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금엽(77) 할매

“고대구리배, 경매도 한밤중에 했다아이가”

최금엽 할매는 생선장수 생활만 51년째 라고 했다. 진주로 시집을 갔지만 친정이 있는 삼천포에서 물건을 받아 진주중앙시장에 내다팔았다고 한다.

“여기 시장이 처음에는 허가도 없는 데 였다아이가. 고대구리배라고 들어봤나? 고대구리배가 고기를 잡아오면 한밤중에 경매가 있었던 기라. 몰래 해야 되니까. 까닥하다간 잡혀가니까 그랬제.”

고대구리는 어부들이 타는 소형기선 저인망으로 당시는 불법어로 행위가 성행을 했던 것이다. 당연히 경매는 비밀리에 이뤄졌다.

최금엽 할매는 삼천포항에서 처음에 시장이 어떻게 서게 되었는지 죄다 알고 있었다.

태환상회 최금엽 할매./사진 박일호 기자

“얼라를 업고 요기 와서 물건을 떼어 트럭 타고, 우짤 때는 자리가 없어 뒷칸에 타기도 허면서 진주 시장에 갖꼬가서 팔았다아이가. 그러다가 당최 힘들어서 수년 만에 아예 친정 동네인 삼천포로 이사왔다. 옛날에는 요기가 팔포라 했제.”

원양어선을 타는 남편은 한 번 나가면 몇 달 씩 부재였고, ‘그것도 돈 떨어지모는 겨우시 배 타는’ 정도였다하니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텐데 할매 말투는 자분자분하여 새댁 같았다.

“옛날에는 천막이고 머고 없었고 노다지로 했제. 다행히 파라솔겉헌 거 하나 있으면 제법 잘 나가는 장삿꾼이었다아이가. 소내기라도 한 바탕 오면 퍼뜩 치우기 바빴고 장사는 공 치고. 그러다가 90년 넘어가꼬 천막을 치고 그랬나. 밥때가 오딨노? 리어카에 콩물 팔러 다니는 사람헌테 그거 한 그릇 묵꼬 허기나 면하는 기제.”

금엽 할매는 이제 어렵던 시절을 환하게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참 마이 좋아졌지. 6월 되모는 저기 새 시장에서 장사할 낀데, 저리 좋은 데서 장사하게 될 줄 우찌 알았것노? 손님들도 놀랄 끼구만. 다들 구경 마이 오라쿠소.”

차효열(62·상인회 수석부회장) 아지매

“임시 시장이라 마이 작지예? 생선 장사 35년 했던 것 중에 지난 1년이 참 마이 힘들었습니더. 그래도 우리 상인들도 인제 이사갈 날이 보이니까 힘이 납니더.”

차효열(62·상인회 수석부회장) 아지매./사진 박일호 기자

차효열 아지매를 두고 옆 사람들이 ‘참말 부자’라고 했다. 인심이 좋아 손도 크고 물건 보는 눈도 좋아 삼천포 안에서는 물론이고 전국 각지에서 제수용 생선 주문이 많아 단골만 해도 엄청나다고 했다.

“수산시장 터가 물양장이라꼬 항만부지였어예. 건물도 없이 소방도로에서 장사한 거지예. 그래도 자체적으로 상인회가 있어서 혼잡하지 않고 질서있게 해나왔습니더. 항만청에 땅 임대료만 주고, 건물은 사천시 껀데 임대료가 없어예. 대신에 들어올 사람을 공고해서 뽑지예.”

효열 아지매는 따로이 정기휴일이 없다고 했다.

“시장 안에 활어 상인들은 2주일 한번 씩 번갈아가며 쉬는데 선어 상인들은 쉬는 날이 정해지지 않았어예. 설이나 추석 대목장 지내고나면 한가하니까 한 10일씩 쉬는 사람이 많지예.”

허리를 쉴 새 없이 굽혔다 폈다하며 효열 아지매는 채반에다 도미, 민어를 가지런히 널었다.

“아침부터 3~4시간 말리모는 꾸득꾸득 묵기 좋을 만해지지예. 주문받아서 작업하는 것도 있고, 주문 없어도 구색을 갖춰놔야 허니까 미리 말려놓는 것도 있고 그렇지예. 이리 말리는 고기도 찌끄러기 고기가 아입니더. 갓 경매받은 싱싱헌 걸 해야 고기 맛이 있지예. 우리 시장 고기를 사람들이 마이 찾는 이유가 그런 점입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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