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안전한 먹을거리로 로컬푸드 이끌 겁니다”

하동에서는 젊은 농민들을 중심으로 한 ‘하동벤처농업협회’가 농업 발전과 지역 발전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이 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우리네식품’ 이수삼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지난 4월 15일 하동 군민의 날 행사에서 ‘자랑스런 군민상’을 받기도 했다.

“천하의 ‘어중개비’가 ‘현미 선생’이라 불리는 착한 농부가 됐습니다.”

하동군 옥종면 우리네식품 이수삼(63) 대표 이야기다. 젊은 시절 외국 해운회사에서 해기사로 10년간 근무하던 이 대표는 마산에 정착, 전통찻집을 운영하다 하동으로 귀농했다.

이 대표는 아내 옥인숙(58) 씨, 식품가공학과를 졸업한 둘째딸 한의(31) 씨와 함께 ‘우리네식품’에서 무농약 현미 등을 이용해 즉석 오곡현미죽, 통밀 식빵, 현미 조청, 현미 강정 등을 만들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안전한 먹을거리’를 보급하려는 이 대표의 고집에서 비롯됐다.

수입 농작물에 대한 반발

이 대표가 ‘건강하고 안전한 먹을거리’에 매달리는 것은 충격적인 경험 때문이다.

이수삼 하동 우리네식품 대표./사진 이원정 기자

“젊은 시절 미국·캐나다 등에서 주로 곡물을 실어 나르는 배에서 일했습니다. 10만t씩 실어 나르는 커다란 벌크선이었죠. 그런데 선적·하역 과정에서 가끔 사고가 나는 겁니다. 미국에서 선적 중 노동자 중독 사고를 목격했습니다. 그 이후에 국내에서 곡물을 하역하던 노동자가 죽었던 적도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생길까 단순한 의문을 품게 됐습니다.”

이 ‘단순한 의문’은 수입 곡물의 농약 안전성 문제에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미국 내 농작물에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수출용 곡물에는 마구잡이로 약을 치는 이중적인 잣대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내가 먹는 농작물은 내가 수확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전통찻집을 운영한 건 귀농을 위한 하나의 단계였죠.”

거대 자본이 버티고 있는 외국 농산물에 대한 반발심. 그것은 커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담배 연기가 자욱하고 ‘레지’가 커피를 배달하는 소위 ‘다방’이라는 분위기가 싫었다.

“일종의 오기로 경남대학교 앞에서 전통찻집 문을 열었습니다. 대학생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고 싶었죠. 술 문화가 만연한 대학가에 무언가 한국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 책무가 어른들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게에 큰 방이 있어서 학생들이 40~50명씩 단체로 와서 누구의 눈치도 받지 않고 토론을 하고 차를 마시곤 했습니다. 가게에 차, 전통문화, 인문학 관련 서적을 비치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읽도록 했죠.”

어느새 찻집은 학교 앞 사랑방 역할을 하게 됐고, 학생들보다 나이가 많고 사회 경험도 있던 이 대표는 자연스레 동네 형님처럼 멘토 역할을 하게 됐다.

이때가 1988년부터 1997년 즈음이다.

이 대표는 이때 ‘경상남도 전통다원연합’을 결성해 7년간 대표직을 맡아 경남·부산 지역에 녹차 전문점이 설립되는 데 후원자 역할을 했다.

또 ‘배달녹색연합(녹색연합의 전신)’ 마산·창원·진해 사무국장을 맡아 마산만 살리기 운동 등 환경운동과 우리밀 살리기 운동을 하고, ‘한빛 누리 청소년 문화재단’을 창립해 청소년 문제를 고민하기도 했다.

이수삼 대표와 부인 옥인숙 씨와 딸 한의 씨./사진 이원정 기자

하지만 이 대표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귀농’이 있었다.

귀농, 사고를 치다

당시 찻집은 부인 옥인숙(58) 씨가 맡아 하고, 이 대표는 찻집과 함께 친환경 세제 등을 판매하는 대리점을 겸업하고 있었다.

국내 정착 동기가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던 이 대표는 농촌의 1차 생산물을 생산 현장에서부터 직접 체험하면서 할 일을 찾겠다는 생각에 1997년 귀농을 결행하기로 했다.

지리산 권역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북부는 너무 춥고 남쪽이 좋겠다 싶었습니다. 하동읍 쪽은 번화해서 생활에 방해를 받을 것 같아 자리 잡은 게 거의 오지와 다름없는 곳이었습니다. 횡천면 전대리 골짜기였는데 너무 적막해 ‘귀곡산장’이라 부르기도 했죠.”

처음 해운회사를 그만두고 찻집을 시작할 때 이 대표는 부인 옥인숙 씨를 한참 동안 설득했다. 가장이 고정적인 월급을 포기한다는 것은 가족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

“찻집을 하자는 말에 아내가 처음에는 굉장히 생소해하고 황당해했습니다. 그래서 설명했죠. ‘일반적인 다방이 아니다. 다방 레지가 있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이 서빙을 할 테고 커피 대신 전통 차 문화를 젊은이들에게 전파하는 것이다.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하는 일이다’고 설득해 찻집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하동으로 귀농할 때는 아내와 전혀 의논하지 않고 혼자 일을 벌였습니다. 이야기했다가는 나중에 ‘당신 때문에 고생한다’고 두고두고 책 잡힐 것이 두려웠죠.”

그렇게 찻집과 대리점을 정리하고 혼자 산골짜기로 들어갔다. 아내와 아이들은 마산에 살고 이 대표는 하동에 떨어져서 살았다. 3년가량 지난 후에야 가족들은 하동으로 옮겨 왔다.

옥인숙 씨는 “황당했죠. 아이들은 커 가는데 한참 돈이 많이 들어갈 때 남편이 모든 걸 접고 귀농해 버렸으니까요. 남편이 귀농하면서 따라오라는 말도 없이 혼자 가버렸습니다”하고 내심 서운한 듯 말했다.

1차 농산물에서 가공품으로

막상 귀농했지만 수입원이 없었다. 농사라곤 한 번도 지어보지 않은 초보 농사꾼에게 새벽부터 해야 하는 농사일은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들었다. 1차 농산물 수확에만 매달리지 않고 가공에 눈을 돌렸다.

이수삼 대표와 부인 옥인숙 씨가 현미조청을 포장하고 있다./사진 이원정 기자

“통밀가루를 소포장해서 판매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먹고 살기가 힘들더군요. 그래서 빵을 만들고 건빵을 만들었습니다. 또 현미 강정을 만들게 됐죠.”

현미가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던 시기였지만 이 대표는 현미의 우수성
에 푹 빠져 주위에 ‘현미 전도사’를 자처하던 시절. 현미로 여러 가지 상품을 만드는 연구를 했다. 현미 강정은 일반 강정에 비해 더 딱딱하지만, 남들과 똑같은 제품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고집이 딱딱한 현미 강정을 밀어붙이게 했다. 오도독 오도독 씹히는 식감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현미 강정은 인기가 있다.

즉석 현미죽 제조방법은 2011년 특허까지 받았다. 즉석 현미죽은 뜨거운 물을 부으면 바로 죽이 되는 제품이다.

“소비자들이 현미를 왜 먹지 않는지 알아보니 밥하기 번거롭다, 맛이 껄끄럽다, 현미는커녕 아침 식사 자체를 잘 하지 않는다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빠르게 조리할 수 있고 먹기에도 편하고 영양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현미죽을 개발하게 됐습니다.
3년 정도 걸렸어요. 현미에 압력과 온도를 가해서 4.5초 만에 즉석 죽으로 만들어냅니다. 소비자 반응은 밋밋하고 싱겁다는 사람과 특유의 고소한 맛이 있어서 좋다는 사람으로 대비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건강한 먹을거리를 만들어도 그것을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이 없었다. 한동안은 자신이 만든 상품으로 식사를 대신해야 했다. 틈새시장을 고민하다 생협·한살림 등 친환경 먹을거리를 취급하는 협동조합을 찾아 나섰다.

그것이 주효해 지금도 친환경 매장은 우리네식품의 중요 공급처이다.

“나는 어중개비, 얼치기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집중하고 생각하며, 다리품을 팔고 정보를 모으고, 도움을 줄 멘토를 찾아 나서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본인이 무의식 속에서도 집중해야 하는 겁니다. 기술 습득을 위해 대학교수 등을 개인적으로 많이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의외로 선뜻 잘 도와주고 오히려 물으러 온 것을 더 반기고 좋아하더군요. 또 농업기술원이나 농업기술센터, 지자체 등의 도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동군 횡천면 전대리에서 13년을 살던 이 대표는 물류이동 등이 쉬운 곳을 찾아 2011년 옥종면 대곡리에 새 둥지를 틀었다.

안전한 먹을거리 보급을 위해

이 대표는 귀농하면서 5단계 계획을 세웠다.

첫째는 자연농법으로 하루 세끼 자급자족하는 것, 둘째는 직접 수확한 농산물을 가공해 파는 것이다. 3단계는 혼자 수확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이웃의 우수한 농산물을 가공해서 판매하는 것이고, 4단계는 뜻있는 사람들을 모아 친환경 농업을 확산하고 학교 급식에 친환경 먹을거리를 보급하는 로컬푸드 운동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스스로 평가하기에 현재 상황은 4단계 초기. 앞으로 계획인 5단계는 청소년 대안학교나 힐링센터 등을 설립해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꿈을 품고 있다.

그동안 이 대표는 1997년 우리네식품을 창업해 우리밀과 현미로 통밀빵, 통밀 건빵 생산을 시작하고, 이후 통밀 국수 등 우리밀 제품 4종과 현미 강정·조청·즉석 현미죽 등 현미제품 9종, 어간장·매실 간장 등 발효식품 7종과 기타 건강식품 3종을 생산하기에 이른다.

이 대표는 2009년에는 영농조합법인 ‘지리산착한농부공동체’를 창립, 도·농교류와 로컬푸드 운동 추진, 친환경 농업기반 조성을 보다 넓게 조직적으로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또 지난해 말 마을기업 ‘옥종’ 영농법인을 설립해 대표이사를 맡았고, 지난달에는 경남친환경로컬푸드사업단을 창립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2009년 4명이 모여 만든 하동벤처농업협회는 현재 25명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 대표가 ‘조직화’에 매달린 것은 이유가 있다.

우리네식품 식빵./사진 이원정 기자

“농민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없더군요. 차별적이고 독보적인 농작물을 생산하거나 가공품을 만들어 스스로 강한 경쟁력을 가져야 하는데 이것은 무척 힘이 듭니다. 작은 농가들이 서로 협업해서 공동체 안에서 나누고 공동으로 판로를 개척하고, 그런 것이 농촌이 살 수 있는 방안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조직화를 하게 됐습니다.”

이 대표의 영향을 받아 친환경 농산물 생산을 시작한 농가도 여럿 된다. 하지만 그 중에는 판로 등의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도중하차하는 사람도 생겼다.

“책임질 수 없는 일을 했구나 하는 자괴감이 생겼습니다. 그런 농가들과 협업체를 구성해 나아갈 방향을 고민했는데 대형 유통업체는 아니더군요. 결국 공공급식, 학교급식으로 나아가야 중간상인이나 대형 자본의 횡포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경남친환경로컬푸드사업단을 만들었고, 현재 서울 등 학교에 납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어간장·매실 간장·매실 고추장 등 발효 장류를 개발한 것도 기초부터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식탁에서 가장 기초적인 식재료가 바로 장류와 같은 소스류입니다. 이게 친환경 가공품으로 대체되지 않으면 시중에 유통되는 유명 업체의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주성분은 수입 밀가루나 식용유를 짜고 남은 찌꺼기인 탈지 대두 등입니다. 그런 것을 먹어서야 되겠느냐 싶어 식생활의 중요한 부분인 간장 등 소스류를 친환경 제품으로 생산하게 됐습니다.”

이 대표의 앞으로 계획은 더욱 연구 노력해서 건강 기능성을 강화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특히 대상을 특화해 유아 이유식, 환자를 위한 유동식 등 다양한 기능성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계획은 이 대표도 모르는 새 이미 어느 정도 이루어진 듯하다.

무농약 현미 등을 이용한 즉석 오곡죽은 굳이 물을 붓지 않고 시리얼처럼 그대로 먹어도 바삭바삭하면서도 입안에서 사르르 바로 녹아 영유아용 친환경 과자로 안성맞춤이다.

“우리네식품 뿐 아니라 마을기업 옥종과 로컬푸드사업단이 보다 발전해야 합니다. 준비를 더 철저히 해 서울지역 급식용 식자재로 공급, 하동 뿐 아니라 도내 농산물들이 서로 협력해 안정적인 경남 친환경 농산물 기반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수삼 대표가 도 농기원 강소농지원단 이영미 가공전문과와 이야기를 포장 상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 이원정 기자
<추천이유>

◇이영미 경남농업기술원 강소농지원단 가공전문가 = 우리네식품 이수삼 대표는 ‘현미선생’으로 통합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현미를 권하고 현미를 연구하면서 현미강정, 현미조청, 오곡현미죽, 현미스낵 등 가공품을 만들었습니다. 2004년 ‘밀알공동체’를 창립해 도시소비자-농촌생산자간 도·농 상생 프로그램인 ‘현미·우리밀 먹기 운동’을 전개하고 우리 밀 중심으로 통밀빵, 통밀식빵, 통밀건빵, 통밀국수 등 다양한 밀 가공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또 매실고추장, 청국장, 어간장 등 발효식품을 친환경식품으로 인정받아 유기농 농산물 판매처에 납품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경남친환경 로컬푸드사업단 창립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국민 건강증진은 물론 경남 친환경농업에도 앞장서고 있는 CEO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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