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부터 1급까지, 공무원의 꿈 이룬 38년

조기호(59) 창원 제1부시장이 명예퇴직을 신청해 1급 공무원 승진과 함께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 그의 퇴임식은 지난달 26일 열렸다. 퇴임식에서 그는 동료의 환송을 받으며 마지막 일터였던 창원시를 떠났다. 38년간의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고 또 다른 출발점에 선 것이다.

9급에서 시작해 1급으로 퇴직하는 것은 모든 공무원의 꿈이다. 그래서 동료 공무원들은 그를 입지전적인 인물이라 평한다. 조 전 부시장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동료를 대해왔고, 항상 밝은 눈웃음으로 시민들을 만나 왔다. 하지만 그 미소 뒤에 숨겨진 38년은 고난을 견디며 보람을 이끌어낸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미소 너머 담겨 있는 공직생활의 애환과 보람을 들어보고자 한사코 마다하던 그를 설득해 결국 인터뷰 자리로 끌어냈다.

조 전 부시장이 퇴임한 지 일주일이 지난 6월 5일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오전, 창원시청 인근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조기호 전 부시장./박일호 기자

공직 38년, 보람 있었지만 후회와 아쉬움도

-어떻습니까? 퇴임하고 일주일 정도 지났는 데.

“우선 무거운 짐을 벗었다는 홀가분한 마음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퇴임했다는 생각이 많이 안 나는데 아직은…. 평소처럼 일어나서 산책도 하고 운동하고 그럽니다. 책을 좀 읽기 시작했는데, 그런 면에서는 시간적인 여유로움이 있는 같아요. 퇴직한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선배, 동료, 후배, 지인에게서 오는 안부·격려 전화도 받고 또 만날 약속도 정하고 그러고 지냈어요.”

-그동안 공직생활 어떻게 평가하나요?

“후회와 아쉬움이 남습디다. 좀 더 남을 배려하지 못한 점, 좀 더 적극적으로 열심히 하지 못한 점, 업무 탓에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점…. 음∼(한숨) 그래도 다른 동료가 도와줘서 이렇게라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보면 능력보다 참 복이 많았고, 운이 억세게 좋은 놈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인터뷰 하는 조기호 전 부시장./박일호 기자

집안 사정 탓에 대학 편입 대신 공직으로

-진주농림고등전문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공무원이 될 생각을 했나요?

“진주시 하촌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어∼ 옛날 진주시와 진양군의 경계지역인데요. 그 당시에는 말이 진주시지 진양군 면 지역보다 못한 낙후된 데입니다. 그러니까 전형적인 촌놈 출신이라고 해야지요. 고등학교 다닐 때인데…. 하루는 논에서 농사일을 돕고 있는데, 면사무소 직원이 넥타이 차림으로 농사 지도를 나왔어요. 그런데 그 모습이 참 보기 좋더라고요. 촌놈 눈에는 멋있게 보인데다 열정을 가지고 지도하는 모습에 확신이 생긴 것 같습니다. 진주농림고등전문학교는 5년제라서 졸업하고 대학에 편입하는 친구가 제법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집안 사정 탓에 5학년 2학기에 시험을 쳐서 공무원이 됐습니다.”

-진주에서 처음 공무원생활을 시작했죠?

“처음 발령받은 데는 진양군 이반성면. 75년이니까 우리 나이로 22살 때입니다. 당시 산업계인가? 과 명칭은 정확지가 않은데…. 통일벼 확산, 퇴비증산 그런 업무를 처음 했죠. 당시에는 통일벼 심는 것을 권장했어요. 참 그때는 통일벼 안 심으면 모판을 바꿔버리고, 통일벼가 아니면 매상도 잘 안 받아주고 그랬던 기억이 싹 납니다.”

-스물두 살에 공직을 시작했는데 군대는?

“공무원 생활을 반년쯤 하다 군대에 갔어요. 사천에 있는 공군부대로…. 지금은 제3훈련비행단이죠. 어∼지금으로 치면 공익요원 비슷한 건데 방위병이라고 1년 6개월 복무하고 제대해서 다시 복직했어요. 이런 것은 좀 빼주면 안 되나 아∼참.”

-그럼 결혼은 언제 했나요?

“군대 다녀오고 얼마 안 지나 도청으로 바로 발령을 받았어요. 당시 부산 도청시절이라 부산에서 자취했죠. 그런데 혼자 있으니까 부모님이 밥해줄 사람이 없다고 재촉해서 선을 봤어요. (웃음) 집사람도 진주 사람인데 그때 직장생활을 부산서 하고 있었어요. 뭐 그렇게 만나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때가 78년이니까, 내 나이가 스물여섯 살이었던가…. 바로 스물일곱 넘어가기 며칠 전 12월 29일 결혼식을 했어요. 요즘 추세로 보면 좀 빠른 편인데…. 그때는 다 그때쯤 했어요.”

조기호 전 부시장./박일호 기자

도지사·대통령 표창까지 화려한 수상경력

조기호 전 부시장은 진주중학교, 진주농림고등전문학교(5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경남대 경영대학원 행정학과 졸업(행정석사)했다. 또 주요 공직 직책으로는 밀양군 사회진흥과장, 경남도 국제교류 계장, 예산계장, 민방위 비상대책과장, 경제자유구역추지기획단장, 도지사 비서실장, 법무 담당관, 공보관, 창녕부군수, 의령부군수, 경남도 남해안시대 추진본부장, 행정안전국장, 진주부시장, 창원시 제1부시장 등을 역임했다.

조 전 부시장은 그동안 도지사 표창 네 번, 내무부장관 표창 두 번, 행정자치부장관상, 대통령표창 등의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현재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에서 30년째 살고 있다.

-공직 생활에서 기억남은 일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갑자기 물으니 생각이 잘 안 나는데…. (어∼) 도청 민방위비상대책 과장할 때…. 그때 화랑훈련에서 최우수를 했는데…. 그래서 도지사님이 39사단 영관급 이상 장교와 도 관계자를 모아놓고 점심회식을 했어요. 그 자리에서 지사께서 격려의 말을 하면서 얼마나 나를 치켜세워 주시는지. 그 자리에서 영전도 시켜줘야겠다고 약속도 하고, 그때가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네요. 이런 것도 에피소드가 되려나. 유 기자가 생각해서 안 되겠다 싶으면 빼고.”

-더 기억나는 것은 없어요?

“이거 취조하는 것도 아니고. (웃음) 갑자기 생각이 잘 안 난다니까. 음∼또 하나 꼽자면 지난해 2월에 스위스 바젤로 출장 갔던 일인데…. 창원시 환경수도 정책, 그러니까 누비자 운영, 온실가스 감축, 습지보전, 생태하천 복원, 뭐 전기 자동차 시책 등을 소개해달라는 초대를 받아서 발표를 했죠.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어요. 창원시가 정말 세계적인 도시라는 것을 깨닫고 왔죠.”

1997년도 경남 예산 계장시절 도의회 답변을 준비하는 모습.

1년에 6개월은 밤샘 작업…관절염으로 남아

-그럼 공직생활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

“도에서 예산 관련 일을 했을 때가 가장 보람찬 기간이라고 생각되는데…. 예산 관련 일을 13년 했으니 공직생활 3분의 1은 예산 일을 한 거죠. 오래하다 보니 아무튼 다른 시․도에서도 잘 모르면 물어보기도 했고 그랬어요. 또 예산을 따려고 서울 정부 부처를 찾아다녔던 기억도 나고…. 예산부서에서 일할 때는 거의 1년에 6개월은 밤샘을 했던 것 같아요. 추경예산 작업하고 숨 좀 돌리면 본예산 편성하고, 그러면서 여관방 잡아 놓고 판을 펴 놓고 앉아서 밤을 숱하게 새웠어요. 그렇게 계속 앉아있다 보니 지금도 왼쪽 무릎은 관절염이 심해요. 오른쪽 다리보다 왼쪽 다리가 훨씬 곯았다고 해야 하나. 그 당시에는 전부 수작업을 했거든. 처음에는 주산을 잘 못했는데 나중에 가감산은 2급 수준 정도 됐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런 것들이 다 행운이라 생각해요.”

2012년 2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지구에너지 바젤회의’에 참석한 조기호(왼쪽 네번째) 전 부시장.

-9급에서 1급까지 올랐는데 비법이나 덕목은?

“사람이 어리석어서 그런지 몰라도 남이 하기 싫은 것을 저한테만 계속시키는 것 같았어요(웃음). 그러면 거부 안 하고 열심히 했습니다. 말없이, 불평 없이 일을 처리하니까 윗사람 신뢰를 좀 받은 것 같습니다. 순간순간 힘들어도 일에서 성취욕과 보람을 찾으려 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전문성이 키워졌던 게 아닌가 생각해요.”

-창원시 부시장으로서의 기억은?

“너무 바빠요. 처음에 오니까 2부시장이 공석이라서 혼자 챙기고, 또 작년에는 시장님이 도지사 경선 나가면서 혼자 챙기며 업무를 했지요. 110만 인구에 사건·사고도 많고, 챙길 일도 많고, 주말과 휴일, 퇴근 후 구분 없이 행사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고…. 그러니까 아이디어 내고 기획할 시간이 좀 부족했던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고…. 또 통합 갈등부터 내부 조직을 다스리고 시장님을 보필하는 게 부시장 일인데 그런 부분에서 좀 아쉽네요.”

창원시 갈등 해결, 미래 내다보며 양보·화합해야

-창원시 갈등 해결 방법을 충고한다면?

“떠난 사람이 감 놔라 배 놔라 하면 안되죠. 시민의 처지에서 말하자면…. 일단 지금 갈등은 그렇게 큰 갈등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정도 갈등은 예상됐던 부분이고 또 다른 지역하고 비교하면…. 시민들도 당장 눈앞에 것만 보지 말고 먼 미래를 내다봐야죠. 통합의 원대한 계획을 생각해서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죠. 특히 지역의 정치인들하고 여론 지도층이 더 큰 마음으로 소통하고 서로 화합해야 할거라 봅니다. 잘될 것이라 믿어요. 조속하게 안정을 되찾을 겁니다.”

-후배공무원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우선 공무원은 시민에게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뚜렷한 공직관을 가져야 해요. 공직자는 보람도 크지만 어려움도 많아요. 부단하게 자기 부정과 희생이 요구되는 외로운 길이라고 해야 하나. 또 공직관에 충실하려면 원칙과 절제가 필요하고…. 좀 꼽자면 자기 주어진 일을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집중하라는 것, 또 시대적 트랜드와 흐름을 항상 잘 살피고 능동적으로 준비하고 변화를 즐기라는 것, 아∼ 그리고 또 조직생활의 폭넓은 지혜를 갖추려고 인적 네트워크 구축, 그러니까 인맥관리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앞으로 계획은 아직… 봉사활동 해볼 생각

-차기 창원시장, 진주시장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데 앞으로 계획은?

“아∼아(한숨) 이런 것 물어볼까 봐 인터뷰 안 하려고 했는데…. 퇴직하고도 신문에 어디 어디 출마 예상자로 보도되는데 참 난감해요. 아직은 전혀 생각해 본 바가 없는데…. 다만 포괄적인 계획이라면 봉사활동을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현직에 있을 때 중증 장애인 요양시설에 한 번씩 가서 봉사했는데, 봉사의 소중함과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어요. 그런데 바쁘다는 핑계로 실천을 잘 못했는데, 숙제라고 해야 하나 그런 맘이 남아 있어요. 이제는 시간이 많으니 봉사에 참여해 볼까 생각 중입니다. 또 기회가 된다면 아프리카 오지 이런데 가서 봉사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파마, 염색도 자주 하시는 것으로 아는데 젊게 사는 비법이 있다면?

“가능한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는 거죠. 과일을 즐겨 먹으려고 하고요. 또 밤에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날 외에는 10시쯤에 꾸준히 1시간 정도 걷기를 합니다. 주로 중앙동 주변 종합운동장, 과학체험관 쪽으로 산책하죠."

2006년 7월 창녕군 성산면 수해피해 응급복구 현장 방문. 당시 군수 권한대행 시절이다.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면?

“꼽자면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같은 사람. 그분은 말더듬이였는데 끝없는 노력과 맹연습으로 극복해서 명연설가가 됐다고 안 합니까. 또 묘비명에도 ‘다시 태어나도 난 이 길을 걷겠다’ 뭐 이렇게 적었다는 데…. 끝없이 노력하는 부분하고 또 그렇게 해서 후회 없는 삶을 살아온 부분을 본받고 싶어요.”

-좌우명은?

“진인사대천명. 앞에도 말했지만 공직생활 하면서 남이 하기 싫은 일도 온 힘을 다해 열심히 하려고 했어요. 그랬더니 운이 따르고 그래서 그동안 무리 없이 공무원 생활을 한 것으로 생각해요.”

-최근에 본 영화와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은?

“<공감온도 100도씨>와 <명의> 이런 프로그램을 잘 보는 편입니다. 사실 퇴근이 늦은 편이라서 산책가고 하면 TV 볼 시간이 거의 없어요. 영화는 지난해 가족들하고 <도둑들>인가 본 것이 마지막입니다.”

“그동안 내조해준 아내에게 앞으로 잘해야죠”

-최근에 읽은 책이 있다면?

“퇴임하고는 <시 읽는 CEO>라는 책을 읽었어요. 고두현이라는 작가가 적은 책인데…. 퇴임하고 지인이 선물로 준 책인데…. 시가 비즈니스 현장에서 공감을 이끌어 내고 독창적인 사고와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원동력이라고 소개하데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창조적인 CEO들이 좋아하는 시 20편을 골라서 소개하는 책입니다. 시를 해설하고 설명하면서 시에서 얻을 수 있는 가르침을 소개하고 있어요. 책이 괜찮았어요.”

-술·담배는 얼마나 하나?

“담배는 안 피웁니다. 술은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일 때문에 술자리는 많았지만 과음을 하는 편은 아니라서, 주량이 소주 1병 정도라 해야 하나…. 뭐 그 정도.”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나?

“집사람하고, 자식은 1남 1녑니다. 아들은 결혼해서 서울에서 살고 있고, 딸은 아직….”

-1년에 6개월은 밤샘하느라 집에도 못 들어가고 했는데 그럼 남편, 아버지로서 몇 점이라 생각하나?

“음∼ D 학점은 되려나. D나 F 정도. (웃음) 저는 집안일을 거의 신경 못썼어요. 집안 대소사나 아이들은 집사람이 다 챙겼죠. 그래도 쫓아내지 않았고 크게 싸운 적도 없어요. 집사람도 자기 일 하면서 욕봤죠.”

-그럼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이들은 알아서 잘 자라줘서 고맙고, 집사람은 그동안 고생했으니 앞으로 잘해줘야죠. (지면을 빌어 좀 확실하게 표현을 해달라는 말에) 어∼이런 것은 유 기자가 좀 적당히 적어주면 안 돼요. 쑥스럽게 어∼(머리를 긁적이며) 그냥 사랑하는 거죠, 더 잘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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