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말 끝내기 상황서 홈 태그아웃 평생 못잊어…2군서 맹타 휘둘러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죠."

지난 3일 NC와 롯데의 시즌 2차전이 열린 마산구장.

NC는 9회말 터진 이호준의 극적인 동점타로 팀의 1군 첫 승을 목전에 뒀다. 9회말 1사 3루 상황에서 김경문 감독은 3루 대주자로 박헌욱(21)을 내보냈다.

평소 빠른 발을 자랑하고 주루 플레이에도 능해 당시 상황으로선 최선의 선택이었다.

타석에는 이날 3타수 3안타로 고감도 타격감을 자랑했던 이현곤이 등장했다. 깊은 외야플라이 하나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타석에 선 이현곤은 초구를 볼로 골라낸 데 이어 곧바로 2구를 공략했다. 이현곤의 배트에 공이 맞는 순간 타구는 외야로 뻗어나갔다.

NC 박헌욱이 지난 21일 마산구장에서 열린 퓨처스리그 삼성과 경기 직후 타격자세를 취하고 있다. /박종완 기자

당시 더그아웃에 있던 NC 선수단은 손을 들고 벤치에서 뛰어나왔고, 상대팀인 롯데 선수들은 경기가 끝났음을 직감하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3루 주자 박헌욱이 홈에서 태그아웃된 것이다.

잘못된 주루도 아니었다. 이를 악물고 뛰었지만 좌익수 김문호의 송구와 포수 용덕환의 블로킹이 뛰어났다. 결국 NC는 연장 접전 끝에 이날 경기에서 2-3으로 역전패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20일 가까이가 지났지만, 박헌욱은 그날 그 경기를 절대 잊지 못한다.

"평생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21일 마산구장에서 만난 박헌욱은 "그 경기 이후 팀 분위기는 초상집이 됐고, 나 역시 선수생활을 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라 겁이 많이 났다. 죽기 살기로 뛰었는데 허망하게 주루사 당하고 보니, 괜히 눈물이 흐르더라"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박헌욱은 "더그아웃에 들어가자 이현곤 선배가 기죽지 말라며 어깨를 두들겨줬지만 한동안 그 기억 때문에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경기가 끝난 후 박헌욱은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고 C팀(2군)으로 짐을 꾸렸다. 문책성이라기보다는 선발 투수인 에릭 해커를 1군에 포함하기 위해서였지만 어린 나이의 박헌욱은 흔들렸다. 한동안 좀처럼 마음을 다잡지 못했다.

타석에 들어서 방망이를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고, 주특기인 주루 플레이에도 자신감이 사라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그런 박헌욱은 지난 9일 퓨처스리그 롯데와 경기에서 올 시즌 첫 홈런포를 가동하며 부활을 알렸다.

비록 1군 경기는 아니었지만 롯데를 상대로 당시의 아픔을 깨끗이 씻으며 팀의 13-2 대승을 이끌었다.

현재 박헌욱은 퓨처스리그 9경기에 나서 14타수 6안타로 0.429의 높은 타격감을 기록 중이다.

붙박이 주전보다는 대수비, 대주자로 경기에 나설 때가 많지만 타점도 3점이나 올렸다.

기약 없이 1군행을 기다리는 처지지만, 박헌욱은 언젠가 1군 무대에 서면 그날의 아픔을 멋지게 털어버리겠다는 각오다.

"빨리 1군에 재진입해 팀 패배의 역적이 아닌 승리의 주역으로 기억되고 싶죠. 1군에서 언제 다시 부를지 모르지만 기회가 왔을 때 뭔가 보여주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만약 똑같은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다.

"죽으라고 뛸 겁니다. 그리고 경기를 반드시 끝내, 박헌욱 이름 석 자를 알릴 겁니다"

프로 2년차 겁 없는 신인다운 각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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