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음식이 몰려오고 있다. 주로 서울 등 대도시에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일본 프랜차이즈 외식업체를 비롯해 스시 전문점,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 등이 시내 중심가를 ‘점령’해나가고 있다고 한다.

창원 상남동과 마산 창동 등 경남 주요 도시를 둘러봐도 요즘 새로 생기는 곳 중엔 유독 일본 음식점이 많은 듯하다. 작은 규모의 이자카야부터 스시·참치·오뎅·우동·라멘 전문점이 곳곳에 눈에 띈다.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일부 언론은 엔저(엔화 약세)에 따른 일본 식재료 가격 인하와 일본 관광객·유학생 증가로 인한 익숙함과 친근성 등을 주요 배경으로 제시하지만 모두 피상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입맛에 일본 유전자가?

업주나 요리사 입장에서는 일본 음식의 단순한 구성이 매력일 수 있다. 고급 일식집이 아닌 한 일본 음식은 한국 음식과 달리 매우 단출하게 꾸며진다. 우동, 돈가스, 스시, 라멘 등 일반 식사류는 물론이고 이자카야의 각종 안주에는 단무지·초생강 같은 쯔게모노(일본식 절임 저장음식의 총칭) 약간과 된장국 정도만 따라 붙을 뿐이다. 반면 한식당에서는 반찬만 최소 네댓 가지 이상에 국·찌개·구이가 좌르르 깔리는 게 기본이다. 고기든 생선회든 술안주 중심의 음식점도 각종 반찬과 채소를 함께 내지 않으면 욕먹기 십상이다. 업주로서는 만들기도 편하고 서빙하기도 편하고 결과적으로 인건비 등 비용을 아낄 수 있는 메뉴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역시도 피상적인 이유 중 하나겠다. 아무리 비용이 덜 들고 노동 과정이 수월하더라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고 소비자가 찾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에 위치한 일본 라면 전문점 ‘라멘당’의 돈코츠라면. /고동우 기자

기자는 한국 음식과 일본 음식의 ‘근본적인’ 유사성에 주목하는 편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면, 한국인의 ‘입맛’에는 일본 음식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유전자가 뿌리까지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가장 애용하는 육수 재료이자 반찬인 마른멸치부터가 그렇다. 마른멸치는 선조들이 오래 전부터 사용해온 전통 재료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의 필요와 노하우로 한반도에서 생산되고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물론 일본에선 우동·전골 등 각종 국물 요리에 마른멸치를 많이 쓰고 있다. 일본의 대표 육수 재료인 가츠오부시(가다랭이포)와 만드는 방법, 맛의 포인트도 비슷하다.

일본식 돈가스·우동집이나 이자카야 메뉴 중에는 튀김류(덴뿌라)가 빠지지 않는데 이 또한 일제강점기부터 먹기 시작한 음식이다. 튀김에 필수인 밀가루, 기름 등이 대량생산된 시점 자체가 이때였다. 국내 ‘최강’의 야식 메뉴인 프라이드 치킨이 대중화된 시점은 1960~1970년대지만 튀김 ‘맛’의 기원을 따지면 역시 일본 음식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 경험이지만 기자도 어릴 때 부모님이 ‘덴뿌라’라 부르는 음식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입맛은 세대와 세대를 넘어 계속 유전되기 마련이다.

소불고기도 일본 음식

이 외에도 어묵, 스시, 김밥(김도 일제 때 대중화), 우동, 샤부샤부, 카레 등 일본의 영향을 받은 음식이자 이미 우리 일상 음식으로 자리 잡은 게 수두룩한데, 이보다 더 근본적으로, 더욱 뼛속 깊이 우리 입맛을 휘어잡은 일본 음식의 ‘주역’으로는 역시 간장(양조간장·산분해간장)과 설탕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음식 전문가들에 따르면 조선시대 말까지 우리 음식은 별로 달지 않았다. 꿀이나 조청 등을 사용하긴 했지만 부유한 양반층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설탕을 대량 수입해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우리 음식은 급속히 들척지근해졌다. 해방 후에도 한국은 1950년대 설탕공장이 설립되기 전까지 한동안 일본으로부터 설탕을 수입해 먹었다. 우리 음식은 ‘맵다’로 상징되지만 단맛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고추장·간장 베이스 요리엔 대부분 단맛이 추가되고, 심지어 각종 나물이나 찌개·탕·조림에도 설탕이 퍼부어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먹는 단맛이 강한 간장도 일제의 유산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우리 전통 간장(조선간장)은 콩과 소금물로만 만들어 달지 않았으나 일본식 양조간장은 밀이나 쌀이 들어가 덜 짜고 달콤했다. 탈지대두나 글루텐 등 식물성 단백질 원료를 염산으로 가수분해하고 각종 첨가물을 넣어 가공한 산분해간장도 널리 쓰였는데, 요즘 우리가 먹는 간장은 이 ‘하루·이틀이면 뚝딱 만드는’ 공장산 산분해간장과 일본식 양조간장의 혼합이라고 보면 된다.

단맛 강한 간장과 설탕의 조합. 잘 알려진 대로 이는 일본 음식의 ‘가나다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음식 중에도 금방 떠오르는 게 있을 것이다. 많은 한국인이 사랑할 뿐만 아니라 대표적 전통 음식으로까지 종종 소개되는 소불고기가 그것이다. 일본 이름으로 ‘야키니쿠’(焼肉).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은 이 불고기 또한 일제의 영향을 받은 음식이라고 단언한다. 조리법+음식재료라는 낯선 음식명(한국 음식 이름은 보통 재료+조리법으로 구성된다), 야키니쿠를 그대로 직역한 불(焼)+고기(肉)라는 이름 그 자체, 불고기의 한국적 기원으로 주장되는 맥적·설하멱이 실제는 다른 민족의 음식일 가능성 등이 그 주요 근거이다.

누가 한식을 지키고 있나

이상의 이야기에 거부감을 느끼는 독자도 있겠다. ‘자랑스러운’ 우리 음식이, 그리고 자신의 입맛이 ‘하필’ 일본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니 왠지 인정하기 싫을 것 같다. 하지만 부정한다고 해서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갈수록 젊은층을 중심으로 우리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일본 음식에 맞서(?) 한국 음식을 사랑하고 요리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고민과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모두 함께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

영화 <스시 장인 : 지로의 꿈>의 한 장면. 우니(성게소) 초밥이다.

기자는 나라 간이든 민족끼리든 음식 또는 음식 문화가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고 보는 쪽이며 누가 누구를 꼭 제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배울 게 있으면 배우고 따라할 게 있으면 따라야 한다. 일본 음식도 유럽이나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매우 많다.

다만 한국 음식에도 우리 땅 우리 음식 재료에 걸맞은 좋은 전통이 있건만 제대로 계승·발전하지 못하고 나날이 도태되는 작금의 분위기는 아쉽다. 특히 좋은 재료로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만 맛이 나는 전통 간장과 된장 등 장류는 일본식 대량생산이 도입되면서 원래 맛을 잃고 저질 재료와 첨가물 덩어리가 되어가고 있다. 물론 그 최선봉에는 국내 식품 대기업들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 사람이 만든 고유의 전통 음식이라고 해서 다 신뢰할 만한 것도 맛이 좋은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얼마나 정직하게 음식을 만드느냐이지 어느 나라 음식이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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