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빠지기 전 채취 작업 마쳐야…쉴틈 없이 허리 구부려
한참을 기다렸다.
물은 조용히 흘렀고,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스윽~, 스윽~" 뜰채가 모래 바닥을 긁는 소리, "차르르~" 재첩을 담는 소리만 가을햇살과 공명하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이랬다.
1. 강가로 간다.
2. 옆에서 가만히 구경을 한다.
3. 채취하는 분이 나에게 말을 건다.
"거기서 뭐 하는교?"
4.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자연스럽게 제안한다.
"제가 한번 해봐도 될까요?"
5. "허허! 젊은 사람이 참. 이리와!"
6. 재첩채취 현장을 체험하고 기사를 쓴다.
그러나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강가의 큰 돌 정도로 보인 모양이다. 이건 아니다 싶어 일단 물에 들어가기로 했다. 바지를 걷고, 강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그때서야 누군가 말을 걸었다.
"맨발로 들어와!"
강바닥은 부드러웠다. 편안했다. 적당히 시원했고, 깊지도 않았다. 맨발로 들어오라고 했던 이유는 신발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내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근처 하동읍 신기리에 사는 백 할머니(68)께 부탁해 드디어 거랭이(재첩 채취 도구)를 잡았다. "힘들 텐데" 하시며 건네 준 그것은 무거웠다. 전체를 쇠로 만든 것이다. 가운데 봉엔 채취한 재첩을 수집하는 대형 대야가 끈으로 연결돼 있다. 그 봉에 날개처럼 양쪽으로 달려 채와 연결된 부분이 손잡이다. 이것을 양 손으로 하나씩 잡고 뒷걸음을 하며 모래를 긁어야 한다. 너무 깊어도, 너무 얕아도 안 된다.
요령이 없어 채가 자꾸 모래 깊이 파고든다. 백 할머니는 약간 딱딱한 느낌이 나는 모래로 가라 하신다. 적당히 펄이 있는 곳이라야 재첩이 있다. 발이 앞서 가기 때문에 발바닥의 느낌으로 길을 찾는다.
10여 미터를 움직이면 봉을 지렛대처럼 두세 번 들어줘야 한다. 그러면 모래는 아래로 빠지고 채 안쪽으로 재첩이 모인다. 그 작업을 또 두세 번 반복해 소쿠리에 재첩을 붓고, 재첩과 재첩 아닌 것을 분리해서 고무대야에 담는다.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었다. 금세 허리는 아파오고 말이 없어졌다. 강가의 구경꾼 따위에 관심이 갈 리가 없다.
허리도 펼 겸 여유를 부리자, 백 할머니는 조급해 하신다. 물이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채취한 재첩을 강 건너로 가져가야 하는데, 물이 빠지면 갈 수가 없다. 대야를 물에 띄워 옮겨야 강을 건너는 것이 가능하다. 노동의 무게를 강이 덜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 강물 없이 되는 일이 없다. 백 할머니는 오전 8시에 나와 물이 빠지기 전까지 작업하고, 오후에 나와 3시까지 작업한다. 이 힘든 작업도 먼 데서 봤을 땐 아름다운 풍경이겠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