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후 서호만 매립지에 궤짝 행상들 들어서”

“옛날에 여게는 전부 바다였제. 일제가 여길 메꾼 걸 해방되고나서 더 메꿨다아이가. 우리 어렸을 때는 농사도 못 짓는 쓸모없는 땅이었제. 그러다가 갈데없는 사람들이 하꼬방을 지어서 살고, 묵고 살라꼬 장사하고…그래가꼬 이리 된 기라.”

서호전통시장으로 가기 위해 근처 통영항에 주차를 하다가 만난 김한길(79) 노인. 노인은 근처 미륵도와 도남동 등지에서 평생을 살았다며 오래전 기억 창고에서 주섬주섬 통영 옛이야기를 끄집어내었다.

“일제 때 식량보급에다 군수물자를 쌔리 나를끼라고 해저터널도 그때 만들었다 아이가. 통영항도 해방되기 몇 년 전에는 일본 군항이었고….”

서호전통시장을 이야기하자면 통영항을 빼놓을 수 없다. 서호만을 메운 자리에 통영항이 들어섰고 서호시장이 들어섰다. 통영 역사에 따르면 통영항의 형성 및 변천은 1906년 민간사업으로 해안 9,256.24㎡를 매립함으로써 건설이 시작되었다. 1940년부터는 일본 군항이었고, 이후 충무항으로 불리다가 1995년 시·군통합으로 다시 통영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 통영항은 수산물의 수출입을 담당하는 국제무역항은 물론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위치하고 있어 관광항구로서, 부산·여수·사천·거제 등과 그 밖에 인근 도서지방을 연결하는 해상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

/권영란 기자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 위한 ‘아침 시장’

서호전통시장은 통영 해안로와 도심 도로인 새터로 사이에 놓여있다. 여러 곳의 시장 입구 중 통영항 쪽으로 난 입구는 평일 오전이지만 사람으로 북적였다. 해안로를 따라 식당들이 차레로 줄을 이어 있다. 깨끗이 간판 정비를 끝낸 식당가는 이른 아침 해장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시장경영진흥원 전통시장 역사에 따르면 현 서호전통시장의 대부분은 일본인이 매립한 땅이었다. 80%는 일제강점기에 매립했고, 20%는 해방 후 매립했다. 일제가 서호만을 매립하여 조성된 이 땅은 해방 후 정부재산으로 귀속되었으나 황무지로 방치되어 있었다 한다. 일본 현지에 살던 동포들이 해방 후 통영항을 통해서 귀국하기 전까지 어떤 용도로도 사용치 못하던 땅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사람들이 거주를 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맨몸으로 귀국한 동포들이 ‘하꼬방’ 같은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 노점 행상을 시작하고 이른 새벽부터 아침 시간에 장사를 시작했다. 뱃사람이나 항구 노동자들을 위해 새벽 일찍 문을 열었다. 빨리 먹을 수 있는 밥집이 문을 열고 푸짐한 새참거리를 파는 집이 문을 열었다. 고깃배가 가져오는 물건들이 하나 둘 모이고 흥정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은 점점 시장으로 변모했다. 오늘의 서호전통시장이다.

/권영란 기자

아직도 이곳엔 ‘서호시장은 아침 시장이고 중앙시장은 오후 시장’이라는 말이 남아있다. 꼭두새벽부터 문을 열어 장사하면서 시작된 말이다.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배를 곯고 가면 되것나예. 싸게, 빨리, 배 채울 수 있는 밥집들이 꼭두새벽부터 시작했제. 지금도 아침 일찍이 더 바글바글한 건 맞지만 그래도 상설시장인데 오후 장사도 잘 된다예. 아이구, 이러다간 오후 손님은 다 놓치것네.”

이곳 상인들은 이제 우스갯소리로 이 말을 부정한다.

서호전통시장은 이곳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있는 강구안 통영중앙전통시장과 함께 통영지역을 대표하는 시장이다. 상가건물형 시장으로 현재 점포수는 350개 이상이고 노점이 200 개 정도의 중형시장이다. 법인으로 되어 있는데, 300여명의 회원으로 이뤄진 (사)서호시장상인회(상인회장 전학봉)가 시장 운영을 도맡아 하고 있다.

/권영란 기자

2009년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문화관광형시장으로 지정받은 데 이어 시설 현대화가 점차적으로 진행되면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상인대학을 통해 상인들의 의식과 친절도는 높아지고, 고객서비스를 위한 시설은 새로워졌다. 시장 안 화장실은 깨끗했다. 휴지가 비치돼 있고 관리 상태가 좋았다. 서호아파트 옆 ‘서호전통시장 고객지원센터’는 누구나 이용 가능하며 교육과 전시, 쉼터 등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또 인근의 해저터널, 미륵산케이블카, 남망산공원 등 인근 관광자원과 연계하여 한층 활기찬 분위기이다.

‘통영일 뿐이고’…서호만한 데가 있을라나

시장골목 뒷길로 난 30년이 넘은 대장간에는 아직도 뱃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일감을 맡긴다.

골목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낮술을 마시던 늙은 선원은 서호전통시장을 떠올리면 마음이 짠해진다며 목소리가 금세 축축해졌다.

“지금이야 묵고사는 걱정은 없지만 그때는 식구는 많고 땟거리는 없고, 머시든 일할 것만 주면 덤벼들었제. …묵고 살라꼬 혹시 일이 있나 싶어 항구와 시장을 마이 댕겼제. 우리 부친도 그랬고, 나도 그랬어. 새벽 1시가 되면 집에서 출발해 해저터널을 지나 서호시장까지 와서 일거리가 있는지 찾아댕겼는 기라.”

이곳에는 무엇보다 싼 값에 허기를 채울 먹거리가 풍부하다. 시장 골목에서 만나는 좌판 위 먹거리들에 입이 벌어진다. 찹쌀도넛츠는 공갈처럼 크다. 새우 오징어를 버무린 해물야채 튀김은 장정 손바닥 2배만 하다. 그러고도 500원, 600원이다. 새참거리이면서 든든한 한 끼가 될 수 있는 것들. 앉을 새 없이 그냥 서서, 또는 걸어가면서 먹을 수 있는 ‘통영식 패스트푸드’는 바다에서 나는 재료들을 아낌없이 사용해 싼 값에도 넉넉해 놀랍기만 하다. 눈물겹기조차 하다.

/권영란 기자

“동양의 나폴리, 이런 말 좀 안 했으모는 좋겠구만. 온제 누가 한 말이요, 그게…. 쯧쯧. 오데서 양놈들 물 좀 먹었다는 것들이, 좀 배웠다고 하는 것들이 말했던가 본데 참말 부끄럽소. 내는 나폴리 구경도 몬혀봣지만 그냥 통영은 통영이고, 나폴리는 나폴리인거제. 서호시장 함 가보소. 사람 사는 기 요기처럼 찰진 데가 있것소. 나폴린가 디포린가 허는 데도 우리 서호시장 같은 데가 있을라나.”

서호전통시장에서 예전에 행상을 했고 지금은 놀이터처럼 왔다갔다한다는 최씨라고만 밝힌 아재는 어디에 비할 수 있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통영 사람의 긍지가 역력했다.

통영은 한국의 남쪽바다 아름다운 항구일 뿐이고, 서호전통시장은 통영사람들의 역사와 삶의 애환이 깃든 생활 터전일 뿐이고. 타지에서 온 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 이유이다.

주소 : 경남 통영시 서호동 177-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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