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어른때부터 이어온 가업 양파는 창녕 사람 자존심이야"

'양파 수확 철에는 죽고 싶어도 바빠서 그러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6월 중순 창녕군 대지면 세거리마을. 한창 정신없는 시기일 텐데 논에 나와 있는 농민은 거의 없다. 반쯤 채워진 붉은 양파 망이 여기저기 널려 있을 뿐이다. 들판이 정지된 화면처럼 다가온다.

전날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논은 아직 질퍽거린다. 이 상태에서 거둬들인 양파는 부패율이 높다. 하루 정도 기다려야 한다. 곧 장마철이다. 일손 놓게 된 하루가 야속하기는 하다. 그래도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걸 모르지 않는 이곳 사람들이다.

윤용주(62) 씨도 이날은 지난 시간을 더듬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는 고향 땅을 벗어나지 않고 한평생 지키고 있다. 농사일을 한 지 40여 년 됐다. 이 가운데 양파와 함께한 시간만 30년 훌쩍 넘는다.

"서른 살 됐을 때였나? 1980년대 초에 양파를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창녕에서 농사하는 사람 대부분 양파를 했어요. 집안 어른들이 하셨으니 저도 자연스럽게 이어받았죠. 규모가 2000평 정도 됐습니다."

옛 시절을 떠올리는 윤 씨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흐른다.

"창녕 경기는 한해 양파 농사에 따라 왔다갔다합니다. 1980~90년대에는 재미 좋았죠. 양파가 정말 잘 됐어요. 창녕에 활기가 넘쳤습니다. 양파는 20kg 망으로 가격을 매기는데, 보세요. 지난해 가격이 9000원에서 1만 원 정도 됐어요. 그런데 20년 전 가격이 5000~6000원이었으니 괜찮지 않았겠어요?"

창녕 양파 전성기는 1990년대 초였다. 그때 번 돈은 지금까지 든든한 살림 밑천이 되고 있다.

고향 창녕 땅에서 30년 넘게 양파 농사를 하고 있는 윤용주 씨가 옛 기억을 떠올리며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다. 갈수록 지역 내 양파 수확량이 줄고 있지만, 윤 씨는 "시배지 자존심을 계속 이어갈 겁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김구연 기자 sajin@

하지만 점차 생산 비중이 줄었다. 전남 무안 같은 곳에 밀리는 처지가 됐다.

그 사이 이곳 사람들은 좀 더 수익 나는 쪽으로 눈 돌렸다. 마늘이었다. 윤 씨도 그렇다.

그는 현재 3만 3057㎡(1만 평)가량 되는 땅에서 농사짓고 있다. 이 가운데 양파가 1만 6528㎡(5000평), 마늘이 1만 4876㎡(4500평)가량이다. 양파는 마늘보다 잔손은 덜 들어간다. 하지만 수확 철 장정들 힘을 더 필요로 한다. 크기 차이 때문이다.

"창녕에 마늘이 들어온 건 20년도 채 안 됐죠.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건 7년 전부터일 겁니다. 저도 그때부터 마늘을 했어요. 그러다 한 4~5년 전부터 이 지역에서 마늘이 양파를 넘어섰어요. 지금은 대부분 두 개 다 같이 하죠. 양파·마늘은 가격이 번갈아 오르내립니다. 양파 가격이 전년도에 좋다 싶으면 재배량이 늘어 다음 해는 별로죠. 마늘은 또 그 반대고…. 그러기를 몇 해째 반복하고 있습니다."

결국 양파 생산량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마늘에 있는 셈이다. 여기에 외부 환경도 더해진다.

"예전에는 그리 신경 쓸 일 없이 수확하는 재미만 있었는데…. 요즘은 기후 변화가 심해 어려움이 크죠. 겨울 지나면 봄 없이 바로 여름이 오잖아요. 온도 차가 급격히 변하기 때문에 병이 찾아와요. 영양제 같은 것으로 힘을 보태기는 하지만, 한계가 있죠. 양파연구소에서 새로운 종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워낙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올해는 특히 큰 걱정거리가 있다. 인건비다. 일손이 갈수록 부족해지는 탓이다. 양파 일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일흔을 넘긴 노인이다.

"양파 생산비용 가운데 반은 사람 쓰는 비용이에요. 올해 하루 일당은 8만 5000원입니다. 지난해보다 또 몇천 원 올랐습니다. 일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에요. 창녕 안에서는 일손을 충당 못 해요. 버스 전세내 다른 지역에서 데려옵니다. 수확 철이면 외지 사람이 하루 1000명 정도는 들어올 겁니다. 일당은 비싸지만,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많으니 효율성은 또 떨어지죠."

이러한 현실을 헤치기 위해 운영되는 단체가 창녕양파연구회다. 애초 양파연구소 내 동우회 형태로 운영되다 올해 4월 창녕양파명품영농조합과 합쳤다. 생산자 2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윤 씨는 이 단체 회장을 맡고 있다.

"2007년 지리적 표시제 등록 이후 양파 연구가 활성화됐죠. 지금은 양파연구소·창녕농업기술센터, 그리고 생산자들이 함께 머리 맞대고 있습니다. 양파는 우리 창녕 사람들 자존심과 같습니다. 가격이 좋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손 놓을 수는 없지요."

애지중지 돌보는 양파는 밥상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우리야 늘 생양파를 된장에 찍어 먹고 그러죠. 양파즙 짜는 건강원이 지역에 100군데 정도 돼요. 저도 자주 애용하죠. 주변 어느 분은 양파즙 먹고 나서부터 아토피가 싹 사라졌다고 해요. 창녕 사람들은 양파뿐만 아니라 마늘도 많이 먹으니, 건강 하나는 다른 지역에 뒤지지 않습니다."

다음날은 땅이 제법 굳어 본격적인 수확이 가능했다. 윤 씨 이마에 또 구슬땀이 맺혔다. 그때 윤 씨는 모르는 이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일손이 부족하다는 소식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는 전화였다. 김 씨 얼굴이 활짝 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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