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웠다.

굴 수하식양식장은 홍합의 그것과 달랐다. 좀 더 먼 바다에 있었는데 초겨울 바람이 매웠다. 수협 지도선 갑판으로 수시로 바닷물이 쏟아졌다.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기어이 실내로 들진 않았다. 아침바다의 활기를 제대로 느끼고자 하는 듯 허리를 펴고 먼 바다를 보고 있었지만, 실상은 지도선의 한쪽 기둥에 의지해 추위와 두려움을 참고 있었다.

굴 수하식양식장의 수확과정은 홍합과 흡사했다. 하지만 그 규모 면에선 압도적이었다. 양식장에서 올려 세척을 하고 망에 포장한 홍합의 무게는 25kg 정도였지만, 여기선 보통 700~800kg이다. 사람이 들 수도 없다. 선장이 손수 크레인을 조작해 굴을 옮긴다.

건져 올린 부표를 청소하는 과정도 다르다. 여기 부표엔 홍합이 제법 촘촘하게 달려있는데, 자망어업을 하는 어민이 그것을 모두 수거해 간다. 쥐치를 잡기 위한 미끼로 쓰기 위함이다. 때문에 선장 입장에선 따로 부표 청소 노동자를 쓸 필요가 없다. 규모가 큰 만큼 소리도 만만치 않다. 컨베이어벨트가 쉬지 않고 돌고 있고, 크레인은 수시로 하늘을 휘젓는다. 여기는 추울 새가 없다.

새벽부터 수확한 굴은 낮 12시쯤 육지의 '박신장'으로 옮겨진다. 굴 껍데기를 까는 곳이다. 밖에서 보기엔 조용한 어촌마을의 큰 창고와 같이 보이지만,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여기 또한 바다에 못지않다. 가운데 5미터 나비의 공간에 바다에서 온 굴들이 쌓여 있고 그 좌우로 30여 명이 일렬로 서 굴 껍데기를 깐다.

배가 드는 바다에서 박신장으로 연결한 크레인이 수시로 굴을 옮겨 쏟아 붓고 있고, 좌우의 여성들은 고개도 들지 않고 껍데기를 깐다.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막무가내로 주변의 장갑과 칼을 들고 굴 까기에 도전해 보기로 한다. 다행히 옆자리 아주머니께서 스승을 자처하셨다. 웅남면에서 오셨다는 전은순(58) 씨다. 그런데 주변에서 힐끔힐끔 나를 보면서 웃으신다. 알고 보니 장갑을 반대로 꼈다. 고무장갑 밖에 면장갑을 껴야 하는데, 순서가 바뀌었다. 말 그대로 허둥지둥 장갑을 끼는 데만 시간을 제법 잡아먹었다.

'스승님'께서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굴 가장자리로 칼을 넣어서 비질을 하듯 껍데기 위쪽을 쓸어요." 그런데 자꾸 껍데기가 부서진다. 쉽게 열리지 않았다. 비질을 하듯 위를 쓸라는 말이 좀처럼 와 닿지 않았다. 분명히 껍데기가 열린 것 같은데 열리지 않았다. 그럼 손으로 열려다 껍데기가 부서지는 과정을 반복했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스승님이 하는 방식을 그대로 흉내 내어봤다. 그런데 그 순간 톡! 하며 껍데기가 열리는 것이었다. 비질하듯이 하란 말은 힘을 주란 말이 아니라, 껍데기 윗부분에 붙은 굴을 칼 끝으로 쓸어 내듯이 하란 말이었다.

굴을 '여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떼 낸 굴 모양이 스승님의 것과 많이 다르다. "그렇게 까서는 팔 수가 없을 텐데"라고 충고하신다. 그래서 더 신중하게 하려고 해도 안 된다. 찢어지고 뭉개진다. 스승님은 한 번 쓱! 하면 탐스러운 굴이 바구니에 쌓이는데 말이다.

굴 껍데기 까기 체험하는 권범철 기자./박일호 기자

그렇다. 비결은 저 칼 끝에 있다. 또 유심히 관찰한다. 그리고 터득했다. 굴의 관자 부분을 한 칼에 잘라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자 곧 익숙해졌다. 드디어 제법 시장에서 본 굴 같은 굴이 내 바구니에도 쌓이기 시작했다. 40분 동안 약 1kg을 깠다. 초보 치곤 제법 한다며 칭찬 받았다.

심지어 내일도 나오라며 '스카우트제의'까지 하신다. 굴 까는 일은 정해진 것이 없다. 본인이 까는 만큼 월말에 돈을 받아 가는데, 그것도 알 수 없다. 그날그날 굴의 시세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스승님도 오전 일만 하시고 볼 일이 있다며 가신단다. 그 뒷모습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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