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리 박사 논문 '경기동부연합의 기원과 형성, 그리고 고립'

개인적으로 지난 한 해 가장 충격을 받은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도, 야권의 대선 패배 '멘붕'도 아닌 통합진보당 사태였다.

4·11 총선 비례대표 부정 경선 논란으로 촉발된 당내 갈등은 폭력과 집단 탈당·분당으로 이어지며 한국 진보운동의 근간을 통째로 뒤흔들었다.

당시 사태의 중심에는 잘 알려진 대로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정파 세력이 있었다.

경기동부연합의 기원과 형성, 그리고 고립 과정을 분석한 임미리 박사(한국학중앙연구원)의 최근 논문(계간지 <기억과 전망> 여름호 게재)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예전에는 운동권들 사이에서나 알음알음 떠도는 이름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그들은 '강렬한' 모습으로 세상에 등장했다. 지난해 5월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당시 폭력적 면모는 실체의 겉면일 뿐이었다. 근저에는 끈끈하면서도 배타적인 강한 집단적 일체감과 자기보전 의식, 목적을 위한 수단의 정당화, 부당하게 탄압받고 불의에 맞서 싸우는 자로서 숭고한 자긍심 등 일반인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정신세계가 비쳤다.

지난해 5월 14일 국회 정론관에서 당시 통합진보당 강기갑 비대위원장이 당 혁신을 위한 기자회견을 하기 전 당 중앙위원회 폭력사태에 대한 사죄의 절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전히 경기동부연합에 관해 알려진 건 많지 않다. 언론은 통합진보당 구당권파, 주사파 등으로 부르며 한국외대 용인캠퍼스(외대 용인) 출신 운동권, 경기도 성남을 기반으로 한 청년·지역운동 세력이란 해석을 더했지만 많은 궁금증이 명쾌하게 풀린 것은 아니었다.

임미리 박사는 관련 자료와 증언을 통해 경기동부연합의 기원과 형성, 성장 과정을 면밀히 추적하면서 그들이 왜 '남다른' 집단의식과 정체성, 조직 문화를 갖게 됐는지 하나하나 분석해나간다.

임 박사에 따르면 경기동부연합의 뿌리는 외대 용인이라는 학연이 아니라 성남이라는 지역이다. 성남은 지난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박정희 정권의 철거민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형성된 광주대단지가 있었던 곳이자 박 정권 최초의 도시 봉기(1971년)가 폭발한 지역이다. 봉기 이후 광주대단지는 '폭동과 난동의 도시'로 낙인찍히면서 차별과 배제가 더욱 심화되었고, 이때 기억은 지역민들에게 오랫동안 지울 수 없는 악몽으로 남았다.

차별과 배제의 경험이 새로운 운동 역량으로 승화된 계기는 또 다른 광주, 즉 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만나면서였다. 공교롭게도 당시 성남엔 전체 인구의 약 60%나 될 정도로 호남 사람이 많았다. 지역 출신 대학생들은 광주 학살 소식을 주민들에게 알렸고 분노와 저항의식은 빠르게 공유됐다. 이후 광주 학살에 대한 미국 책임론의 등장은 반미·자주·통일을 최우선 기치로 하는 주사파 계열 운동권이 성남에 뿌리내리는 주동력이 되었다.

성남 출신의 경기동부연합 한 핵심 인사(50)는 성남은 "깡패도시, 사고 치러나 가는 도시, 못사는 동네, 달동네, 유흥업소, 2류 인생들이 모여 있는 도시"였다고 증언한다. "초등학교 말부터 그런 느낌이 있었고, 중학교 때는 다들 그런 생각들이 있어서, 친구들끼리 모여 얘기해도 그런 얘기를 주로 했"다. 그러나 청년기 그에게 성남은 '혁명의 도시'이기도 했다. "1971년 사건을 겪으면서 만들어진 변혁과 혁명의 잠재력" 때문에 "예전에 있던 사람들은 성남을 혁명의 도시라 했다. 그 당시(1980년대) 운동한 사람들은 그렇게 설명을 했고, 실제로 그런 것이 많은 영향을 미쳐 사람들이 운동을 하게 되었다."

성남에서 잉태된 경기동부연합 세력은 1980~1990년대 민주화 투쟁을 거치면서 더욱 외연을 확장하게 된다. 임미리 박사는 "1987년 6월항쟁기를 거치며 용인성남지역총학생회연합(용성총련) 등 인근 지역 대학생들이 결합하면서 경험한 자의 기억이 경험하지 못한 자에게 계승되었고, 1990년대 대중적 통일운동은 그들의 결속과 유대를 강화시켜 새로운 기억과 강한 정체성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1991년 결성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산하 지역단체로서 성남·용인·광주 등을 포괄하는 '경기동부연합' 이름을 얻게 된 것도 이 즈음이었다.

특히 이석기(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의원) 등 경기동부연합의 주요 인물들이 소속되었던 용성총련은 군대 문화에 버금가는 집단성과 일체감으로 유명했다. 유사한 운동 문화를 가진 대학으로는 고려대(서울연합)와 전남대(광주전남연합)를 꼽을 수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들 지역은 지난해 비례대표 사태 때 경기동부연합과 하나로 뭉쳤던 곳이다.

임미리 박사가 분석하기에 경기동부연합은 두 가지 기억을 갖고 있다. "하나는 운동의 잠재력으로 승화된 광주대단지 기억이고 또 하나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개인적 삶을 유폐시킨 공동체의 기억이다. 그 기억들은 다시 두 가지 죽음의 기억과 연관되어 있다. 하나는 공권력의 계획적 배제와 무책임 속에 굶주려 죽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광주대단지)이고, 또 하나는 공권력의 부정의에 항거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성남은 1980년 김종태의 분신을 시작으로 2009년까지 모두 17명이 자결하거나 의문사했다)이다. 경기동부연합은 두 개의 기억을 자산으로 집단의 정체성을 만들고 두 개의 죽음을 채찍질 삼아 일체감과 유대를 강화해 온 것이다."

물론 많은 국민이 '라이브'로 그 실상을 목격한 것처럼,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기억의 고착과 집단의 덫"이 그것이다. 임 박사는 "조직화·세력화를 위해 집단의 보존과 강화에 골몰한 시간 동안 그들은 외부의 가치와 시선에는 무딜 대로 무디어져 버렸다"면서 "집단기억의 두 함정은 비례대표 사태에서 스스로를 사회적 차별과 배제의 대상으로 여기게 만들었고 그 결과 세상으로부터 고립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최근 통합진보당은 창당 이래 최저 지지율(2%대)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비례대표 사태 당시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들은 과연 이렇게 몰락할까? 임미리 박사의 전망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그들이 가진 집단기억이 강고한 만큼 쉽사리 불씨가 꺼지지는 않을 것이다. 비례대표 사태의 기억을 공유하면서 재집단화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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