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감상에도 변곡점이 있다. 예를 들면 “어! 새로운 스타일이네!”라거나, 익숙한 멜로디를 “이렇게도 연주할 수 있구나”라고 느끼는 게 그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경험을 통해 감상자는 더 넓은 바다로 들어간다. 다양한 색깔을 자랑하는 재즈에도 이 법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80년대 초반 자코 패스토리우스(Jaco Pastorius)가 백 밴드를 이끌고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에 참여했을 때다. 지금은 ‘옐로 재킷’(Yellow Jacket) 멤버로 잘 알려진 봅 민처(Bob Mintzer)가 그때 테너 색소폰 파트를 맡았다. 처음 이 라이브를 봤을 땐 봅이 1/n로서 그저 백 밴드 역할에 그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중간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파격적인 솔로를 선보이는 게 아닌가!

베이스 클라리넷에 놀라다

그렇고 그런 테너 색소폰 연주가 아니었다. 아이 키 만한 악기를 장난감 다루듯 하는 것이었다. 리듬을 타면서 펼치는 현란한 연주에 정신이 얼얼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 악기는 처음 봤는데, 뒤에 확인해보니 베이스 클라리넷이었다. 바리톤 색소폰은 그전에도 가끔 보긴 했는데, 베이스 클라리넷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질감이 오묘했다. 가슴 밑바닥을 훑어 내리는 듯한 저음이 재즈 리듬에 어찌도 그리 잘 맞아떨어지는지 흡사 첼로 대가들이 바흐 무반주 곡을 연주하는 것에 비견할만한 필링이었다. 이 사건은 재즈가 지닌 매력에 훌쩍 다가선 계기다.

80년대 중엽 우연히 구입한 카세트테이프가 있다. 재즈 피아노 베스트 앨범이다. 낯익은 이름들이 나열돼 있었는데, 그때로써는 처음 듣는 이가 중간에 있었다. 이름하여 레니 트리스타노(Lennie Tristano). 테이프를 듣는 순간 ‘이런 터치도 존재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Lennie Tristano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타건(打鍵)

듣도 보도 못한 타건(打鍵)이었다. 통통 튀는 리듬이 멜로디를 연결하는 독특함에 아무런 저항 없이 빠져들었다. 레니가 비밥사상 빠트릴 수 없는 피아니스트라는 평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실제로 확인해보시라. 앨범 <레니 트리스타노>에 수록된 첫 곡 ‘라인 업(Line Up’은 지금도 가슴을 뛰게 만든다.

30년이 넘는 ‘재즈 여정(旅程)’ 동안 이런 경험은 수도 없이 많다. 그때마다 눈앞에 펼쳐진 건 새 세상이었다. 악기래야 늘 사용하는 그게 그것 아닌가! (베이스 클라리넷은 나로서는 처음 본 것이지만) 함께 음악을 나누는 도반(道伴)들도 익숙한 얼굴들이었으리라. 그럼에도 그들이 만든 사운드는 유례를 찾기 힘든 개성으로 가득하다.

“하늘과 땅이 비록 오래됐지만/끊임없이 새 생명을 내고
해와 달이 비록 오래됐어도/그 광휘(光輝)는 날마다 새롭다”

갑자기 선인(先人)들이 남긴 이 말이 떠오른다. 재즈가 생명력을 유지하는 건 이런 개척자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 화룡점정은 아방가르드 재즈 연주자 헤르베르트 주스(Herbert Joos)다. 그가 독일에서 섹스텟(Sextet 육인조)으로 구성된 멤버로 벌인 라이브 공연이 <New Bottles-Old Wine>이란 이름으로 발매된 적이 있다. 직역하자면 ‘새 술은 새 부대’가 아니라 ‘헌 술을 새 부대에’라는 뜻이다. 여기서 올드 와인은 재즈 스탠더드를 가리킨다. 즉 이 앨범은 재즈 스탠더드를 ‘자기네 식으로’ 새롭게 해석한 연주다.

Herbert Joos

화룡점정은 ‘헌 술을 새 부대에’

헤르베르트 주스가 혼신을 다해 연주하는 플루겔 혼 소리로 음악은 시작된다.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듯한 아득한 분위기에서 벽력같은 소리에 이르기까지 그 느낌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런 후 테너 색소폰과 알토 색소폰이 대위를 이루며 플루겔 혼과 합쳐진다. 연주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이 앨범에서는 그 흔한 ‘Autumn Leaves’도 각별하게 들린다.

아방가르드 재즈를 즐겨 듣는 편이지만, 솔직히 멜로디 라인이 잘 살아있지 않은 곡은 듣기 거북하다. 특히 실험정신으로 중무장한 사운드는 아직도 손이 잘 가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을 좋아하지만, 그가 남긴 후기(後期)작품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그러나 <New Bottles-Old Wine>은 늘 편한 마음으로 듣는다. 스탠더드 곡에 담긴 친근함이 아방가르드 연주와 잘 섞여있기 때문이다. 물론 만만한 음악은 아니다. 그래도 재즈를 좋아한다면, 초심자들도 이 정도 연주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어쨌든 일 년에 한두 번은 이런 변곡점, 혹은 음악적 도약대를 맞아 들뜬 기분이 된다. 이때마다 새삼 느끼는 건 역시 재즈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만큼 내 구력이 일천(日渚)하기 때문이리라!

뜻을 본받을 뿐 말과 형식은 버려라

2013년에도 이같은 변곡점은 어김없이 날 찾아왔다. 월간 <재즈 피플>이 소개한 도널드 버드(Donald Byrd)가 그 주인공이다. 한 때 도널드 버드를 줄창 들은 적이 있다. 이름에서 뭔지 모르게 당기는 구석이 있었던 탓이다. 그러나 후기 연주가 펑키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발견하곤 딱 끊었다. 취향에도 맞지 않고, 진부한 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Donald Byrd

그런데 웬걸! <재즈 피플>이 소개한 앨범 <A New Perspective>를 듣곤 졸도(?)하고 말았다. 흔히 듣는 비밥 사운드가 아니었다. 재즈 7중주단에 중창단 여덟 명을 더한 사운드였다. 이름하여 가스펠 재즈라고 하는데, 사운드만 놓고 보면 그런 이름을 붙여도 무방할 듯싶다.

하지만, 내가 느낀 건 그게 아니다. 내 가슴을 후벼 판 건 음악에 담긴 탁월한 독창성이다. “재즈 사운드를 이렇게 구성할 수도 있구나!”

문인들에게 요구되는 덕목 중에 ‘사필기출(詞必己出)’이란 말이 있다. 표현은 곧 자신만의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변곡점에서 맞이한 많은 음악들은 모두 ‘사필기출’이었다. 사필기출을 이루는 건 ‘사기의(師其意) 불사기사(不師其辭)’다. 뜻을 본받을 뿐 그 말과 형식은 본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재즈라는 말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이 단어에 깃든 정신이 원래 구태(舊態)를 답습하지 않는 ‘자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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