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수집만 5년…전국 최초 축구역사관 개관 준비 중

지난 1983년 멕시코 청소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4강에 오르자 대한민국은 2002년 못지않은 축구 열기에 빠졌다. 결승에 진출하면 축구를 좋아하는 대통령이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는 소문도 나돌 정도였다고.

대표팀을 이끈 박종환 청소년대표팀 감독이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유소년 축구에 대한 투자를 당부하자, 박 대통령은 육사 출신 박정기 한국전력공사 사장에게 곧바로 지시해 전국 46개 한점 지점에 지도자를 파견해 유소년 축구를 키울 것을 지시했다.

총 46명을 선발한 지도자는 30년이 흐른 지금 창원 합성초 강상기(59) 감독과 순천 중앙초 정한균 감독 2명만이 현역을 지키고 있다.

창원 합성초 강상기 감독./김구연 기자

파견지도자로 시작해 유소년 축구에만 매달려

도내에서 가장 오랜 지도자 경력을 보유한 강상기 감독은 올해로 지도자 생활 31년째를 맞은 베테랑이다. 그는 31년을 한눈팔지 않고 유소년축구에만 매달려 지난해 한국유소년축구연맹이 주는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 그가 이끄는 합성초 축구부는 그동안 30여명에 가까운 프로선수와, 청소년대표와 올림픽대표, 국가대표도 많이 배출했다.

이제 정년을 바라보는 강상기 감독은 그동안 31년 지도자 생활을 정리하는 마음에서 축구 역사관 개관을 준비 중에 있다. 초등학교 축구부에서 축구역사관를 건립한 것은 도내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합성초가 처음이다.

합성초 축구부 숙소에서 만난 강상기 감독은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먼저 꺼내놓았다. 바로 1982년 당시 박정기 한전사장에게 축구단 전임코치 임명장을 받는 사진이었다.

그는 “82년 한전에서 지도자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실기와 이론 모두에서 1위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한전 지도자는 약 6년 만에 없어졌지만 그 일이 계기가 돼 30년 넘게 축구 지도자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초심을 잃게 될까봐 그 때 사진을 액자에 넣어두고 가장 잘 보이는 책상 앞머리에 항상 뒀다고 했다.

강 감독이 초등학교 축구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것은 실업팀 한일합섬에서 선수생활을 마친 뒤인 1982년. 강 감독은 그해 5월 1일 합성초에 축구부를 창단했고, 이듬해에는 한국전력 유소년 전담코치 시험에 응시해 전국 1위를 차지했고 합성초 감독에 부임했다.

강 감독이 이끄는 합성초 축구부는 지역을 대표하는 초등 명문 팀이다. 그동안 아시아대회 준우승 1회를 비롯해 전국대회와 도내 대회에서 100여 차례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이영진, 조현두, 김해운, 정유석, 정성훈, 김한원, 박세직 등 국가대표를 비롯한 많은 프로 선수도 배출했다. 현재 진행 중인 초등학교 주말리그에서도 3년 연속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3년째 무패 기록이다. 역사와 성적, 팀 운영 등 모든 면에서 합성초는 타 팀의 모범이 되고 있다.

창원 합성초 강상기 감독./김구연 기자

희귀자료 수집에만 5년 간 공들여

해가 바뀔수록 쌓여가는 우승 트로피와 상장을 보며 강 감독은 제대로 보관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5년 전쯤이었죠. 교무실 앞이나 축구부 숙소, 교장실에 따로 돌아다니는 트로피를 보면서 역사관 건립을 처음 생각했어요. 그때는 그냥 정리만 잘 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조금씩 정리하다보니 욕심이 생겨 축구 역사관을 만들게 되었죠”라고 말했다.

학생 수가 줄어 빈 교실이 늘어나 공간 확보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강상기 감독은 “학생 수가 많을 때는 3000명이 2부제 수업을 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전교생이 412명에 불과하다”며 “학생이 줄면서 생긴 빈 교실을 학교에서 역사관으로 허락해 주면서 본격적인 역사관 준비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예산이었다. 우선, 축구부 후원회 예산 3000만 원을 들여 교실 한켠을 빌려 작은 역사관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역의 정치인들을 찾아가 취지를 설명하고 예산 지원을 요청했다. 쉽지 않았지만 강 감독의 열의에 반한 임경숙 도의원과 이태일 의원이 도움을 줬다.

예산이 확보되자 강상기 감독은 지난 31년간 손수 정리한 각종 자료를 분류하고, 유명 선수를 찾아다니며 친필 사인을 받으러 다녔다. 전 세계에서 한국 축구에 대한 사료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이재형(52) 축구역사문화연구소장을 수차례 찾아가 20여 개의 귀중한 자료도 직접 구입했다. 그렇게 5년을 준비한 역사관은 6월쯤 일반인에 공개 예정이다. 정식으로 개관 행사도 준비 중이다.

창원 합성초 강상기 감독./김구연 기자

축구역사 한 눈에 볼 수 있는 3가지 전시관

6월 오픈 예정인 전국 최초의 초등학교 축구역사관을 미리 들여다봤다.

강상기 감독과 함께 둘러 본 축구 역사관은 교실 3개를 합쳐 만들어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초등학교 축구부 역사관이라고 해봤자 뭐 볼게 있겠어’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직접 둘러본 축구역사관은 기대 그 이상이었다.

합성초 축구역사관은 축구역사관, 한일월드컵관, 축구박물관 등 3가지 전시관을 꾸며져 있다.

한국축구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역사관을 지나면 2002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한일 월드컵을 회상할 수 있는 각종 사진자료와 선수들의 기념품들이 전시돼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친필 사인과 홍명보 당시 주장의 사인이 들어있는 사진도 직접 볼 수 있다.

또, 현재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스완지시티에서 뛰는 기성용이 직접 축구화에 쓴 ‘합성초 축구부 역사관 개관을 축하합니다’라는 문구과 프리메라리가 셀타 비고에서 활약 중인 박주영의 축구화에도 눈길이 갔다.

축구역사관을 준비하던 강 감독이 얼마나 직접 발로 뛰어 얻은 것. 그는 “몇 해 전 역사관을 준비하면서 기성용과 박주영을 직접 찾아가 그 의미를 설명하고 받은 기증품”이라며 “선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자료로 바로 두 선수의 축구화”라고 설명했다.

창원 합성초 강상기 감독./김구연 기자

아무래도 관심이 가는 전시관은 바로 축구박물관이었다.

축구박물관에 들어서자 지푸라기 축구공과 휘슬, 축구 LP판 등이 눈에 띄었다. 구입처를 물었더니 축구용품 수집가로 잘 알려진 이재형(52) 축구역사문화연구소장에게 직접 구매했다고 했다.

강 감독은 “이 소장에게 직접 연락해 몇 차례 서울을 방문해 원하는 수집품을 손에 넣었다”면서 “1954년 처음으로 출전한 월드컵에 다녀온 고 최정민 감독의 가방과 국가대표팀의 전신인 양지축구단 유니폼이 가장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박물관이라는 이름답게 요즘 흔히 볼 수 없는 자료도 있다. 100년 영국에서 사용됐던 호루라기(휘슬)와 스페인에서 공수해온 공기주입기 등 유럽 축구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희귀자료로 포함돼 있다.

   

합성초 축구부 영광의 역사도 한눈에

합성초 축구부 역사관답게 31년 전통을 지닌 축구부의 연혁과 선수 소개, 각종 상장과 트로피도 상당했다. 졸업 기수 별로 선수 명단과 활약상, 전·현직 소속팀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고, 경남 초중학생 종합체육대회 성적부터 전국대회 입상 현황도 일목요연하게 갈무리해놓았다.

역사관에는 합성초가 1989년 제21회 전국 시·도대항 축구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전국을 제패했을 때와 전국 소년체전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의 감동, 2000년 도내 학교팀 최초로 운동장에 라이트시설 등을 설치했을 때의 장면 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특히 1989년 시도대항 전국초등학교 축구대회에서 우승한 트로피와 사진은 한쪽 벽면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은 주말리그가 활성화돼 전국 대회가 줄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시도대항은 전국에서 지역예선을 거친 팀들이 참가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대회였다”면서 “팀 창단 후 처음 전국 대회를 우승했고 당시 학교에서 마산 육호광장에서 카퍼레이드를 한 게 유독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강상기 감독이 손수 만든 역사관이 더욱 가치 있는 이유는 그동안 국내 축구계에서 이처럼 역사관에 대해 의미를 두는 구단이나 단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로 출범 30주년을 맞은 프로축구 K리그는 아시아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지만 변변한 역사관이 없다.

창원 합성초 강상기 감독./김구연 기자

일부 구단에서 역사관을 운영 중이지만 대부분 콘텐츠가 우승트로피나 유니폼, 패치 등에 불과하다. 구단 연혁이나 트로피뿐 아니라 클럽 레전드 스타들의 용품, 과거 사진과 동영상, 역대 유니폼 등을 빼곡히 채워놓은 유럽의 구단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강상기 감독은 “과거를 보존하려는 역사의식이 너무 빈약한 것 같다. 비록 일개 초등학교지만 30년 넘게 축구부를 운영했는데 이 정도는 자료는 제대로 보관하는 게 맞지 않느냐”라며 “축구부원은 물론 지역의 다른 학교에도 문호를 개방해 축구 역사를 배우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창원 합성초 강상기 감독./김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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