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3종대회 출전하는 한의사

지금까지 한의사 인터뷰를 열 번 가까이했다. 그러다 보니 한의원 내부 분위기만 봐도 원장이 어떤 사람인지 대략 감이 온다.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에 자리한 인제한의원. 상남상업지구 내에 있어 바깥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하지만 한의원에 들어서자 이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런데 원장실 외벽 한쪽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이클․수영․마라톤 사진이 한가득 자리하고 있다. 철인3종 경기 관련 사진 같았다. 한의사와 철인3종경기라…. 궁금한 마음에 퍼뜩 자리에 앉아 엄주오(55) 원장 이야기를 들어봤다.

약사 아버지 뒀지만 양약 입에도 못 대

엄주오 원장은 통영이 고향이다. 통영충렬초-통영동중-진주고를 거쳐 원광대 한의대에 들어갔다. 어릴 적 큰아버지가 한의원을 했고, 아버지는 약국을 운영했다. 한약·양약 모두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특히 엄 원장은 몸이 허약한 체질이었다. 큰 병은 아니더라도 잔병치레를 많이 했다.

“어릴 때 몸이 굉장히 약했어요. 그런데 양약을 먹었던 기억은 없어요. 아플 때마다 큰아버님을 통해 한약으로 몸을 다스렸지요. 아버지가 약국을 하셨으니 양약도 분명히 먹이고 했을 것인데, 뭔가 안 맞으니 한약만 먹이지 않았겠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진통제 한 알을 먹었는데, 혈압이 뚝 떨어져서 이틀 동안 누워 있었던 적이 있어요. 자양강장 음료도 먹으면 곧바로 올릴 정도니까요. 지금도 아프면 양약은 먹지 않고 한약을 직접 짓죠. 양약이 제 몸에 들어오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요. 반대로 어떤 분은 한약이 그렇기도 하죠.”

엄주오 원장,/남석형 기자

큰아버지가 한의원을 하셨고, 한약이 자신에게 잘 맞으니 자연스레 이쪽에 관심을 뒀다. 특히 아버지가 한의사 길을 권유하신 이유까지 더해진다. 대학 시절 한의학 공부를 해보니 적성에도 잘 맞았다.

“한의학이라는 것이 원래 근본이 음양오행이잖아요. 우주 원리를 학문으로 변형한 거죠. 학문 속에 우리 살아가는 진리가 담겨 있다고 봐야죠. 그게 큰 매력이죠. 요즘 젊은 사람들에 대해 도덕성 얘기를 많이 하는데, 한문 공부를 안 하는 것도 큰 이유 중 하나라 생각됩니다. 한문 공부 자체가 곧 인성교육이니까요.”

엄 원장은 대학 시절 한의학 공부를 어설프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약초 공부를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약초를 직접 채집하기 위해 배낭 메고 전국을 다녔지요. 남들 가는 어지간한 산은 다 가봤다고 봐야죠. 식물 1500종 정도는 줄줄 외우고 있었죠. 식물도감 사진을 보면 학명이 뭔지 바로 튀어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요즘 사람들이 약용식물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약초 안내해 주는 일을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도 같아요. 투잡
으로 한번 해 볼까요? 하하하.”

고향 통영에 이어 창원에 정착

엄주오 원장은 대학 졸업 후 대학병원에서 수련하다 29살에 개원했다. 이름은 스스로 ‘인제한의원’으로 결정했다. “어질 인에 다스릴 제…. 그 의미가 좋았죠. 서울·고려 같은 이름과 더불어 흔한 게 인제한의원이에요. 대중적 인식이 있어 괜찮을 것 같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향이 강원도 인제냐, 인제대학교 나왔느냐고 물어보는데, 그런 것은 아니고요.”

고향 통영에서 첫 출발을 했다. 고향에서 하다 보니 아는 사

/사진 엄주오 원장 제공

람들이 많이 찾았다. 좋은 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었다.

“침 맞을 때는 몸을 드러내야 하니까, 아는 사람한테는 잘 맞으러 가지 않잖아요. 환자는 스스로 치부를 드러내야 하는데, 잘 아는 사람에게는 그러지 못하는 거죠. 그런데 고향에 아는 사람이 많다 보니 그런 어려운 점이 있었죠. 처음에는 한의사 선생님으로 대하다가 나중에 알고서는 ‘그때 그 조그마한 애가 벌써 이렇게 컸네’ 이렇게 되죠. 그러니 치료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거죠.”

그렇게 해서 2년간 머물던 고향을 떠나 창원에 둥지를 틀었다. 1989년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창원은 이제 막 발전하던 신흥도시였다.

한의원이 인근 마산에는 70개 정도 됐지만, 창원은 고작 5~6개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가음정동, 롯데아파트 인근, 소답동, 반송동 등에 한의원이 있는 정도였어요. 신흥도시다 보니 괜찮을 것 같아 오게 됐지요. 이곳 상남동에 자리 잡았는데, 당시만 해도 전부 논밭일 때였지요. 소 모는 농민들의 ‘이랴~ 이랴~’ 소리가 들리던 때였어요. 그런데 20년 지난 지금 창원에는 한의원이 150개가량 되죠. 상남동에만 20개가 몰려있으니까요.”

지금은 한의원에서 창문을 열면 상남상업지구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눈에 들어온다. 말 그대로 ‘상전벽해’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그 사이 엄 원장을 찾았던 꼬마는 이제 어른이 되어 그 아이를 데리고 한의원을 찾기도 하다. 기억에 남는 이들도 여럿 된다. 엄 원장은 신경성 질환을 비롯해 부인과, 운동계 질환이 전문 분야다.

엄주오 원장,/남석형 기자

“한 환자는 울화병, 요즘 말로는 스트레스로 오랫동안 한의원을 찾았죠. 한약을 먹다가 좀 지나면 또다시 스트레스에 함들어 하는 시간이 반복됐죠. 중소기업 간부였는데, 이야길 들어보니 직장에 대한 문제가 컸던 것 같아요. 제가 직접적으로는 이래라저래라 하기는 그렇고, 우회적으로 돌려서 얘기했죠. 나중에 그분이 저한테 병이 다 나았다고 하더라고요. 회사를 관두고 개인 사업을 하니 만성병이 없어지더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원장님이 말씀하셨던 게 뭔 뜻인 줄 이제야 알겠다’면서 고마워하더라고요.”

정작 엄 원장은 본인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까? 그는 운동이야기를 꺼냈다.

어릴 적 약골에서 이젠 철인으로

엄주오 원장은 2002년 트라이애슬론, 즉 철인3종 경기를 시작했다. 수영․사이클․마라톤을 연이어 달리는, 말 그대로 자신과의 싸움이 필요한 운동이다. 올림픽코스는 수영 1.5km, 사이클 40km, 달리기 20km다. 하지만 거리를 두 배 세배 더하는 아이언맨, 더블아이언맨 코스도 별도로 있다. 엄 원장은 우연한 기회에 꼬여서 시작하게 되었다며 그 계기를 풀어놓는다.

/사진 엄주오 원장 제공

“학교 때 약초 채집하면서 오랫동안 등산을 했죠. 산악회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자주 산을 탔습니다. 그런데 등반하는 속도가 아주 빠른 편입니다. 설악산 대청봉 6km 거리는 보통 3~4시간 걸리죠. 그런데 어느 날 한 번도 쉬지 않고 나는 정확히 1시간 40분 만에 탔습니다. 산악회에 철인3종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죠. 저보고 한번 해보라면서 권유를 해 시작하게 됐죠.”

사실 이전까지 수영․사이클․마라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 어릴 적에는 운동을 싫어하기까지 했다.

“학교 다닐 때 제일 싫어하는 게 체육 시간입니다. 아예 고통의 시간이었죠. 우리 때는 20점 만점의 체력장이라는 게 있었잖아요. 시험을 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운동이다 보니, 그게 그리 싫었던 거죠.”

그런 그가 철인3종 경기에 푹 빠진 것이다. 그냥 흉내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종 대회에 참석했다. 입문 이후 그다음 해에는 국내에서 열리는 10개 넘는 대회에 모두 출전했다. 호주․일본․뉴질랜드 등 국외에서 열리는 대회에도 여러 번 출전했다.

“한계를 극복하는 매력에 푹 빠진 거죠. 힘드니까 더 하고 싶어지는 그런 뭔가가 있어요. 국외 대회는 국내와는 또 다른 느낌이 있어요. 서양 사람은 우리와 신체 구조가 달라서 수영․사이클은 아주 잘해요. 호주 대회에 출전했을 때였죠. 사이클을 탄 몸이 뚱뚱한 여자가 오르막길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가볍게 오르더라고요. 알고 보니 60대 할머니였어요. 대신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라톤은 좀 강한 편이죠. 작은 체구의 제가 쌩쌩 달리면, 거리에 나온 사람들이 열렬히 응원해 주는데, 그럴 때는 정말 할 맛 나죠.”

국제대회 출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에는 한의원 운영에 차질 없도록 하고 있다. 운동도 시간을 쪼개서 한다. 매일 새벽 4시 30분 일어나 조깅하고, 수영은 점심시간을 활용하는 식이다.

한의원 내에는 그가 출전한 대회 사진, 트로피가 있다. 치료실 한쪽에는 사이클까지 비치해 있다. 엄 원장은 자신이 표지모델로 나온 어느 대회 포스터를 보여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도 10년 정도 하면서 좀 지겨움을 느꼈다. 그래서 지난 2년간은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다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철인3종 경기는 바닷물이 찬 겨울에는 하기 어렵기에 5~10월에만 대회가 열린다. 겨울에는 다음 해 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동계훈련 기간이다. 엄 원장은 내년 대회를 위해 다시 몸을 만들고 있다. 생활체육 아닌 거의 선수 수준이다.

엄주오 원장,/남석형 기자

“85살까지 철인3종 출전이 삶의 목표”

엄주오 원장은 운동을 위해 직접 술을 담가 먹기도 한다. 운동 후 몸에 쌓이는 불순물을 빼기 위해 약재로 담근 술을 한 잔씩 한다.

평소에 술은 사람들 모이는 자리에서 분위기를 즐기는 정도다. 담배는 일절 하지 않는다. 이 역시 몸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교 1학년 때 한 모금 입에 댔다가, 3일 동안 목이 아팠던 경험이 있다.

엄 원장 집안은 큰 범주에서 비슷한 계통 일을 하고 있다. 한의원을 운영하던 큰아버지, 약사 아버지뿐만 아니라, 형은 수의사, 동생은 이비인후과 의사다.

/사진 엄주오 원장 제공

엄 원장은 26살 된 딸을 두고 있지만, 미술 전공이다.

“대를 이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제가 강요할 문제는 아니죠.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해야죠.”

그에게 마지막으로 인생의 목표를 물었다. 그런데 다름 아닌 철인3종 얘기로 되돌렸다.

“국내 철인3종 완주자 가운데 최고령이 85세 할아버지에요. 철인3종 하는 제 사진을 보면 조금씩 늙어가는, 세월의 흔적을 느끼죠. 그래도 자기 관리를 꾸준히 해서 85세까지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제 삶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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