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하고 막막한 하루 폐허가 된 살림을 재건하고 가족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갈망했지만 모든 것이 역부족이었다. 한번 기우러진 가산은 일어설 줄 모르고 변신한 사람의 마음은 돌이킬 줄 몰랐다. 가족이면서 그 가운데서 침체되어 가는 가족을 이끌어 내려고 그렇게 발버둥쳤지만 길동이에게는 모두가 남이었다.

어려움에 처하여 허우적대고 있는 자식의 등에다 대놓고 돈 가져오라고 목 조르며 체면만 생각하는 아버지, 자기가 낳은 자식 아니라고 해서 한 푼이라도 더 낳은 자식위해 챙겨주고 싶어 호주머니에 넣고 싶어 하는 어머니, 차비 달라 공책 값 달라 조르는 아이들 모두다 그들만의 욕심에 사로 잡혀서 목덜미를 잡아 흔들어댄다. 아이들이 무슨 어려움을 이해하랴!

남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토한다마는 억이 넘었으니 어떻게 하든, 이 고난을 무사히 넘기고 모두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했다. 그러나 손에 잡힌 뭔가가 조금이라도 있어야만 하는데 이별이후 상흔이 아물지도 않았고, 길동이에게 천륜은 없었고 따뜻했던 이웃의 민심은 흉흉했으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암담할 뿐이었다.

하루 속히 지옥 같은 여기에서 빠져나가야 하는데 정해진 시간을 어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죽지 못해서 사는 이 순간에 힘을 주는 이는 없었다. 그래도 새로운 도전과 경제부흥을 일으켜야 했지만 곳간은 텅비어있었고, 가족의 열망도 궁핍해지고 있었다. 군대생활에서 정신을 잃고 있는 길동이는 벼랑 끝 선택을 했다. 이러다가는 다 굶어죽겠다는 간절한 편지 한통이 길동이는 죽어도 고기 값은 남으리라 그래 이 길이다고 외쳤다.

보름동안 죽음의 공간에서 생활을 끝내고 다른 젊은 청년들과 베트남으로 파병됐고, 건강한 남자들은 독일광부로, 꽃다운 여인들은 독일간호사로 보내졌다. 이렇게 하여 국가도 부흥하고 개인 가정도 새롭게 번영의 길을 걸어 갈 수가 있었다.

지구촌을 무대로, 밤낮없이 일하는 것만이 멋진 신세계를 향한 확실한 대안이었다. 월남전에 참여를 하여 국가부흥과 가족부흥을 일으켰다. 정규대학출신들이 솔선하여 독일광부로 떠났고, 어여쁜 여인들이 간호사로 멀고 먼 이억 만리타국으로 떠날 때는 온 나라가 눈물바다였을 때도 있었다. 오직하나, 가족과 나라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등신 불같은 희생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든 시절도 있었다.

6075신 중년이란 신조어가 새롭게 생겨났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즉 3D업종은 외면한다. 별로 실력도 없으면서 중소기업에서는 일하기 싫고 적은 인건비에는 관심 없고, 많은 인건비를 원한다. 또한 노동일이 아닌 행정 보는 기업을 선호하고 대기업 쪽으로 관심을 기우리다보니 자연 젊은 일꾼들은 일자리가 수두룩한데도 일자리가 없다면서 실업자 노릇을 하고 있다. 그 틈을 이용하여 외국 인력들이 들어와서 3D업종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6075신중년층(新中年層)이 설자리가 새롭게 설정되고 있다. 그들은 지난날에 생산주역들이다. 이들은 정년이란 덫에 걸려서 더 일할 수가 있으면서도 이선으로 물러않을 수밖에 없는 신세였다. 이제 기업들이 6075신 중년세대들에게 눈을 돌리고 있고 그들의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하여 공장생산매출을 2배에서 많게는 5배 이상 수익창출에 기여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지역사회 소비촉진 경제 선순환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길동이는 2010년8월 퇴직하여 갈 곳이 없었다. 원래의 직장에서 자기 마음대로 오고갈 수가 있었고 그 가운데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니면서 업무수행을 하던 사람이 퇴직이란 이름으로 가정에서 소일하다보니 하루 이틀 보름이 지나면서 화병이 생겼다.

병원에 다니면서 울화증이란 병을 치료하고 새로운 인생의 길을 찾아야만했다. 인간100세 시대에 대비하여 40년은 더 살 수 있는 시간을 대체하기 위하여 공부를 시작했다. 전문대학 사회복지과에 입학하여 2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필요한 자격증을 따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정년의 나이가 넘은 길동이를 받아주는 곳은 아예 없었다. 그렇다고 자기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다.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면서 자격증에 맞는 취직자리를 구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6075신중년 층이면서도 고급일력이다 보니 환영하는 곳이 없었다. 그는 각 시 군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면서 검색하여 장애인 행정도우미 1년 계약직을 얻어냈다.

길동이에게는 꺼져가는 인생길에 최소한 1년 동안은 횃불이 밝았다. 그러나 또 다른 걱정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고민에 빠져있다. 아직은 걱정할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흐르는 세월은 유수와 같이 빠르기만하다. 이제 3개월 남았다. 그 다음이 문제다고 길동이는 염려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내년에도 꺼져가는 인생길에 횃불이 다시 활활 타 오을 수가 있을까!

/이권섭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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