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출원이 내 취미"라는 아이디어맨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 경남테크노파크 지능형홈센터 입주기업인 (주)케이엘의 강의석(53) 대표이사.

케이엘은 건물 내에 화재 등 재난이 발생했을 때 피난 방향을 알려주는 피난구 유도등과 태양광 발전을 이용한 고효율 친환경 가로등·보안등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소규모 벤처기업이지만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최근 아랍에미레이트 국방부와 직접 태양광 보안등 공급 계약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 전기생산 업체인 한국중부발전(주)와도 태양광 발전 LED 보안등 공급을 전제로 한 상생협약을 맺어 눈길을 끌고 있다.

꺼지지 않는 피난유도등 ‘엔팍스’ 개발

강 대표가 피난유도등에 관심을 둔 계기가 있었다. 2004년∼2005년을 전후해 많은 국민들이 기억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비롯해 노래방 화재, 어린이집 화재, 고시원 화재, 수련원 화재 사건 등이다. 모두 많은 사람들이 숨진 사고였다.

이들 사고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빼앗긴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화재가 일어났던 건물에 설치된 피난구 유도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됐다. 당시 강 대표는 소방시설공사 감리 일을 하고 있었다.

강의석 대표이사./박일호 기자

일반적으로 건물에 설치된 피난구 유도등은 내부에 배터리가 있고 이 배터리가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면서 건물 전체가 정전이 되더라도 불을 밝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 배터리 방식의 피난구 유도등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배터리의 수명이 다 되어서 제 기능을 못하게 된다. 그러면 정기적으로 점검해 배터리를 교체해주어야 제기능을 할 수 있지만 방치되기 쉽다. 이렇게 되면 건물 내에 화재 등 재난이 발생하더라도 피난구 유도등이 켜지지 않고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해 목숨을 잃게 된다.

경남대 전기공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산업안전기사, 전기산업기사, 전기기기기능사, 위험물취급 자격증을 갖고 있는 강 대표이사는 이 점에 착안해 ‘꺼지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피난구 유도등’ 개발에 착수했다.

강 대표는 배터리 대신 콘덴서를 이용한 피난구 유도등을 개발했다. 콘덴서는 배터리가 아니지만 배터리 처럼 전기를 모으는 성질이 있다. 배터리는 천천히 충전되어야 하며 기온이 일정한 온도를 넘게 되거나 급격하게 충전하면 내부에서 화학반응으로 파괴되거나 폭발하게 된다. 또 충전과 방전을 일정 횟수 이상 반복하게 되면 성능이 크게 떨어져 교체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콘덴서는 짧은 시간에 충전이 가능하고 충전방전 횟수도 무제한에 가깝다.

강 대표는 기존 배터리 방식의 피난구 유도등 보다 수명이 10배나 긴 피난유도등 ‘엔팍스(ENPAX)’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 제품을 개발하는데 3년이 걸렸고 형식 승인을 받는데 약 4년이 지나갔다. 강 대표는 2009년 (주)케이엘을 창업하고 이 제품과 관련한 전원 설비 및 비상 전원 특허를 받았지만, 이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형식 승인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케이엘의 제품은 기존에 나와 있지 않던 종류의 제품이어서 형식 승인을 받기가 너무 까다로워 고생을 했다.

지난해 2월부터 출고되기 시작한 케이엘의 피난유도등은 현재 창원의 재료연구소 본부동을 비롯해 밀양시 공설운동장 등 공공건물에 설치되어 성능을 인증 받고 있다.

강의석 대표이사./박일호 기자

고효율 태양광 발전 LED 가로등·보안등 개발

케이엘은 태양광 보안등·가로등에도 눈을 돌렸다. 케이엘은 고장이 없으면서 친환경적이고 고효율인 태양광 발전 LED 가로등·보안등 개발에 착수해 이들 제품 개발에도 성공했다. 기존 태양광 가로등 보다 훨씬 성능이 뛰어난 가로등이 개발됐다. 콘덴서를 활용한 피난유도등의 원리를 활용했다.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은 태양광 발전 가로등·보안등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제품을 개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상용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행정기관을 비롯해 공공기관에 제품을 납품하기 위해서는 조달 품목에 포함되어야 한다. 조달 품목에 포함되려면 NEP(New Excellent Product)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이 중소기업에는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NEP는 신제품을 인증하는 것으로 국내 최초로 개발된 신기술 또는 기존 기술을 혁신적으로 개선한 기술이 적용된 제품 중 실용화한지 3년이 경과되지 않은 제품을 심사해 인증을 내주는 제도다. 그런데 인증 요건에 판매실적 등 까다로운 사항이 포함되어 있다.

강의석 대표이사./박일호 기자

혁신적인 기술을 적용한 신제품이라 하더라도 공식 인증을 받지 못한 제품이 일반에 판매되거나 납품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NEP인증 요건에는 판매실적이 들어있다.

앞뒤가 바뀐 셈이다. 정부기관에서 먼저 성능 등을 검증하고 문제가 없다면 인증을 내줘 해당 제품이 판로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함에도 거꾸로 판매실적이 있어야 신제품을 인증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강 대표는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NEP인증을 받았지만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신제품 개발만 해도 진이 빠지는데 NEP인증 받는데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우리처럼 혁신적인 중소기업을 육성하려면 반드시 제도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강의석 대표이사./박일호 기자

국내외 기술개발·구매 등 관심 폭주

길을 찾는 자에게는 반드시 길이 열린다. 케이엘에 처음으로 수출길이 열렸다.

지난해 9월 서울 코엑스에서 최첨단 제품 전시회가 열렸는데 케이엘도 참여했다. 이 전시회에는 전차와 헬기 등 첨단 대형 방위산업 제품도 많이 전시됐다. 많은 관람객들이 전차와 헬기 등에 관심을 보일 듯도 한데 오히려 케이엘의 부스에 길게 줄을 이었다. 전시 부스를 지키고 있던 케이엘 직원들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줄을 섰다. 줄은 선 사람들 중에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그 중에 아랍에미리트(UAE) 국방부 관계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케이엘의 전시부스에서 태양광 발전 보안등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전시회가 끝난 뒤 서울의 UAE 대사관에서 케이엘에 연락이 왔다. UAE의 주요 시설 중 한 곳에 케이엘의 제품을 설치하고자 한다는 내용이었다. UAE가 케이엘의 제품을 주목한 것은 성능이었다. 중동지역의 UAE는 한낮 온도가 50도를 훌쩍 넘는다. 이미 세계 유명 제조업체의 태양광 발전 보안등이 설치됐지만 모두 무용지물이 됐다. 이들 제품은 모두 충전 배터리를 내장한 제품이었다. 태양광 발전은 빛의 세기 보다는 집열판 주변 온도가 좌우한다. 집열판으로 발전을 하기에는 25도 정도가 가장 적당한데 UAE는 아침과 저녁 시간 잠깐 동안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40도를 넘는다. 태양빛이 뜨거웠지 발전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기다 충전식 배터리는 천천히 충전이 되기 때문에 아침 저녁 시간에 발전되는 전력으로는 제대로 충전도 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한낮의 뜨거운 기온에 배터리가 견디지 못하고 고장나기 일쑤였다.

   

그런데 케이엘의 태양광 발전 보안등은 콘덴서를 이용하기 때문에 아침 시간 1시간이면 하루 저녁 내내 불을 밝힐 수 있을 만큼의 전력이 충전됐다. 또 배터리가 아니기 때문에 고장의 위험도 거의 없다.

케이엘 제품에 적용된 기술을 검토하고 실제 제품을 시험한 UAE 정부가 케이엘에 제품 공급 계약 체결을 제안했다. 창원의 작은 벤처기업이 다른 기업을 거치지 않고 UAE 정부에 직접 납품을 하게 된 것이다. 강 대표는 지난해 11월 19일 서울 주한UAE 대사관에서 UAE 국방부 관계자와 만나 태양광 발전 LED 보안등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잘 사는 나라이지만 전기 사정이 썩 좋지 않은 호주와 뉴질랜드 등에서도 구매 문의가 이어지고 있고 영국 등 흐린 날이 많은 유럽 국가에서도 문의가 오고 있다. 케이엘 제품은 날씨가 흐려도 충전에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케이엘의 제품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케이엘은 최근 한국중부발전(주)와 기술개발·구매에 관한 협약을 체결했다. 케이엘이 중소기업청에서 개최한 우수중소기업제품 설명회에 참여했는데 한국중부발전 구매담당자의 눈에 띈 것이다. 전기 전문가인 구매담당자가 한 눈에 케이엘 기술력을 알아본 것이 인연이 됐다. 그리고 그 뒤에 한국중부발전이 케이엘 제품과 기술력에 신뢰를 갖게 된 일이 생겼다. 케이엘의 태양광 발전 가로등을 한국중부발전 소속 발전소 한 곳에 시범 설치해 테스트하기로 하고 시제품을 보냈다. 그런데 이 시제품은 정식으로 설치되기 전까지 발전소의 한 켠에 눕힌 채로 보관 중이었는데 밤중에 불을 밝혔다. 누운 채로도 낮 동안 스스로 태양광 발전으로 충전을 하고 밤에 제 스스로 불을 밝힌 것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추웠던 지난 겨울에 있었던 일이다. 이 이상 무슨 테스트가 필요했겠는가?

   

아이디어는 도전과 탐구열로 이어져

강 대표는 대학을 졸업한 뒤 1985년부터 1988년까지 제일철강에서 품질관리, 안전관리를 담당했다. 1988년 삼미이튼으로 직장을 옮긴 강 대표는 맡은 분야에 대한 적극성, 도전정신을 인정받아 회사 내 최연소 부장에 오르기도 했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삼미이튼에서 공작기계 수리정비분야을 담당했던 강 대표는 몸에 밴 도전정신과 탐구열로 이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기도 했다.

자동차가 후진할 때 뒤쪽 주변에 물체가 있으면 '삐삐삐'하고 경고음을 내는 자동차후방 감지기가 지금은 일반화 됐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보기 드문 장치였다. 그런데 강 대표는 이미 1986년에 자동차 후방감시 장치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 때 특허 등록을 해놨더라면 아마도 지금쯤은 큰 부자가 되었을 겁니다. 하하하."

또 1987년 무렵에는 공작기계 속에 들어가는 유수분리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들 모두 강 대표 개인이 순수한 탐구열에서 출발해 개발한 것들이다.

강의석 대표이사./박일호 기자

1996년 삼미이튼에서 퇴직한 강 대표는 건설공사 전기부문 감리 전문업체인 성호ENG를 창업했다. 사천시와 남해군을 잇는 명물 창선∼삼천포 대교의 야간경관조명공사의 감리를 맡기도 했으며 마산야구장 전광판 설계를 맡기도 했다.

강 대표의 주량은 소주 1병이다. 좋아 하는 술은 무학 화이트다. 노래방에 가면 언제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열창한다. 된장찌개와 ‘오뎅국’을 좋아한다. 자신 있는 요리는 김치찌개다. 비법은 정성을 다하는 것 말고는 없다. 취미는 특허 출원이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앉아서 30분∼1시간씩 머리 속으로 그림을 그린다. 도면을 제작하고 시방서를 쓰고 시제품을 만든다. 시행착오를 거쳐 구상했던 제품이 됐다 싶으면 특허를 출원한다. 부인과 전기공학을 전공하는 대학 4학년 장녀, 고3 차녀, 고2 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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