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초도 곶감도, 전부 지리산을 닮았어예”

대형마트가 들어서고 소비가 규모화되면서 시장은 점점 지역경제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상인들은 1990년대 초반까지는 그래도 ‘좋았던 시절’로 회상한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은 지역의 상설 및 대표시장으로 집중되었다. 그 가운데 면 단위마다 서는 5일장은 그 명맥을 유지하기도 힘들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남서부 지역 5일장 중 ‘안직꺼정은 잘 나간다’는 산청 덕산장을 찾았다.

산청 덕산장. 지리산 중산리로 들어가는 길과 대원사, 내원사로 들어가는 길이 겹치는 곳이라 목이 좋은 곳이다. 이곳은 지리산을 끼고 있어서 산나물과 곶감, 약재와 약초 등이 풍부하다. 4일과 9일이 장날이다.

6월 9일 이른 아침, 덕산장을 찾았다. 지리산 골짜기 맨 끝자락에 무슨 시장이 제대로 설까 싶었다. 더욱이 지금은 산나물이 많이 나는 철도 아니고 특산품인 덕산곶감 철도 아니고 사람이 몰리는 여름 휴가철도 아니다. 오히려 한창 양파, 마늘을 캐고 모내기를 하는 농번기다.

/권영란 기자

“그래도 덕산장은 아직 크다. 시천면과 삼장면 등 2개면에 걸친 장이고 하동 청학동과 시천면을 잇는 삼신터널이 생기고나서는 하동 사람들도 많이 온다쿠더만.”

조릿대로 만든 복조리가 쏟아지던 곳

지리산으로 가는 길목에 가장 큰 마을이 시천면 덕산이다. 덕산 입구에서 덕천강 줄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금방 덕산장이 나온다. 멀리서도 도로를 따라 줄을 지은 파라솔과 그 아래 북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제철을 맞은 마늘, 양파 등이 곳곳에 쌓여 있다. 덕산장은 작은 규모지만 예상보다 훨씬 활기찼다.

“아이가, 새댁. 머 찾노? 이거 함 묵어봐라. 내가 딴 기다.”

/권영란 기자

좌판의 물건들을 펼쳐놓고 오가는 사람을 소리쳐 부르기도 한다. 각종 곡류가 담긴 대야에는 원산지 표시를 하기 위해 직접 썼는지 ‘우리 집에서 수확한 것’이란 글귀가 큼지막하다. 금세 푸근해진다.

덕산장은 지리산을 접하고 있는 시천면, 삼장면 2개면을 통틀어 열리는 시장이라 예전부터 5일장으로서는 규모가 큰 편이다. 곳곳의 5일장이 사라져가고 있지만 덕산장은 여전히 활발하게 거래가 이뤄지고 사람들이 제법 많다. 시장 안 점포는 상호가 없이 그저 번호를 붙여 1호, 2호…등으로 매겨져 있을 뿐이다. 작은 평상을 마주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할머니들은 장사보다는 잠시 마실을 나온 듯하다. 세상 속도야 어떻든 덕산장의 속도는 느리고 여유로웠다.

1980년대 초반까지 유명했다는 이곳 복조리는 시장 어디에서도 눈에 띄지 않았다. 덕산에서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반천, 동당, 신천마을은 11월부터 겨울내내 아이고 어른이고 사랑방에 둘러앉아 복조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복조리는 덕산장으로 나오고 장꾼들을 따라 경남 일대로 퍼져나갔다. 복조리는 주로 해발 500m이상에서 많이 나는 조릿대로 만든다. 지리산이 가까운 이곳 사람들에게는 복조리 만드는 게 겨울나기 일감으로 적합했다.

“옛날에는 복조리가 엄청 많이 나왔습니더. 여기서 만든 복조리가 진주 등 경남 일대로 다 나갔다고 해도 됩니더. 복이 들어오라고 설날 아침에 집집마다 벽에 걸기도 하고 또 옛날에는 집집마다 쌀을 씻을 때 복조리로 일었으니까는….”

그렇게 이름을 떨쳤던 복조리는 이제 덕산장에서 찾아볼 수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찾는 이도 만드는 이도 모두 사라졌다.

지리산 약초와 산나물이 쏟아지는 곳

지금 덕산은 곶감과 약초로 집중돼 있어 덕산 장터에서도 눈에 띄게 알 수 있다. 곶감건조기 등 곶감 관련 자재 판매, 약초상회들이 그것이다. 곶감은 일찍이 1980년대부터 시작해 지금은 전국 곶감 상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권영란 기자

산청군은 오는 9월 세계전통의학엑스포를 앞두고 있다. 수년 전부터 한방약초축제를 열고 약초,약재를 특화해왔다. 덕산장에도 그 바람은 불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여기 사람들은 지리산이 가장 가까운 이곳에서 약초특화시장이 시작되어야 했을 거라고 말한다. 약초 모종들이며, 깨끗이 말린 약재나 약초들은 시장 길목 어디서든 눈에 띈다.

시장 한 켠에는 ‘덕산약초시장’ 간판이 달려있다. 뒤로 약초가게들이 나란히 붙어있다. 이곳 약초 가게들은 직접 팔리는 것보다 주문 택배로 팔리는 게 대부분이다. 장날과 무관하게 1년 365일 상설운영이다. 상인들은 덕산장 약초시장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었다.

“요새 사람들이 이쪽으로 마이 온다아이가. 그러니께 장도 그럭저럭 되제.”

덕산장은 최근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휴가철에만 북새통을 이루던 사람들이 평소에도 많아졌다. 이곳이 지리산 둘레길 구간이 되어 걷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또 가까이 있는 유적지 남명 선생의 덕천서원과 산천재를 찾는 사람들도 꾸준하기 때문이다. 드나드는 사람이 많으니 장꾼들도 신이 난다. 이것저것 캐고 가꾼 것을 아낌없이 가져나온다. 기분 내키면 사는 것보다 덤을 더 많이 준다. 그러고도 또 뭘 더 줄까 두리번거린다. 그게 지리산 자락에 사는 덕산장 사람들의 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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