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마리에 인생 걸었더니 6 5 0 0 마리 꿈의 선물 받았다

함양군 유림면 대궁리. 도로에서 좀 떨어진 곳에 '복 있는 농장'이 자리하고 있다. 민가 밀집 지역과는 거리가 있다. 흑돼지 6500여 마리를 키우고 있으니, 될 수 있으면 사람 사는 곳에서 떨어져 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농장을 운영하는 박영식(54) 씨는 이곳에 자리 잡은 지 11년 됐다.

"나름 동네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터를 잡았죠. 그런데도 여름·장마철이면 냄새 난다 해서 민원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래도 동네 행사 있으면 발걸음하며 인사도 드리고, 그렇게 10년 정도 함께 지내다 보니 이제는 주민들도 이해해 주는 편이죠."

박 씨가 태어난 곳은 이곳 유림면 바로 옆 동네인 휴천면이다. 농사짓는 부모님 아래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꿈은 좀 남달랐다.

흑돼지에 제2 인생을 건 박영식 씨. /박일호 기자

"아이 때는 보통 대통령·장군·사장, 뭐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잖아요.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선생님께 '가축 기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했죠.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냥 어릴 때부터 좀 현실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돈 생기면 형은 자동차 사겠다고 한 반면, 저는 말을 산다고 했으니까요."

고등학교 졸업 후 연암축산대학(현 천안연암대학 축산계열)에 들어갔다. 고향에서 가축을 키우며 한평생 살겠다는 그의 꿈도 무르익어갔다. 군대를 다녀온 후 바로 그 꿈을 실현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돼지·소를 키우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그럴 사정이 안 됐죠. 그냥 취직을 선택해 축협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17년 가까이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꿈을 좀 더 야무지게 이룰 수 있는 과정으로 작용했다. 그때 쌓은 지식과 현장 경험은 아주 값진 것이었다. 돈도 어느 정도 모을 수 있었다. 그는 흑돼지에 남은 인생을 걸어보기로 했다. 정부 지역특화사업을 신청했다. 총 11억 원 가까이 되는 초기 사업비 가운데 절반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흑돼지는 육질이 좋잖아요. 그래서 그 틈새시장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백돼지만 찾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거고, 흑돼지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 한번 해보겠다고 나선 거죠."

2002년 그렇게 20마리로 시작했다. 11년이 지난 지금은 6500마리로 늘었다. 함양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최다규모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없을 리 없다.

"여름에는 기온·습도, 그리고 환기가 특히 중요하죠. 2010년이었나, 누전으로 환풍기가 멈추는 바람에 출하를 앞둔 400마리가 폐사했어요. 그때는 보험도 제대로 들어놓지 못해서 타격이 컸죠."

박 씨는 이러한 위기를 딛고 일어섰다. 흑돼지 생육 환경을 높이기 위해 완전자동화시설을 갖추는데 이르렀다. 박 씨가 농장을 안내했다. 임신실·분만실·자돈실·육성실·비육실로 나뉘어 있다. 흑돼지 배설물은 예전같이 사람 손 들어갈 일이 없다. 축사 아래로 빠진 배설물은 관을 타고 한곳에 모여 처리된다.

박영식 씨는 한약재에 많이 쓰이는 당귀를 흑돼지 사료로 사용한다. 그는 "어미 젖을 먹고 나면 설사를 많이 하던 새끼들이 당귀 사료를 먹고 나서는 일절 설사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일호 기자iris@idomin.com

사료는 흑돼지 육질을 좌우하는 큰 요소 중 하나다. 농장마다 사료가 조금씩 다르다. 박 씨는 아주 특별한 것을 사용한다. 한약재에 많이 쓰이는 당귀다.

"함양에 당귀를 정제하는 공장이 들어섰어요. 거기서 나오는 찌꺼기를 사료로 사용하면 좋겠다 싶었죠. 3개월 정도 실험 끝에 본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새끼 돼지들은 어미 젖을 먹고 나면 설사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당귀 사료를 먹고 나서는 일절 설사를 안 합니다."

박 씨는 이렇게 180일가량 키운 흑돼지를 유통업자에게 넘기는 것까지만 한다. 한때 서울에 있는 백화점에 납품하기도 했다. 시간·비용적인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아 접었다. 현재로서는 좋은 흑돼지를 키워내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박 씨는 지난해부터 이름도 생소한 '레소토 공화국'을 드나들고 있다. 함양을 찾았던 레소토 왕실과 인연이 되어 현지에 축산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함양 흑돼지가 그곳 땅을 밟을 날도 머지않았다. 박 씨는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다.

"생산 노하우는 이제 완전히 정착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판매·체험·시식·관광 쪽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런 걸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종의 '흑돼지 타운'이라고나 할까요. 이미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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