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팔며 동고동락하는 어머니와 딸
성림상회 양석락(87)·김행도(68) 아지매

“어머니는 50년이 다 됐네예. 내가 고1때부터 시작했으니…. 나도 20년 정도 도우고 있는 거라예.”

성림상회는 거창시장 안 오래된 포목한복가게이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딸 김행도(68) 씨와 어머니(87) 양석락 모녀가 운영하고 있다.

“처음엔 보따리장사로 화물차에 싣고 장따라 다녔으니께. 아버지가 교사였지만 옛날에는 교사월급으로 먹고 살 수가 없었어예. 13식구를 멕여살려야 하는데 어머이가 나서는 수 밖에 없었지예.”

왼쪽 딸 김행도(68) 씨와 어머니(87) 양석락 모녀/사진 김구연 기자

어머니가 기억이 분명치 않다하니 김행도 아지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일본서 태어나 원래 생활력이 좀 있다. 9세때 왔는데. 약국집 딸이 시집을 잘못 와서 여게 골짝까지 왔네.

양석락 아지매가 딸의 이야기를 옆에서 거든다.

“장사가 참 잘 됐어. 동네 해차갈 때 한복을 단체주문하고 그때는 정말 좋았어예. 당시는 한복 못입으모는 해차도 못 오게 했으니께. 80년대 후반까지는 그래도 경기가 좋았습니다. 걱정없이 먹고 살 만했으니께. 외상으로 주었다가 더러 다 떼이기도 했지만.”

평일에 찾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장날에만 문을 여는지 물었더니 “무슨 소리냐”며 장사가 되든 안되든 문을 연다고 했다.

“어머니랑 운동 삼아 아침에 같이 오고 저녁에 같이 가고 그래예.”

“요즘은 내보고 오는 사람은 엄따. 우리 딸보고 오는 사람들이제. 요새 사람들은 모두들 대구 가서 한다더라. 그것도 해 입는 기 아이라 살면서 한복 입을 일이 벨로 엄시니께 빌려 입는다더라. 그것도 이름있는 집은 비싸다네.”

양석락 아지매는 거창시장이 지금은 참 많이 달라진 거라고 덧붙였다.

“여게가 예전에는 지붕도 없는 장옥이었어예. 이곳에 슬라브로 지어 올릴 때는 하천 옆이 임시장이었지예. 상인들 고생이야 말할 것도. 인자는 비가 와도 볕이 뜨거워도 사람들이 좀 걱정을 안 허지예.”

2500원 옛날식 보리밥에 ‘장터 사랑방’
팔팔식당 송순달(80) 아지매

“맨 처음에는 한 그릇 500원에 팔았는데. 그러고로 한 30년이 다 됐네예.”

번영회 사무실에서 얼마쯤 들어간 시장골목에서 팔팔식당. 주인 송순달(80) 아지매는 거창시장의 공식적인 빨간 앞치마에 흰 모자를 둘러쓰고 손님을 맞이하고 음식을 하기에 바빴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다가 깜짝 놀랐다. 아직 점심시간이 되기 전인데 발 딛을 틈이 없다. 게다가 방안과 바깥 식탁 옆으로 둘러앉은 손님들이 죄다 어르신들이다.

“장사가 으떤 건지나 오데 알았나예? 농사만 짓다가. 처음에는 자식들은 키워야 하고 머시라도 해야 살지라는 심정으로 한 거지예. 그게 벌써 이리나 됐네예.”

88식당송순달(80) 아지매/사진 김구연 기자

장날에만 나온다는 아르바이트 아지매가 일손을 도와주지만 송순달 아지매는 허리 한 번 펼 틈이 없다.

겨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다가 눈앞의 차림표를 보고는 모두 그 가격에 또 놀랐다. 보리밥 2500원, 호박죽, 팥죽, 깨죽, 콩죽 등 전통죽은 3500원이다. 그제서야 손님들이 죄다 어른들인 게 이해가 되었다. 팔팔식당의 밥값은 장날 물건을 사러 또는 팔러온 어른들이 출출한 뱃속을 부담없이 달래기에 안성마춤이었다.

“값은 싸도 재료는 모두 국내산이라예. 여기 시장에 가져오는 걸 사니까. 또 친한 아지매들이 무조건 갖다주기도 하고.”

보리밥은 상추, 무채, 콩나물, 시금치 등 4가지 나물에 우리 재래식 된장을 뚝배기에 찌져 한 상을 내어주었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찌진 된장이 심심하니 좋았다.

이날도 한 할머니가 산나물이라며 검은 비닐봉지를 송순달 아지매에게 내밀었다.

“두릅하고 취나물 쪼매 가지고 왔다아이가. 맛보라고.”

“아이가, 이걸 그냥 묵으면 안된다아이가.”

송순달 아지매와 할머니의 말이 오가는 틈으로 “밥을 쪼매만 더 주소”라는 외침이 섞이기도 했다.

우르르 빠져나가니 다시 우르르 몰려와 한 밥상에 둘러앉기도 한다. 할매들은 밥을 기다리며 방에 드러눕기도 하고 다리를 쭉 펴고 자기 안방처럼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영감이 심어놓은께 할수엄시 가져나온다니께. 그냥 썩카놔둘수도 엄다아이가.”

“요새는 딸이 최고라쿠더라. 아들은 공짜고. 우리 큰딸은 어버이날이라꼬 왔다가 용돈 주고 가더라.”

“하, 나도 받았다.”

어버이날 자식들한테 받은 호사를 서로들 은근 내세우며 장터 점심
시간은 봄날처럼 지나갔다. 팔팔식당은 이미 소문이 났는지 ‘거창군 선정 착한가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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