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 파종기·수확기 도입, 재래종 복원 연구도

"지금 이렇게 따 먹어도 돼. 먹어보면 단맛이 나. 자 먹어 봐."

900여 평의 밭에는 그가 키운 푸른 시금치가 아침 이슬을 머금고 시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렬로 정리된 고랑과 고랑 사이에 가지런하게 시금치가 자라고 있다.

"나는 전부 기계식으로 시금치 농사를 짓지. 농사에도 연구와 기술이 필요해."

그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사진으로 기록한 영농일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폰에 저장하고 농업기술센터에 이메일로 보내주지. 내가 시금치 연구하는 게 좀 많아."

그는 남해 시금치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자신의 연구소(?)로 안내했다.

최태민(65) 씨는 남해군 이동면 초양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기억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청소년 시절 뭍으로 나와 생활했기 때문이다. 건설회사 전기기사로 재직하던 그는 회사 구조조정으로 직장과 타지 생활을 마감했다. 이제 그에게 믿을 것은 고향 남해뿐이었다.

"촌으로 간다고 하면 아내가 안 따라오지. 그래서 일단 남해읍내에서 잠시 생활 좀 하다가 이곳으로 들어왔지. 나중에 귀향하려면 이 방법을 써먹으라고."

소 축사를 고쳐서 만든 연구소(?)는 초양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시금치에 관한 농기계는 여기에 다 있지. 이게 내가 처음으로 도입한 시금치 파종기인데…."

시금치 파종기와 수확기 앞에서 최 씨의 목소리는 더욱 힘차고 또렷해졌다. 얼핏 보아 대단치 않은 농기계로 보였지만 그 사연은 대단했다.

"대부분의 농민들이 겨울에 추운데 밖에 나가서 일하지 않으려고 했어. 회관에 모여 고스톱이나 치지. 농한기에는 그게 다였지. 난 이건 아니다 싶었어. 그래서 머리를 쓴 거야."

남해 시금치가 유명해지기 전인 12년 전 그는 마늘밭 고랑에 시금치를 심었다. 자가소비를 위해서 심은 시금치는 타지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부산에서 온 채소 도매상이 남해 시금치의 상품성을 알아본 것이다.

남해 초양마을서 시금치 농사를 짓고 있는 최태민 씨. /박일호 기자 iris15@

"처음에는 부의금이나 축의금 낼 요량으로 시금치를 키웠지. 몇 해 시금치 농사를 지어보니 남해가 시금치 키우기에는 기후가 딱 맞아. 그래서 대단위로 해야겠다! 마음먹고 알아본 게 기계화지."

무엇에 집착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인 최 씨에게 시금치는 새로운 끝판 종목이었다. 상품이 된다는 확신은 기술 연구로 나타났다. 손으로 흩뿌리는 파종으로 수확을 늘릴 수 없었다. 그래서 심을 때부터 기계를 이용해 줄을 맞추었다. 문제는 수확이다. 겨울철 바닷바람은 시금치에는 보약이지만 농부에겐 사약이었다.

"쪼그리고 앉아서 일일이 시금치 캐려면 얼마나 춥노? 그래서 연구한 게 바로 이거야."

경운기 몸통에 뜰채가 달린 수확기를 시연하기 위해 그는 힘차게 손잡이를 돌렸다. 딸딸딸딸….

"자 보이지? 이렇게 하면 요게 시금치 뿌리를 자르는 거야. 내가 이거 만들어서 군수님 앞에서 시범도 보였지."

뽀빠이가 좋아했던 시금치는 맥가이버 뺨치는 최 씨의 손에서 진화하고 있었다.

"시금치 씨앗도 쌀 도정기에서 한번 깎은 거야. 그래야 발아가 잘 되거든. 이것 알아낸다고 욕봤지."

그의 연구소에서 최 씨의 시금치학개론은 끝날 줄 몰랐다.

"출가한 애들에게 시금치는 돈 내고 사 먹으라고 해. 그래야 농부 마음도 알고 귀한 줄도 알지. 말로 설명하는 건 쉬워도 농사는 다 힘들어. 하늘도 도와야 하고."

연구하는 농부 최 씨는 농사의 절반이 하늘의 도움이라고 했다. 제아무리 노력해도 날씨가 안 받쳐주면 헛농사라며 때때로 여유가 필요하다고 했다.

"오늘처럼 인터뷰 오면 하루 쉬는 거야. 핑곗거리도 되고 머릿속도 힐링이 필요하거든."

요즘 그에게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재래종 시금치의 복원이 그것이다. 총 5000여 평에 시금치 농사를 지으며 우리 고유 종자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것이다.

"IMF 때 종자 회사가 다 (외국으로)넘어갔잖아. 지금 여기 있는 시금치도 일본에 로열티 주고 사온 거야. 그래서 재래종 시금치 씨앗을 만들려고 농업기술센터와 함께 연구 중이야."

연구소 한편에 따로 마련한 텃밭에는 그의 새로운 희망이 자라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내가 종묘 회사의 새 품종 모니터링도 해 주거든. 그들이 온다네. 쉬려고 했는데 더 바쁘네!"

아침해가 처음 뜬다는 초양마을, 마을에는 최 씨의 '시금치학개론'을 빛내줄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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