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이 길러낸 바다의 팔방미인, 1960년대 구산면 어민들이 시작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수정·안녕마을에서 원전방파제까지 긴긴 해안선이 이어진다. 이곳 바다는 훌륭한 경치를 내놓을 뿐만 아니라 홍합까지 품고 있다. 11월이 되면 주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홍합과 씨름하기 바쁘다.

◇1960년대 마산만에서 양식 본격화 = 마산만 곳곳에는 수하식양식 부표가 떠 있다. 두 개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미더덕 아니면 홍합이다. 미더덕은 주로 진동면 쪽이고, 홍합은 구산면 쪽이다. 구산면 해양드라마세트장 인근 해안도로 가에는 홍합 간이 판매대가 줄줄이 자리하고 있다.

홍합은 양식이 95% 이상 된다. 이 양식 생산량 가운데 마산만에서 나오는 것이 70%에 육박한다. 이는 자연보다는 사람 덕이 컸다. 애초 1960년대에 구산면 주민 몇몇이 선도적으로 양식을 시작한 데 따른 것이다. 물론 맑은 물, 서식하기 좋은 적정 수온 같은 것이 밑받침되어야 한다. 그래도 '마산 홍합'은 자연환경보다는 사람 손에 더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홍합 양식을 본격화한 것은 1960년대 들어서다. 그 이전 해안 바위에 붙어 있는 자연산을 그냥 떼어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줄을 이용한 양식을 도입한 것이다. 가는 새끼줄을 엮어서 가까운 바다에 담가 놓으니 홍합 유생이 달라붙으면서 그 재미가 쏠쏠했다. 마산 구산면 심리·난포를 중심으로 통영·거제·고성으로 조금씩 퍼져 나갔다. 양식 초창기에는 파도가 덜한 안쪽 바다에서만 했다. 그러다 모험 삼아 외만에서도 시도해 보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좀 더 굵은 줄을 사용하면 되는 정도였다. 오히려 채취할 수 있는 기간이 더 빠른 장점도 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심리 앞바다 홍합양식장에서 채취한 홍합을 쌓고 있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지금 그 1세대는 대부분 손을 놓고 2·3세대로 이어지고 있다.

홍합은 적조 피해는 입지 않는다. 대신 잦은 태풍으로 플랑크톤이 줄어들면 악영향을 받는다. 근래 들어서는 생산 과잉으로 제값이 나오지 않아 어민들 고민이 많은 듯하다.

◇부잣집 며느리나 먹던 홍합 미역국 = 옛 기억을 떠올리는 이들은 "홍합은 특식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홍합미역국은 부잣집 며느리, 혹은 임산부들이나 맛볼 수 있었다고 한다. 머리 희끗희끗한 어느 노인은 "나는 지금도 소고기 들어간 미역국은 안 먹어. 홍합 들어간 게 최고지"라고 말한다.

먹을 것 없던 시절, 죽을 그냥 먹기는 밋밋하니 홍합을 잘게 다져 그 심심함을 달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날 홍합은 그리 귀한 대접을 받지는 못한다. 워낙 흔해서다. 술집에서 홍합탕은 돈 주고 먹는 안주가 아니라, 그냥 깔려 나오는 용도다. 본 메뉴가 나오기 전 주당들 빈 속을 달래주는 용도에 만족해야 한다.

홍합은 큰돈 들이지 않고도 넉넉한 양을 구할 수 있다. 25~30kg 되는 한 망은 싸게는 만 원짜리 한 장으로도 가능하다. 이 무거운 것을 낑낑거리며 집으로 옮기면 밥상은 푸짐해진다. 홍합밥, 홍합탕, 홍합전, 홍합미역국뿐만 아니다. 천연 조미료로 조연 역할까지 톡톡히 한다.

라면 분말수프를 만드는 데도 사용된다. 마산에서 홍합 만지는 이들은 "라면이 국민 음식 아니냐. 그런데 홍합이 들어가지 않으면 라면 국물 맛이 나올 수가 없다"라며 한껏 자랑한다. 라면 분말수프를 만드는 가공공장은 삼천포 쪽에 있다.

◇"홍합 까는 아지매들은 손이 안 튼다" = 홍합은 경매 없이 유통업자에게 바로 넘어간다. 기계 힘을 빌려 바다에 담겨 있는 줄을 끌어올리면 탐스럽게 붙은 홍합이 올라온다. 분리·세척기 등 자동화기기를 통해 현장에서 망에 담는 것까지 모두 소화한다.

그리고 바로 대형트럭에 옮겨 전국 각지로 옮긴다. 수산시장뿐만 아니라 식당으로 바로 공급되기도 하는데,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곳은 중국집이라고 한다.

홍합은 알맹이를 까서 팔면 단가가 높다. 홍합 까는 일은 역시 수작업이고, 아낙들 몫일 수밖에 없다. 하루 10시간 이상 내내 쪼그려 앉아 홍합 까기를 반복한다. 장갑을 낀다하지만 한겨울에는 손 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다른 조개류에 비해 홍합 만진 손은 덜 까칠하다고 한다. 누군가는 "홍합 까는 아지매들은 겨울에 손이 안 튼다. 홍합으로 화장품을 만들면 좋을 것이다"라고 치켜세운다. 실제 창원시 홍합자율공동어업인연합회에서는 홍합을 활용한 다양한 가공제품 개발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조선시대 말에는 토종홍합 알맹이를 말려서 중국에 수출까지 했다고 한다. 이후 유통 기간을 오래 하기 위해 말린 것을 많이 이용하기도 했지만, 천연조미료로 이용되는 오늘날에는 더 높은 가격이 매겨진다.

마산에서는 가공작업 없이 공급역할 쪽이다. 말려서 파는 것은 주로 통영 쪽이다. 크기에 따라 꼬챙이에 꿰는 개수가 다르다. 5개를 꿴 '홍합오가재비', 10개를 꿴 '홍합동가재비', 그 이상인 '말합'이 있다.

홍합 껍데기는 한때 마산 앞바다를 오염하는 주범이었다. 산소를 없애고 적조 원인으로 곁눈질받기도 했다. 그래서 알맹이만 까서 내놓는 마을은 특히 껍데기 처리에 골치였다. 그런데 지금은 농가 비료로 이용되기도 한다. 구산면 수정·안녕마을에서는 홍합 껍데기를 잘게 부수고 염분을 빼서 농가에 비료로 제공한다. 땅을 단단하게 하고 알칼리성 토질 개선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남석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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