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때문에 엄마와 아이 모두 행복해졌어요”

“도서관모임이 아주 잘 되는 데가 있는데, 한 번 가볼래요?”

경남 사천시에서 들려온 반가운 소식이었다.

‘책마루도서관’. 경남 사천시 정동면 총 314 세대가 살고 있는 삼성아파트, 복지관 2층에 있는 작은 도서관은 아파트 아이들에겐 놀이터요, 주민들에게는 배움터이자 광장이라 했다.

‘작은 모임이 일상을 바꾼다’라는 취지로 지역내 작은 동네에서부터 고만고만한 활동을 하는 작은 모임들을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정보원으로 두고 알음알음으로 귀동냥 해가며 수시로 발품을 팔아야 하는 일이었다.

지난 8월 8일 솔솔 들려온 소문을 따라 말복을 며칠 앞둔 땡볕 속을 뚫고 책마루도서관을 찾아갔다. 삼성아파트는 사천읍을 살짝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사방으로 펼쳐진 들판의 초록이 시원했다.

입구 상가에서 초등 1학년쯤으로 보이는 세 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어린애들이 도서관을 알까 싶은 의구심이 살짝 들었지만 딱히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얘들아, 도서관이 어디야? 복지관에 있다던데.”

“아, 저리 가서 조리 돌아가면 돼요.”

/권영란 기자

세 명이 한꺼번에 손짓을 해가며 외쳐댄다. 가르쳐준 대로 가니 금방 복지관이 보인다. 얼핏 백미러를 보니 세 명의 아이들이 차를 뒤쫓아 왔던지 주차하는 걸 보고는 그제야 뿔뿔이 흩어진다. 입가에 금세 웃음이 번졌다. 이곳 아파트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기분 좋은 첫인상이었다.

시립도서관 멀어 주민 주체로 조성한 곳

도서관에는 임은화 씨를 비롯한 운영위원 5명이 둘러앉아 있었다.

“이장단회의에서 우리 아파트 현안 사업으로 도서관사업을 말했는데 마침 사천시에서 작은 도서관 조례가 제정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신청을 했습니다. 다행히 우리에게도 순서가 왔어요. 우리 아파트는 젊은 층과 아이들이 많지만 읍내 도심과 떨어져 시립도서관을 이용하기도 힘들고, 교통편도 불편한 편이거든요. 아마 그런 점이 도서관 지원사업 선정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책마루도서관’은 2010년 10월 30일 정식으로 개관했다. 이번 10월이면 딱 3년이다. 회원은 350명 정도 된다. 회원은 삼성아파트 주민뿐만 아니라 주위 다른 아파트와 마을지역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사천시에는 16곳의 작은 도서관이 있다. 책마루도서관은 이 중 하나로, 가장 활발하게 꾸려나가는 도서관이다.

당시 도서관추진위원장이었던 임은화 씨는 2010년 3월 사천시로부터 인테리어비 등 3천5백만 원을 지원 받았지만 도서관을 개관하기까지는 6개월의 준비기간이 있어야 했다고 말한다.

/권영란 기자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 아파트 단지 내 공고를 했고 다들 자발적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추진위는 10명으로 구성했고, 장소 선정, 책 선정 등 한 가지도 수월한 게 없었습니다.”

김희은 씨도 처음 시작할 때 경험한 바가 없어 어려웠음을 말했다. 특히 도서관 리모델링의 착오가 생각난다고 했다.

“원래 이곳이 한국항공 사원아파트거든요. 지금은 도서관으로 활용하지만 이전에는 한국항공에서 사용하는 회의실 같은 데였어요. 공간만 넓고 굉장히 썰렁했어요. 리모델링을 하자니 업체 선정과 견적내기 등의 일이 서툴러 공사기간이 길어졌어요. 다른 건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아주 좋았어요. 추진위가 모여 우리보다 먼저 문을 연 사천 관내 도서관 견학을 하기도 했지요. 아파트 내에서는 주민들로부터 책을 기증받았습니다. 한 500권정도 되나. 우리 아파트는 한국항공 직원들이 많아서 회사에도 공문을 보냈지요. 책꽂이도 아이들이 많이 접촉하는 거라 특별히 신경을 썼지요. 원목책꽂이를 사서 다시 일일이 사포질 하고 페인트칠하고… 공이 많이 들었습니다. 딱 6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책마루장터 등 열어 운영비를 벌기도

삼성아파트는 젊은 층 비율이 높고 아이들도 많다. 하지만 취학 아동보다 영유아 아이들이 많다. 걸어서 40분가량의 거리에 학교가 있고 차량 운행이 안돼 취학 후에 따르는 불편 사항을 견뎌내지 못하고 취학 무렵이면 이사를 가는 세대가 있기 때문이다.

/권영란 기자

“학군이 정동초등학교인데, 자전거 타고 가는 아이도 있지만 학교까지 멀어 걷기가 힘들어요. 통학로가 정비 안되고 큰 개 등 동물이 중간에 있어 위험 요소가 있더라구요. 최근엔 오히려 50대 이상이 조금 늘어나고 있는 추세예요.”

현재 도서관은 관장, 운영위원 5명으로 구성, 자원봉사자 20명을 두고 있다. 오후 1시~3시까지는 자원봉사자들이 나오고 3시~6시는 아르바이트 사서 2명이 돌아가며 나오고 있다. 시에서 운영비로 월 25만원이 나오는데 아르바이트 활동비로 지급하고 있다. 매년 시에서 300만 원 정도 도서구입비를 지원받고 있어 신간도서를 꾸준히 구입하고 있는 편이다.

“도서관의 일상유지비는 1년에 한 번 ‘책마루장터’를 열어 재정을 일정정도 충당합니다. 기증한 책을 팔기도 하고, 먹거리장터를 운영해서 수익을 남기고, 또 장터참가자들이 수익의 일정 정도를 기부하고… 그렇지요. 그래도 여긴 여건이 좋잖아요. 월 공과금이 들지 않아요. 전기, 수도 등 아파트 공동부담으로 충당되니까요.”

책마루도서관은 지난 3년 동안 꽤 많은 일을 했다. 북아트 수업, 첫아이 학교보내기 등 부모 교육, 엄마와 아이가 함께 그림책 읽기 등 크고 작은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주민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백성혜 씨는 사서 활동을 하며 도서관내 동아리로 ‘엄마와 그림책’을 엮어나가는데 아주 열성적이었다.

“한 마디로 그림책을 읽는 엄마들의 모임입니다. 2년 정도 됐고요, 책읽기와 열띤 토론, 경험 나누기 등으로 진행해요. 지금까지 시에서 지원하는 동아리 지원사업에 2번 정도 선정되어 2회에 걸쳐 북스타트 강의도 진행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활동이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 오후 5시가 되면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어요.”

/권영란 기자

우미라 씨는 아파트 주부들의 활동에 대체로 아빠들의 호응도가 높은 편이라고 자랑했다.

“대부분 가정적입니다. 쓰레기분리수거 일도 처음부터 아빠들이 당연히 버리러가고 만약 그날 엄마가 쓰레기 버리러 나오면 아, 저 집 아빠 출장 갔나?라고 생각할 정도지요. 사천생협 기타동아리가 있는데 여기서 모임 하고, 마을 모임이나 기타 활동들도 도서관을 중심으로 아파트 공동체가 자연스레 형성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도서관을 중심으로 공동체문화 만들어

책마루도서관은 이제 앞으로 좀 더 많은 것을 담아보고자 한다. 돌아가며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밝혀보라고 했더니 기대와 생각이 많았다. 평소 고민의 흔적들이었다. 임은화 씨는 “지금까지는 잘 모르고 정보도 부족했지만 책에 관련한 강의와 아이들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할 예정이다. 그림책으로 놀이수업과 요리수업 등을 한다든지 도서관은 돈이 없으니까 엄마들끼리 재능기부를 하는 형식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미라 씨는 “막연한 것을 이끌어주는 도움이 컸다. 사람을 소개하고…. ‘말만 하면 돼’, 말이 실현되고 성취되는 것을 보고 겪었다. 앞으로도 도서관이 보다 많은 주민들에게 마음을 나누고 서로가 서로에게 치유가 되는 그런 곳이었음 좋겠다”고 말했다.

백성혜 씨는 “생각을 교류하고, 표현하고, 다른 생각을 존중하고… 아이들의 소모임 토론 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말했다. 또 그녀는 “경험부족으로 착오도 있었지만 결국 내가 생각한 것을 내가 나서서 해내고 이뤄가는 것이 되더라”고 말했다.

/권영란 기자

마지막으로 큰언니 격인 박남희 씨가 “엄마들 소모임이 더 다양하게 만들어졌음 한다. 인문학, 교육, 등 책모임 등의 동아리가 형성되면 좋겠다. 동아리가 만들어져 보다 많은 엄마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최근에 아파트에 이사온 사람들이 많은데 모임을 활성화 확장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 겠다”고 말했다. 남희 씨는 2년 동안 관장을 맡았다. 처음 도서관을 꾸리고 활동해오는 동안 고민한 흔적이 깊었다.

“도서관을 통해 아파트 공동체 문화 구현하려고 했습니다. 교육에서 가장 큰 병폐가 사교육입니다. 현재 전국에 공공도서관이 700여개인데 2000개가 된다면 사교육이 필요없다고 말합니다. 몇 년 전 어린이전문도서관이 한창이었는데 바람직한 일었다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이 생기면서 책 읽는 문화가 형성 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길러졌어요. 요즘처럼 개인화되고 우리 아이에게만 올인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문화를 찾아가는 분위기를 형성한 것이지요.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가’라는 물음을 두고 생각할 때 이젠 어지간히 행복한 것 같아요. 성적표를 가져온 아이가 “다행히 빵점 아니예요. 60점인데”라면서 큰소리쳐요. 아이구, 하하.”

책마루도서관. 이곳을 중심으로 주민들은 ‘나’를 회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건강성이 공동체를 회복하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지역으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책마루도서관에서 이곳 사람들은 일상에서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책마루도서관을 꾸리는 사람들>

백성혜(39) 씨
두 아이의 엄마이다. 전직 입시학원 강사. 마산서 살다가 결혼 후 이곳에 왔다. “처음에는 아이들 교육에 보탬이 되겠구나라는 정도의 소극적 출발이었어요. 근데 활동하면서 내가 다시 재교육이 되는구나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 가족에게도 많은 변화를 주었지요. 정체 되어 있지 않고 ‘살아있는 도서관’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서관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데리러 와서 아빠가 같이 책을 빌려가기도 하고 한 달에 한번 영화를 상영할 때는 가족이 함께 와요.”

백성혜 씨

우미라(39) 씨
부산이 고향. 전직 간호사였다.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생협 활동을 하게도 되었지만 도서관이 생활 중심이 되었어요. 우리 아들이 마음껏 뛰놀고, 여유 있고 행복한 생활이라 오히려 도시의 생활이 안돼 보여요. 답답하고.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질까 봐 그게 걱정입니다. 마치 노후자금 같은 느낌이어요. 노후에 공동체생활을 해야겠다는 막연히 생각이랄까요.”

우미라 씨

김희은(38) 씨
거제가 고향. 진주에서 간호사 생활을 했다. “교대근무를 하면 육아를 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퇴사를 했는데…. 예전에는 우리 아이 둘만 보고 있었는데 도서관을 하면서 내 아이들에서 동네 아이들로, 내 문제에서 사회문제로, 관심이 다양해지고 확장되고…. 짧은 시간이지만 참 많은 변화를 가졌어요. 우리 아이들의 변화보다 우리가 변화되었어요.”

김희은 씨

임은화(38) 씨.
마산 진동이 고향이다. 두 아이를 키우며 자원봉사, 아르바이트 사서를 거쳐 왔고 9월이면 박남희 씨에 이어 도서관장을 맡을 예정이다. “도서관이 놀이터가 되니 우리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책을 많이 읽게 되더라고요. 요즘은 책을 많이 안 사고 도서관 책을 활용하고 같이 나눠 읽게 되었어요. 예전엔 무조건 전집을 사는 것에서 이제는 전집을 사지 않는 등 책에 대한 지식과 안목이 늘었어요.”

임은화 씨

박남희(42) 씨
사천이 고향이고 두 아이의 엄마. 기간제 교사생활을 한 적 있고 현재 사천여성회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문제는 지역에서 해결해야 하고 주민들이 풀뿌리정치를 이뤄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궁극적으로는 우리 아이들을 키우기 좋은 사천, 우리가 살기 좋은 사천을 만드는데 일조하고자 했습니다. 지역내 다른 도서관도 활성화하고 삶의 방향을 바꾸면서 지역공동체문화를 만들어나가야….”

박남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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