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헌 물건’을 통해 나누는 행복

창원은 소비하기에 좋은 도시라고 말한다. 가장 트렌디하며, 값지고 좋은 상품을 마음과 돈만 따라준다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 그래서 ‘길마켓’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걸까? 시민이 주체가 되어 열리는 이 능동적인 재활용시장은 이번이 3회째.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더 많은 ‘길마켓’이지만 물건을 사고파는 소소한 재미와 행사 때마다 준비하는 작지만 알찬 즐길거리에 많은 시민이 서서히 빠져들고 있다. 한여름인 탓에 길마켓을 마음 놓고 즐기기에 불편함은 있었지만 길에 펼쳐진 소박한 물품들을 구경하며 나도 어느새 길마켓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8월 17일 오전 창원 성산아트홀 앞 가로수길 보도블록 위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갖가지 물건을 사고팔고 있다. 팔찌, 옷, 책, 유기농 채소까지 나름 종류가 다양하다. 한 달에 한번 셋째 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이 시장의 이름은 ’길마켓‘. 창원시와 녹색창원21실천협의회 그리고 플리마켓 문화 활성화에 뜻을 함께하는 여러 단체와 시민이 주체가 되어 여는 시민장터이다.

/서정인 기자

한낮이 되자 길은 뜨거워졌다. 길 양쪽에 자리한 가로수가 만드는 그늘도 절정의 여름 앞에는 역부족이었다. 아침이 되자마자 태양이 데우기 시작한 보도블록과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의 열기로 참여자들의 얼굴에는 잇달아 땀이 맺혔다. 짜증이 날 법한, 아니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나는 날씨지만 ‘길마켓’ 분위기는 생각보다 발랄하고 생기있었다. 그 분위기는 사람들의 미소 띤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다. 얼린 생수병을 몸에 갖다대고 햇빛을 피해 양산 밑으로 숨어 손 바쁘게 부채질을 하면서도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반가워하며 각자의 요령으로 시장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 이런 분위기가 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에서 기부 목적의 업체 참여 환영

‘길마켓’을 둘러보았다. 판매대를 대신하는 ‘길’에 판매자들은 돗자리나 천을 깔고 상품을 펼쳐놓았고, 테이블이나 이동식옷걸이를 활용하고 디스플레이에 공을 들여 꽤 그럴싸하게 가게분위기를 낸 부스도 눈에 들어왔다. 한 부스당 공간은 약 2m×1m. 한정된 공간 안에서 어떻게 물건을 배치했는지, 주력 상품(?)을 어떻게 더 돋보이도록 했는지를 구경하는 것도 ‘길마켓’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인 듯했다.

‘길마켓’에서 물건을 팔기 위한 조건은 까다롭지 않다. 참가신청 후 출점료를 입금하고 재활용품, 수공예품, 도서 등 일반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해롭지 않은 물품이라면 어떤 것이든지 판매할 수 있다. 개인만이 아니라 업체 참여도 가능하다. 단, 영리를 위한 상업적인 업체는 참가할 수 없지만 재활용이나 기부를 목적으로 한 업체는 허용한다.

/서정인 기자

허용한 기준 안에서 넓게 포용하는 ‘길마켓’은 그래서 다양하고 재미있다.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다 긁어모아 온 듯한, ‘팔릴까?’ 싶은 물건들에서부터 쓸 만한 중고 카메라까지, 그 중 주로 많이 파는 상품은 단연 옷과 신발류이고, 거래도 가장 활발하다.

값은 대부분 저렴하다. 500원에서 비싼 것은 몇만 원까지. 더운 날씨 탓인지 쉽게 지갑은 열리지 않지만 흥정하는 말을 꺼내기도 전 미리 웃어 보이며 깎아주는 판매자들의 인정 덕에 인기 있는 부스는 수입이 제법 쏠쏠해 보였다.

경매…마음에 들면 값을 부르세요

길마켓은 단순히 물건만 사고파는 시장이 아니다.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즐길 거리 역시 매회 고민한다. 12시가 조금 넘자 ‘길마켓’ 스텝이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을 모은 후 경매를 시작한다. 면도기, 태권도 도복 등 지원받은 경매물품을 두고 경매를 시작한다.

우르르 몰려든 사람들은 흥미로운 놀이에 참여하는 듯한 표정으로 너도나도 값을 올렸다. 가장 마지막에 값을 부른 사람에게 물품이 낙찰되고 경매는 ‘좋은 일에 쓰겠습니다’라는 말로 끝이 난다. 이게 끝이 아니다. 길마켓에서 물건을 구매한 사람이면 응모할 수 있는 30만 원 상당의 경품추천도 길마켓에 생기를 더한다.

가로수길의 중간 지점에는 ‘밥버거’와 음료 등을 파는 먹을거리 판매 코너,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체험 코너, 고장 난 양산과 우산을 무료로 수리해주는 코너, 자전거 무상 점검 코너 등 다양한 부스가 준비되어 있었다.

오후 2시. 오전 10시에서 오후 3시까지인 ‘길마켓’의 폐점시간이 가까워졌다. 일찍 가게 문을 닫는 판매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급히 복숭아슬러시를 사서 마시고 모자를 5천 원에 구입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한 할머니가 “잘 골랐네”라며 웃으신다. 처음 보는 이와도 헌 물건을 통해 눈을 맞추고 말 한 마디를 나눌 수 있는, 이런 게 길마켓의 매력이 아닐까

‘길마켓’ 장터의 규모는 작지만 어떤 경계나 제약이 없다. 그래서 플리마켓이라는 문화와 접목시킬 수 있는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다. 아직 성과를 결론지을 수도, 지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길마켓으로 창원의 문화는 좀 더 풍성해졌다. 과잉 소비가 아니라 돌려쓰고 다시 쓰는 나눔의 소비문화에는 일상의 자유로움이 있었고 위트가 있었다.

/서정인 기자

“스스로 참여하고 즐기는 나눔 운동”

더운 날씨에 바쁘게 움직이는 스텝들이 눈에 띄었다. 짧게나마 인터뷰로 얘기를 나누어 보았다.

아름다운 가게 창원 중앙점 팀장 정윤희

-아름다운 가게에서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는지.

길마켓은 지금 3회째입니다. 3회째 진행하기 전 주관사에서 창원지역 내 몇 개 시민단체들을 모아서 재미있고 뜻있는 프리마켓을 열어보자고 해서 제안하셔서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아름다운 가게가 하는 일이 재활용품 기증을 받아서 나눔과 순환운동을 펼치는 것이기 때문에 길마켓의 취지가 저희 일과 많이 들어맞아서 참여하게 되었고 참여자들을 모으고 다른 단체들과 함께 기획하고 행사를 진행하고, 이렇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오늘 날씨가 더워서 많이 힘드시겠어요.

이번 달 준비회의를 하면서 8월만 저녁에 한번 해보자고 그렇게 의견도 나왔는데… 행사방향이 원래 정해진 날짜 정해진 시간대에 해야 그래도 홍보 효과가 유지되고 더 낫지 않을까 해서…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에 일단은 그 시간대를 유지하는 걸로 했습니다.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지역에도 여러 군데에서 벼룩시장, 아나바다 장터가 아파트 부녀회나 다양한 단위로 열리는 걸로 알고 몇 군데 참여를 해봤지만 그런 행사에 비해 길마켓은 강제적인 부분이 없고 자발적으로 본인이 신청해 물건 가지고 나오고 재미있게 참여를 하는, 그 점이 다른 벼룩시장이나 아나바다 장터와 다른 점이에요. 스스로 참여하고 즐기고 경품이나 이런 것들을 자유롭게 내놓고… 그게 길마켓의 장점이에요.

-날씨가 시원해지면 하고 싶은 이벤트 라든지… 다음 길마켓이 기획하고 있는 것은 없나요.

길마켓 회의 한 달에 두 차례에요. 평가회의. 다음 달 준비회의. 그 안에 모인 시민단체들끼리 자유롭게 다 의논을 해서 준비하기 때문에 제가 아름다운 가게에서 이렇게 계획을 하고 있다. 아직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어요. 근데 음… 지난달에 마술공연도 했었는데 너무 더워서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30분 정도 하고 말았어요. 날씨가 선선해지면 재능기부를 받아서 판매자들 중간마다 악기 연주자들이 자리를 잡고, 공연을 거창하게 하는 건 아니고 시민들 사이에서 가볍게 연주하는 그런 생각도 해보고 있습니다.

“자기 물건 직접 팔아보는 경제놀이”

판매자들 사이에서 유독 어린 판매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동생과 함께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앉아 엄연한 판매자 분위기를 풍기는 용근이. ‘1,000원 한 개 사주시면 저 2학기 동아전과 사요ㅠㅠ’ 마음을 움직이는 문구에 발길이 묶였다. 엄마가 어디 계시느냐고 묻자 경매를 하고 있다고 했다. 아까 흥겹게 경매 분위기를 주도했던 스텝이 떠올랐다.

/서정인 기자

애기똥풀 창원맘(네이버카페) 관리자 박정여, 오용근 사파초 6학년, 오수현 사파초 1학년

-참여하시게 된 계기는요.

저는 아기 엄마들 모임을 카페로 하고 있어요. 카페에서 카페관리자로 되어 있거든요. 프리마켓이라는 걸 우리끼리 하다가 길마켓 1회 때 창원시에서 우리가 이런 행사를 할 건데 같이 하자 이러시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하게 되었어요.

-날씨 탓인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왜냐면 창원은 젊은 분들이 많아서 주말이 되면 바깥으로 놀러 나가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래도 계속 반응이 커지는 것 같아요. 계속 카페 같은데 글도 계속 올리고 있고요. 젊은 엄마들이 이런 걸 좀 좋아하시는데 아이들이 방학기간이라 집에 다 있으니까 확실히 좀 적어졌어요. 좀 더 시간 지나면 좋아질 거로 생각해요.

-아이들과 함께 참여하신 이유가 있나요.

날씨가 더워서 판매자가 별로 없다더라고요. 그래서 어젯밤에 아들한테 물었어요. 그러니까 엄마 내가 나가서 장사할게. 그래서 같이 나오게 됐어요.

저희 아들은 6학년인데 작년부터 이 일을 보고 자기 혼자 저렇게 장사를 했거든요. 들고 나온 물건도 자기 물건들이에요. 용근아 프리마켓 하는데 안 할래? 하면 자기가 책상 서랍을 다 뒤져요. 안 가지고 노는 장난감. 엄마 딱 이 정도만 팔 거예요. 라고 딱 정해요. 판 금액은 저한테 안 줘요. 참가비가 5천 원인데 5천 원은 네 돈으로 네가 내고 판매하고 남은 돈은 5천 원이 남든 만원이 남든 남은 돈은 자기 용돈으로 줘요. 자기한테는 경제놀이가 되는 거죠. 즐기면서 해요. 엄마 얼마 벌었어요. 7천 몇백 원 벌었어요. 예전에는 많이 벌 때는 4-5만 원 벌고…

-적극적인 태도를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맞아요. 하다가 자기가 먼저 구매자들에게 멘트도 날리고요(웃음). 남자애들치고는 조금 말을 잘하는 편이긴 하지만 하는 거 보면 좋아라 하는 것 같아요. 일기에도 오늘 무슨 장사를 했다. 어떤 할머니가 왔는데 천 원짜린데 할머니에게 5백 원에 팔았다. 뭐 이런 식으로 일기도 써요.

/서정인 기자

‘길마켓’에 참여하려면
■ 판매자 신청
1. 판매자 신청
- 일반: 온라인(페이스북)으로 참가신청서 다운 후 메일로 제출
- 단체: 단체별로 접수
2. 판매자 신청기간
- 프리마켓 모집 글 페이스북 게시 이후 ~ 프리마켓이 열리기 이틀 전
3. 판매자 신청 취소(환불)기간 - 프리마켓 신청기간 내

■ 출점료 관리
1. 출점료 5천원(약 2m×1m로 판매부스 한자리 당)
2. 출점료는 프리마켓이 열리기 이틀 전 16:00까지 녹색창원21 계좌로 입금
※ 입금계좌: 농협 301-0129-5421-21 예금주: 녹색창원21실천협의회 (입금자순으로 접수 후 마감)
3. 환불 : 판매자 신청 취소 기간에 '신청취소' 건에 한하여 환급
(환급은 프리마켓이 열린 이틀 후, 환급되며 무단 불참자는 환급되지 않음)
4. 운영비를 제외한 수익금 전액 창원시 장애어린이 돕기 기금으로 사용(아름다운가게를 통한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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