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클럽 공연이 제격이다. 뮤지션들 숨소리도 들을 수 있고, 무대와 청중이 손쉽게 어울리는 맛도 좋다. 특히 어쿠스틱 음향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작은 무대를 선호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때때로 대형 야외무대나 콘서트홀 연주도 필요하다. 뮤지션들 입장에서는 압도적인 환호성이 새로운 결기(決氣)를 불러일으키고, 이것이 청중들에게 전달되는 ‘선순환’이 있기 때문이다.

“낮 공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경남도민일보가 삼색 재즈콘서트를 연 지가 벌써 네 번이나 됐다. 지난 11월 1일 열린 콘서트는 오후, 저녁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사회를 맡은 재즈 비평가 김현준 씨는 출연진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낮 공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걸 본 적 있나? 최선을 다해 연주해주세요!”

비단 그런 당부가 아니더라도, 4회를 거쳐 오는 동안 삼색 재즈콘서트 무대는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뮤지션들은 창원지역 재즈 열기가 예상보다 훨씬 높다며 다들 놀라곤 했다.

처음 김현준 씨를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그는 흔한 비평가가 아니었다. 그가 쓴 책을 읽어봤기에 내공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음악철학도 뚜렷했고, 게다가 성격도 ‘오픈 마인드’였다. 같이 일을 저질러도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시작한 게 삼색 재즈콘서트다. 기대에 다소 못 미친 뮤지션들도 있었지만, 청중들은 대체적으로 ‘세 가지 스타일’로 무장한 출연진들을 크게 반겼다. 특히 골든 스윙밴드, 조정희·이선지 듀오, 바스커션으로 구성된 2013년 공연은 딴 때보다 조화미가 돋보였다는 평가다.

통상 공연을 구성하기 전 서울 나들이를 통해 김현준 씨와 공연 윤곽을 논의하곤 한다. 재즈신 흐름을 정확하게 꿰뚫는 그이기에 매번 시의 적절한 판단을 내리곤 한다. 사실 2013 공연은 빅밴드를 초청해 세 가지 스타일을 선보였으면 하는 욕심이었다. 그러나 그는 짜임새 있는 빅밴드가 부족한 실정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있다는 밴드도 대부분 행사 치르듯 연주하는 무성의가 많다고 했다. 아쉽지만 2014년을 기약해본다.

골든스윙밴드.

감동이 두어 달 갈 듯하이!

올해 공연에도 많은 지역민들이 콘서트장을 찾았다. 지인들과 함께 온 윤석년 전 편집국장은 공연 후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 감동 두어 달 갈 것 같다!” 후배를 격려하는 말이었겠지만, 그래도 연치 높으신 분들이 즐거워했다는 사실에 한동안 뿌듯했다.

재즈 마니아인 최충경 창원상의 회장은 오후 공연 도중에 홀을 나갔다. 한 팀만 보고 간 듯싶었는데, 저녁공연에 또 들른 게 아닌가!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 말씀드린다. 예전에 최 회장에게 어떤 아티스트들을 좋아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트럼페터 최선배 같은 옛 사람들을 좋아하지,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사실 젊은 뮤지션들 위주로 구성된 2013 공연은 썩 구미에 맞지 않았을 듯싶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삼색이란 타이틀은 원래 마창진 통합을 염두에 두고 갖다 붙인 이름이다. 재즈가 지닌 다양성을 보여주고자 ‘세 가지 색깔’ 정도가 어울렸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결과는 그런대로 만족. 이제 지역에서도 경남도민일보 문화공연 하면 삼색 재즈콘서트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큰 무대와 작은 무대 사이에서

네 차례 공연을 치르는 동안 무대 뒤에서 만난 출연진들은 음악 하는 사람답게 다들 푸근했다. 대기실을 돌면서 꼭 인사를 했는데, 삼색 재즈콘서트에 몰리는 열광적인 시선들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사실 삼색 재즈콘서트는 국제적인 재즈 무대가 아니다. 그만큼 부담이 덜하다. 그렇다고 마니아들과 함께 편하게 즐기는 소규모 클럽도 아니다. 적당한 떨림이 요구되는 자리다. 출연진들은 아마 이 간극이 주는 긴장을 즐기지 않았나 싶다.

출연진 면모를 돌이켜 보니 장르가 참 다양했다. 정통 피아노 트리오부터 오리지널 스윙밴드, 퓨전 그룹, 라틴밴드에 이르기까지. 팀도 모두 12개에 사람 숫자는 60명을 넘는다. 첫 회 공연 때는 젠틀레인 드러밍과 말로가 내지르는 열정적인 보컬이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는 쿠반 재즈 밴드 모히토 리코가, 3회 때는 데이먼 브라운-미카엘 루트자이어 퀸텟이 돋보였다. 4회째인 올해는 세 팀 모두 골고루 찬사를 받았다.

물론 평가는 감상자들마다 다 다르다. 다만 내 취향이 올드하기 때문에 굳이 점수를 준다면 4회 출연자인 ‘골든 스윙밴드’가 가장 좋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선지, 조정희.

재즈 본거지에서도 출연요청 잇달아

김현준 씨 전언에 따르면 이제 한국 재즈 본거지인 서울에서도 삼색 재즈콘서트에 대한 소문이 제법 나돌고 있다고 한다. 아마 ‘작지만 탄탄하고 열정적인 무대’로 알려지지 않았나 싶다. 김현준 씨는 “삼색 무대에 서고 싶다는 바람을 전해오는 이들이 꽤 있다”며 “삼색 무대가 그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는 증거”라고 웃는다.

원동력은 역시 청중이다. 처음 콘서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재즈공연에 사람들이 잘 모이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그런데 그건 선입견이었다. 재즈 음률에 정통하진 않아도 재즈가 풍기는 매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트로트와 팝, 클래식으로 이원화돼 있는 지역 공연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바스커션.

2013년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모녀지간인 듯한 두 여자 분에게 물었다. “오늘 공연 어땠어요?” “네 좋았어요!” “어떤 밴드가 가장 마음에 들었나요?”

“첫 번째 골든 스윙밴드가 가장 좋았어요!”

빅밴드를 기대하며

가끔 이런 말을 자문하곤 한다. 청중들이 재즈를, 아니 음악을 모를 것이라고 예단해서는 안 된다. ‘음악을 사랑하고 즐긴다’. 삼색 무대를 찾는 사람들에게서 발견하는 공통점이다. 내년은 1, 3. 5, 7, 9로 나가는 순차 행진 중 세 번째에 해당한다.

힘이 닿는다면 GRP 슈퍼 빅밴드가 예전에 일본 관중을 녹인 것처럼, 내년에는 멋진 빅밴드 음악을 지역민들에게 선사하고 싶다. 아르투로 산도발(Arturo Sandoval)이 내지르던, 그런 호쾌한 트럼펫 소리를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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