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을 ‘꽃반지 끼고’ 연주하다

진주여성민우회(대표 강은주)는 1996년 창립했다. 이후 진주지역에서 여성의 정치사회적 활동과 인권 향상을 위해, 새로운 인식 개선을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정치 활동을 해왔다. 현재 진주여성민우회는 지역 내 저변 확대를 위해 부설 기관으로 성폭력상담소(소장 정윤정) 소장, 행복중심 생협(이사장 신소희), 지역아동센터 해야해야(시설장 진선명)를 두고 있다. 이중 소모임 활동은 400여 명의 회원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어 호응도가 높다.

“뭔가 악기 하나정도 할 수 있다면,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할 때 자신이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는 건 뭔가 풍요로워지는 것 같아서요.”

진주여성민우회에는 끼리끼리 친목을 도모하는 회원들의 여러 모임이 있다. 보고 듣고 체험하는 영육아교육모임 ‘소리개비’, 영어를 입으로 끌어올리는 ‘영어의 신이 강림하소서’를 줄인 ‘영신강림’, 성폭력 인형극단 ‘대갈장군(가칭)’, 일상을 기록하는 사진 모임 ‘빛의 기억’, 그리고 기타연주 모임 ‘아스피린’ 등이다. 이들 중 기타연주 모임은 2011년 봄부터 기타 연습을 하면서 그해 10월에 결성되었다.

주변에 청량감 주는 모임이 되고픈

‘아스피린’. 모임 이름만으로는 락밴드를 연상케 했다. 스키니 청바지에 중성적인 옷차림, 큰 목소리가 주 무기인 아줌마 반란군 정도. 하지만 실체는 포크기타를 연습하는 ‘조금 나이 든 소녀들(?)’이다.

   

“1기 회원들이 고심해서 이름을 정했어요. 기타를 배우다보니 알게 된 건데 기타 주법이 몇 가지 있더라구요. 거기서 정성스럽게 따왔습니다. ‘아’는 아르페지오에서. ‘아르페지오’는 손가락으로 한 줄 한 줄 튕기는 걸 말하지요. ‘스’는 스트록에서. ‘스토록’은 한 번씩 퉁퉁 튕기는 걸 말하고. ‘피’는 피크에서. 피크는 기타 연주 할 때 줄을 튕기는 도구지요. ‘린’은 특별한 뜻 없이 붙였는데 어감이 좋잖아요. 전체 의미로는 여성민우회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 청량감을 주는 모임이 되자는 뜻이에요.”

각자 이런저런 계기로 진주여성민우회 식구가 되었다. 1996년 창립회원으로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해온 사람이 있는가하면 2005년 진주민우회 생활협동조합이 생기면서 장 보러 다니다가 자연스럽게 회원이 된 사람도 있고, 아이들 키우고 결혼 생활하면서 같은 공감대로 들어온 사람도 있다.

“기타는 참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악기입니다. 쉽게 가지고 다닐 수 있고, 여럿이 같이 모여서 하기도 좋고, 놀러가서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쉽게 연주해줄 수도 있고…. 다른 악기에 비해 집에서 여유 있을 때 연습도 쉽게 할 수 있고. 피아노는 아파트에선 할 수가 없잖아요. 배울수록 좋더라고요. 감성적으로도 많이 풍부해지고….”

‘아스피린’은 매주 금요일 오후에 모여 연습을 하는데 이광지 사무처장이 지도하고 있다.

   

“잘 하는 건 아니고요. 딱히 지도강사가 없으니 조금 일찍, 좀 더 시간을 내어서 배운 사람이 나서는 거지요. 실제 우리 모임은 거의 독학이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회원을 모집할 때도 몇 달 배운 걸 마치 능란하게 연주하는 양 솜씨를 보여줬습니다. 순전히 밑밥이었습니다. 몇 달하면 이리 된다는…(하하) 연주 녹음한 파일을 보내주기도 하고요.”

동기도, 연습 방법도 제각각 다양해

현재 활동하고 있는 회원은 11명. 박후선(44) 박선혜(35·유치원 영어 강사) 지정옥(53) 김연우(53) 이광지(42) 신소희(45) 하희자(45) 이정혜(41) 양미영(41) 김남진(41). 3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까지 다양한 연령층이다.

진주여성민우회의 창립회원이며 ‘아스피린’의 가장 선배인 지정옥 씨가 기타를 배우게 된 동기는 좀 남다르다.

   

“아들이 내게 준 미션입니다. 하루는 엄마아빠는 인생을 사는 게 즐거우세요? 등 주제를 두고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엄마가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뭐든 좋으니 엄마가 악기를 했으면 좋겠다더군요. 첼로가 안 되면 피아노, 기타로…. 그래서 지금 미션을 수행중입니다. 여러 가지로 가장 쉬운 게 기타라서 시작한 거지요. 처음에는 둔탁한 소리였는데, 지금은 맑은 소리가 나는 게 신기하네요.”

김연우 씨는 진주여성민우회 대표를 역임한 진성 회원이다.

“노래를 잘못 불러서 악기는 당연히 안 되는 줄 알았어요. 근데 배우니까 되더라고요. 우리가 하는 건 포크기타인데, 중간에 잠시 ‘차라리 클래식기타 할 걸’ 후회는 좀 했었습니다. 포크 기타는 노래를 부르면서 해야 하거든요. ‘꽃반지 끼고’, ‘이뤄질 수 없는 사랑’ 등 노래를 부르면서 연주할 수 있으면 훨씬 멋진 공연을 할 수 있을 건데….”
연우 씨는 노래가 안돼 다양한 공연을 펼칠 수 없는 게 못내 아쉽다고 했다.

“우리 모임의 결정적인 문제는 싱어가 없다는 겁니다.”

   

옆에서 이광지 사무처장이 큰 소리로 말하자 회원들은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딸이 서울에서 지난 1월에 결혼했는데 우리가 가서 연주해주겠다고 했는데 거절하더라고요. 우리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연주해줄 거라고 했거든요.”

순간, 다들 까르르 웃었다. 그리고는 잠시 “이참에 노래 선생님을 모실까?”, “아냐. 기타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의견이 왔다갔다했다.

박후선 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여성민우회에 회원이라 하면 큰일난다는 시각이었다며 굳이 가족들에게 내세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열심히 하다가 쉬다가 조금 들쭉날쭉이었네요. 작년 총회 때 행사용으로 투입되었다가 여러 이유로 쉬다가 다시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기타 배운다하니 남편이 기타를 사 주었어요. 본인이 배우고 싶은 걸 아내가 배운다하니 지지해준 거지요.”

옆에 있던 회원들이 ‘아스피린’ 멤버 중에 가장 좋은 기타를 가진 사람이 후선 씨라고 한 마디 씩 거든다.

‘아스피린’의 가장 막내인 삼십대 중반 박선혜 씨는 정확히 4개월 정도 모임 활동을 했고 공연 경험은 아직 없다.

“원래 무언가 배우는 걸 좋아합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사춘기 아이와 갈등 문제를 기타를 배우면서 해소했다는 기사를 보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침 기회가 와서 하게 되었지요. 초등학생 딸에게 같이 배울 것을 권했더니 거절하더라구요. 바람이라면 언젠가 가족들이 함께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선혜 씨는 민우회생협(현재 행복중심 생협) 매장에서 먹거리를 사먹다가 진주여성민우회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아스피린’ 활동을 하면서 시민단체의 벽을 허물어뜨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여성인권에 관심이 많았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지요. 딴데서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을 여기서는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어 좋습니다.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정치적인 입장이나 주장을 강요하지 않더군요. 전혀 그런 부담을 갖지 않고 다니고 있습니다. 기타 등 소모임 활동도 좋고요.”

공연료는 떡이나 택시비 등 주는 대로

‘아스피린’은 현재 강사료를 지급할 형편이 되지 않아 정기모임을 통해 연습하고 있다. 회원 중 이광지(진주여성민우회 사무처장) 씨가 책임 지도를 하고 있다.

“좀 더 오랫동안, 좀 더 열심히 배워 실력이 낫지 않을까 라는 이유지요. 다들 독학이에요. 그리 급할 게 없으니 천천히 가는 거죠.”

실제로 회원들은 집에서 과제를 하다시피 연습하고, 이렇게 한 번 씩 모여서 다른 회원에게 묻고 다시 연습하고, 전체 하모니를 맞춰가면서 조금씩, 천천히 진도를 내고 있다.

최근 몇 개월 사이에는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설레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여기저기 지역 시민사회단체 행사에서 찬조공연을 요청 받았던 것이다.

“희소성 때문이지요. 아직 공연을 나설 정도는 아닌데, 우리 주변 단체들에 기타 모임이 없잖아요. 그래도 공식 행사에서 서너 번 했나 봐요. 진해 행복중심생협 창립행사, 진주참여연대, 진주생협 10주년 등…. 또 진주여성민우회 자체 행사로 10년 만에 재정사업으로 밥집을 했는데, 거기서도 좀 눈에 띄는 활약을 했지요. 하하.”

외부행사에서 공연료를 받은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재능 기부 차원이고, 단체간의 상호 연대가 더 크다고 한다.

   

“택시비로 5만원을 받은 적도 있고 떡이나 과일 등 먹거리를 받았어요. 저희야 불러만 주면 감사히 갑니다. 절대 튕기지 않습니다. 하하.”

‘여성이 웃는다. 세상이 웃는다’는 진주여성민우회의 슬로건은 더 이상 박제화 된 명제가 아니었다. 생활에서 나로부터 서서히 나아가는, 그리고 주변을 감싸며 함께하는 웃음소리와 같은 이것은 ‘슬렁슬렁 투쟁’이었다.

인터뷰가 1시간 30분 넘어가자 회원들은 멈췄던 연습을 이제 다시 시작하고픈 눈치들이 역력했다. 기타줄 위에서 손가락이 코드를 짚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귀한 시간인데…. 연습실 한 쪽 벽면을 다 차지하고 있는 악보 ‘그 겨울의 찻집’이 이들을 기다린 듯 선명했다.

연습실을 나와 조용히 돌아서 내려오는 계단 위로 맑은 기타 소리가 따라 내려왔다. 소소한 일상은 이들의 기타 소리와 함께 때로는 가을날 나뭇잎에 부서지는 햇살처럼 눈부시게 빛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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