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향우들, 출신지역 자부심 강해…”

성장의 기억은 한 사람의 인생이다. 누군가에게 슬픈 기억은 타인에게 삶의 희망이 되기도 하고, 성장의 거름 역할도 한다. 마음에 드는 일을 한다는 것, 그것이 직업이 아닌 삶의 목표이자 희망이 된다면 그 또한 즐겁지 않을까. 안전행정부에서 근무하는 박성민(37) 서기관이 전한 성장의 기억은 독자들에게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계기도 되겠다.

3월 초, 4월호 <피플파워> 인터뷰를 위해 국회에서 만난 박 서기관은 경남 창녕군 장마면에서 태어났고, 돌이 지나서 부모님과 마산으로 이동했다. 그는 고향을 소개하며 “완전히 시골에서 태어났어요. 저희 아버지가 7남매 장손이고, 저도 장남입니다. 누나와 저 둘이지요. 병원도 없어 시골집 작은 방에서 산파의 도움으로 태어났어요. 시골스러운 모습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박 서기관은 ‘부모님에 대한 기억’을 많이 이야기했다. 1970~1980년대의 도시화로 농촌사회를 떠나는 분위기에 대한 자세한 묘사도 덧붙였다.

박성민 안전행전부 서기관/ 사진 조문식 기자

그는 “시골에서 도시로 나오다 보니까 유복한 삶은 아니었어요. 부모님이 공장에 다니셨는데 1980년대 초반에 아버지께서 작업복에 기름때 묻어 퇴근하시는 모습, 2교대 하고 오시면서 간식으로 준 빵과 우유를 자식들 먹으라고 고스란히 가져 오신 모습 등이 떠오르네요”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머니는 마산 어시장에서 생선장사도 하셨어요. 길거리 순대를 먹으면서 바닷바람 맞던 기억, 부모님 퇴근 시간 때 육교에서 기다리고 있던 모습. 그러면서 다른 공장 노동자들이 퇴근하던 모습 등이 활기차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현재는 가족들이 떨어져 살다 보니까 그 때가 그립네요”라며 웃음을 보였다.

박 서기관은 기억 속의 경남 모습에 대해 “마산에 수출자유지역, 창원 국가산업공단이 들어섰을 때 그때가 도시화가 진행될 때고, 탈농촌화 할 때지요. 1970년대 중·후반이었네요. 저희 부모님도 농촌을 나와서 산업역군으로 일했어요. 장남이다 보니까 주말이나 명절에는 고향에 가고, 버스로 먼지 날리는 길을 지나 시골에 가던 기억과 방학을 시골에서 보낸 기억들이 있어요”라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어떻게 보면 부모님께서는 힘드셨겠지만, 저에게는 행복한 기억이었습니다. 창원공단의 최초의 모습도 기억이 납니다. 우리 지역 도시의 성장과정을 학창시절 목격하며 자란 것이 기억에 남지요”라며 고향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 학창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요? 요즘 창원을 가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초등학교를 창원역 앞에 있는 창원 중앙초등학교를 나왔어요. 지금은 마산으로 옮겼지요. 창원이 도시화 되는 과정도 생생하게 겪었어요. 논과 밭이던 초등학교 앞이 중학교를 갈 때는 도시 정비로 도로가 생기고, 건물이 들어섰지요. 양덕중학교와 마산 합포고등학교를 나왔어요. 고등학교 시절은 창원시가 커지는 시절이었고, 마산 창동에 나가서 미팅을 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가 남녀공학이었어요. 마산지역 공립인문계고등학교 중에서 최초의 남녀공학이었지요. 창원의 성장과정, 마산의 쇠퇴과정 등을 학교를 다니면서 피부로 겪었어요. 한참 고등학교 다닐 때는 창동에 사람이 많고, 주말에 학교 마치고 창동에 버스 타려고 내려가면 웬만한 친구들을 만날 정도로 핫 플레이스였어요. 언젠가 여름휴가 때 서울사람이라 마산을 잘 모르는 집사람에게 창동시내를 구경시켜 주려고 데리고 나갔는데, 썰렁해서 예전 기억을 되살리기에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 마산에 대한 자부심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민주화 운동의 산실이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어린 시절 역사와 철학에 좀 관심이 있었습니다. 3·15와 부마민주화운동 등의 내용들을 중·고등학교 때 미리 알고 있었어요. 어린마음에 의협심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지역의 민주화 정신에 대해서 굉장히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바른 소리를 하고, 정의를 세우려는 우리 지역의 좋은 기질에 대해 많은 영향을 받았고, 공직에서도 영향을 받고 있지요. 제가 수능 1세대였습니다. 제가 성(균관)대를 다니게 됐어요. 저희 어머니께서 학교 앞에 하숙집을 잡아 주고, 이불 등을 넣어 준 후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려가시는데…(제가)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고,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감회가 새로웠어요. 남몰래 눈물도 훔치고, 첫날밤에 자는데 잠도 안 오고…새벽에 밖에 나가면 학교 뒷산에 와룡산(북악산 앞자리)이 있는데, 서울 불빛을 봤어요. 고향 떠나온 설움도 있지만, 밝은 불빛처럼 서울생활에서 불빛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고향에 언젠가 금의환향 할 수 있고,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어린마음에….

- 대학생활은 어떻게 기억하나요?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어요. 군대를 1사단 수색대를 나왔어요. 1997년에 제대를 했습니다. 제가 제대할 때, 병장 말년에 미군 병사들과 접할 기회가 있었어요…제대 후 어학연수를 준비했는데, 1997년 10월부터 IMF가 왔지요. 환율도 뛰고 해서 좌절했어요. 취업도 안 되는 시기고 해서 방황을 했지요. (당시) 작은 고모부께서 공직에 계셨는데 저를 따로 불러다 공직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공직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이 있었어요. 저는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냐는 부정적인 편견이 있었는데, 고모부께서 공직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어려운 사람이나 기업 활동을 하는 사람을 도와주면서 사회적으로 선순환을 할 수 있는 최초의 기반이 공직이라는 의미였지요. 사회봉사를 하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고 잘 살게 하는 것이 공직이기 때문에 나쁘지 않다고 설득하셨어요. 그 다음날 마음을 고쳐먹고, 도전의식이 생겼어요. IMF로 인한 마음의 변화였을 것으로 보여요. 사회적으로는 위기였지만, 제게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됐지요.

박성민 안전행전부 서기관/ 사진 조문식 기자

- 행정고시 준비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제가 대학원에 다니면서 합격을 했어요. 2002년 시험에 떨어졌을 때는 좌절이 컸지요. 부모님이 서포트하기도 쉽지 않고, 오히려 부모님께서 ‘될 때까지 해보자. 잘 되지 않겠느냐’는 격려를 해 주셨어요. 합격이 부모님께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다시 책을 잡았고, 2003년에 합격을 했지요. 제가 공부를 할 때 지방행정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제가 서울사람이었으면 아니었을 텐데, 와룡산에 올라가서 봤던 관심들이…우리 사회가 수도권 및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까 당연히 지역도 서울만큼 편안하고 도시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는 균형 있는 사회가 돼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제가 지방행정 분야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어요. 합격을 하면 당시 행정자치부의 내무행정 분야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굉장히 많았어요. 운이 좋아서 현재까지 그 분야 일을 해오고 있는 것이지요. 제 보직 경로가 대부분 자치행정, 자치제도, 지역경제 등을 맡아 일을 해왔지요. 지역에 대한 문제, 지역에서 어떻게 풍요로운 지역주민들의 삶을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어요. 당연히 우리 지역, 우리 고향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 통합창원시 출범 등 지역현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최근에 마산·창원·진해가 통합돼서 통합창원시가 됐을 때, 나름대로 마음이 좋았습니다. 중학교 때 구 창원에 이사를 와서, 부모님은 여전히 구 창원지역에 살고 계시죠. 저는 학창시절을 마산에서 다 보냈습니다. 진해는 주로 소풍가던 곳이네요. 이 세 지역의 학군도 같았고…다른 지역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우리가 하나의 대도시권으로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모멘텀(힘)이 돼서 발전가능성 측면에서 중요한 모멘텀이고, 환영할 만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지역 내 반대 여론을 보자면 통합 이후 갈등이 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애향심의 발로로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치유과정을 거치고 나면 굉장한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번에 NC가 생기면 팬이 될 생각입니다. 벌써 팬이지요. 저는 사실 진해도 괜찮다고 봐요. 사람이 다니면 길이 생기니까. 인프라를 이야기 하는데, 다니면 길이 생기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요. 문제는 시 재정의 문제가 크지 않을까 라고 봅니다. 세계 유수의 야구장들이 바다를 끼고 있지요. 지금 육군대학 부지가 황량하지만, 잘 정리하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구장이 되지 않을까요? 당장의 갈등을 치유하려다 보면 돈이 많이 듭니다. 전국적으로 재정이 원만하지 않은 상황에서 시간을 길게 본다면 진해야구장도 현 시점에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박성민 안전행전부 서기관/ 사진 조문식 기자

- 지역에 바라는 점이 있나요? 지역을 위해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안전행정부로 개편되면서, 저희 같은 실무 공무원 입장에서는…대통령께서나 장관께서 생각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실제로 정책현장에서 제대로 구현될 수 있도록 법 제도 개선이나 현장 소통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지역이 역사적으로 볼 때나 현대사로 볼 때 자부심이 있어요. 행정안전부에도 향우들이 많고, 평판도 좋아요.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분들이 많지요. 그 자부심으로 지역에 대한 문제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지요. 우리 지역 출신들이 그런 기질이 강해요. 지역자원이라고 하는 기질이나 환경 등이 굉장히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라고 봅니다.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 같이 공유해서 성공하는 지역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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