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70~80년대만 해도 팝 신(Pop Scene)에는 ‘진정한 노장’ 대열에 세울만한 아티스트가 없었다. 기껏해야 달콤한 사랑노래나 읊던 앤디 윌리암스(Andy Williams)류 뿐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풍경은 옛말이 됐다. 60~70년대를 음악성 하나로 휘어잡던 아티스트들이 나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현역’으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싱어송라이터이자 유명한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은 지금도 여전히 왕성한 공연활동을 벌이고 있다. 올해 나이가 무려 70이다.

마술사로 불리는 기타리스트 제프 벡(Jeff Beck) 또한 70을 넘겼다. 그는 아직도 청바지 패션으로 무대에 오른다. 여기엔 어떤 부조화도 없다. 근래 화제가 된 데이비드 보위나 조용필을 생각하면 이제 ‘노장 아티스트’는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바야흐로 지금은 노장(老將) 시대

재즈 신은 어떨까? 영미 팝 음악보다 연원이 훨씬 깊은 재즈는 이미 오래전부터 노장청(老壯靑)이 공존하고 있다. 특정 연령대에 청중이 쏠리는 ‘팝 현상’이 재즈 신에는 없다. 청중들은 오히려 나이 들고 구부정한 아티스트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그들이 내뿜는 깊은 음악성 때문이다.

물론 핫팬츠와 가죽부츠로 무장한 채 색소폰을 신나게 불어제치는 캔디 덜퍼(Candy Dulfer)도 있지만, 아이돌에게만 몰리는 ‘이상현상’을 재즈 신에서 발견하기란 어렵다. 재즈 신에 존재하는 특이현상을 굳이 들라면 남녀 차가 제법 있다는 것이다. 아티스트 숫자로 볼 때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게 그 첫째고, 여성들이 대부분 보컬리스트라는 게 그 두 번째다. 체력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고, 사회적 환경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으나 딱 부러지게 ‘이거다’하는 답은 아직 들은 바 없다.

   

어쨌든 이런 현상은 현실이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여성 아티스트 위상이 생각보다 낮은 건 유감이지만, 그렇다고 음악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기에 이럴 땐 그냥 ‘그런가?’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정도로 끝내는 게 좋다.

황혼도 아주 깊은 황혼에 선 여자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지 대충 알아챘을 법 싶다. 오늘 주제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빛나는 위상을 지닌 여성 아티스트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팔팔한 젊음이나 원숙한 중년미가 아니라, 황혼도 아주 깊은 황혼에 서 있는 여자들이다.

금발 단발머리로 유명한 칼라 블레이(Carla Bley)는 호감 가는 상이 아니다. 앞이마를 덮은 머리가 길어 얼굴 윤곽을 정확하게 파악하긴 어렵지만, 약간 그로테스크한 인상이라고 보는 게 옳다.

그런데 1936년생으로 벌써 일흔일곱을 넘긴 이 할머니가 벌이는(?) 일들은 한마디로 장난이 아니다. 피아노 연주와 작곡은 물론 빅밴드 지휘에서 듀엣 혹은 트리오 공연에 이르기까지 행보가 종횡무진이다.

단순히 행보만 그런 게 아니다. 음악성이 남달라 거장이니 대가니 하는 말을 붙여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개성이 흠씬 묻어나는 빅밴드 연주는 뭐랄까! 진득하면서도 독특한 화성을 자랑한다. 재즈 빅밴드 연주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절대로 이를 놓칠 수 없다.

브라스 섹션이 귀에 따갑다고 느낀다면 오랜 동료인 스티브 스왈로우(Steve Swallow), 앤디 쉐퍼드(Andy Shepard)와 함께 하는 트리오 연주도 좋다. 간결하면서도 개성적인 이 조합(피아노, 베이스, 색소폰)은 트리오 연주 문법을 새로 생각하게 할 정도다. 게다가 앤디 쉐퍼드가 내뿜는 ‘불타는 색소폰’은 피아노 베이스와 절묘한 어울림을 만들어낸다.

표정을 봐도 그렇고, 연주를 봐도 그렇고 도대체 이 아티스트가 80을 눈앞에 둔 할머니라는 사실은 믿기지 않는다. 북망산이 보이는 나이에 어떻게 저런 왕성한 창작과 연주를 할 수 있는지 볼 때마다 경탄스럽다.

끝없는 전진으로 이룬 독보적인 창작력

포크 음악에서 시작해 지금은 재즈 바다를 항해 중인 조니 미첼(Joni Mitchell)은 그 경력만큼이나 이채로운 존재다. 1943년생인 이 할머니가 회갑 즈음에 발표한 앨범이 화제작인 <Both Sides Now>인데, 원래 60년대 포크송으로 유명한 이 곡을 재즈 ‘스트링-혼’ 반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세간에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비서와 정분이 난 남편이 조강지처에게 주는 시답잖은(?) 선물(CD)로 등장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통기타 반주 대신 24명에 달하는 재즈 명인들이 반주자로 참여했으며, 여기엔 웨인 쇼터(Wayne Shorter), 허비 핸콕(Herbie Hancock) 피터 어스킨(Peter Erskine)같은 거장들도 포함돼 있다.

이 앨범 사설을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노래를 뒷받침하는 오케스트레이션이 ‘군계일학’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탁월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스트링-혼 연주와 질감이 전혀 다른 것은 물론 몽환적인 분위기 또한 일품이다. 처음 이 앨범을 얼핏 들었을 땐 재즈 반주가 좋다
는 생각뿐이었는데, 몇 년 전 평론가 김현준 씨로부터 선물로 받아 제대로 들었더니 그 매력에서 헤어나기 어려웠다.

우리 곁에도 그런 할머니가 있었으면

통기타 한 대 들고 60~70년대 뮤직 신을 누빈 이라면, 나이가 들 경우 통상 ‘추억 콘서트’에 불려 나와 한두 번 박수갈채 받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그런 건 나와는 상관없다’는 투다. 와인 한 잔 앞에 놓고 담배 끼운 손으로 볼을 괴고 있는 표지그림은 그 도저(到底)한 음악성을 죽을 때까지 버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음향감독 채승균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소리는 과학이고 물리학이다. 하지만 음악소리를 대할 때 과학과 물리학은 한없이 초라해지는 느낌이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칼라 블레이가 구사하는 음악은 아방가르드 재즈고, 조니 미첼이 만든 음악은 포크 재즈다. 하지만 두 할머니가 남긴 사운드를 좇다 보면 아방가르드니 포크니 하는 말은 초라한 수식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 땅에도 그런 할머니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세월이 좀 더 흐르면 우리도 그런 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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