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형과 문화관광형으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시장

그래, 이런 데가 시장이지 싶다. 읍내 중앙교에서 이어지는 네거리에서부터 장날의 활기가 느껴진다. 읍내 둘레를 따라 흐르는 위천에는 때아닌 봄더위에 벌써 물장난을 치며 노는 아이들이 있고 위천변 주차장은 만원이고 도로에는 트럭에 가져온 물품을 부려놓는 상인들로 붐볐다.

큰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장 앞 양쪽 정류소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마침 모종철이라 장터 길목은 새파란 게 천지에 깔렸다. 고구마순, 고추, 가지 등 온갖 모종이 농번기가 시작됨을 알리고 있었다. 입하가 지났는데 이제서야 막 봄 산나물들이 쏟아지는 듯했다.

“여게는 봄이 다른 데보다 좀 늦어예. 저기 남쪽 진주나 남해보다 3주는 늦을끼구만. 봄에 나는 거 머시 살 끼 있는데 놓쳤으모는 요서 사 가모 될끼다.”

산청지역에서는 두벌이 지났음에도 이제 쏟아지는 첫물 두릅이며 가죽, 햇고사리가 사람들의 발길을 잡았다. 거창전통시장이다.

/사진 김구연 기자

“드나들기 힘들어 자생적으로 발달”

거창군은 경남에서도 가장 북부에 위치, 북으로는 전북 무주와 동으로는 경북 대구와 심리적·정서적으로 더 가깝고 한 생활권으로 묶이는 곳이다. 거창 옛 이름은 거타, 거열, 아림 등이다. 모두 ‘넓고 큰 밝은 들’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거창군은 들은 별로 없고 전체 면적의 76%가 산인데다 표고 200m 이상의 분지이다.

“지금은 인구가 줄어 6만 5천 명 정도라지만 1960년대엔 인구가 14만 명이 훨씬 넘었어예. 해방 전부터 법원, 세무서, 검찰청이 다 들어와 있고. 시로 승격 할라고 무던히 애를 썼는데 안 시켜주더라데.”

거창군은 ‘거창한 거창’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거창 진입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슬로건이다. 거창의 특산물은 ‘오홍’이다. 사과, 오미자, 딸기, 애도니, 애우 등 5가지 붉은 것이라 한다. 애도니, 애우? 말이 낯설다. 쑥을 먹여 키운 돼지와 소를 말한다. 쑥을 가축 사료로 개발해 축산농가에서 이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 김구연 기자

거창시장은 5일장이었는데 1968년부터 거창공설시장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점포 수는 290여 개, 여느 군 소재지 시장보다 훨씬 번잡했다. 솔직히 놀랐다. 노점 300여 개를 더하여 시장 규모나 드나드는 사람들, 장터 풍경이 남달랐다.

“덕유산, 가야산, 두무산 등 산으로만 빽빽이 둘러싸인 분지입니더. 옛날부터 높고 험한 산을 넘어 교역을 하기보다는 지역 안에서 자급자족하는 성향이 강했지예. 한 번 들어오모는 나가기가 힘드니께 우리끼리 사고 팔고 하는 기제. 옛날부터 그렇게 하다보니 다른 곳보다 시장 규모나 역할이 큽니더. 그만큼 시장이 지역경제에 비중이 크다는 거지예.”

살 것도 먹을 데도 많아 ‘관광 맞춤’

시장 상인들의 빨간 앞치마가 눈길을 끈다. 식당과 먹을거리를 취급하는 상인들은 흰 모자까지 둘러쓰고 있다. 가슴팍에 ‘오홍’이라 적힌 빨간 앞치마는 거창 특산품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거창시장의 이미지를 한층 높여준다. 작은 것이지만 돋보이는 점이다.

“특성화 사업을 하면서 앞치마와 모자를 상인들에게 다 나눠주데예. 처음에는 귀찮더만 하고 있으모는 손님들이 좋아하데예. 그라니까 또 저절로 하게 된다아입니꺼.”

/사진 김구연 기자

2011년 거창시장은 가고 싶은 전통시장 50선 선정,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상인들의 의욕은 더욱 커졌다. 담당 행정과 번영회에서는 수시로 위생단속을 실시하며 상인들을 독려하고 있다. 상인대학 수료 가게는 ‘온누리상품권·거창시장상품권·카드결제 가능 우수점포’ 간판을 달아주었다.

거창시장은 내부 정비가 아주 잘 되어있다. 골목골목마다 순대거리, 한복거리, 신발거리, 생선거리 등 입간판이 달려있다. ‘인산인해 거창시장’을 위해 업종별 품목별 점포 분류가 잘 되어 있어 보기에도 좋고 시장나들이 하기에도 좋을 듯했다.

“다른 시장에 가모는 묵을 게 별로 엄따하데예. 우리 시장에는 식당도 잘 되어 있고, 시장 구경하면서 주전부리도 할 수 있는 먹을거리 가게들이 많습니더. 거창에는 용암정 등 유명한 정자들과 수승대 계곡, 가조온천 등 거창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은 4계절 내내 그치질 않습니더. 여기에다 여름 국제연극제 기간에는 발 딛을 틈이 없어예. 그리 사람이 많이 오는 데 먹을 끼 없으모는 안되지예. 요새는 볼거리든 즐길거리든 머시든지 먹을 데가 잘 되어 있어야 사람들이 다시 옵니더.”

초행길의 관광객조차도 시장 안에서 길을 헤매지 않고 구경을 할 수 있고, 쉽게 원하는 걸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다 싸고 맛있는 작은 식당들이 줄을 이어 있어 마음 가는 대로 골라잡으면 될 것 같았다.

시장 안 다목적관은 교육장, 쉼터, 홍보관 등 다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2011년 특산물 판매장으로 만들었는데 현재는 상인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쪽은 특성화사업단 사무실로도 활용하고 있다. 골목 벽면에는 시장 지도가 알록달록하게 그려져 있다. ‘본정통 옛 번화가 거창, 시장에서 길을 찾다’라는 슬로건에서 새로운 활로 모색을 위해 상인들이 얼마나 전념하고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를 읽힌다.

/사진 김구연 기자

상인들 의욕과 변화가 있는 곳

다른 지역에 비해서 젊은 상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젊은 상인들이 일할 수 있는 시장을 조성하면 자연히 젊은 소비자층이 형성되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지만 건강하모는 정년없이 할 수 있는 기 장사’라고 강조하는 상인들은 젊은 사람들이 대기업, 관공서 직장만 찾으며 놀고 있는 게 안타깝기만 하다.

“요새 젊은 사람이 이리 환영받으며 일할 수 있는 데는 시장입니더. 기회가 천지에 널렸는데….”

지난 해 시작한 챌린저 숍 사업도 그런 일환이다.

“시장 안 빈 점포를 1년간 임대해 주면 임대료 부담없이 시범 장사를 하는 겁니다. 지난해 2개의 점포는 체험형이었고, 그중 봉농원은 1년에 2만 명이 오는 딸기체험농장인데 시장 안에다 매장을 열어 택배 주문이나 홍보를 하데예. 올해도 2개 점포를 문화예술인이 받아 문을 열 겁니다.”

챌린저 숍 사업을 통해 다른 시장에서 볼 수 없는 거창시장만의 문화예술 분위기를 담아내고자 하는 의지도 엿보였다.

/사진 김구연 기자

시장에서 30년 넘게 장사한 상인들은 모두들 “배운 것도 없이 먹고사니라고 시작했는데 수 십 년 해오면서 최근 몇 년이 제일로 힘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상인들도 지난해 상인대학 다닌 후 “인자 요새 사람들헌테 우찌 장사해야하는지 알것구만”이라고 했다.

‘2012 확 바뀐 만큼 고객이 만족하는 시장이 되겠습니다’는 현수막은 빈 말이 아니다. 거창시장은 지난 4월 상인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상인협동조합으로서는 경남 1호이다. 거창시장 관계자는 “수익기반을 갖춘 협동조합 형태의 사회적 기업으로 제대로 자리잡으면 거창시장은 앞으로 지속 발전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거창시장은 옛 장터 분위기를 문화로 되살리고 거기에다 현대화를 적절히 보태어 변화하는 곳이었다. 지역민이 아끼는 시장, 관광객이 찾아가는 시장으로 기대되었다.

거창시장은 매달 끝자리가 1일, 6일이 장날이다. 아무래도 평일보다 장날과 주말이 풍성하다. 

/사진 김구연 기자

 

/사진 김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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