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본정통 옛 번화가, 다시 이야기를 만들다
야시골목 신희경(46) 아지매
‘야시골목’은 여성복 가게이다. 신희경 아지매는 거창시장 안에서 비교적 젊은 상인이다. 다른 데서 옷가게를 하다가 2년 전 시장 안으로 옮겼다.
“시장 안에 있지만 손님이 주로 젊은 층이고, 대부분 단골손님입니더. 경기가 안 좋지만 기본적인 인맥이 잘 있어 그나마 잘 되고 있는 편이지예.”
신희경 아지매는 시장노리패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장노리패는 타악기 그룹이고, 단원이 9명이다. 희경 아지매는 그 중에서 브라질타악을 한다.
“지난해 상인대학 교육장에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재미있더라구요. 시장에서도 공연했고 지난해 시장박람회에서도 공연했습니다. 우리 상인들에게 새로운 경험이라예. 내가 즐거워야 장사도 즐겁게 할 수 있어예.”
시목상회 장업순(58) 아지매
“야채장수로 36년 세월입니더. 노점상 하다가 점포생활한 지 8년째라예. 여기가 은행이라 생각하고 매일 아침 나옵니더. 현금이 도니까. 작년부터 시장노리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항아리 같이 생긴, 아프리카 스켈레라는 악기를 합니다. 그걸 하고는 장사하는 기 더 즐겁다아입니꺼.”
먹보왕만두 박종화·정은정 부부
외지에서 생활하다가 귀향 4년째인 젊은 부부는 사람들이 허기도 채우고 주전부리를 쉽게 할 수 있는 분식점을 하고 있다.
“나는 바람불면 신경질이 난다예. 먼지가 이니까예. 이기 다 배립니더.”
밖에 내놓은 빵과 음식들이 행여 먼지 탈까 봐 걱정이었다.
성심세탁소 강기범(59) 아재와 김성복(55) 아지매
“40년 세월을 재봉틀 하나로 살아왔습니더. 오래 하다보니 해이해질 수도 있었는데 지난해 상인대학 후 마음가짐이 달라졌지예. 요즘은 세탁물은 줄어들고 리폼이나 수선이 많아 재봉틀 돌리는 일이 더 많습니더.”
거창미용실 김유자(56) 아지매
“평일에는 젊은 사람들이 주로 오고 장날에는 할머니들이 주로 마이 옵니다. 뽀글이파마를 해야니께. 일할 때 모자 눌러쓰니께 빨리 풀리니까 처음 할 때 세게 뽀글뽀글하는 거지예. 요즘은 50대만 되어도 요양보호사로 빠지지 들일은 70대가 하고 있습니더. 양파 마늘밭 일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견디질 못헌다쿱니더. 미용실은 농번기를 타지만 그래도 꾸준히 장사 됩니더.”
우신상회 김경숙(60) 아지매
우신상회는 시장 중앙 네거리에 있는 반찬가게다.
“빨간 앞치마 착용은 번영회 회원이라면 의무라예. 흰 모자도 해야 허고예. 아무래도 소님들이 좋아허더라고예. 위생적으로 보이니께. 우리같은 반찬가게나 식당은 더 잘 지킬라헙니더.”
상동신발상회 조명순(82) 아지매
“결혼하기 전에 시아버지 때부터해서 50년은 되는 기라예. 당시는 장사가 잘 돼서 노다지였지예.” 조명순 아지매와 같은 거창초등학교 동창생이라며 가게 안에 앉아있던 아지매가 상동신발상회를 소개했다. 조명순 아지매는 되려 수줍게 웃기만 할 뿐이었다.
잡화 노점상 이재화 아재
시장 초입에서 잡화 장사를 하는 노점상 이재화 아재는 세일프라자 전동현 아재와 같은 말을 했다.
“35년째 하는 장사인데 그동안 몇 번이나 바꾸었는 지는 내도 모리겠습니더. 옷장사, 고기장사, 과일장사 등등. 우리겉헌 노점이야 점포상인과 달리 그때 잘 된다 싶은 게 있으모는 빨리 갈아탈 수가 있으니께네.”
이재화 아재는 지금은 거창 운양면에서 포도농사를 짓고 있다. 거창시장 장날만 장사를 하러 나왔다. 그나마 농번기에는 장날 장사도 할 수가 없다.
“장사가 해마다 틀리네예. 마트에는 오만 게 다 있으니 한꺼번에 다 살 수 있으니께 다 그쪽으로 가지예. 그래도 흔들림 없는 게 장사라예. 쪼매라도 현금이 잘 돌고.”
이재화 아재는 포도철에 산포리 삼거리농장으로 오라고 신신당부했다.
“정년? 장사꾼은 그런 기 없으니 열심히만…”
왕자상회 김창석(63) 아재
건어물 가게였다. 이름만 듣고는 ‘왕자표 고무신’이 생각나서 신발가게인 줄 알았다.
“옛날식, 옛날 물건을 고집하는 편입니다.”
왕자상회는 건어물 중에서도 주로 폐백물건을 많이 취급한다.
“아직은 주문이 많습니다. 30년이 넘었는데 결혼 후 계속 했지예. 그
당시는 이기 돈이 되는 장사였습니다.”
거창시장이 분위기가 좋다고 하니 몇 년 전부터 상인들이 애를 많이 쓴다고 말했다.
“지난해 시장에서 한 상인대학에 다녔는데 참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장사하면서 장사가 잘 되모는 경기가 좋은갑다, 장사가 안 되모는 경기가 안 좋아 할 수 없는갑다고 쉽게 생각했는데…. 상인대학에서 여러 교육을 받다보니 정서나 의식이 바뀌는 계기가 되더라고예.”
세일프라자 전동현(59) 아재
“80년대는 호황이었지예. 근데 고마 유명브랜드나 홈쇼핑이 밀려드니까 맥을 못추게 됐다아입니꺼. 지금은 그때의 50%나 장사가 될랑가. 평일에는 25%도 안될끼라예. 손님도 50~70대가 주요 소비자층이라예. 젊은 손님은 아예 엄십니더. 젊은 층을 유입하기엔 전통시장이라는 게 너무 취약한 구조라예.”
전동현 아재는 총각때부터 옷장사를 하고 있다가 결혼 후 자기 점포를 갖고 시작했다. 물건은 대구나 서울에서 많이 해온다. 27년째인데 갈수록 장사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래도 하고 있는 건 이놈의 장사는 정년이 없다는 겁니다. 가장 안정적이라는 공무원들도 정년퇴직하모는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다시 인생설계를 해야하지만 장사꾼은 건강하기만 하모는 100살까지해도 누가 머라 안한다아입니꺼.”
럭키가방 이용석(70) 아재와 진경남 아지매
“가방장사는 30년이제. 그전 것까지 치면 40년이고. 처음에는 상호를 ‘시장’이라고 했는데 ‘럭키’로 바꾸었습니더. 내가 럭키를 좋아헌다예.”
시장 안 가방장사가 예전만 못 할 건데 어떻게 하냐는 안타까움과 함께 요즘은 어떤 종류가 팔리는 지를 물었다.
“요즘은 여권가방이 마이 팔린다예. 가방 품목도 마이 없어졌다아이가. 옛날에는 신발가방, 도시락가방, 어깨 여행가방 등 마이 있었는데 요개는 그런 기 없어졌습니더. 학교 급식을 하니 도시락은 싸다닐 필요가 엄꼬 신발주머니도 필요엄제. 여자들이 가방을 마이 사는데 요새는 유명한 것만 찾꼬 남자들은 가방을 마이 안 가져댕기고. 한번은 어떤 남자분이 왔는데 60년만에 처음으로 가방 산다쿠더라.”
이용석 아재는 장사는 전보다 덜하지만 70이 되어도 아직 일할 데가 있으니 틈틈이 여가생활하며 ‘즐거운 인생’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