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지역민이 공감할 만한 소재를 재미있게"

우리가 아는 미디어 관련 인사는 서울 사람들이다. 유명한 아나운서나 기자, PD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우리 지역에도 다양한 미디어 매체가 있고, 그곳에도 상당한 능력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을 찾아 나섰다.

얼마 전 금동수 KBS창원총국장을 만났을 때, 금 총국장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배용화 제작부장을 만나봐라”고 했다. 부임한 지 한 달도 안 된 총국장이 단번에 추천할 정도라면 이미 배용화 제작부장은 이쪽 바닥에서 ‘유명인사’란 말이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유명한 환경다큐인 <동물의 건축술>로 이미 ‘코리아콘텐츠어워드’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옳다구나 싶어 배용화 KBS창원총국 TV제작부장(KBS공채 22기•42)을 만났다.

배용화 TV제작부장./임종금 기자

자유로운 만큼 책임 져야 하는 직업

합천 출신인 배용화 부장은 원래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곧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셋째 누나가 KBS공채 시험에 원서를 대신 내는 바람에 PD(프로듀서)가 됐다. 그렇게 PD가 됐지만, 18년 동안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한다. 도대체 PD가 얼마나 좋은 직업이길래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할까?

“PD는 자기가 기획하고 아이템을 선정해서 자기 의도한 바를 펼칠 수 있는 독립된 존재입니다. 공장으로 비유하면, 제품 기획부터 최종검수까지 모든 것을 총괄하는 직업입니다. 또한 방송을 특정한 포맷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의 창의력과 아티스트적인 상상력을 총 동원해서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모든 역량을 최대한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직업이 PD입니다.”

몽골 사막에서 촬영./배용화 제작부장 제공

그러나 이 또한 동전의 양면이다. 장점이 큰 만큼 반대급부도 만만찮다.

“모든 과정을 PD가 관장해야 하기 때문에 책임도 함께 져야 합니다. 게다가 혼자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팀 전체를 책임져야 합니다. 또한 창의적인 자질과 역량이 안 나오면 엄청나게 피곤하고 힘들어 집니다. 열정이 없으면 안 되는 직업입니다.”

그 말만으로는 막연했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2010년 3월에 방영된 <KBS스페셜-10대,욕에 중독되다>라는 프로를 들었다.

“당시 저는 서울 본사에 있을 때 만들었는데, 우여곡절이 정말 많았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것을 제가 하겠다고 나서서 욕에 대한 모든 자료를 모으고, 학교 방송부 학생들과 팀을 짜서 실험도 하면서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심의실에서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공영방송에 욕이 그대로 나가도 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심의실장과 심의위원이 내려와서 직접 편집본을 봤습니다. 심의실에서는 욕이 나오는 부분에 ‘삐-’처리를 하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시청자들이 얼마나 심각한 지 알 수 없게 된다. 제 기획의도를 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의실과 절충을 했다. 초반 10분 까지는 욕이 그대로 나가고, KBS스페셜 최초로 ‘15세 관람가’로 하고, 끊임없이 자막으로 기획의도를 설명해 시청자들이 ‘오해’ 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고, 내보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었다.

이후 그가 어렵사리 내 보낸 <KBS스페셜-10대,욕에 중독되다>는 교과부의 주목을 받아 많은 학교에서 상영됐고, 최근까지도 시청한 선생님이나 학생, 관계자들에게서 고맙다는 전화가 온다고 한다.

몽골 사막에서 촬영./배용화 제작부장 제공

지역과 현장에서 답을 찾는다

그는 지역에서 만든 프로그램 중에서 <현장기록21-여양리 학살의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2006년에 만들어진 이 프로그램은 전국의 주요 미디어들이 관심을 둔 ‘여양리 학살사건’에 대해 다룬 프로그램이다.

“증언자가 산에 올라가다가 돌무더기가 있는데 여기에 사람들을 묻었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제가 손으로 돌들을 직접 다 들어냈죠. 한 70~80센티미터를 돌을 걷어내면서 내려가니까 뼈가 나오는 겁니다. 덕분에 그날 제 손톱이 다 닳았지만, 그곳을 기점으로 여양리 발굴 작업이 이뤄진 겁니다. 또한 유일하게 피학살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제가 갖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와 관련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습니다.”

<경남 100경 완전정복> 촬영 중./배용화 제작부장 제공

그는 지금 목요일 저녁 8시 KBS 1TV를 통해 방영되는 <경남100경 완전정복>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한데 ‘100경’이라는 이름이 식상하다. 경남도에서도 ‘경남 41경’을 선정했으며, 시군마다 비슷한 이름을 붙이고 있다. 뭐가 다른 걸까?

“기획회의를 2달 동안 했습니다. 저는 지역 사람들이 알아주고 기억되고 소통하고, 나중에 화제나 화두가 되는 프로그램이 지역밀착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단순히 경치 좋은 곳을 찍는 게 아닙니다. 그곳 주민들의 삶과 생태와 음식, 특징 등을 모두 훑는 종합 프로그램입니다.”
그렇다면 ‘100경’은 어떻게 고르는 걸까?

“100경 선정위원회가 있습니다. 이 위원들은 기자, 교수, 사진작가, 여행블로거 등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들의 추천을 통해 80곳 정도를 고르고, 나중에 시청자의 제보를 받아 또 10~20곳 정도를 고를 생각입니다. 이를 통해 뻔한 곳이 아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색다른 곳을 많이 찾아내고 있습니다. 또한 최대한 고화질로, 되도록 풀HD 영상으로 제작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경남100경이 끝나면, 경남100인(사람), 경남100미(맛), 경남100설(설화) 등 족히 10년 기획을 잡고 꾸준히 창원KBS에서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이를 통해 경남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알리는 거죠.”

이렇듯 그는 지역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럼 지역 미디어가 안은 가장 큰 난관은 무엇일까?

“지역 미디어 뿐만 아니라, 지역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인재’입니다. 아무리 지방분권이니 지방자치니 시스템을 구축해도 인재가 있어야 돌아갑니다. 창원총국에 있는 직원들도 경남이 고향이지만 대학은 서울에서 다닌 사람이 많습니다. 경남에 뿌리를 두고 애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절실합니다. KBS창원총국에도 많은 도내 대학생들이 응모도 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과 현장에서 고민하고 답을 찾으려 애써야 하는데, 그걸 하지 않으려는 이들이 늘어납니다. 안타깝습니다.”

몽골 사막에서 촬영./배용화 제작부장 제공

BBC 능가하는 다큐 만들고 싶다

그의 ‘현장 중심주의’가 빛을 본 것이 2010년 코리아콘텐츠어워드 대상을 받은 <동물의 건축술>이다. 그의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 진 것일까?

“그야말로 저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은 작품입니다. 제작기간은 10개월. 제작비는 30억 이상이 투입 됐습니다. 처음에는 새들의 둥지를 촬영한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새 둥지가 체계적으로 만들어 지는 것을 보고 5대륙 6개국을 뒤지며 여러 동물들의 ‘건축능력’을 확인했습니다.”

<동물의 건축술> 제작후기는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동물의 건축술’을 검색하면 더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제작과정보다 기자의 눈길을 끈 것은 <동물의 건축술>로 ‘코리아콘텐츠어워드 대상’을 받을 때, 그의 수상 소감이었다.

<동물의 건축술> 벌새공원 촬영 현장./배용화 제작부장 제공

“영국 BBC를 능가하는 다큐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동양에서는 NHK, 서양에서는 BBC를 모델로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제작기술이나 다큐의 품질은 거의 95% 정도 NHK를 따라갔다고 봅니다. NHK는 90년대 방식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KBS가 아시아 각지에서 시장을 뚫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자신감이 실렸다. 적어도 NHK는 따라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느껴졌다. 문제는 BBC인데, 같은 사람이 만드는 건데 뭐가 다른 걸까?

“일단 기획력이나 제작비, 스케일부터가 다릅니다. 한 가지 예를 들까요? <동물의 건축술>에서 아프리카에 있는 200만 마리 흰개미집을 우리는 ‘촬영’했습니다. BBC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높이만 6~7미터에 달하는 개미집이다. 세계 최대의 ‘동물집’을 부수지는 못할 것이고, 또 그렇다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그걸 떼어서 가지고 오지도 못할 것이다.

“제 생각에 BBC라면 200만 마리의 흰개미들을 모아서 흰개미들이 직접 집 짓는 것을 그대로 재현하도록 할 것 같습니다. 생각하는 틀이 다르죠. (BBC는)동물들의 건축술을 통해 인류의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 재앙이 닥쳤을 때 어떤 동물의 방식이 더 생존에 유리한 지 확장해 나갔을 겁니다. 동물의 건축술도 촬영기법은 BBC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케일이나 디테일, 지향점에서 아직 차이가 나는 겁니다.”

이 외에도 그를 대표하는 작품은 2007년부터 제작된 KBS창원총국의 간판 프로그램인 <소화제>다. 그러나 그는 5개월 만에 서울로 발령이 났고, 이후 창원총국에서 그의 기획을 잘 살려 방송대상을 포함해 무려 30여 개의 상을 받았다. 지역방송국에서 받을 수 있는 상은 모두 다 받았다고 한다.

“우리사회는 물질적으로는 발전했지만, 정신적인 발전은 느립니다. 그 간극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심각합니다. 저는 이를 ‘정신적 소화불량’에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소화제>는 이런 소화불량을 해소하고, 소소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하나씩 해결책을 찾아보는 겁니다.”

쉽게 공감하고 쉽게 볼 수 있게

말은 쉽지만 사회문제를 단순한 도덕교과서처럼 ‘~하지 말자, 우리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식은 너무 식상하다. 그의 돌파구는 어떤 것일까?

몽골 사막에서 촬영./배용화 제작부장 제공

“무심결에 넘어갔지만, 공감할 만한 소재를 찾으면 됩니다. 예를 들어 학교 교가(歌)를 들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교가들을 들어보니 노래가 천편일률적입니다. 주변에 산 이름 들어가고, 느낌도 비슷비슷 합니다. 왜 그럴까요? 조사해보니 해방 직후 학교가 급속히 늘었는데, 교가를 작곡할 사람은 없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몇몇 사람에게 교가를 맡기다 보니 비슷비슷한 포맷으로 만들어진 것이죠. 심지어 어떤 곳은 작곡을 하지 못해 일제시대 군가에다가 가사만 붙여서 만든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함양의 작은 분교부터 교가를 바꿔보고, 바꾼 교가를 가지고 동요대회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18년 동안 현장에서 우리 사회 곳곳을 들여다 본 사람이다. 기자들이야 각자 자기가 맡은 출입처가 있지만, 그는 우리 사회 전체가 ‘출입처’다. 그가 본 우리 사회가 궁금했다.

“우리 사회의 최대 문제를 정리한다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3초 쯤 고민하다가 이런 대답을 내놨다.

“사람들이 부당한 것에 대해 분노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 문제가 태산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얼마 전에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습니다. 20층이 넘는 고층아파트에서 아파트가 여러 날 고장 났으니,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그래서 아파트 대표자를 탄핵하자는 서명지도 돌기도 했습니다만 결국 흐지부지 넘어갔습니다. 결국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사람들은 ‘바로 잡으려 해도 잘 안 되더라’며 그냥저냥 넘어가는 것이 많습니다. 부당한 것에 분노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건데, 이제는 그게 더 어색한 겁니다.”

그의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이럴 때 일수록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TV는 기본적으로 둘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대중을 교화의 대상으로 보고 일방적으로 ‘가르쳐야’ 하나? 아니면 대중을 교감과 소통의 힘으로 봐야 하는가? 아직까지 TV는 일방적입니다. 전달하기만 하죠. 이렇게 해서는 한계가 명백합니다. 뻔한 프로그램만 만들고 맙니다. 시청자들이 반응을 나타내주고, 피드백을 보내야 합니다. 솔직히 제작자도 가만히 사무실에만 앉아 있다 보면 세상 어찌 돌아가는지 모릅니다.”

맞는 말이다. 결국 이것도 사람의 문제다. 하지만, 일단은 대중들에게 다가가려는 시도가 없으면 피드백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저는 무조건 재미있게 만들려고 합니다. 웃겨서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쉽게 공감하고 쉽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보다 간접적으로 여운을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제 TV를 보고 난 후에는 게시판에라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다. 그가 있는 한 시청자가 남기는 의견 하나하나가 헛되지 않을 것이고, 더 나은 프로그램이 만들어 질 것이고, 언젠가 우리도 BBC부럽지 않은 공영방송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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