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방송, 지역 밀착만이 감동 줄 수 있죠”

친구 따라간 곳은 강남이 아닌 케이블 TV였다. ‘케이블 TV 1세대’ ‘케이블 방송의 싱크탱크’. 그를 따라다니는 별명이다. 한때 그는 20여 개 케이블TV를 경영한 대표였다. 지금 그는 통영에서 굴을 사고, 마산에서 기름을 넣으며 지역밀착방송을 만든다. ‘영원한 케이블방송 맨’, 그는 하나방송 대표 이덕선(51)이다.

얼마 전 TV 리모컨을 돌리다 지인이 나오는 지역방송 토크쇼 프로그램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는 사람이 TV에 나오니 채널을 고정하면서 순간 머릿속에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라는 동요 가사가 떠올랐다. 친구, 동네사람, 지역민이 나오는 지역방송은 누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할까라는 궁금증이 밀려왔다.

지역케이블TV 하나방송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에 있었다.

4층에 자리한 대표이사실에서 만난 이덕선 대표는 더 좋은 인터뷰 장소가 있다며 앞장섰다.

“이것이 2013년 하나방송 구호입니다. 방 앞에 붙여두고, 오가며 마음속으로 다짐합니다.”

그는 대표실 앞에 붙어있는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라는 펼침막을 가리키며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어진 발길은 ‘하나도서실’ 앞에서 멈췄다. 도서실이 인터뷰하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가 자신감 넘치는 어투로 말했다.

“이번에 새로 마련한 사내 도서관입니다. 좋은 방송을 위해 마음의 양식을 듬뿍 얻으려고 만들었죠. 방송국 1층에는 오픈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이곳은 유동 인구가 적은 곳이죠. 장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직원들 사기도 북돋우고, 또 가입 시청자를 위한 사랑방 공간 역할을 위해 만들었죠.”

‘친구 따라 케이블 TV를 가다’

경북 안동 출신인 이 대표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거쳐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을 전공했다. 첫 직장 생활은 삼성물산이었다.

이덕선 하나방송 대표/ 남석형 기자

그 후 한화그룹 한화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5년간 근무했다.

그러다 선임연구원 생활을 정리하고 유학을 떠나려 했다. 좀 더 깊이 있는 미래를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명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고 했던가. 뜻하지 않은 친구 부탁이 이 대표 삶의 방향을 바꿔 놓았다.

“1992년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데, 친구가 찾아왔어요. 케이블TV사업이 전망 밝다면서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달라는 거예요. 대신 미국 유학 비행기 표 값을 대 주겠다면서 말이죠. 공짜 비행기 표 얻을 요량으로 케이블방송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주었죠.”

비행기 표 대신 만들어준 사업계획서는 인정받았다. 정부로부터 케이블방송 사업 허가를 받은 것이다. 그러자 친구는 더 큰 제안을 하기 위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유학비용을 4년간 대 준다고 했지요. 조건은 1년간만 사업을 도와 달라는 거예요. 솔깃했지요. 형편도 어려운데 1년만 도와주면 유학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으니, 결국 수락했죠.”

이 대표의 미국 유학 꿈은 거기서 멈추었다. 친구 따라 발 들여놓은 케이블TV업계에 아예 눌러앉게 된 것이다.

업계 ‘1세대’, 그리고 ‘싱크탱크’

이 대표 프로필 조사를 해 보니 ‘케이블TV 산 증인’이라 부를만했다.

1993년 케이블 방송에 몸 던졌으니 올해로 20년째다. 강산이 두 번 변한 세월이다.

이덕선 하나방송 대표/ 남석형 기자

“케이블방송 사업이 신천지에요. 초기에 고생도 했지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우리나라에 케이블TV가 거의 없는 상태였기에 신규사업이었습니다. 선로를 구축하고, 가입자 확보하는 것이 즐거웠죠. 무엇보다도 직원들과 호흡하며 회사를 경영한다는 보람이 유학 꿈을 접게 했죠.”

현재 유료방송 시장은 2000만 세대가량 되는데, 케이블방송 가입자는 75%에 해당하는 1500만 세대 정도 된다.

하지만 초창기 케이블방송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77개 권역으로 나뉜 방송구역에서 5년간 가입자는 100만도 채 되지 않았다. 당연히 사업 실패를 겪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 대표는 직원과 합심해 그 고비를 넘기며 ‘케이블TV 1세대’라는 별명을 얻었다.

“우리나라 케이블TV 종합유선방송은 지방자치제 도입과 맥을 같이합니다. 지방자치 시대에서는 지역방송이 지역 여론 조성에 큰 몫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케이블방송의 의미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또한,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방송에서 쌍방향 소통을 가능케 하면서 방송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도 일조했습니다.”

그는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며 혼란을 겪던 시기에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정책분과위원장을 6년간 맡았다. 위성방송과 케이블방송이 대립하던 시기, 다양한 정책 제시로 케이블방송협회를 대변하며 ‘케이블 방송 싱크탱크’란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업계 정책통이다.

케이블TV 제국을 꿈꾸다

친구와 함께 자본금 30억 원에 서울 도봉구에서 1개 SO(System Operator·종합유선방송사업자)로 시작한 큐릭스는 2005년 809억 원 매출을 기록했다. 건실한 중견 케이블방송 SO로 자리 잡은 것이다. 설립 후 10년 연속 순이익 흑자를 달성했고, 1999년 업계 최초로 코스닥에도 등록했다.

누구보다 케이블방송을 아끼고 사랑하며 고민하던 그는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케이블TV가 계속 성장하려면 통신사와 경쟁할 만큼 덩치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방송·통신 영역이 급격히 융합되던 시기, 그는 케이블방송 몸집 키우기를 위한 흡수·합병을 실행에 옮긴다.

“케이블방송이 성장하려면 결국 통신사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KT와 SKT에 대응할만한 덩치를 키우려고 결단을 내렸죠. 제가 경영하던 큐릭스 7개 SO와 티브로드 13개 SO를 합쳐 가입자 400만인 전국에서 가장 큰 케이블방송사가 됐죠. 케이블방송 파이를 키워 변화에 대처하려고 했던 거죠.”

그러나 그가 꿈꾸던 케이블방송 제국은 암초에 부딪히고 말았다.

막상 태광그룹에 속해 있던 티브로드에서는 전문경영인 역할만 했지, 일에 대한 보람은 얻지 못했다. 서로 다른 기업 문화를 극복하지 못한 것도 그에겐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시 찾아온 ‘터닝 포인트’

하나방송과 인연을 맺기 전까지 이 대표는 마산을 딱 두 번 방문했다. 결혼식과 장례식에 참석한 것이 전부다. 연고도 없고, 인맥도 없는 이 황무지나 다름없는 곳에 왜 왔을까?

티브로드를 자진해서 사퇴한 그는 서울에서 케이블방송 사업을 구상했다. 하지만, 케이블 방송 사업이 쉽게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므로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던 그에게 마산 하나방송에서 사업인수를 제안했다. 케이블방송 산증인인 그는 망설임이 없었다. 정말 처음으로 친구도, 전문경영인도 아닌 본인 이름을 걸고 사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덕선 하나방송 대표/ 남석형 기자

“다시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죠. 제가 가진 자금으로 주식을 인수하고, 대표이사가 되는…. 아무튼 전국에서 제일 큰 SO도 운영해 보았지만, 규모는 작아도 알차고 좋은 케이블방송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사업규모 면에서는 이전과는 차이가 크게 났다. 하지만 자신감은 오히려 충만했다. 그동안 갈고 닦은 케이블방송 사업 노하우를 충분히 발휘할 기회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9년 9월 1일 아날로그 73채널·디지털 5채널로 개국한 하나방송에 이 대표는 2010년 4월 13일 취임했다. 이 대표에게도, 하나방송에도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여전히 열릴 것 많은 보물상자”

이덕선 대표는 케이블방송 예찬론자다. 더욱이 앞으로 케이블방송의 장래도 밝다고 본다. 다소 의아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미디어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IPTV, 모바일, SAMT V 등 다양한 미디어 매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과연 생존 전략은 뭘까?

“가정마다 방송이나 통신을 주고받을 수 있는 케이블망을 통해 정보고속도로를 깔았습니다. 이 망은 방송, 인터넷, 전화 등을 저렴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사실 케이블 요금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쌉니다. 심지어는 아프리카보다도 싸죠. 월 6000원 정도니 말이죠. 가격이 싸다 보니 경기 영향을 덜 받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노인 분들에게는 TV가 제일 효자입니다. 제일 가까운 곳에서 그분들 벗이 되어 주는 거죠. 1500만 세대가 케이블방송을 통해 TV 시청하고 있는 현실이 말해주는 거죠.”

케이블방송 매력을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취임 이후 지난 3년간의 성과도 풀었다.

“지난 3년간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흑자 구조로 변환하여 무차입 경영을 실천하는 것과 사업구역인 마산, 고성, 통영, 거제에 광케이블을 전부 깔았다는 것이 큰 성과입니다.”

하나방송 홈페이지에는 재무현황 제표를 누구나 한눈에 볼 수 있게 공개하고 있다. 이 대표 자신감은 결코 헛말이지는 않아 보인다.

지역밀착만이 살길이다

지금 이덕선 대표 머릿속에는 오직 ‘콘텐츠’밖에 없다. 하나방송 만
이 만들 수 있는 콘텐츠를 찾는 것에 몰두하고 있다.

콘텐츠 기반은 지역이다. 제작을 위한 준비작업도 마쳤다. 하나방송 구성원은 70여 명이다. 모두 지역민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다고 한다.

“지상파가 하는 것을 흉내 낼 필요는 없습니다. 촌스러워도 우리 이웃이 나오고, 가족이 나오는 방송이어야 하죠. 우리 지역을 사랑해야 좋은 콘텐츠가 나오죠. 지역과 밀착하지 않고서는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생활에서도 녹아들어야 합니다. 통영에서 굴을 사고, 마산에 와서 기름을 넣습니다. 경제, 사회, 문화, 정치 속에서도 지역밀착을 생각합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죠.”

그는 지역 콘텐츠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이덕선 하나방송 대표/ 남석형 기자

“올해 몇 가지 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먼저 다문화 가정에 관심을 두려고 다문화재단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이사회에서 통과도 됐고요. 일회성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이 필요한 방송을 제작, 보급하는 거죠. 또 하나는 지방자치 활성화 프로젝트를 준비 중입니다. 우리 지역 유능한 일꾼들을 발굴하는 것도 지역 공공성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대표는 마산이 창원시로 통합돼 행정구역과 방송구역이 같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은 올해 10만 가구 가입을 달성해 더 질 좋은 방송을 펼치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방송법에는 지역 시청자가 언제든 자신의 주장·의견과 제작물을 방송사를 통해 송출할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퍼블릭엑세스 개념인데요. 하나방송은 제작까지도 도움을 드릴 겁니다. 지역민이 없으면 지역케이블도 없는 거죠.”

하나방송 건물에서 제일 먼저 문 여는 곳은 1층 하나카페다. 언제든 방문을 기다리며 열려있는 카페처럼, 하나방송의 문도 열려있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 대표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하루에 TV는 몇 시간 정도 보시나요?”

“한 시간 정도 모니터만 합니다. 노인 분들에게는 TV가 효자지만, 전 아직 효자가 필요 없어요.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요.”

그는 아직 젊다. 지나온 20년은 앞으로 할 일에 비하면 너무 짧다. 이 대표는 지금 ‘제2의 케이블방송 인생’을 지역민과 함께 펼쳐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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