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료원 사태 진실 혹은 거짓](1)의료원장 감금 폭행 여부

진주의료원 폐업이라는 초강수를 빼 든 경남도가 9일 〈진주의료원 노동조합 실상〉이라는 책자까지 내면서 노조와 진주의료원 폐업에 반대하는 제 세력을 압박하고 나섰다. 책은 크게 △진주의료원 노조파업 △진주의료원 경영개선 요구사항 △진주의료원 노동조합 실상이라는 세 개 챕터로 구성돼 있는데, 가장 앞쪽에 지난 1999년 7월 9일부터 8월 4일까지 27일동안 벌어졌던 노조 파업을 다루고 있다.

특히 '노조의 비인간적인 행동사례'라면서 의회속기록 및 본인통화를 근거로 '원장 감금·폭행'이 있었다고 적시했다. 당시 현장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99년 7월 1일 자로 진주파견 발령을 받았던 기자가 현장에서 생생하게 취재하고 보도했던 취재수첩과 관련 사진, 기사와 기억을 종합해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본다.

1999년 8월 9일. 진주경찰서 기자실에 있던 기자는 노조 관계자로부터 급한 전화를 받고 의료원으로 달려갔다. 당시 진주경찰서와 진주의료원은 달려가면 1~2분이면 이를 수 있는 지척에 있었다. 2층에 있던 원장실 앞에서 대치하고 있다는 전화였기에 곧바로 2층으로 달려갔는데, 원장실 앞에서 노조원과 당시 강 모 원장이 대치하고 있었다. 아니, 조합원들에게 강 원장이 에워싸여 있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몇 시간째 대치하다가 병원을 빠져나가려는 강 원장을 조합원들이 막고 있었다. 강 원장은 의료원을 빠져나가려는데 조합원들이 막아서니 답답했던 듯, "딸 같아서…"라고 말했는데 한 여성 조합원이 맞받아쳤다. "원장님은 딸이 다니던 직장에서 이렇게 갑자기 인사 났다면 어떻게 하겠어요?"하고 따지자 갑자기 '딱'하고 따귀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후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마구 주먹을 휘두르는 강 원장과 피하려는 조합원, 막으려는 조합원이 뒤엉켰다.

당시 취재수첩에는 "정○○(28) 안경 깨지고" "사진 찍는다고 폭행" "발로 국부 차고" "10여 명 폭행" 이런 메모가 남아있다.

1999년 8월 9일 오후 진주의료원 원장실 앞 복도에서 조합원들에게 가로막힌 강모 당시 원장이 조합원 사이를 헤집고 빠져나가려는 와중에 한 조합원이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는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이 상황은 〈경남도민일보〉 1999년 8월 10일 자 15면에 사진과 함께 보도됐다. 그러고 10일 오전. 강 원장의 항의를 받고 원장실에서 강 원장을 만났다. 자신이 폭행한 것이 아니라는 게 주된 주장이었지만, 현장에서 처음부터 지켜봤던 기자의 눈마저 부인할 수는 없었기에 자신도 폭행당했다는 얘기를 길게 했다. 하지만 그 일로 상처를 입었다거나 진단서를 끊었다거나 그런 얘기는 없었다. 그게 1999년 8월 9일 진주의료원에서 일어났던 상황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노조 파업은 8월 5일에 끝났다. 그로부터 나흘 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처럼 폭행사태까지 벌어졌을까? 근원은 1년 전까지 거슬러간다. 1998년 노조는 경영능력을 이유로 강 원장 퇴임을 요구한 일이 있었다. 1999년 7월 파업이 시작됐을 때는 물론, 강 원장이 원장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진주의료원 노사 관계에서 이 일은 두고두고 문제가 됐다.

1999년 5월 25일 노조는 40여 개 항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노사 교섭을 시작했다. 6차례 교섭을 벌였지만, 타협점을 찾지 못하자 노조는 지방노동위원회 조정신청을 했고 지노위는 조정안을 내지 않고 재교섭을 권고했다. 하지만 노조는 7월 5~6일 파업 찬반투표를 벌여 9일 오전 7시부터 파업하기로 결의했다.

노조 요구 중 기본급 인상 외에는 경영권 간여라며 완강하게 버티던 의료원 측은 결국 노조 측 요구를 일부 수용하면서 14개 항에 대해 8월 5일 잠정 합의를 하고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합의안을 승인했다.

그런데 갑자기 의료원 사측에서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포함해 43명에 대한 전보인사를 8월 10일 자로 단행할 것이라는 게 9일 오후 노조에 알려졌다. 당시 진주의료원에는 간호사가 60명 있었는데 수간호사가 7명이었고, 간호사 중 비조합원이 6명이었다. 전보인사 대상자는 수간호사 7명을 포함해 대부분이 노동조합원이었는데, 이는 그간의 인사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것이었다. 대체로 간호사 인사에 앞서 수간호사와는 미리 논의했으며 수술실, 응급실, 정신병동 등 이른바 '특수파트' 전보에 대해서는 본인 의사를 존중해왔는데 전혀 그런 사전 절차 없이 간호과장과 원장 선에서 대규모 인사가 이뤄졌다. 노조로서는 파업에 대한 보복인사로 받아들일 만한 상황이었다. 조합원들은 인사 철회와 간호과장 사퇴를 촉구하면서 원장실로 몰려갔다.

1999년 8월 9일 '폭행' 사태는 이렇게 시작됐다. 경남도는 강 원장이 폭행당했다고 책자에서 밝혔지만, 현장에서 지켜본 기자 기록으로는 거꾸로 강 원장이 노조원을 폭행했고, 그 과정에서 강 원장 역시 '다쳤을 수도 있다'고 보인다. 이를 거두절미하고 '노조원이 원장을 감금·폭행'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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