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시장에서 국내 중소기업의 길을 찾다

경험이나 기술이 전혀 없는 중소기업이 해외시장에 나서는 심정은 어떨까.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골목길에서 반짝이는 물건을 찾는 느낌이 아닐까.

태광중공업은 최근 제19회 경남무역인상에서 수출유공탑을 받은 기업이다. 중기업 부문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이 업체를 이끄는 이규태 대표이사는 해답을 쥐고 있었다. 불과 몇 해 전 해외시장에 과감히 뛰어들었던 태광중공업(주)은 이제는 자리를 잡고 국내 중소기업이 나아가야 할 길까지 제시하는 듯했다. 19회 경남무역인상 시상식이 열렸던 지난 12월 10일 창원시 의창구 대원동 공장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현장을 모르고 경영할 수는 없다”

경북 안동이 고향인 이 대표는 1987년 창원으로 왔다. 올해 51세. 그는 한때 청년 창업가였다. 첫 직장 생활을 인쇄 업종에서 3년 정도 했는데, 같은 업종으로 1990년 동업자와 창업을 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고, 다른 업종으로 눈을 돌렸다. 제조업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992년, 다른 회사를 세웠다. 그러나 이 역시 2년 정도 운영하다가 어려워지는 바람에 문을 닫아야 했다.

그때 이 대표는 결심한다. “제조업 회사에 다시 들어가서 가장 밑에 있는 기초적인 일부터 해야겠다고 느꼈다. 사업할 때 생산과 엔지니어링 부분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 마케팅, 관리, 영업 쪽만 알다가 한 번 실패하고 나니 현장을 모르고 경영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1997년까지 5년 정도 현장에서 일했다. 그라인더부터 페인트칠까지 현장 일은 가리지 않고 배우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이 대표에게 소중한 시기였다. “현장을 모르면 성공할 수가 없다. 현장에서 모든 아이디어가 생기고 경영 방법이 나온다.”

이규태 태광중공업 대표이사./박일호 기자

본격적인 창업 ‘쉽지는 않아’

학부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했고, 이후 창원대에서 전문 경영인 양성 과정을 밟았다. 본격적인 창업 준비였다. 창업 직전에는 현대산기에서 경영 부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렇게 2004년 함안군에서 현대메카텍을 설립한다. 현재 이 대표가 운영하는 기업의 모태다. 레이저절단 등 임가공 전문이었다. 다른 업체 주문을 받아 일정한 일을 해서 공급하는 형태였다.

이규태 태광중공업 대표이사./박일호 기자

창업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나마 13년 정도 같은 업종에서 일하다 보니 이전에 같이 일했던 여러 사람이 새로운 길에 함께하게 됐다. 이 대표는 “한 우물을 파야 성공할 수 있다. 오랫동안 한 업종에서 일하면 많은 인재를 알게 되고 기술과 마케팅에 대한 경험도 쌓여 큰 자원이 된다”고 말했다.

현대메카텍은 태광메카텍(주)으로 이름을 바꿨고 2007년 (주)태광나노텍, 2009년 태광중공업을 잇따라 세운다. 특히 태광중공업 설립 이후에는 지금처럼 3개 계열사를 둔 모습으로 자리를 잡는다. 태광메카텍은 방위산업과 조선 기자재, 태광나노텍은 레이저 절단과 절곡, 태광중공업은 국내외 플랜트 중심으로 운영된다. 메카텍은 창원 의창구 대원동, 나노텍은 성산구 신촌동, 중공업은 마산합포구 진북면(본사)에 각각 공장을 두고 있다.

세계 시장에 뛰어들다

이 대표는 경영 철학이 뚜렷했다. 말의 속도가 빨라졌고 목소리도 높아졌다.

“돈만 가지고 있다고 영업 물량만 있다고 경영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물량이 있으면 원가 분석을 해서 수익성을 내는 구조로 만들어야 하고, 외주로 구매를 하면 적절히 원가를 줄여야 하고, 생산 품질은 고객이 만족할 수 있도록 우수하게 바꿔야 하고, 제품을 고객에게 안전하게 건넨 이후 AS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그는 “결국 이 모든 일은 인재가 한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각 요소에 필요한 인재를 넣어 운영하느냐에 따라 경영의 성패가 좌우된다는 것이다.

이규태 태광중공업 대표이사./박일호 기자

2009년 창업한 태광중공업은 처음에는 국내 조선소에 조선 기자재 부품을 납품하는 일만 했다. 그런데 한 해 전인 2008년부터 세계 금융 위기가 찾아왔다. 조선업이 침체 일로를 걷고 있을 때 태광중공업은 조선업종에 발을 담그게 된 것이었다. 선박용 철판 등 부재를 절단해 조선소에 공급했지만, 경기가 안 좋아 물량은 점차 줄었다.

활로를 찾아야 했다. 창업 원년부터 다음해인 2010년까지 태광중공업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고 선언한다. 해외 플랜트 산업이었다. 당시 만든 슬로건이 ‘나가자! 세계로 개척하자! 미래로’다. “그 구호는 지금도 회의할 때 외치고 있다. (웃음) 비록 중소기업이지만 뛰어나가보자, 우리 미래를 세계 시장에서 개척하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기술이나 경험이 없었다. 해외 플랜트는 단순한 일이 아니라 설계부터 현장 조립, AS까지 고난도 기술을 요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게 우리한테 없었다.”

인재가 보배다

이때도 이 대표는 ‘인재’ 영입에 힘을 쏟는다. 해외 프로젝트를 수주해 운영·관리·서비스까지 수행할 이들을 끌어들였다. 해외 플랜트를 담당할 1개 팀이 꾸려졌다. 대기업 임원까지 지내며 플랜트 운영·관리를 했던 이를 영입하고, 설계·사업관리·마케팅·통역까지 맡을 7~10명을 모았다. 1개 팀에 인건비 등 제반 경비만 한 해 10억 원씩 투자하는 부담을 안았다. 이 대표는 중소기업으로서 대단한 도전이었다고 자부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성과를 이뤄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시장에 발을 딛자 곧바로 문제가 나타났다. 그동안 축적한 기술도, 실적도 없었던 점이다. 회사 소개서와 사업 계획서를 제출했으나 해외시장에서는 자격이 안 된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럼에도 인재가 있었다. 초창기 대기업이 외국에서 벌이는 공사에 참여해 수출을 했다. 1년 정도 경험을 쌓았고, 드디어 해외시장에 직접 수출할 길을 찾기 시작했다.

이규태 태광중공업 대표이사./박일호 기자

틈새시장을 찾아라

“자세히 보니 우리가 노릴 수 있는 틈새시장이 있더라. 항구에 놓이는 골리앗 크레인을 인양할 때 쓰는 장비였다. 골리앗 크레인을 1대 설치하려면 6000~7000t 무게를 100m 높이까지 올려야 한다. 그런데 설치 장비가 세계 시장에서 6000t까지 들어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곧바로 연구에 들어가 골리앗 크레인을 8500t 무게까지 들 수 있는 리프팅 타워(Lifting Tower)를 70억여 원을 들여 제작했다.”

이를 계기로 세계적 기업인 핀란드 코네크레인과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코네크레인에서 만든 크레인을 인양하려면 우리 장비가 필요했다.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쌓은 경험이나 기술이 없었음에도 해외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직접 개발한 리프팅 타워 덕분이다.”

무역의 날 시상식 모습./태광중공업 제공

이후 브라질 대형 조선소인 에코빅스에서 골리앗 크레인 1대를 설치하는 데 성공하면서 업계에 태광중공업의 이름을 올렸다. 2011년부터는 해외시장에서 속속 성과를 거둔다. 2009년 창업부터 2011년 8월까지 100% 내수 위주 매출이었지만, 이후 내수와 수출은 45% 대 55% 비율로 바뀐다. 아울러 2011년 78억 원, 2012년 141억 원으로 매출은 증가했다.

2012년에는 역시 세계적 기업인 독일 회사(Kirow Ardelt)로부터 75t 지브 크레인(jib crane)을 9억 1300만 원에 수주했다. 또한 지난 10월 인도네시아 푸푹(PUPUK) 사와 하역크레인(LLC) 30억 원 수주를 확정했다. 2014년 3월 설치할 브라질 EEP조선소의 1600t 골리앗 크레인 설치 계약도 확정 단계다.

중소기업이 나아갈 길

태광중공업에서 해외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글로벌 전략 등을 짜는 곳은 미래전략사업본부다. 본부는 경남창원과학기술진흥원에 입주한 상태다. 이와 별도로 기술연구소도 있다. 연구소는 태광의 ‘미래 먹거리 산업’을 만들고 있다. “보통 기업에 있는 기술연구소는 기존에 하던 일을 어떻게 업그레이드할지 연구를 하는데, 우리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10~20년 이후 뭘 먹고살지 연구하는 것이다.”

최근 기술연구소에서 ‘작품’이 나왔다. 선박 엔진에서 나온 폐열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열교환을 거쳐 냉동기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국제 특허까지 받고 정부 과제로도 지정돼 개발을 완료했다. 특히 설비 1대를 상용화해 캐나다에 수출한 상태다. 캐나다 어선에 장착한 설비는 3개월 동안 현장 테스트를 거쳐 문제가 없으면 추가 수출도 이뤄질 전망이다.

“폐열을 이용한 냉동기 개발은 우리가 가진 새로운 기술이다. 개발 기간만 무려 3년 반이 걸렸다. 미래에 쓸 수 있는 아이템이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개발 중인데, 극비사항이어서 말할 수 없다. (웃음)”

새 기술 개발은 중소기업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현재 업종만 가지고 살아가기는 어렵다. 10년 후 한국에선 제조업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제조업 인프라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 있다. 살아남으려면 핵심 기술을 만들어야 한다. 대기업의 하청, 해외 2차 수출은 인건비나 공장 땅값 등이 쌀 때나 가능하다. 인력이나 양 중심의 제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 미래 성장 동력을 연구개발해서 질적 아이템을 창출해야 한다.”

이규태 태광중공업 대표이사./박일호 기자

이 대표는 사단법인 한국해양플랜트전문기업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설립한 지 2년 넘은 전국 단체다. 조선업이 위기에 직면하자 조선 기자재 업체들이 모여 앞으로 먹거리 산업을 고민하면서 만들었다. 정부도 승인한 단체로 각종 지원 정책 등을 알려주고 있다.

창원에서 모인 업체 대표와 임원 등 발기인은 37개 업체였지만 창립 당시 160개, 지금은 200여 개 회사가 함께한다. 이 대표는 회장 임기가 2014년 1월까지다. 업계 흐름도 전해들을 수 있었다. “해양플랜트 관련 유럽의 회사들은 하드웨어를 안 가지고 있다. 창업 100~150년 전통으로 사무실만 갖고 세계적인 기업이다. 그만큼 축적된 기술과 경험이 있다. 배를 띄우는 기술은 현대, 삼성, 대우 등 우리나라 기업이 우위에 있겠지만, 나머지 해저 부분과 플랜트 공장 등에 대한 기술은 유럽과 남미에서 모두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해양플랜트 회사도 이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는 국산화 기술에 대한 정책을 마련하고, 우리와 같은 중소기업에 연구개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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