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꿈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 라는 말을 흔히 쓴다. 즉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이며 마땅히 사랑과 보호를 받아야 할 존재이다. 하지만 어디에나 양면은 있다. 행복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지내는 아동들이 있는 반면 가정과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아동들도 있다. IMF이후 경제적․사회적 문제로 인해 방치되는 아동들이 늘었고 특히 결식아동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힘든 환경에 방치된 아동들을 껴안아야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만 갔다. 이 때 아이들을 먼저 감싸 안은 것은 국가가 아니라 민간에서 운영하는 지역 곳곳의 공부방 들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들은 지역아동센터라는 이름으로 법제화되었고 그 후 약 10년이 지난 지금. 소외된 아동의 어머니 역할을 자청한 그들은 여전히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애쓰고 있다. 문득 여기서 가장 가까운 지역아동센터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5월의 더웠던 어느 날. 마산시 회원구 회성동에 위치한 안영지역아동센터 안영숙 센터장을 찾아갔다.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아이들이 학교에서 아직 마치지 않았을 때라 센터 안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선생이자 직원의 역할까지 1인 2역을 하고 있는 선생님들과 안 센터장은 조용히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공간은 아이들이 수업을 듣는 공간, 악기연주를 하는 공간, 책을 읽는 공간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지역아동센터 만들다

안영숙 창원시 지역아동센터 연합. /김구연 기자


안 센터장은 음악학원 원장이었다. 음악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첫 아이를 낳고 음악학원을 운영했다. 1997년. 아이들을 좋아했던 안 센터장은 또 다른 일을 벌인다. 어린이집도 함께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몇 년간 어린이집을 운영하다 보니 졸업생도 많아졌다. 그런데 어린이집을 졸업한 아이들 중 방과 후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어린이들이 어린이집으로 오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을 찾아오는 아이들 대부분이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 더 마음이 쓰였기에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이 아이들을 위해 방과 후 선생님도 고용했다. 밤 10시 반까지 어린이집의 문을 활짝 열어 아이들이 학교와 집 사이에서 머물 곳을 아낌없이 제공했다. 곧 문제가 생겼다. 어린이집의 어린 아이들과 방과 후에 찾아오는 더 큰 아이들이 섞여 어느 연령층에도 수업이나 프로그램을 집중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고민은 깊어졌다. 아이들을 밀어낼 수는 없었다. 방법은 하나였다.

하나 더 늘리자. 안 센터장은 방과 후에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 운영을 시작했다. 세 군데를 함께 운영하다니…! 놀란 티를 내자 안 센터장은 웃으며 얘기한다.

“예전에 어린이집을 운영할 때, 여동생은 어린 아이인데 중학교 1학년 오빠가 있었어요. 부모님이 행상을 하시는 분들이었는데 일이 늦게 끝나셔서 제가 아이를 집에 데려다 주러 함께 갔어요. 그런데 중학생인 오빠가 TV에서 이상한, 불건전한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어요. 깜짝 놀라 아이를 다시 어린이집으로 데리고 왔죠. 부모님께 연락을 해서 얘기했어요. 얼마든지 늦게 오셔도 좋으니까 오셔서 아이와 집에 같이 가시라고…. 아이들이 마음 놓고 머물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확신했어요. 지금은 개인적인 이유로 음악학원과 어린이집은 운영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때는 어느 곳의 아이들도 놓을 수 없었어요.”

안영지역아동센터는 어떤 일을 하나

“선생님들은 오전에는 서류를 처리하시고, 수업에 관한 의논을 하세요. 오후 2시 정도에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센터에 오면 공부를 가르쳐주시고, 상담도 해주세요. 3시 반 정도가 되면 간식을, 5시가 좀 넘으면 저녁밥을 먹이고, 그 사이에는 여러 가지 교육을 또 하고, 부모님이 퇴근할 때쯤 집에 돌아가요.”

갑자기 느낌표 5개 정도는 찍어야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우렁찬 인사소리가 들리고 몇 명의 아이들이 들어왔다. 표정이 밝고 씩씩했다. 아이들은 선생님들에게 한참을 쫑알쫑알 얘기 한 후 자리를 턱 하니 잡고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어떤 공부를 하는 걸까?

   

안영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급식, 교육, 지역자원연계.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간식과 저녁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고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 주요 과목에다 주변 대학생으로 이루어진 자원봉사자와 원어민 선생님이 영어도 가르친다. 주말에는 예․체능 선생님에게 음악․그림을 배우거나 기업, 단체의 도움을 받아 야외체험학습을 한다. 주말에도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안 센터장은 교육도 중요한 일이라고 했지만 지역자원연계의 중요성에 목소리를 높였다.

“센터의 한 아이는 온 가족이 방 한 칸인 집에서 살고 있어요. 그런데 지난 겨울 수도관이 터져서 아이의 집과 골목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어요. 선생님들이 달려가서 복구를 해주고 힘이 부치는 부분은 다른 센터에서 도와주셨죠. 이렇게 우리 힘만으로 어려운 일은 지역자원을 연계해서 도와주고 있어요. 환경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아이들에게 부모 맺어주기 프로그램으로 자원봉사자 분들을 연결해줄 수도 있고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아동보호전문기관, 성폭력상담기관 등의 도움을 받도록 할 수도 있고요. 지역의 인적자원이 저희에게 주시는 도움이 크고 또 너무 중요해요.”

지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 절실해

안영지역아동센터가 한 포털사이트의 해피로그라는 시스템을 활용해 운영하는 안영지역아동센터 해피로그 에 들어가 보았다. 단면일지는 몰라도 사람들의 참여가 저조한 느낌을 받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센터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체감하는 관심 정도는 무관심과 관심의 사이 노란 불 정도인 듯 했다. 안 센터장은 아이에게만 정성을 쏟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고 한다. 오후 내내 아이를 공부시키고 사랑을 듬뿍 줘서 집으로 보내면 아이는 아직 부모가 돌아오지 않은 집에서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거나 알콜 중독자 부모로부터 냉대를 받는 등 곧바로 원래의 환경과 직면하게 된다. 그래서 센터에서는 범위를 넓혀 부모와 상담을 하고 지역자원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환경적 문제를 없애려는 노력에도 힘을 쏟으려 하고 있다. 해야 할 일은 점점 늘어만 가는데 관심과 도움은 그대로인 것이다.

“시에서 주는 운영비가 있지만 많이 부족하죠. 처음에는 거의 자비로 시작하고 운영했으니 예전보다는 낫지만 점점 할 일이 늘어나니까요. 저희 선생님들은 거의 최저임금 수준으로 급여를 받고 계세요.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은 후원금으로 충당하지만 부족할 때가 많아 가족에게 손을 벌려요. 시설 보수 같은 건 꿈도 못 꾸죠.”

최근 복지계는 여러 일로 타격을 받았다. 후원금을 횡령한 사건이 사회에 충격을 주면서 후원금을 받는 데 절차가 더해지고 지정된 쪽으로만 사용해야 하는 등 불편한 점이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안 센터장은 그런 불편함이 있긴 해도 후원을 해주는 기업과 단체 덕분에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해줄 수 있어 거듭 고맙다는 말을 하며 사람 이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센터활동에는 자원봉사자 분들의 손길이 필요한데 자원봉사를 대부분 일회에 그치시더라고요. 그런 봉사자는 오히려 원하지 않아요.
틈이 길더라도 장기적으로 도와주시는 게 아이들 정서에 도움이 됩니다. 또 제 개인적인 바람은 조리사분을 상근직으로 고용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센터에서 먹는 밥이 제일 맛있대요. 아침을 못 먹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고 학교 급식이 아니면 센터에서 먹는 밥이 가장 제대로 된 끼니일 텐데 환경 탓에 부족한 점이 있어요. 다른 건 몰라도 먹을거리만은 최고로 잘 해주고 싶은데…. 경기도 쪽으로 교육을 받으러 갔는데 그쪽 센터들은 조리사 수당을 적게나마 지원받더라고요. 아이들에게 체계적이고 영양가 있는 밥을 먹일 수 있는 환경이 부러웠어요. 지금 저희 조리사분은 봉사정신으로 거의 급여는 생각 안 하고 일해주시는 분이에요. 너무 감사하죠. ”

센터 역할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학술적으로 설명되는 지역아동센터의 역할은 너무 거창하다. 빈곤의 세습화를 막고, 교육기회로부터의 소외현상을 줄이고…. 안 센터장은 지역아동센터가 가장 먼저 아이들을 지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갈 데가 없는 아이들이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범죄와 성에 노출당하는 일을 최대한 줄이는 것. 그리고 안영지역아동센터는 더 욕심을 내어 아이들이 행복한 센터 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안영숙 창원시 지역아동센터 연합. /김구연 기자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교육기회균등 뭐 이런 건 지식인들 하는 얘기고 아이들이 행복하면 사회도 행복해진다고 믿어요. 전 지역아동센터는 못 사는 아이들이 다닌다 는 말이 제일 듣기 싫어요. 아이들이 부모의 경제력으로 무시당하고… 우리 아이들 부모님께 부모교육에 오라고 연락을 하면 처지가 부끄럽다고 안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너무 안타깝죠. 또 우리 아이들이 남에게 사랑을 줄 줄 알고 배려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랑하고 배려할 수 있는 건 자기가 사랑을 받아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거잖아요.”

아이들이 행복한 센터 가 되기 위한 1차적인 조건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주는 것. 안 센터장의 확고한 신념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 애들은 참 착하네 라고 말해요. 지역아동센터에 있는 아이들은 환경 때문에 비뚤어진 면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견 때문이죠. 어떤 아이들보다 밝고 착한 아이들이에요. ”

특히 뿌듯했던 일을 묻자 아이들이 컴퓨터 자격증을 따고 싶어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미루다 도청의 사랑의 PC 를 지원받고 기업에서 강사비와 교재 지원을 받아 아이들이 공부시켰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합격했던 일, 한 아이를 기업과 연계해서 한 달에 10만 원의 후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는데 그 돈을 모아 아이가 귀 수술을 했던 일 등을 말하는 안 센터장의 얼굴이 행복 해보였다.

안영숙 창원시 지역아동센터 연합. /김구연 기자


사람을 키우고 미래를 만든다

안 센터장은 올해 3월 창원시 지역아동센터연합회의 회장직을 맡았다. 올해는 창원지역아동센터의 급식환경을 개선하고, 1년에 2번 회보를 제작해 지역아동센터를 홍보할 계획이다. “노인이나 장애인 복지 쪽도 물론 어려운 점이 많겠지만 아동은 투표권이 없어서 아무래도 더 소외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기업의 슬로건인 사람이 미래다 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대한민국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주세요. 누구보다 지역아동센터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아는 이 아이들이 자라서 나중에 검사, 판사도 될 수 있고 대통령도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에는 지역아동센터가 더 활성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어요. ”

안 센터장은 장성한 아들 둘이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피아노를 치고, 선생님의 말에 집중하며 공부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들이 받고 있는 사랑이 느껴졌다. 지역아동센터가 더욱 활성화된 모습을 다음 세대가 아니라 바로 내일 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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