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구례 평원서 가을 끝자락을 붙잡다

전북 남원 주천에서 시작한 지리산 둘레길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모두 22개 구간 가운데 이번에 다녀온 19~20구간에 이어 21~22구간을 마치면 처음과 끝이 하나로 이어진다. 전남 구례군을 지나는 둘레길은 모두 7개 구간으로 16구간(가탄~송정)은 경남 하동군과 22구간(산동~주천)은 전북 남원시와 겹쳐 있다. 이번 호에는 남한의 3대 길지(吉地)로 알려진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마을에서 출발해 방광~난동~구례읍을 거쳐 오미마을로 되돌아오는 순환 코스를 선택했다. 지리산 관문인 화엄사,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목 천은사, 섬진강과 하나 되는 서시천을 따라 걸었다.

◇오미마을~방광마을(12.2㎞)

고택에서 이른 아침을 맞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가을 하늘 아래 두 번째 만난 오미마을은 여느 도시의 아침과는 다른 고즈넉함이 물씬 풍겼다. 수확을 마친 들녘은 황량함 대신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오미마을에는 지난 호에 소개되었던 운조루(雲鳥樓)와 함께 ‘금환락지(金環落地)’에 지어진 집 한 채가 더 있다. 택호(宅號·집 이름)가 ‘곡전재(穀田齋)’인 이 집은 운조루와 마찬가지로 성주 이씨 후손이 살고 있다. 1929년에 지어진 곡전재는 1940년 성주 이씨 20대손인 이교신이 인수한 조선 후기 정통 목조 건축양식으로 문간채, 사랑채, 안채가 모두 '一'자형이며 높이 2.5m에 달하는 호박돌 담장이 인상적이다. 이 담장은 금가락지 형태로 둥글게 지어졌다. 또 담장이 높은 것은 금환락지의 집터 기운이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곡전재라는 집 이름은 이교신의 호인 ‘곡전’에서 유래했다.

/황상태 

지은 지 80년이 넘은 곡전재는 현재 구례군 향토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로 집 안으로 들어서는 대문부터 여느 한옥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이른 아침이라 조심스레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데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난밤 이 집에 머문 손님(고택 체험) 때문이었다. 곡전재는 대문 옆 사랑채와 중간채, 동·서 행랑채, 안채로 구성돼 있으며 중간채는 ‘삼락당(三樂堂)’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누각(춘해루)이 함께 있다. 춘해루에서 돌아서면 세연이라는 이름의 연못과 함께 동행랑채, 건너편 서행랑채 그리고 안채 마당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오래된 농기구와 요즘 보기 어려운 옛 물건이 정갈한 모습으로 손님을 맞았다. 안채 뒤편으로 난 대나무 산책로를 지나면 이 집 안주인의 기풍을 엿볼 수 있는 장독대가 나온다.

운조루와 곡전재로 대표되는 오미마을의 정통 한옥과 함께 한옥 체험(민박)을 위해 지어진 새로운 집이 여러 채 있어 하룻밤 묵어가기 안성맞춤이다. 둘레길은 마을 앞 오미정(五美亭)을 지나 아래로 이어지다가 공장 건물 오른편 산길로 들어서면 이내 식당으로 향하는 작은 길이 나오고 19번 국도와 만난다. 주유소를 지나면 여기서 갈림길인데 도로를 횡단하면 용호마을로 향하는 20구간이고 19구간은 오른쪽으로 돌아 하사마을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추수를 끝낸 들녘의 한가로움과 어른 주먹보다 큰 주황색 빛깔이 고운 대봉감이 주렁주렁 열린 과수원이 인상적인 길이었다. 하사마을은 신라 흥덕왕 때부터 형성된 오래되고 큰 마을이다. 원래는 사도리로 불리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구분해 상사리와 하사리가 되었다. 현재에는 하사마을과 상사마을이 사도리를 구성하고 있다.

사도리란 이름을 글자 그대로 풀면 ‘모래 그림 마을’이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말 도선국사가 이곳에서 머리를 식히고 있는데, 어디선가 도사 한 분이 나타나 모래벌판에 그림을 그려 우리나라의 풍수에 대해 알려주었다고 한다. ‘모래 위에 그림’을 그려 뜻을 전한 곳이라 하여 사도리로 불리게 되었다.

오미 한옥 체험 마을./황상태 

은은한 차꽃 향기에 취하다

하사마을에는 효행과 관련된 장소가 두 곳이 있다. 마을 가운데 홍살문이 있는 방향으로 올라가면 효헌사라는 곳이 나오는 데 이곳은 조선 정조대왕의 12번째 왕자인 도평군의 위패가 봉안된 곳이다.

고종 황제는 왕자 가운데 가장 효성이 지극한 도평군에게 벼슬을 하사했다. 효헌사를 나와 둘레길을 따라가다 보면 오른편에 ‘효자 이규익 지려’가 있다. 6년간 부모님 시묘살이 등 효행이 알려지면서 고종이 동몽교관이라는 벼슬을 내렸다는 기록이 적혀있다.

이정표를 따라 평전언덕으로 오르면 언덕 아래로 구례 들녘이 평화롭게 펼쳐진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른 평전언덕에서 차밭을 발견했다. 하동과 멀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비교적 규모가 큰 차밭이었다. 이즈음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차꽃이 은은한 향을 품어내며 살포시 고개를 내밀었다. 평전언덕을 지나 상사마을 뒷길에도 차밭이 이어졌다. 여기도 차꽃이 지천이었다. 차나무는 다른 나무와는 다르게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로 이는 ‘꽃이 열매를 마주 보고 피는 나무’라는 뜻이다. 꽃이 지고 나서 잎이 나는 ‘상사화’와는 다른 뜻으로 해석된다. 차꽃과 소나무 숲이 조화로운 둘레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 그 자체였다.

하사마을 앞 길가./황상태 

팬션단지를 지나 호젓한 둘레길을 계속 따라 오르면 바위 너덜지대 한가운데 묘 1기 있는데 어떻게 저런 곳에 묘지를 만들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아마도 누군가 풍수지리의 도움을 받았겠지 추측해보면서 발길을 옮겼다. 매실밭을 끼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잠시 올랐다가 내려서면 드넓은 배밭이 나오는 데 담곡농장이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어 구름다리를 지나면 아래로 황전마을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고 연(蓮)을 심은 웅덩이가 발길을 붙잡는다. 바로 옆 민가를 지키는 백구 두 마리는 사람의 왕래가 잦은 탓인지 짖지 않고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

화엄사 계곡에서 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을 건너려면 제법 모양새를 갖춘 징검다리를 가로질러야 한다. 한여름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건너기도 한다. 징검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이어진 돌담을 따라 오르면 길옆으로 흐르는 계곡의 맑은 물이 가을 단풍과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이미 떨어진 단풍잎이 마치 작은 조각배라도 되듯이 계곡물을 따라 흐른다.

둘레길은 반달가슴곰 종복원기술원과 지리산국립공원 탐방사무소 앞으로 이어진다. 이곳은 신라 경덕왕 때 세운 화엄사 입구이기도 하다. 화엄사는 국보와 보물 등 중요 문화재가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큰 대가람이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둘레길에서 잠시 벗어나 화엄사 경내를 탐방을 권하고 싶다. 탐방사무소를 가로지르면 흉물스럽게 방치된 상가 건물 두어 채가 나오는 데 여기에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오른쪽 산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야 둘레길이다. 그냥 무심코 도로를 걷다 보면 200m 이상 되돌아와야 하는 수고로움이 따른다. 지금까지 걸었던 둘레길보다 비교적 가파른 숲길을 오르내리다 한 통신회사 수련원 뒤를 돌아내려서면 작은 샘물과 500년 된 느티나무가 인상적인 수한마을로 들어선다. 농로를 따라 이어지는 길 끝자락에 목적지인 방광마을에서 긴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수한마을 500년 된 느티나무./황상태 

◇난동마을~오미마을(18.6㎞)

흐르는 강물 따라 쉬엄쉬엄

지금까지 둘레길 탐방은 시계방향으로 진행했다. 19구간 종점인 방광마을은 21구간 시작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20구간 시작을 위해서 다시 오미마을로 이동하는 것이 맞지만 이번에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20구간을 진행하기로 했다. 방광마을에서 20구간 종점인 난동마을까지 대략 3.6㎞를 더 걸어야 한다. 방광마을~오미마을 구간은 22.2㎞로 이번에는 모두 34.4㎞를 걷는 셈이다. 19구간이 구례 분지를 내려다보면서 진행했다면 20구간은 서시천(西施川)을 따라 구례 분지 가운데를 통과하게 된다. 온당마을과 세심정, 구만·연파마을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서시천을 따라 걷게 된다. 산동에서 발원한 서시천은 마산면 냉천리까지 약 24㎞를 흐르다 섬진강과 합류한다.

서시천을 따라 걷는 길은 어찌 보면 지루한 느낌이 들 수 있다. 변화도 없고 눈앞에 펼쳐진 풍광도 질서 정연한 느낌이다. 강둑을 따라 이어진 길은 직선에 가깝다. 그러나 흐르는 물소리와 서로 다른 색으로 물든 벚나무 단풍이 소나무 숲 속에서 느끼지 못한 묘한 매력이 숨어 있다. 원칙적으로 서시천에서 낚시하는 것이 금지돼 있지만 가끔 눈에 띄는 강태공의 모습이 여유롭다. 바람에 일렁이며 쉼 없이 흘러가는 서시천 강둑에는 봄이면 원추리꽃과 벚꽃이 터널을 이룬다. 서시천 너머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지는 지리산 준봉을 바라보는 것도 이곳만의 매력이 아닐까.

어느 듯 구례종합운동장 옆에 자리한 지리산둘레길 구례센터에 도착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하다. 여기서 구례읍을 끼고 6㎞ 남짓 서시천 끝자락과 섬진강 강둑을 따라 목적지인 오미마을까지 비교적 수월한 길만 남았다. 지리산둘레길 구례센터에서 산골 시인 박남준이 쓴 시(詩) <지리산둘레길>을 서각으로 감상할 수 있다.

‘그대 몸은 어디에 있는가/ 마음은 무엇에 두었는가/ 지리산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몸 안에 한그루 푸른 나무를 숨 쉬게 하는 일이네/ 때로 그대 안으로 들어가며 뒤돌아보았는가/ 낮은 산길과 들녘, 맑은 강물을 따라/ 사람의 마음을 걷는 길이란/ 그대 지금껏 살아온 발자국을 깊이 들여다 보는 일이네/ 숲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생명의 지리산을 만나는 길/ 그리하여 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대 안의 지리산을 맞이하여 모신다는 일이네/ 껴안아 준다는 것이지/ 사랑한다는 것이야/ 어느새 가슴이 열릴 것이네/ 이윽고 눈앞이 환해질 것이네/ 그대가 바로 나이듯/ 나 또한 분별을 떠나 그대이듯이/ 이제 그대와 내가 지리산이 되었네/ 이제 그대와 내가 지리산둘레길이네’

수한마을 샘터./황상태 

이 시를 보면서 ‘나는 왜 걷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해보았다. ‘그냥 걷는다. 걸으면서 마음이 아닌 몸이 느끼고 그 느낌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으로 나타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느끼고 물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소중한 추억, 그 자체인 셈이다.

사람과 자연 하나가 되리다

지리산둘레길 구례센터를 지나면 오른쪽으로는 구례읍 방향, 왼쪽으로는 서시교가 나온다. 서시교를 건너면 광의면과 마산면으로 이어진다. 둘레길은 서시교 아래를 통과해 다시 위로 올라와 서시교를 건너 왼쪽 강변을 따라 이어진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구례읍 오일장(3·8일)이나 사성암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특히 문척면 죽마리 오산(530m) 정상 부근에 자리 잡은 사성암(四聖庵)은 글자 그대로 4명의 고승(원효·의상·도선·진각대사)이 수도한 곳이다. 이곳에는 암벽에 새겨진 ‘음각 마애여래입상’이 있는데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유물이 있다. 절벽에 기둥을 받쳐 세워진 암자의 모습을 두고 어떤 이는 사성암을 ‘구름 위의 암자’라고도 부른다.

사성암에서 조금만 오르면 오산 정상이 나오는 데 여기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경치가 압권이다. 발아래 문척면 들판과 섬진강, 강 건너 광의·마산·토지면 너른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도 장쾌하게 펼쳐진 지리산 주능선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오른편으로는 멀리 천왕봉의 모습이 가물가물하고 왕시루봉, 반야봉, 노고단, 성삼재, 만복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여기에 화엄사 계곡과 천은사가 점을 찍은 듯 아련히 보인다.

지리산둘레길 구례센터./황상태 

구례 오일장은 지리산과 섬진강에서 나고 자란 수많은 산해진미가 손님을 기다린다. 남도 특유의 손맛도 함께 맛볼 수 있는 공간이다. 갈대와 억새가 어우러진 강둑길을 따라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섬진강과 서시천이 하나 되는 곳에 이르자 물 위에 내려앉은 새들이 평화롭게 먹이를 찾고 있었다. 서로 다른 물이 하나가 되는 곳에는 다른 곳보다 먹이가 더 많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섬진강을 따라 걷는다. 섬진강 상류 쪽은 벌써 석양으로 물들었다. 물고기 입 모양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섬진강과 어우러진다. 제법 쌀쌀한 강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날씨다. 섬진강에 드리워진 석양이 건너편 산자락의 단풍 빛깔을 옮겨놓은 듯 붉게 물들었다. 구례군 환경사업소 끝자락에서 섬진강 아래로 난 목책길을 따라 내려가지 말고 계속해서 비포장 강둑길을 따라가다 보면 19번 국도와 만나는 둘레길은 다시 우회전해서 용두마을로 들어선다. 목적지 오미마을이 멀지 않았다. 오르막이 없는 평탄한 길이었지만 그래도 20㎞가 넘는 길을 오직 다리품을 팔아 걷는다는 것은 힘든 여정이다.

정겨운 마을 이장님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들려온다.

“안녕하십니까 용두마을 이장입니다. 내일모레 공사관계로 수돗물이 잠시 중단될 예정이오니 미리 수돗물을 받아 놓으세요.”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이장님의 목소리가 저녁 무렵 들판에 울려 퍼졌다. 건널목이 없는 주유소 앞을 건너 다시 오미마을로 향했다.

멀리 마을 뒷산에는 어느 집 굴뚝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나지막이 깔려 마치 구름이 내려앉은 듯 평화롭다. 어둑어둑 해거름이 다 되어서 오미마을 앞 오미정에 도착해 긴 하루를 마감했다. 

서시천 강둑길./황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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