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망 4000원어치 홍합파스타·밥·미역국으로홍합 자체로 완성된 맛

홍합요리는 어디서 먹을 수 있을까?

마산 홍합이 유명하기에 홍합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주변에 물어도 보고, 검색을 해봐도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홍합 취재를 위해 찾은 구산면 원전에서 수정마을 쪽으로 나오며 구석구석 관련 식당을 탐색하기까지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굴을 즉석에서 구워 먹을 수 있는 곳은 두어 군데 있었다. 난감한 일이다. 당연히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요 며칠 쌀쌀해지면서 감칠맛 도는 홍합국물이 간절해지고 있었기에 아쉬움은 더 컸다.

편집국으로 돌아와 초점 없는 눈으로 '웹서핑'을 하던 중, '맛있는 경남' 취재팀의 남석형 기자가 기막힌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좀체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기에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의 의견이란 우리 신문에 '초짜 애식가의 음식이야기'를 연재하는 고동우 문화체육부장에게 요리를 부탁 해보자는 것이었다.

요리를 즐기는 고 부장의 페이스북에서 홍합 '봉골레' 사진을 본 기억이 있다고 했다. 바로 고 부장을 찾아 제안했다. 난감해 했다. 무엇보다 요리 전문가도 아닌데 지면에 나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우리 취재팀도 물러설 곳이 없었다. 신선한 해산물을 활용한 요리의 매력을 제대로 아는 그이기에 그랬고, 취재 일정상 미룰 수도 없었다. '홍합봉골레'와 '홍합미역국'을 해 달라는 제안을 던져 놓고 근처 마트로 가 장을 봤다. 남 기자의 자취방에 장 봐 온 것들을 풀어 놓고 고 부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퇴근하시면 연락 주세요. 장 봐 놓았습니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시작한 이번 음식 이야기는 '자취생을 위한 홍합 요리법'이 되겠다.

마침 우리 취재팀에서 박민국 기자를 제외하고 모두 자취생이다. 주변에서 쉽고 싸게 구할 수 있는 홍합을 활용한다면 혼자 사는 남자들에게 꽤 유용한 메뉴가 될 것이다. 메뉴는 '홍합봉골레', '홍합미역국', '홍합밥'이다. 마트에서 한 망에 4000원 하는 홍합을 두 망 샀다. 손질을 위해 풀어 놓으니 큰 솥이 넘칠 만큼 많다. 해감이 필요 없는 홍합은 씻는 것이 중요하다. 홍합이 바위나 어장에 붙어 서식할 수 있는 것이 흔히 '홍합 수염'이라 불리는 것 덕분이다. 원전 수협 앞에서 어망을 다듬던 할머니는 그것을 홍합의 '탯줄'이라 정의했다. 하지만 요리할 땐 가장 신경 써서 제거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그냥 조리할 경우 쓴맛이 나고 먹기에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홍합을 씻는 과정이 지난하다. 하지만 껍데기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물로 깨끗이 씻어내자 검붉게 빛나는 홍합이 탐스러워 지루한 줄 모르겠다. 홍합 손질을 끝내고, 홍합밥을 짓기 위해 홍합을 세 개쯤 까고 있을 때 오늘 요리를 '집도(?)'할 고동우 부장이 왔다. 그도 역시 자취생이다. "생홍합을 왜 까고 있어? 그냥 삶아서 국물로 밥을 하고 속을 빼내면 되지." 예사롭지 않다. 극구 사양하던 수줍은 모습이 아니다. 지시대로 홍합을 삶고, 국물을 불린 쌀에 부어 밥물을 맞췄다. 홍합은 오래 삶으면 안 된다. 살이 뭉개지기 때문이다. 은행과 깐 밤을 전기압력 밥솥에 함께 넣고 '압력취사'를 눌렀다. 간단하다.

   

밥이 되는 동안 봉골레를 만든다. 자취생의 좁은 주방은 여러 가지 요리를 동시에 할 환경이 아니다. "주방이 좁을 땐 소스부터 만들어 놓고 시작해야 해." 적당히 썬 마늘 적당량을 올리브유를 듬뿍 두른 팬에 한참을 볶으며 고 부장은 마늘 맛이 제대로 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10여 분을 볶고 마늘은 건져낸다. 올리브유에 마늘이 제대로 배었다. 이어 손질한 홍합을 두 손 가득한 양으로 넣고, 화이트 와인을 붓는다. 요리용 와인은 싼 것이 적당한데, 마트에서 잡히는 대로 샀다. 센 불에서 끓는 소리가 경쾌하다. 뚜껑을 덮고, 5분쯤 더 끓인다. 홍합이 입을 벌리면 건져내고, 마늘을 넣고 다시 한참을 끓인다. 바질을 약간 넣고, 밥하고 남은 홍합 육수도 조금씩 부어주며 졸인다. 마른 고추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잊고 사지 못했다. 자취생한테 많은 걸 기대하면 안 된다. 소스가 완성되었다.

   

진짜 중요한 건 면이다. 면은 무조건 큰 냄비, 센 불에 삶아야 한다. 소금을 넣고 팔팔 끓이다 면을 넣는다. 역시 마트에서 제일 싼 것으로 샀다. 포장엔 10분을 삶도록 돼 있지만, 8분을 삶는다. 소스와 함께 익히는 시간을 감안한 것이다. 이제 익힌 면을 소스에 올리고 건져낸 홍합, 후추, 바질을 뿌려 볶아내면 완성이다. 그 사이 밥이 됐다. 삶아 익혀 빼낸 홍합 속을 밥 위에 올리고 뜸을 들이면 홍합밥도 완성이다. 매실 진액에 간장, 참기름, 깨소금, 잔파를 넣어 소스를 만들었다.

봉골레와 홍합밥을 접시에 담아내는 동안 홍합미역국을 끓인다. 역시 홍합밥과 봉골레를 만들고 남은 육수를 이용한다. 불린 미역을 국간장, 마늘, 참기름과 볶다가 홍합육수를 붓고 끓인다. 오래 끓을수록 맛 나는 것이 미역국이지만, 육수가 좋아 미역만 익혀 상에 올린다.

   

순식간에 세 가지 요리가 완성되었고, 순식간에 접시가 비었다. 요리 과정을 보면서 허기가 심해진 탓도 있겠지만, 홍합 자체로 완성된 맛이 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 명의 자취생 '게스트'를 포함해 다섯 명의 공통된 의견은 "왜 이 맛을 지금에야 알았냐"는 것이었다. 마산에 왜 홍합 전문 음식점이 없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봉골레는 부드럽고 고소했으며, 향이 제대로 밴 홍합밥은 건강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곁들인 홍합미역국은 뒷맛이 깔끔해서 기분 좋다. 남자 혼자 사는 자취방에 홍합향이 배어드는 느낌이 좋다.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밥을 비우고, 술을 따른다. 가족이 따로 있을쏘냐. 둘러 앉아 먹고 이야기하니 여기가 가족이다.

 

※이 취재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기업 ㈜무학이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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