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꽃 속에 내린 수많은 별들

국명 : 고려엉겅퀴
학명 : Cirsium setidens (Dunn) Nakai


추석 연휴 전날 전국자연환경조사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부에서 세금이 줄어 10월부터 조사비용 지급이 중단된다는 소식이었다. 아무리 세금이 줄어도 그렇지 1년간 책정된 연구비조차 삭감한다니 돈이 없는 나라 걱정을 해야 되나, 연구비부터 중단하는 정부를 원망해야 되나. 어쨌든 예정된 조사를 9월안에 모두 마감해야 연구비를 지급할 수 있으니 빨리 마감해달라는 얘기를 듣고 추석 연휴 친정인 대전에서 내려오는 길에도 조사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연휴 끝나고도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내내 조사 지역인 전북 지역을 돌고는 그만 뻗고 말았다.

그런데 일요일 저녁에 꽃동무로부터 전화가 왔다. 월요일에 강원도 영월을 가야하니 중리에 오전 8시까지 오라는 명령이었다. 내가 피곤해서 못가니 어쩌니 그런 변명이 통하지 않는 친구라 어쩔 수 없이 정신도 없는 비몽사몽 상태로 월요일 새벽 댓바람부터 출발했다.

그래도 이번엔 내가 운전을 하지 않아 친구 차에 얹혀 내리라면 내리고 타라면 타는 호사를 누렸다.

고려엉겅퀴./안수정

창원에서 강원도 영월까지 먼 거리를 가는 이유는 빨간 립스틱을 바른 물매화와 백부자를 보기 위해서였다. 경남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녀석이라 어려운 발걸음을 한 건데 찾아간 동네 입구부터 각시취와 고려엉겅퀴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고려엉겅퀴는 높은 산에서 자라는 식물인데 강원도라서 그런지 마을 길가에 잡초처럼 아무렇게나 쑥쑥 잘 자라고 있었다. 만약 낮은 지대인데 고려엉겅퀴가 있다면 그것은 심어 기르는 것일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이 고려엉겅퀴의 잎이 바로 곤드레나물의 재료라서 재배하는 곳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빈궁기에 곤드레밥이라 하여 구황식물로 이용되었던 산채인데 지금은 강원도 일대에서 최고의 나물로 알려져 인기가 매우 높은 식물이다. 나물은 보통 꽃이 피기 전에 새로 난 잎을 먹는 거라 나중에 어떤 꽃이 피는 식물인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의외로 꽃이 예쁜 경우가 많다.

검은다리실베짱이./안수정

이 고려엉겅퀴도 일반 엉겅퀴와 비슷하게 예쁜 보라색의 꽃이 피는데 엉겅퀴처럼 뾰족한 가시는 없다. 그리고 대부분 우리나라에 있는 식물들은 나물로도 먹고 약재로도 쓰이는데 비해 이 고려엉겅퀴는 오직 나물로만 이용을 한다고 한다. 또한, 국화과 식물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고려엉겅퀴 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 속에 수많은 별이 또 들어있다. 꽃 하나에도 별이 이렇게 많으니 꽃 자체가 곧 우주다.

이 작은 우주에는 생명체도 많아 네발나비는 바글바글하고 검은다리실베짱이까지 꽃가루를 탐하러 왔다. 언제나 그렇지만 식물은 곤충과 함께 어우러져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것 같다.

이제 앞으로 강원도 여행에서 곤드레밥이나 곤드레나물을 먹게 된다면 보라색 고려엉겅퀴의 꽃도 함께 상상해 보시는 건 어떨런지.

고려엉겅퀴./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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