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비빔밥, '일곱 가지 보석을 담은 꽃밥' 이야기

경남 조리기능장 1호에 요리 명인 1호로 알려진 일신요리학원 정계임(57) 원장. 정 원장은 요리연구가로 30년여 동안 경남 전역을 다니며 그 지역 특산물을 주요 재료로 향토요리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그가 특허 등록한 요리만도 손가락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다. 또 그는 실력 있는 요리 강사로도 유명하다. 그의 다양한 음식문화 체험교육과 조리 실습은 경남 서부 지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정 원장은 진주 대표음식으로 알려진 진주비빔밥과 ‘칠보화반’을 알려나가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진주 축제인 개천예술제에서 그가 보여주는 ‘3000인분 비빔밥 만들기’ 퍼포먼스는 사용하는 재료도 엄청나지만 동원되는 조리사들도 엄청나다. 그 자리에 모여든 시민들은 비빔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재미에 열광하고, 현장에서 다 같이 나눠 먹는 재미에 열광하고, 마지막으로 그 맛에 열광한다.

궁금했다. 다양한 활동이 그랬고 정 원장이 왜 진주비빔밥을 화두로 살고 있는지, 특히 그의 저서 ‘진주비빔밥 칠보화반 이야기’를 읽고 나서 더욱 그랬다.

정계임 원장.

봄꽃들이 일제히 앞다퉈 피고지는 4월 초, 정계임 원장이 음식문화체험교육장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장소에서 그를 만났다. 아직은 정식으로 택호를 달지 않았지만 깨끗이 정리된 시골 폐교 터(진주시 내동면 옛 유수초등학교)였다.

-진주비빔밥을 널리 알리는 활동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진주 사람이고 또 요리를 연구하는 사람이니까요. 진주비빔밥은 다른 비빔밥과 다른, 진주 지역만의 역사와 요리법을 가지고 있는데 ‘비빔밥’하면 전주비빔밥이 대표적으로 이름 올려지고, 마치 진주비빔밥은 아류처럼 딸려가는 게 안타까웠어요. 진주를 대표하는 음식인 진주비빔밥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어요. 진주비빔밥은 다른 곳과 달리 나물들을 전부 몰캉몰캉할 정도로 데쳐 거의 입 안에서 씹지 않아도 꿀떡꿀떡 넘어가는 맛이 있지요. 2006년쯤이었나. 전국 조리학과 교수들한테 ‘진주비빔밥’을 알리는 소식지를 돌리기도 했지요.”

-그런 작업들이 ‘진주비빔밥 칠보화반 이야기’를 발간하게 된 바탕이 된 거군요.

“그 책은 진주비빔밥의 스토리텔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빔밥이야 우리나라 전역 어디에서든 먹는 음식이지요. 그 지역마다 특성을 띠고 있고요. 하지만 지금은 제대로 지켜나가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진주는 한국에서 비빔밥의 전통을 가장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고 곳이지요. 거기에다 진주비빔밥을 두고 칠보화반이라 이름했다니 언제, 왜, 누구에 의해 그렇게 불리게 된 건지를 세상에 알려나가고 싶었습니다. 한국의 전통음식으로, 진주의 향토음식으로 제대로 재현해내고도 싶었고요.

내가 음식과 요리는 잘 알고 문화는 조금 아는데 역사는 잘 몰라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정계임 원장이 만든 진주비빔밥.

-‘칠보화반’은 어떤 뜻이지요?

“칠보화반은 칠보는 일곱 가지 보석을 말하는데 금, 은, 유리, 수정, 진주, 마노, 산호를 말하지요. 화반은 꽃밥이라는 뜻이고요. 말 그대로 ‘보석같은 꽃밥’이지요. 진주비빔밥에 칠보화반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 이유는 진주 기생문화에서 나왔습니다. 꽃밥이라니, 얼마나 예쁜 이름이에요. 기방에서 비빔밥을 낼 때 맛도 맛이지만 얼마나 멋스럽게 냈겠어요. 색색깔의 나물과 고명을 얹은 칠보화반은 정확한 역사는 알 수 없고 추정할 뿐이지요. 칠보화반은 교방 음식, 기생 음식이에요. 자료에 보면 조선 초기에 감찰사 등이 왔을 때 진주비빔밥을 먹었다는 얘기가 있어요. 조선 초기에 말이지요. 그러니까 칠보화반이라 불리는 진주비빔밥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이지요.”

-비빔밥의 기원은 더 오래 전이지요?

“삼국시대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부족사회에서 마을에서 하는 동제, 기우제 등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어요. 마을에서 제를 끝내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밥을 나눠먹을 수 있는 게, 비빔밥이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음복 문화에서 나왔다고 해요. 우리가 집집마다 치르는 제사가 유교의식에서 체계화되다보니 마치 비빔밥 문화가 유교의 제사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아는데, 유교 이전의 문화라 할 수 있어요. 지금도 집집마다 제사 지내고 나면 여러 나물들을 넣어 밥을 비벼 먹잖아요.

이렇게 오랜 전통을 가진 음식이지만 비빔밥이란 겐 참 신기해요.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으니까요. 음식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맛있고 영양 좋고 때깔 좋은 새로운 비빔밥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정계임 원장./사진 김기종 funki-j.tistory.com

-진주 개천예술제때마다 시민들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진주비빔밥 행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 언제부터 하게 되었는지?

“진주비빔밥 행사는 단순히 퍼포먼스가 아니라 비빔밥의 원류를 상징하는 축제입니다. 2001년에 비빔밥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싶어 다양한 비빔밥을 만들어 종류대로 음식 전시를 했었어요. 요리는 창작이니까, 더욱이 비빔밥은 전통에다 새로운 창작을 더할 수 있는 음식이잖아요. 그때 창작한 거다. 예산이 없어 진주시에 500만원 지원받아 했었지요. 반응이 좋았어요. 비빔밥 행사는 2002년인가 5월 논개제 때 처음 시작했어요. 그때는 1000인분이었지요. 몇 년 전부터는 개천예술제 때 하고 있는데 지금은 3000인분 이지요. 3000인분이면 쌀만해도 세 가마니 밥을 해야 해요. 아, 2002년 월드컵 때는 축구공모양으로 대형 비빔밥을 만들어 같이 먹는 행사를 하기도 했어요.”

-요리는 어떤 계기로 하게 됐는지요? 평생 이렇게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요?

“어릴 때 어머니가 떡 방앗간을 했었어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현재 진주성 공북문 앞에 중앙극장이 있었는데 그 근처에서 했지요. 제법 유명한 방앗간이었는데, 일이 밀려드니까 늘 일손이 딸려 집안의 큰 딸인 내가 도울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다가 이런저런 떡 만들기나 음식 만드는 것을 흉내내기도 했지요. 계기라면 그게 계기겠지요. 하지만 나는 미술대학을 가고 싶었어요. 부모님이 반대하는 바람에 결국 식품영양학과를 갔지만. 식품영양학이란 전공과 방앗간 일이 무관한 게 아니잖아요. 하지만 진주의 전통음식들을 접하고 음식과 인간, 문화를 알면서 평생 요리연구가로 사는 것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지요. 결국은 칠보화반을 만나고 명인이라는 호칭도 받게 됐네요.”

-지금 운영하는 일신요리학원은 진주에서는 최초의 요리학원이라는 얘길 들은 건 같은데요?

“올림픽이 끝난 다음해니까 아마 89년인가요, 그때 일신요리학원을 열었지요. 한 25년 되나요. 당시 서울에서도 찾기 어려운 요리학원을 진주라는 소도시에서 연다고 주변 사람들은 웬 엉뚱한 짓이냐고 수근거렸어요. 물론 저도 반신반의한 부분도 있었지요. 그래서 오히려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요리개발을 하고, 24시간 매달렸지요. 딸이 한 명 있는데 그 딸도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나와 같은 대학 동문이지요. 최근에는 딸이 학원 운영은 알아서 다 하고 있어요. 덕분에 나는 지역을 다니면서 요리개발과 음식체험 강습 등 하고픈 걸 하고 있는 거지요.”

외국인 대상 진주비빔밥 체험행사장에서

-요리학원 외 다른 일을 한 적은 없는지요?

“일신전통식품주식회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 납품을 했는데, 2년간 하다가 접었지요. 돈이 안 되더라구요. 내 자본에다 산자부에서 3000만원 지원받아 시작했지요. 주 사업중 하나가 총명빵(석창포 재료)을 학교에 납품하는 것이었는데 단가가 안 맞았지요. 수입 밀가루 사용 안하고 석창포를 이용해 빵을 만들었는데, 500원을 받아야 겨우 유지를 할 수 있는데 400원을 주데요. 도저히 계속 할 수가 없었지요. 다식을 만들어 내로라하는 대기업 백화점에도 납품했는데….

수험생들에게 좋다고 알려진 총명탕 주재료가 머리를 맑게 하는 석창포예요. 석창포를 이용해 총명빵을 개발, 또 총명탕을 이용한 물김치를 개발해 특허를 내기도 했지요. 또 진주에서 처음으로 뷔페식당을 열기도 했습니다. ‘남강뷔페’라고. 당시 대도시에는 뷔페음식이 유행할 때라 진주에서도 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장사가 아주 잘 되었지요. 한정식점 ‘수라’를 운영하기도 했고요. 요리강습, 강연이 많아지면서 저절로 다 정리가 되었지만.”

-요즘 활동은 주로 강연이나 체험교육인가 봅니다.

“다문화가정 요리실습생은 대부분 학원으로 오지요. 몇 년 전부터 1년에 4~5개월은 도농기술원 강의를 나가고 있어요. 전통음식을 소개하고 같이 실습하면서 음식체험을 하지요. 경남도농기술원에 와서 주로 강습을 받는 사람들이 18개 시군에서 오는 사람들인데, 대부분 요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지요. 자기 지역에서 청국장, 간장 등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도 있고. 실제로 자신의 생업이 되어 자기 지역에서 적극적인 경제 활동을 해나가고픈 사람들이지요. 대상에 따라 강의내용들이 다르지만 각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이 관심이 많은 향토음식을 같이 연구하고 궁중음식, 푸드코디 등을 교육합니다.”

-여러 지역으로 음식체험 교육을 하러 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최근 들어 각 지역에서 향토음식을 개발하는 사업을 많이 벌이고, 또 농업인교육 차원에서 음식체험 교육 등을 하니까 아무래도 많이 출장을 가게 됐지요. 출장을 다니다 보면 이런 저런 일이 많이 생기는데 그 지역에 맞는 요리 개발 할 때가 재미있어요.

합천에는 대장경밥상, 도토리비빔밥, 채식밥상을 개발해주었는데, 한번은 합천에 음식 개발하러 갔다가 사고가 나서 차를 폐차하는 일도 있었지요. 합천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요리재료 등 자료조사를 갔다가 주차를 하자마자 차가 절벽 아래로 스르르 내려가버리는 거예요. 차는 그날로 폐차하고 나는 얼마간 입원을 했지요.

그런데 그때 통영에서도 향토음식 개발 주문이 들어온 터라 마음이 급했지요. 나중에는 병실에 있으면서 통영 고구마를 이용한 고구마라떼 등 요리를 개발했냈지요. 병실에서 조리를 해서 음식을 만들고 하니 간호사들은 기겁을 했지만 음식 만들어 간호사, 환자들 할 것 없이 다 같이 나눠먹으니 나중에는 맨날 잔칫집 같았어요.”

인터뷰하는 정계임 원장./사진 김기종 funki-j.tistory.com

-폐교를 리모델링해 음식문화체험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요?

“폐교를 12년 전에 샀습니다. 애초에 이곳을 살 때는 요리학교, 요리고등학교나 요리전문학교 같은 것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걸 꼭 사고 싶은데 이게 내 것이 될 수 있을까 싶은 조바심이 났지요. 다행히 입찰이 성공했고 전통요리학교를 하고 싶어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 안 되더군요. 자금도 부족하고 기회가 되지 않아 시작을 못했지요. 도교육청 가니 교육부 가라 하고, 교육부 갔더니 도교육청 가라하고. 요리학교를 새로이 시작하면 주변 고등학교에서 반발하니 꼭 하겠다면 기존 학교를 인수하라더라고요. 그때 꿈을 접었습니다. ‘땅도 지 역할이 있다. 땅도 인격체라 보고 순리에 따르자’고 생각했지요.

지금은 여러 일들을 구상하는 중입니다. 애초의 계획이 많이 바뀌었지요. 이곳에다 비빔밥체험관을 지을까 해요. 먼저 찻집과 한옥은 지금부터 작업에 들어갈 거고 체험관은 아무래도 시설을 제대로 갖추어야 하니 좀 더 시간이 걸릴 거예요. 운동장 아래 학교 건물이었던 곳은 현재도 체험관으로 리모델링해 일본 관광객이나 지역민을 대상으로 요리실습과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정계임 원장./사진 김기종 funki-j.tistory.com

짧은 인터뷰였다. 정 원장이 워낙 바쁜 지라 많이 기다렸고 빨리 보내드려야만 했던 것이다. 정 원장은 조금이라도 틈이 나면 앞으로 자신의 계획을 실현해나갈 이곳 내동면 유수리 폐교에서 온다고 했다. 특별히 일을 하지 않아도 여기에다 자신의 기운을 모으며 꿈을 기원하는 것 같았다.

“음식문화는 조상들의 지혜의 산물입니다. 제일 보람있는 건 이제는 음식문화 체험하기 위해 전국에서, 또 해외에서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의 음식문화, 음식에 대한 정신세계는 알아갈수록 감동스럽습니다. 나는 진주 사람으로서 진주비빔밥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요. 그저 내가 받은 감동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정계임 원장이 마지막으로 들려준 이야기에는 소박하지만 그의 진심이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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