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설렘이 ‘한 마리 광어’처럼 펄떡대는 곳

멀리 광포만으로는 봄 볕살이 실비단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확장한 3번 도로는 사천톨게이트에서 삼천포항까지 40분 걸리던 것을 20분으로 줄여놓았다.

봄꽃들로 산과 들은 울긋불긋, 야단법석이었다. 하지만 정작 봄은 삼천포 앞바다에 와있었다. 먼 바다 끝으로부터 달려온 봄은 항구에서 숨을 돌리고 있었다. 정박한 어선들의 갑판 위 손질한 그물들이 봄햇볕과 희롱대고 있다. 바다의 봄은 좀 더 사실적이었다. 뭉근히 끓는 불덩어리를 안고 있는 듯했다. 오래된 항구를 지나 봄은 성큼성큼 시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삼천포수산시장.

이곳은 삼천포서부시장, 삼천포어시장 등 여러 명칭으로 불려왔지만 2010년부터 정식 명칭을 ‘삼천포수산시장’으로 발표했다. 오래된 작은 배들이 정박하던 물양장, 삼천포항의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이미 전국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시장이다.

“옛날부터 진주, 하동 온데서 사람들이 마구 왔었지예. 관광객들도 요기 와서 자기가 직접 수족관에서 고기를 골라가꼬 회를 떠서 그 자리에서 먹는 맛에 홀딱 반해서 자꾸 오게 된다고 하데예.”

생선건조./사진 박일호 기자

많은 관광객들은 삼천포수산시장의 제 맛은 ‘내가 골라서 먹는다,

집으로 가져간다’라고들 말한다. 이곳의 수산물은 제수용품이든, 활어회든, 건어물이든 전국 각지로 배달하고 있다. 물론 이건 포장 기술과 운송업체가 발달하면서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삼천포대교가 개통하고, 유람선 사업이 점점 활기를 띠면서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어 수년간 호황을 누리는 곳이기도 하다. 다른 업종들보다 이곳에서는 수산물인 활어, 선어, 어패류, 건어물이 대세다.

“아이구, 6월에 다시 함 오이소~. 우리나라에 이런 시장이 있나 싶을낍니더.”

시장바닥에서 만나는 상인들은 활기찼다. 사실 그동안 협소한 장소와 시설 노후화로 말 못 할 어려움을 겪기도 한 그들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해 시작한 시설현대화사업 공사가 지금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던 것이다. 공사 중 임시 시장에서 지냈던 고충도 끝이었다.

거기에다 지난 3월에는 중소기업청으로부터 ‘2013년 문화관광형시장’으로 선정돼 겹경사를 맞고 있었다.

4월 중순 찾아간 삼천포수산시장에는 봄 바다만큼 설렘이 있었고 봄꽃만큼 한껏 기대로 부풀어 있는 듯했다.

횟감을 직접 사서 ‘양념식당’으로 가이소

“아이고, 저리 가입시더. 6명이라꼬예? 6만원 어치 회 뜨가지고 저쪽 식당으로 가서 1명 당 6000원 정도만 더 내면 밥, 매운탕 다 묵을 수 있습니더. 내가 연락해 주지예. 그라모는 퍼뜩 와가지고 식당 사람이 가져갑니더.”

아지매는 활어수족관 안에 뜰채를 집어넣더니 펄떡대는 고기를 건져냈다. 광어 큰 놈이 퍼덕대는 바람에 수족관의 물이 사방으로 튕긴다.

“어이구, 이놈 힘도 좋네. 묵꼬나모는 기운이 펄펄 하겠십니더.”

회칼을 내리치는 아지매의 너스레에 놀라 뒷걸음치는 손님도 한바탕 크게 웃는다.

5분이 채 되었을까. 인근 식당에서 사람이 와서 다 손질한 회를 작은 배달통에 넣고 손님들을 식당으로 안내했다. 손님이 활어가게에서 횟감을 사오면 초장과 밑반찬을 마련해주고 매운탕을 끓여내는 일명 양념식당 이른바 ‘양념식당’이다. 활어가게와 양념식당의 나름 ‘원스톱서비스 시스템’이다. 이 방식은 30년여 넘게, 다른 수산시장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시작된 삼천포수산시장 내 활어시장의 특색이기도 했다.

생선건조./사진 박일호 기자

“지역마다 먹는 방식이 달라예. 서울 사람들은 뼈를 완전히 발라 살만 묵꼬, 요기 갱남 사람들은 뼈째 오독오독 묵는 걸 좋아허지예. 물론 뼈가 너무 억시모는 안되고. 참말 삼천포 고기가 맛있는데 값은 또 마이 싼 편이라예. 바가지 이런 거는 절대 없십니더. 한두번 장사할 것도 아이고, 상인들 의식이 인자 우리 수산시장 전체 이미지를 생각해예.”

상인들은 수족관을 들여다봐도 무슨 고기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주인한테 맡기라고 한다. 몇 명이 먹을 것인지 어느 정도 예산인지만 말하면 최대한 싸고 맛있게 양도 넉넉히 해서 준비해준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삼천포수산시장./사진 박일호 기자

“봄도다리는 지금은 뼈가 물러 먹을 수 있지만 5월 넘어가모는 뼈째 먹기는 부담스럽지예. 빨간 멍게는 6월까지, 날이 따뜻하면 돌멍게가 좋습니더. 뽈락은 우리 지역에서는 최고로 좋은 것으로 치는데 1년 4철 나옵니더. 개불은 삼천포개불이 최고라는 거는 다 알고 잇는 사실이고. 개불은 12월부터 5월까지 맛있습니더. 날씨 변화에 따라 다르지만 그래도 꾸준히 나옵니더. 요서 나는 털게가 대게보다 맛있다는 건 알고 있지예. 좋은 놈은 한 마리 3만원 하는 것도 있어예.”

오감만족 100%, ‘삼천포에 빠지다’

삼천포수산시장은 수산물이 90%다. 점포상·노점상 합해 400여 명이 되는 수산물 상인들은 크게 제수용 생선과 반찬으로 쓰이는 ‘선어 상인’, 죽방렴 멸치·쥐치포·마른 미역·김 등을 파는 ‘건어물 상인’, 대합·홍합 등 ‘어패류 상인’, 그리고 이곳 시장의 상징인 ‘활어 상인’으로 나누고 있다. 활어시장은 새벽 4시 경매가 시작되면 전국 각지에서 밤새 달려온 활어 운송차량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사진 박일호 기자

사천시는 현재 270여 개의 점포를 갖춘 삼천포수산시장을 ‘오감만족 삼천포’라는 콘셉트에 따라 시장의 고유한 문화와 특성, 그리고 스토리텔링을 개발해 다양한 먹을 거리와 즐길 거리, 볼거리, 살거리, 체험거리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사천시가 개발한 ‘이순신바닷길’ 중 삼천포대교에서 남일대해수욕장까지 5코스 ‘삼천포코끼리길’의 한 가운데가 삼천포 구항에 있는 삼천포수산시장이다. 이곳은 자동차로 5~10분 거리에 ‘아름다운 보물’들을 품고도 있었다. 코끼리바위로 이어지는 호젓한 바다 산책로와 동백꽃 붉은 옛이야기가 깃든 노산공원, 그리고 삼천포에서 지낸 유년 시절을 아리게 그려내었던 박재삼 시인의 문학관, 초양도·늑도로 이어지는 삼천포대교, 바다에 떨어지는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실안해안도로…. 이 모든 관광자원을 좌우 옆구리에 끼고 있는 것이 여기 삼천포수산시장이다.

둥글고 네모난 채반마다 깨끗이 손질된 생선들이 봄볕살에 젖은 몸을 말리고 있다.

“이 할마시가 와 자꾸 6월달을 꼽아삿노?”

“첫사랑이 온다쿠더나?”

“하~. 새 시장 이사가모는 첫사랑 오라고 하제, 머.”

상인회 사무실 앞, 봄볕살 아래 좌판을 펼쳐 놓은 70이 웃도는 아지매들이 주고받는 농에는 새 각시 연분홍 설렘이 있고 넉넉함이 있었다.

항구를 지나온 봄바람은 아지매들의 손등처럼 거칠지만 따뜻했고, 삼천포수산시장을 돌아 나와 지척에 있는 노산공원에 올랐다. 새로이 단장한 삼천포수산시장은 이제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노산공원 아래 정박해 있는 수십 척의 고깃배들 사이로 삼천포 구항은 한껏 춘심에 들떠 있다.

삼천포수산시장./사진 박일호 기자

5월이면 삼천포대교가 이어지는 초양도·늑도에는 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노란 꽃배’처럼 바다에 떠있을 것이다. 6월이면 삼천포수산시장은 50년 역사에서 새로운 변화로 출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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