형편이 좋지 못해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혼례를 올리지 못하는 걸 보고, 아버지는 손수 두 사람을 위한 전통혼례를 준비해 무료로 결혼식을 치러주고 주례를 봤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이 회장도 봉사활동을 많이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고, 미용사로서 그 결심을 실현해 나갔다.

봉사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했다. 산호동에 있는 마산선양원(현 의령복지마을)과 마산애육원을 시작으로 그 지역과 범위를 점차 넓혀갔다. 마산산복도로변 마산성로원은 물론 70세 이상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많은 의령 송산마을회관, 의령군 내 13개 오지마을 등으로 봉사를 다니고 있다. 특히 이 회장은 다른 봉사 단체는 활동하기 꺼려하는 정신분열 환자, 한센인, 중증장애인 같이 일반적인 소외 계층보다 더 소외되고 외면 받는 이들에 대한 봉사를 더욱 중요시 여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봉사 활동을 가는 대표적인 곳이 정신분열 환자가 많은 의령그린요양병원, 한센인들이 모여 사는 함안 여명마을, 합포동과 완월동 중증장애인 가정 등이다. 이런 곳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는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매일 앉아서만 생활하는 중증장애인을 위해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깎아야 하기고 하고, 피부가 괴사돼 피고름이 흐르는 한센인을 대할 때면 안쓰러운 모습에 가슴에 눈물이 맺히기도 한다. 언제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모르는 정신분열 환자들은 앞에서는 항상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어요. 코에 산소공급기를 단 고령의 중증 어르신 환자분 머리를 깨끗이 깎아드리고 다시 침대에 뉘였는데, 글쎄 5분여 만에 어르신이 그만 돌아가시고 만 거예요. 정말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쓰리는 고통이 느껴졌죠.”

이순자 경남봉사미회 회장./김구연 기자

마음이 쓰리는 데도 이런 곳을 주로 찾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말 그대로 소외된 이웃을 위한 ‘참봉사’를 하고 싶어서예요. 아무도 돌보려 하지 않는 우리가 가지 않으면 제 머리 하나 제대로 깎을 수 없는 이웃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 그게 저와 우리 회원들로 하여금 봉사를 통해 더 큰 보람을 느끼게 끔 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죠.”

이처럼 몸은 다른 곳에 비해 배가 넘게 힘들지만, 이들이 웃으며 서툰 모습으로나마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다시 힘이 샘솟는다. 이런 이 회장은 태어나서 미용이라는 직업을 택하게 된 것에도 몹시 고마워한다. “미용 기술은 언제 어디에서든 내 몸 하나와 몇몇 가지 작은 도구만 있으면 언제든지 베풀 수 있는 것이잖아요. 저에게는 생계를 이어주는 것과 동시에 소외되고 그늘진 이웃을 돕는데도 언제나 유용하게 사용이 되니 늘 감사할 따름이죠. 그리고 이 일을 하면서 남편을 만났고, 나아가 두 딸까지 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잖아요.”

성실과 겸손이 ‘봉사 가족’ 이끌어

요즘 이 회장이 행복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 온 가족이 가위손 가족을 넘어 봉사 가족으로 거듭났다는 점이다. 자신은 물론 남편과 딸들도 봉사를 통한 보편적 사랑의 가치를 알아간다는데 이 회장은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안전행정부 공인 기록으로 남편 전청수 씨는 1600여 시간, 큰 딸 전지영 씨는 700시간, 작은 딸 전혜영 씨는 300시간의 봉사 활동 기록을 보유했다. 이 회장이 보유한 6200여 시간을 더하면 온 가족이 1만 시간에 가까운 봉사 활동 기록을 가진 셈이다.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기록이다.

   

“우리 사회가 아름다워지려면 베푸는 문화가 확산돼야 합니다. 그런데 가족 모두가 베풂으로서 얻는 보람과 기쁨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이보다 더 끈끈한 가족애를 만드는 매개물이 어디 있을까요. 하하.”진정한 봉사로 자신은 물론 가족 그리고 경남 내 수많은 미용종사자와 일반인들에게 봉사의 참 의미를 전하려 한 이 회장. 이 회장은 남들이 한 달에 한 두 번하는 봉사 활동도 마치 큰 일 인양 자랑 삼아 이야기 할 때, 그는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참봉사’란 무엇인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고자 했다. 그만큼 그와의 인터뷰를 어렵게 진행됐다. 인터뷰 내내 자신의 치적과 관련된 질문이 나오면 부끄러워하며 모두 기꺼이 봉사에 참여하는 회원들 몫으로 돌리려는 겸손함 때문이었다. 개인적 성과에 대한 대답을 극구 피하려는 관련 질문을 두세 번 재차 묻느라 기자는 애를 태웠다. 이 회장의 성실함과 겸손함이 모두를 감동시키는 참된 봉사를 하는데 밑거름이 되었으리라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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