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서 9년째 북카페 하는 책방

크지 않은 소도시 밀양에 생긴 지 9년째 접어드는 북카페가 있다. 갖은 커피가게가 생겨나 흥성하게 되기 전 일이다. 밀양 내일동 청학서점에 딸려 있는 이 북카페는 지역사회에 열려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올해는 여러 재미있는 프로그램으로 주민들 눈길과 발길을 끌어당기기도 했다. 서점업계가 다 죽어가는 마당에 그것도 크지 않은 조그만 도시에서 북카페를 계속 운영하는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밀양에 가면 오래 된 책방이 몇몇 있다. 동아서점과 청학서점이 그런 가운데 하나다. 동아서점이 가장 오래 됐다. 1961년 개업했으니 올해로 53년째다. 그 다음이 청학서점인데 같은 동아서점 주인이 새로 낸 책방이다.

청학서점 지금 주인은 이제 막 마흔 줄에 접어든 1973년생 신찬섭씨다. 아버지가 하던 일을 이어받아 2대째 책방을 하고 있다. 지금은 거리 책방이 인터넷 서점에 밀려 거의 다 죽은 지경이지만 한 때는 장사가 잘 될 때도 있었다. 신씨를 11월 9일 저녁 7시에 만났다.

“아버지께서는 밀양을 두고 웅군(雄郡)이라 자주 말씀하셨어요. 밀양이 밀양시와 밀양군으로 분리됐다가 1995년 도농통합으로 다시 밀양시로 합쳐졌는데, 가장 많을 때는 인구가 28만 명까지 됐다고 해요. 그래서 고등학교도 많았고 아버지께서 서점을 4개까지 할 때도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하던 책방 가운데 역사가 가장 오랜 동아서점은 사촌형이 이어받았고 청학서점은 신찬섭씨한테 맡겨졌다. 옛날에는 두 서점이 차이가 없이 여러 가지 책들을 골고루 취급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사촌형이 하는 동아서점은 EBS 같은 문제지·학습지 위주이고 밀양 지역 학교에 교과서 납품도 한다. 본인이 하는 청학서점은 여전히 다양하게 여러 가지 책들을 다루고 있다.

/김훤주 기자

문제집 말고 단행본이 중심인 서점

“지금 서점을 보면 50평 기준으로 봤을 때 전체 매출의 80~90%가 문제집입니다. 나머지가 10~20%지요. 청학서점은 다릅니다. 문제집에서 나오는 매출이 전체의 55~50% 수준입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책들을 다룬다는 얘기입니다.”

요즘은 찾아보기 어렵기도 하지만 동네 서점을 가보면 매장 면적을 90% 넘게 문제집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청학서점은 문제집은 10평 정도에 깔려 있고 나머지 40평 가량은 보통 단행본이나 컴퓨터나 피아노 관련 서적, 그리고 어린이 책이 진열돼 있다. 특히 그이는 컴퓨터·피아노 관련 서적을 취급하는 데 대해 조금 뿌듯해했다. 밀양 시내에 이런 책 살 수 있는 데가 적어도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묻는 대목에서 느껴졌다.

어쨌거나 책 유통을 두고 말하자면 이미 세상은 달라졌다. 대부분 거래는 인터넷에서 이뤄진다. 일부 약삭빠른 독자는 고르기는 거리 서점에서 하고 사기는 인터넷서점에서 하기도 한다. 인터넷서점이 훨씬 싸기 때문이다. 거리 서점 책값은 정가제로 묶어놓고 인터넷서점 책값은 할인해 줘도 되도록 제도가 돼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서점은 신간 단행본의 경우 최대 20% 가까이까지 깎아줄 수 있어요. 10% 공식 할인에 적립이 9%입니다. 저희 같은 서점은 정가대로 팔아라 합니다. 그러니 책방이 안 됩니다. 밀양에서도 지난 한 해 동안 서점 두 개가 문을 닫았습니다. 이제는 네 군데밖에 안 남았습니다. 그 가운데 한 서점은 단행본과 문제집 진열 면적을 50대50로 하다가 한 달 전에 25대75로 바꿨습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마산 학문당이나 창원 그랜드문고 같은 큰 책방을 하며 고군분투하시는 선배님들이 존경스럽습니다. 하지만 섭섭할 때도 있습니다. 7~8년 홈플러스가 밀양에 들어왔는데 그 때 서점도 함께 끼고 왔습니다. 그 때 운영을 학문당이 맡았었는데, 한 번 가서 보고는 공포를 느꼈어요. 디자인이나 시설도 아주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잘돼 있었고, 취급하는 책들도 아주 다양하게 잘 갖춰져 있었어요.”

책방 분야에서 앞서 있는 선배가 밀양에 들어와서 영업하다 보니, 그리고 홈플러스라는 존재 자체가 밀양 전체 유동인구를 쓸어담다시피 하다 보니, 이제는 책방을 접어야 하는가 보다 하고 신씨는 생각했다. 그러나 밀양 시장이 작았던 때문인지, 신씨로서는 다행스럽게도 5년 전 학문당은 밀양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죽기살기로 하지만 얼굴은 늘 웃는 모습

신씨는 그래도 늘 웃는 얼굴이다. 원래 인상이 그렇기도 하지만 실제 지금 하고 있는 책방 일이 그이를 즐겁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이는 책방이 좋기는 한데, 실제 하기는 ‘죽기살기’로 한다고 말했다.

/김훤주 기자

인터넷서점에 맞서려면 어쩔 수 없다는 얘기였다.

“저는 사실 남는 게 별로 없어요. 살아남기 위해, 박리다매를 하거든요. 1만 원짜리 책 한 권 팔아봐야 1200원 정도밖에 남지 않습니다.
직원 인건비에 시설유지비와 운영비까지 더하면 거의 이익이 나지 않는 수준입니다.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서, 불법이지만, 책값을 정가보다 싸게 깎아줍니다. 10% 공식 할인에 3% 적립까지요. 하하. 그래도 인터넷서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도 ‘인터넷서점에서 더 싸게 살 수 있지만 오늘은 바빠서 책방에 와서 산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러 있고 그래서 신씨는 서운하고 얄밉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에 더해 홈쇼핑도 문제다. 신학기가 되면 어린이 동화 전집 따위를 홈쇼핑은 아예 절반 가격으로 팔기도 한다. 밀양 책방 주인 신씨는 그런 홈쇼핑을 이길 재간이 없다.

“그렇지만 문제집에 올인하지 않은 선택이 옳았던 것 같아요. 저희 청학서점은 다품종으로 소량을 취급하는데 아직은 그래도 망하지 않았고, 문제집에 매장 면적을 대부분 내준 책방은 거의 망했어요. 이제는 인터넷서점이 ‘당일 배송’까지 해 주거든요. 아침에 주문하면 오후에 일터나 학교에서 책을 받아볼 수 있어요. 인터파크는 부산권에 배송센터를 뒀고 예스24는 대구권에 배송센터를 뒀다고 합니다. 그러니 학생들이 문제집을 사기 위해 학교 앞 동네 책방을 찾을 까닭이 없습니다.”

이밖에도 서점 운영에 어려운 점은 많았다. 옛날에는 가격의 절반 정도만 줘도 먼저 책을 받아 팔 수 있었지만 지금은 80% 안팎을 줘야 책을 가져올 수 있다. 직원 교육이나 유지·관리도 어렵다. 책방 한 쪽 구석에 앉아 조용히 책을 보는 모습은 동화 속에나 나오지 현실에서는 어림도 없는 얘기다. 책을 고르고 주문하고 나르고 진열하고 손님이 찾으면 바로 집어내 줘야 하는데 이 일이 실은 그다지 쉽지 않고 어렵다. 이런 어려운 일을 신씨는 어떻게 해서 하게 됐을까?

개업 날짜 기억하라 하셨던 아버지

“밀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해서 1993년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1학년 마치고 군대 갔다왔는데, 그 이듬해인 97년에 아버지께서 편찮으셔서 더 이상 일을 하실 수 없게 됐습니다. 그래서 졸업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점을 맡게 됐어요. 다행히 다니던 대학이 창원에 있어서 통학이 가능했어요.”

결론 삼아 말하자면, 할 수밖에 없어서 가업(家業)을 이어받게 됐는데 하고 보니 일이 적성이 맞더라는 얘기다. 책과 더불어 지내면서 때로는 책을 읽고, 그런 가운데 음악을 틀어놓고 들려주고 듣고 하는 이 일이 먹고살기는 힘들어도 참 좋더라고 했다.

“아침에 나와 밤 10시까지 일하는데, 친구들은 갑갑해서 어떻게 일하느냐 하지만 저는 저녁 9시 직원 퇴근시키고 서점에서 혼자 음악 틀어놓고 책 읽을 때가 그렇게 좋아요. 또 아버지께서 서점을 소중하게 여기셨는데 가업을 이어받은 데는 그 영향도 있습니다. 제게 처음 책방 문을 연 날짜를 여러 차례 얘기하셨거든요. 1961년 8월 15일 광복절에 개업하려고 준비했는데, 진열할 나무가 썩는 바람에 이틀이 늦어져 8월 17일에 하게 됐다고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제게 기억해 두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아버지가 세상에 없거든요.”

/김훤주 기자

당시는 서점이 나쁘지 않은 때였다. 당시는 학교 앞에 있는 서점도 문제집뿐만 아니라 단행본까지 취급할 정도였다. 인터넷서점은 아직 본격 도입되지 않았고, 대형 매장도 들어서지 않아 길거리 유동인구를 빼앗아가지도 않은 상태였다.

“북카페는 2005년에 열었어요. 하다가 없어졌는지는 모르지만, 그 때 경남에는 북카페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그 때도 3층에 있었습니다. 2003년인가 아버지 세상 떠나시고 나서 울적한 기분도 바꿀 겸해서 서점 인테리어를 새로 했습니다. 비가 샐 정도로 낡아 있었거든요.

책방 잘 되게 하려고 문을 연 북카페

"북카페를 왜 열었느냐고요? 책방을 위해 만들었죠. 서점 잘 되게 하려고요. 그 때 커피 내리는 기계로 내렸는데 밀양 2호였습니다. 바리스타 교육도 제대로 받았습니다. 전국에서 알아주는 대구 ‘커피명가’ 사장님한테서 받았는데, 바리스타 1회 시험 때 필기시험은 합격했는데, 하필이면 실기시험 보는 날이 둘째가 태어난 날이었어요.
그래 망설이다가 아이 보러 가야겠다 했습니다. 만약 제가 북카페를 커피가게라고 여겼다면 시험 치러 갔겠지요. 하하.”

그이는 그 때 인테리어를 하지 않고 북카페를 열지 않았다면 그 뒤에는 그렇게 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어쩌면 자기도 서점 운영을 포기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 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뒤로 밀양 서점 업계 사정이 크게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투자해 놓은 몫이 커서라도 죽기살기로 서점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서점업계 선배들이 제게 이럽니다. ‘지금은 문제집도 안 나간다. 니도 (문 닫을) 준비해라.’
하지만 저는 남는 게 별로 없어도, 책이 팔리기만 한다면 빵을 끼워주고 떡도 끼워주고 뭐든 끼워주고 해서라도 서점을 합니다. 사실 깨놓고 말하자면, 대학 2학년 때부터 이 일을 해 왔으니 이것밖에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할 것도 없습니다. 정말 죽기살기로 합니다.”

/김훤주 기자

신씨가 청학서점 3층에 북카페를 운영하면서 공간을 지역사회에 내놓는 까닭도 당연히 책방이 잘 되도록 하는 데 있다. 지난해에는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지원을 받아 시낭송회·음악회 등과 독서감상화 대회 등을 열었다. 독서모임도 만들어 꾸준하게 하고 있다. 지역사회에 작으나마 활기와 윤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는 것이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역 서점 문화활동 지원 사업’ 공모에 경남에서는 저희 서점만 선정이 됐습니다.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하게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어요. 오늘도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이라는 단행본을 펴낸 조우성 변호사 초청 간담회가 낮에 있었는데요, 서른 명 정도 참가한 가운데 아주 밀도 있게 진행돼 모두가 만족하고 갔어요. 조 변호사가 밀양 출신이어서 만들어진 자리였지요.”

열려 있는 북카페를 지향하는 책방 주인

어쨌든 사정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말하자면 이렇다. 옛날에는 출판사에서 책갈피를 공짜로 나눠줬다. 그런데 이제는 책갈피는커녕 책을 담을 봉지도 주지 않는다. 출판사도 사정이 나빠지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또 홈쇼핑에 나가는 책값과 거리 서점에 나오는 책값이 다르다. 이중가격이다. 아예 경쟁이 되지 않는 구조인 것이다.

“그래도 합니다. 봉사 같은 장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방 있는 자리가 좋다 보니 마실거리·먹을거리 하는 여러 기업에서 찾아와 업종 변경을 하거나 숍 인 숍(shop in shop) 개념으로 자리를 내어달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도 그런 유명한 업체 관계자가 왔다 갔는데요, ‘아직은 (책방을 할) 의욕이 있다’고 설명해 드렸습니다.

/김훤주 기자

북카페를 운영하면서 올해 독서큽럽이 만들어졌어요. 도서관이나 이런 데서 하는 엄마들 독서모임을 보면 대부분 베스트셀러 위주인데 우리는 ‘고전을 읽어보자’ 이랬습니다. 4월 즈음에 첫 모임을 했는데 <노인과 바다>를 읽고 얘기를 나눴습니다. 원래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러다보니 책도 읽지 않고 오는 사람이 있는 등 문제가 있어서 10명 정도로 줄였습니다. 이번에는 톨스토이가 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얘기합니다.”

그이는 얼마 전에 있었던 한 일을 두고 후회하고 있었다. 우쿨렐레 동호인 모임에서 전화가 왔는데 청학서점 북카페에서 음악회를 해도 되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신씨는 때마침 기분도 울적하고 해서 ‘북카페랑 성격이 맞지 않다’고 불쑥 거절하는 말을 해버렸다고 했다. 곧바로 잘못을 깨닫고 백방으로 연락처를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면서 언제라도 연락이 오면 사과하고 자리를 내어드리겠다고 했다.

“영어 원서 읽기 모임도 해 보고 싶고, 사회성 있는 책읽기 모임도 하고 싶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처럼 북카페에서 음악회나 글쓴이 초청 간담회, 시 낭송회 등등도 하고 지역 여러 단체들 토론 장소로도 제공하려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책방을 살리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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