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한의학 전자문헌과 씨름

지난 달 ‘맥을 짚는 사람들’ 인터뷰이였던 동화한의원 허부 원장이 선뜻 한 사람을 추천했다. 허 원장은 “나보다 이야깃거리가 훨씬 많을 거요”라고 했다. 허 원장이 말한 이는 제가한의원(창원시 의창구 팔용동) 정용욱(46) 원장이었다. 그는 인터뷰에 흔쾌히 응하겠다고 했다. 그에 대한 사전조사에 들어갔다. 흥미로운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한의학 전자문헌’을 만들었다는 부분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의원 원장실을 찾았더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컴퓨터 대형 모니터였다. 진료를 마친 정 원장은 컴퓨터 앞에서 여전히 ‘한의학 전자문헌’과 씨름하고 있었다.

한의학 공부하며 ‘노벨상’ 꿈꿔

정용욱 원장은 20여 년 전 아무 연고도 없던 창원으로 왔다. 한의원을 개원하기 위해서다. 그는 경상북도 영주가 고향이다. 포항에서도 초등학교에 좀 다니다 중학교 때부터 대구에서 생활했다. 일종의 유학이었다. 어린 나이에 하숙하며 지내기도 했다. 나중에는 아예 부모님들이 대구에 와서 정착했다. 공부를 곧잘 했고, 부모님은 그에 대한 기대가 컸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학창 시절에 공부 말고 한 거는 별로 없어요. 전교에서 1~2등 했으니 공부를 잘했죠. 부모님은 제가 판·검사되길 바라셨고, 학교 선생님은 미대를 가라고 하셨어요. 제가 그림에도 소질이 좀 있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의대를 가고 싶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자연스럽게 제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거죠.”

정용욱 원장./남석형 기자

하지만 대학 진학을 앞두고 주변 사정이 녹록하지 않게 되었다. 합판업을 하던 아버지 일이 틀어져 집안 경제 사정도 어렵게 됐다.

“의대를 가면 6년에다가 인턴·레지던트 과정까지…. 그 시간 동안 집에서 지원해 줄 여력이 없는 거죠. 그래서 의대를 포기하고 한의대를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대구한의대학교에 입학했다. 여건이 좋지 않아 차선책으로 택한 한의대였지만,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학년 때부터 방대한 양의 동의보감을 읽기 시작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무작정 그렇게 책을 파고들었다. 그러면서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은 한의학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지금 아내인 당시 여자친구 앞에서 당당히 말했습니다. ‘노벨상을 받는 한의사가 될 것이다. 하지만 노벨의학상을 주면 거부하고, 인류 건강을 구한 것에 대한 노벨인류학상을 준다면 받을 것이다’라고 말이죠. 물론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려 한 말이기는 하지만, 제 마음속에 한의학에 대한 믿음이 확실히 자리 잡게 된 거죠.”

1992년 졸업 후 곧바로 창원서 개원

정용욱 원장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개원을 준비했다. 대구에는 이미 한의원이 워낙 많았다. 또한 새로운 곳에서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그래서 소도시를 중심으로 여러 군데를 알아봤다. 그 가운데 하나가 창원이었다. 계획도시라 정돈되고 깨끗한 점에 마음이 끌렸다. 1992년 당시만 해도 창원에는 한의원이 30곳 밖에 없었다. 창원을 낙점했다. 창원 명서동에서 한의원을 개원했다. 이름은 스스로 ‘제가한의원’이라 지었다.

“밤새도록 생각한 끝에 지은 것이 ‘제가한의원’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제가’를 따온 것입니다. 한의원은 환자들 집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이라 생각한 것이죠.”

졸업과 동시에 개원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공부를 워낙 많이 해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이를 한의술로 펼치는 것은 만만찮았다. 처방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 사람 처방에 2시간 넘게 걸리기도 했다. 낮에는 진료하고, 밤에는 새벽 4시까지 처방했다. 그리고 3~4시간 자고 다시 진료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보통은 대학병원에 들어가 인턴·레지던트로 경험을 쌓거나, 선배들 한의원에 부원장으로 가서 임상경험을 합니다. 저는 바로 개원했으니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자신은 있었습니다. 대학 다닐 때 공부를 많이 했지만, 단순히 시험을 치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방에 한약을 수십만 원 치 사서는, 가족·여자친구에게 직접 보약을 지어주고 그랬습니다. 해보고 싶었던 거죠. 의료봉사 가서도 침술이나 한약재 처방을 종종 하기도 했고요.”

다른 한의사들과 토론 중인 정용욱 원장 오른쪽 가운데./ 정용욱 제공

그렇게 개원 이후 명서동에서 7년, 또 팔용동에서 7년, 또 지금의 팔용동 자리에서 또 7년째 한의원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의 시간 속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이가 있다. “보약을 지으러 온 분이었는데, 진료를 해보니 몸에 이상 징후가 있었어요. 위독함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죠. 다음날 그분한테 전화가 왔어요. 검사했는데 별 이상이 없었다는 거죠. 그래도 저는 ‘검진을 더 받아보라’고 권했어요. 그리고 일주일 후 병원에서 검진 결과가 나왔는데 제 말이 맞았던 거죠. 병원에서 응급차로 급하게 모시고 가서 바로 수술에 들어간 거죠. 그 수술은 잘됐지만, 결국 두 달 지나서 혈관동맥이 터지는 증세로 세상을 뜨셨어요. 그 이후 저한테 찾아온 환자는 절대 종합병원에 보내지 않습니다. 그때 내가 치료하는 게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이후부터 저를 찾아온 환자 가운데 악화하거나 문제가 된 사람은 없으니, 참 다행한 일입니다.”

정 원장은 고혈압·당뇨·동맥경화·중풍과 같은 심혈관계 질환 분야를 주로 다룬다. “어느 환자분한테 처방했는데, ‘원장님이 지어준 약을 먹고 나서부터 혈압도 떨어졌다’고 그래요. 사실 저는 그분이 고혈압이라는 걸 모르고, 다른 질환에 맞는 처방을 했을 뿐이거든요. 그 처방이 혈압에 효과 있다는 것을 우연하게 알게 된 거죠. 그렇게 고혈압·당뇨 분야를 열심히 팠죠. 고혈압·당뇨는 나중에 합병증 오는 게 똑같아요. 400년 전 나온 동의보감에는 이를 치료한다는 내용이 나와요. 이러한 만성질환 치료는 현대의학으로는 어렵지만, 한의학에서는 접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한의학이 만성질환으로 고통받는 전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고, 저는 그걸 위해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한의원 이름을 ‘제가’라고 했는데, 이제는 ‘평천하’를 위해 한발 한발 나아가야죠.”

정용욱 원장./남석형 기자

아직 끝나지 않은 전자문헌 작업

정용욱 원장은 한의원 일에만 매달려 있는 게 아니다. 20년 전에 시작한 ‘한의학 전자문헌’ 작업을 아직도 진행하고 있다. 프로그램명은 '제가프로 한의학사랑'이다. 현재 전국에서 한의사 300~400명이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 원장은 일종의 업데이트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동의보감은 400년 전에 쓴 책입니다. 그러한 고대한의학에 현대과학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 현대한의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현대한의학에 필요한 자료를 전자프로그램으로 만든 것이 ‘제가프로’입니다. 한의학을 집대성해 전자문헌으로 만든 것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글자 하나하나 일일이 다 타이핑해서 컴퓨터에 넣었습니다.”

이 작업은 1992년 개원을 준비할 때부터 시작했다. 당연히 그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시작한 일이다.

“머릿속 막연한 처방이 아닌, 실질적인 근거를 가지고 처방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예를 들어 ‘고혈압’은 동의보감에 관련 처방이 나와 있어요. 이는 곧 뿌리가 있다는 것이죠. 400년 전 만들어진 동의보감은 5000년 전 고서에서 따온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고혈압 처방은 5000년 역사 속에서 고증을 통해 나온 것이라는 거죠. 이런 흐름까지 담고 있는 거죠.”

사실 정 원장 자신이 이 방대한 작업을 직접 할 생각은 아니었다. 전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은 주변 상황에 따라 그렇게 흘러오게 되었다.

“‘한글과 컴퓨터’에 찾아가 이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죠. 그런데 기간은 1년, 비용은 1억 원이 든다고 해요. ‘그럴 바에 차라리 내가 만들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고, 비용도 엄청나게 들어요. 논문 링크 거는 작업은 저 혼자 하기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쓰거든요. 이래저래 매달 200만 원 정도는 고정적으로 들어간다고 봐야죠.”

정용욱 원장./남석형 기자

동의보감을 전자문헌으로 완성하는 데만 딱 16년 걸렸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동의보감을 2/3 정도 진행하고서는 도저히 완성할 자신이 없었어요. 포기하고 6년 동안 손을 놓고 있었어요. 그런데 허준 일대기 방송을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허준 선생이 동의보감을 16년에 걸쳐 만들었고, 임진왜란 때 6년 동안은 만들지 못했다고 해요. 저를 돌이켜보니 딱 6년 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다시 시작해 완성했는데, 저 역시 1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도 관련 논문을 링크하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으니, 사실 끝없는 작업인 셈이다.

‘평천하’를 위해 나아가는 과정

전자문헌 작업은 한 땀 한 땀 정성을 쏟는 바느질 작업에 비유된다.

정용욱 원장은 실제로 바느질을 즐기는 별난 취미를 두고 있다. 아픈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스스로 건강 관리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술·담배를 하기는 하지만, 운동은 거르지 않는다. 한의사 대부분 골프를 즐기지만, 정 원장은 골프 대신 탁구·보드·택견 같이 좀 더 활동적인 운동을 즐긴다.

정용욱 원장./남석형 기자

그는 1남 1녀를 두고 있다. 고등학생이지만 스스로들 진로를 정했다. 아들은 음악, 딸은 방송 계통 일에 꿈을 두고 있다. “제 자녀들이 꼭 한의사가 될 필요는 없어요. 다른 쪽 일을 하면서도 아버지가 하는 일을 더 폭넓게 알릴 수도 있잖아요. 예를 들어 외국어 하나만 잘해도 번역·통역을 통해 한의학을 알릴 수 있는 거니까요.”

정 원장은 몇 달 전 자녀들과 함께 극장에서 ‘슈퍼맨’을 관람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슈퍼맨이 지구를 구하듯, 아빠는 한의학과 인류를 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정용욱 원장./남석형 기자
정용욱 원장 주요 약력

-1992년 대구한의대 졸업
창원 제가한의원 개원

-1995년 제가한방프로그램 한의학사랑 초판 발표

-2003년 내과·심신의학과 인정의 자격 취득

-2011년 대한한의사협회 정보통신자문위원

-2012년 대한한의부항학회 부회장

-2013년 대한한의사협회 중앙의무위원
창원시한의사회 의무이사
산청엑스포실무지원단 중앙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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