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꿈은 여전히 소설가에요"

2013년 여름이다.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다가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는 변덕스러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비가 내려 습도가 높아지면서 주변의 짜증도 부쩍 늘어난 분위기다. 진주의료원 사태 등으로 정치권 기상도 흐린 가운데 언론과 정치권 사이의 긴장감도 팽팽하다. 그만큼 국회 의원실의 업무는 쌓여간다. 비서들의 생활이 궁금하다.

7월을 맞아 슬쩍슬쩍 휴가를 출발해야할 국회는 ‘공공의료 정상화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활동과 국정원 사태 등으로 분주한 상황이다. 쏟아지는 민원까지 해결해야 하는 의원실은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곳이다.

이런 공간에서 청량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정유미(24) 비서를 만났다. 새누리당 박대출(진주 갑) 의원실에서 일하고 있는 정 비서는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도 언제나처럼 밝은 미소를 보였다.

정유미 박대출 국회의원실 비서./본인 제공

경남 진주에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보낸 정 비서는 1년 조금 넘은 국회 생활을 경험한 새내기다. 학창시절 장래희망으로 ‘탤런트’를 쓴 적도 있었다. 대학에서는 문예창작을 전공하며 소설가의 꿈을 키워왔다. 문학적, 예술적 분야를 탐닉하던 그가 사회 생활의 첫 장소로 발걸음을 내딛은 곳이 국회라는 부분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생길 수 있다.

주말까지 출근하는 바쁜 일정이지만 일요일에 출근한 기자에게 “저녁은 햄버거! 함께해요”라고 챙길 줄 아는 넉넉함이 있다. 보좌진 사이의 분위기 메이커로 “팥빙수 먹어요”를 외치는 의원실의 막내이다.

- 어려서부터 문학과 예술에 관심이 많았나요?

“초등학교 때 반이 바뀔 때마다 자기소개 카드를 써서 내는 게 있었어요. 제가 희망하는 장래희망이랑 부모님이 희망하는 장래희망을 쓰는 칸이었는데 저는 계속 (장래희망이) 바뀌었어요. ‘선생님’을 한다고 했다가 ‘탤런트’라고 적었다가…그런데 부모님이 원하는 장래희망은 ‘소설가’로 언제나 같았어요.”

- 부모님이 소설가를 추천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머니가 어린 시절 문학소녀였어요. 시인이 되고 싶었다고 해요. 자식을 시인으로 키우고 싶었는데 제가 시인이 될 것 같지는 않고…(웃음)…문학이라는 장르 안에서 소설가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그래서 작가를 추천하셨죠. 저 역시 나름대로 어렸을 때부터 글을 잘 쓴다는 자신감이 있었나 봐요. 초등학교 때 신문사에서 주최한 글짓기대회에 참가해서 상장이랑 손목시계를 받은 적도 있어요. 그때 아버지가 자랑한다고 (시계를) 손목에 차고 다리곤 하셨죠. 글 쓰는 것 가지고 상 좀 탔답니다. (웃음)”

정유미 박대출 국회의원실 비서./본인 제공

-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이어졌나요?

“(글쓰기에 대한 관심은) 계속 이어졌어요. 실제로 (글을) 쓰고 이런 것들은 별로 없었지만 공모전과 같은 행사에는 많이 냈던 기억이 나요. 소설을 쓰겠다고 본격적으로 다짐한 것은 대학교에 입학한 다음부터고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는데 입학 후 처음 배운 과목이 소설 창작이었어요. 너무 재밌었죠. 저는 이 길로 계속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시도 써보고 평론도 써봤죠. 중앙동아리에서 활동을 못하고 과 동아리에서 활동을 주로 했어요. 중앙동아리 활동으로 바빠지면 과 행사에 빠지는 일이 생기니까 선배들이 과 동아리 활동을 하라고 설득했어요. 저는 순진하게 (과 활동만) 믿고 열심히 했죠. (웃음)”

- 소설 동아리 회장도 맡았다고요?

“네, 소설 동아리 ‘미담’ 회장을 맡기도 했어요. 소설 창작 동인회라고 보면 됩니다. 한동안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문집을 내지 않았는데 7년 만에 제가 회장인 시기에 문집을 내서 기분이 좋았어요. 우리 돈으로 하지 않고 충남 콘텐츠진흥원 주관으로 제작을 마칠 수 있었죠. 10여 명이 참여한 책이었어요. 그 때를 돌아보면 ‘제본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이걸 왜 7년 동안이나 못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회원들에게 ‘마음에 드는 글들만 하나씩 내라’고 해서 만들었죠. 졸업 후 물어보니 제가 만든 후로는 다시 문집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해서 섭섭하답니다. 제가 졸업한 후 후배 중에 한 명의 연락을 받았는데 ‘문집을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내용이었어요. 그때 예전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을 했는데 그 뒤로 연락이 없네요. (웃음)”

정유미 박대출 국회의원실 비서./본인 제공

- 아서 코난 도일이 지은 ‘셜록 홈즈’를 아주 좋아하죠?

“어린 시절부터 추리소설에 관심이 많았어요. 제가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중학교 때 셜록 홈즈를 읽으면서 부터랍니다. 친구랑 학교 도서관에 갔는데 ‘뭘 읽을까’ 고민을 하다가 선택한 책이 셜록 홈즈였어요. 너무 재밌었죠. 요즘도 매년 새 해가 시작되면 처음으로 읽는 책이 셜록 홈즈죠. 예전에 읽었던 책이지만 매년 다시 읽어요. 학창시절 용돈을 모아서 처음으로 구입한 책도 셜록 홈즈 전집이었어요. 그때 중학생이었는데 당시 5만 원 정도를 모아서 샀던 기억이 나요. 학생 신분에서는 큰 액수죠?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처음 사람을 보고 어떤 직업을 갖고 있고 뭘 하다 왔는지를 알아내는 방식이 신기하더라고요. (웃음) 예리한 것 같고 똑똑해보여서 대단한 것 같았어요.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대학교 때 유럽여행을 갔는데 영국에서 시작해서 이동하는 일정이었어요. 셜록 홈즈를 너무 좋아해서 소설 속에 나오는 베이커가 등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죠.”

- 국회에서 일한지 1년이 지나고 있는데 어떤 생각이 드나요?

“처음에는 정말 적응이 안 됐어요. 비서라는 직업 자체에 대해서 잘 몰랐죠. 의원님을 서포트하는 역할이라는 정도였죠. 내가 배가 고파도 식사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나만 알고 있는 내용을 의원님께 정리해서 보고하고…이런 일들에 대해 사실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이제는 많이 나아졌죠. (웃음) 이제 13개월이 지나고 있죠? 지금은 (국회의원회관이) 신관으로 옮겨와서 좀 덜한데 예전에 저희 의원님이 구관에 배정된 것이 좋았던 것 같아요. 다른 방 비서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모르는 게 있을 때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언니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죠. 구관일 때는 지금보다 규모가 작아서 복도에서 만나는 언니들이 많았고, 빨리 친해질 수 있었어요. 건물이 커지다 보니까 분위기 자체가 예전과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조금은 혜택을 본 건가요? (웃음)”

- 국회의원 비서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는 독자에게 어떻게 설명이 좋을까요?

“아침에 사무실 정리 등 기본적인 업무도 있어서 빨리 출근하려고 해요. 의원실 식구들이 오전 업무를 원활히 하도록 기본적인 정리를 빠르게 마치는 게 도움이 됐어요. 보통 8시 전에 출근하죠. 다른 방에 비해서 조금 빠른 편이죠? 성실한 스타일이라고 하면 자랑일까요? (웃음) 일과는 오전업무와 점심, 오후업무 정도로 나뉘죠. 오후에는 전화통화가 많아요. 기자들의 전화는 기본이고 지역 민원에 대해서도 신속히 해결하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도 따르죠. 하지만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랍니다. (웃음) 준비생들에게 조언을 드리자면…저도 처음에는 몰랐는데 비서실무와 관련된 책들도 있더라고요. 관련된 책을 보며 직업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니까 그 전까지 스트레스 받았던 일들이 조금씩 해결되는 걸 느꼈어요. 이제 우리 의원님 재선을 넘어 3선까지 할 수 있도록 조력해야죠. (웃음)”

- 그래도 아직 힘든 부분이 있죠? 어떤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나요?

“제가 원래 생각이나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날 정도랍니다. 보좌관님이나 비서관님이 저랑 1년 정도 있었으니까 제 기분을 다 알고 있더라고요. (웃음) 제가 기분이 안 좋으면 방 분위기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죠. 다들 너무나 고마운 분들입니다. 가끔 심술을 부려도 잘 받아주는 스타일이어서 특별한 부담은 없는 상황이죠. 그래도 어려움은 있어요. 숫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회계에 대한 부담이 있죠. 이 부분은 주변에 많이 물어보고 배워요. 회계를 하다보면 1원 단위까지 맞아야하는데 조금만 달라져도 합계가 달라지죠. 정확하게 확인해서 이야기한다는 게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지금은 좋아졌어요. ‘신속·정확’에 익숙해졌다고 할까요? (웃음)”

- 소설가와 비서, 조금은 낯선 조합이죠?

“사실 비서라는 이름을 달고 있기 좀 부끄러울 때가 많아요. 그동안은 소설가를 꿈꾸면서 감정과 나만의 느낌에만 집중했죠. 또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어요. 하지만 비서는 나보다는 모시는 분의 입장에서 그분의 요구에 맞춰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해요. 모든 일을 세심하고 꼼꼼하게 챙기고, 모시는 분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을 해봐야 하죠. 그래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좀 적응이 된 것 같아요.”

- 일을 하면서 언제 뿌듯한가요?

“국회에서 일을 하면서 좋았던 것은 고향에 대해서 몰랐던 것을 많이 알게 되었다는 점이죠. 20년이 넘게 진주에서 살았지만 사실 살고 있는 동네 말고는 잘 몰랐어요. 진주라는 도시에 대해서는 진주에 살고 있을 때보다 서울에 올라와 국회에서 일하는 지금 더 많은 것을 알게 됐어요. 수곡면에서는 딸기 농사를 많이 짓는다는 것도, 중앙시장에 아케이드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도 이곳에 와서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내용이랍니다.”

- 또 다른 힘든 부분은요?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역시 퇴근시간이 늦다는 부분이죠.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아직 일에 서투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일처리가 늦어져서 퇴근도 늦어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의원님 홈페이지와 SNS관리도 신경을 써야하고, 회계까지 맡아서 하려니 하루하루가 짧게만 느껴지네요. 거기다 주말까지 의원님께서 여러 행사에 참석하시고, 일을 계속 하시기 때문에 주말에도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가 힘든 것 같아요. 친구들과 만나고 있다가도 비상연락이 오는 일이 많기 때문에 항상 긴장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힘들어요.” (웃음)

- 국회에서 꿈을 찾으려는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팁을 준다면?

“이곳에서 일을 하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들었어요. 실제로 이곳에서 일을 해보니 국회의원의 비서로 일하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보좌관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 지금의 정치상황과 그 다음의 일까지 예측해요. 의원님께서 정치적으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이 국회의원 비서로 가장 모범적인 모습인 것 같아요. 그런 경지까지 가려면 많은 것들을 알아야 하고, 경험해봐야 해요. 그냥 국회의원의 옆에서 있기보다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마음가짐부터 달라져야 할 것 같아요. 비서로서의 큰 목표를 가지고 이 일을 시작하면 작은 일들에는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정유미 박대출 국회의원실 비서./본인 제공

- 소설가의 꿈은 이어지나요?

“비서로 일을 하고 있지만 제 꿈은 여전히 소설가랍니다. (웃음) 진주를 대표하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진주에 제 문학관을 세우는 것이 목표죠. 지금 진주유등축제처럼 진주의 봄 대표축제가 ‘정유미문학제’가 되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이곳에서의 생활과 진주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된 것들이 제 소설의 새로운 자양분으로 작용해서 좋은 작품을 많이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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