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왕님 뜻에 맡긴다는 귀한 멍게, 80년대 대량생산 성공

통영 사람들은 멍게에 후한 인심을 담는다. 양식하는 이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맛보라며 대가 없이 곧잘 내놓는다. 식당에서는 값 치르지 않고도 맛볼 수 있도록 밑반찬으로 깔아 놓는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멍게를 제 돈 내고 먹는 게 좀 어색하다.

우리나라에서 멍게를 언제부터 먹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정확하지 않다. 조선시대 해안지방에서 특별한 음식으로 이용했다는 것 정도만 입으로 전해진다.

1950년대 중반 이후에야 제법 익숙한 음식이 되었다. 하지만 해녀가 직접 바다를 뒤져야 했기에 여전히 귀한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양식화하면서 내륙지방 사람들도 이 독특한 향에 친숙해졌다.

통영 평림동 주변 바다는 멍게 양식 부표가 수 놓는다. /박일호 기자

멍게 양식을 처음 떠올린 곳은 통영이었다. 이곳 산양읍에 사는 최 씨 손에서 나왔다고 전해진다. 한편으로는 거제 둔덕면에 사는 이 씨도 비슷한 시기 스스로 깨쳤다는 이야기가 덧붙는다. 1973년 여름이었다. 물놀이하던 아이들이 멍게를 양손 가득 들고 돌아왔다. 신기하게 여긴 최 씨가 "어디서 났느냐"고 물으니, 아이들은 "굴양식장 닻줄에 붙은 것을 따 왔다"고 했다. 바위 같은 곳에나 붙는 줄 알았던 멍게가 줄에도 엉긴다는 건 새삼스러운 사실이었다. 최 씨는 곧바로 양식에 도전했다. 이듬해 겨울 실내수조에서 인공채묘했더니 성공에 가까웠다고 한다. 이후 몇 년간 꽤 재미를 보았던 듯하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기후 탓에 1977년부터 3년간 양식산뿐만 아니라 자연산까지 일대 바다에서 전멸했다.

그러자 이곳 수협에서는 이웃 일본 것에 눈 돌렸다. 주산지인 센다이 지역 종묘를 도입했다. 1980년 시험에 들어갔는데, 이듬해 궤도에 올랐다고 한다. 그러면서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대량생산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물론 그 세월 속에서 늘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멍게는 측성해초목 멍겟과에 속한다. 미더덕·오만둥이 사촌쯤 된다. 몸길이 10~18cm로 수명은 5~6년이다. 몸통은 오돌토돌해 '바다 속 파인애플'이라고도 한다. 반면 여드름 많은 얼굴에 비유되기도 한다. 몸통 가운데 위쪽에는 눈에 띄는 돌기 두 개가 있다.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입수공, 플랑크톤만 몸속에 남기고 물은 내뱉는 출수공이다. 주로 암초지대나 자갈 깔린 곳에 서식한다. 5~24도 사이가 적정 수온이다. 이 사이를 벗어나면 성장을 멈춘다. 이 때문에 기후 변화가 심하면 폐사하는 일이 잦다. 어민들이 매해 울고 웃는 이유다. 그래서 멍게 양식하는 이들은 '용왕님 뜻'에 맡기는 심정이다.

배에 매달려 작업장으로 옮겨지는 멍게. /박일호 기자

그래도 이 지역이 멍게와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물이 깨끗하고, 파도가 덜하며, 수온도 다른 해역에 비해 적정하기 때문이다. 통영멍게는 2~6월에 걸쳐 수확하며 4~5월 것이 가장 맛있다.

오늘날 이 지역 사람들은 '통영멍게'가 나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다. 원산지 이름을 상표권으로 인정하는 '지리적 표시'에 올리려는 것이다. 현재 농수산물품질관리심의회 심의가 진행되고 있다. 경남 지역 가운데 지리적 표시에 이름 올린 수산물은 아직 없다.

멍게는 애초 '우렁쉥이'라 불렸다. 경상도 방언이던 '멍게'가 널리 쓰이면서 표준어를 밀어낸 것이다. '멍게'라는 이름에서는 전해지는 얘기가 있다. '표피가 자연적으로 벗겨지지 않는 남자 성기'라는 뜻을 담은 순우리말이 '우멍거지'인데, 이것이 배경에 오른다. 그 모양새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여기서 따온 두 글자 '멍거'가 나중에 '멍게'로 바뀌어 붙여졌다는 것이다.

선별 작업에서 통과한 놈들이 횟집으로 갈 채비를 하고 있다. /박일호 기자

멍게는 전 세계에 3500여 종이나 되는데, 우리나라에는 35종이 서식한다고 한다. 멍게 자체는 탁한 물 아닌 맑은 데만 찾는다. 그래서 서해안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남해안·동해안 일대에 서식한다. 국내에서 양식으로 이용되는 것은 5종으로 멍게·돌멍게·비단멍게·미더덕·오만둥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남해안·동해안과 제주도에서 양식하고, 일본에서 수입하기도 한다.

멍게는 일본·프랑스·칠레 같은 곳에서도 날로 먹는다.

일본에서는 매년 20만 톤 이상 소비한다고 한다. 주산지는 일본 동북부 센다이 지역이다. 이 지역은 수온이 낮아 멍게 양식하기 제격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와 달리 3~4년 이상 된 것들을 상품화하기에 크기도 여간하지 않다. 그런데 지난 2011년 쓰나미가 덮쳐 센다이 지역은 쑥대밭이 됐다. 역설적으로 통영 어민들은 그 덕을 보고 있다. 일본 수출 물량이 늘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프랑스인들이 즐겨 찾는다. 이곳에서는 '바다 무화과'라는 뜻인 '피그 더 메르(figue de mer)'라 칭한다. 프랑스인들은 레몬주스를 곁들여 회로 즐겨 먹는다고 한다. 뭍으로 올라온 멍게는 물을 내뿜는다. 이 때문에 영어권 나라에서는 '바다 물총'이라는 뜻인 '시 스쿼트(sea squirt)'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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