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 투척·기물파손 다반사, 감독 즉석청문회도…열기 높지만 경기는 적은 탓

프로야구팬 사이에서 마산(창원시 마산합포구·마산회원구)은 '야구성지'로 통한다. 야구 열정이 유별나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한 것이 인터넷에 떠도는 '마산아재 베스트사건 10'이다. 이미 5년 전부터 떠돌던 내용이지만, 올 시즌 NC다이노스가 정규리그에 합류함에 따라 새삼 주목받고 있다. '마산아재 베스트사건 10'은 과거 마산야구장에서 벌어졌다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지금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내용도 많다.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성영재 새총 저격'은 거짓 = 먼저 '성영재 새총 저격'이다. 1990년대 쌍방울 레이더스 전이었다. 쌍방울 투수 성영재 호투에 이끌려 롯데가 8회까지 '0'의 행진을 이어갔다. 보다 못한 3루 관중석 누군가가 새총으로 괴물체를 쏘아 성영재 얼굴을 강타했다는 내용이다. 성영재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결국 교체됐다는 것이다. 5년 전 어느 서울지역지는 이 내용을 보도한 사례까지 있었다.

1990년 6월 7일 마산야구장에서 롯데-LG의 경기가 열렸다. 이날 표를 준비하지 못한 야구팬들이 출입이 통제되자 위험을 무릅쓴 채 조명탑을 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이재문 경남야구협회장이 이를 확인해 줬다.

"그 이야기를 듣고 성영재 본인에게 직접 전화해 물어봤다. 본인도 몇 년 전 인터넷에서 그 내용을 봤다고 한다. 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본인도 모르겠다고 하더라."

다음은 '용접기 사건'이다. 이 역시 야구인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이 내용은 1995시즌 때 매진으로 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이 창원기계공단에서 사람을 불러 용접기로 문을 뚫고 들어갔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NC다이노스 변종민 대외협력실장은 "당시 아무리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해도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이재문 경남야구협회장 역시 "야구인들을 만나도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 없다"고 전했다.

다만 용접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러 명이 합심해 자물쇠까지 채워진 문을 부수고 들어간 사례가 종종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김용희 감독 청문회'는 진실 = 이 두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조금 과장은 있되, 모두 사실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김용희 감독 청문회'이다. 김용희 감독 시절 연패로 화가 난 팬들이 버스를 뒤집으려 달라붙었고, 결국 감독이 차에서 내려 즉석 청문회를 했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NC다이노스 이태일 대표이사는 이렇게 전했다.

"내가 기자로 롯데 담당하던 1990년대 중반이었다. 성난 관중이 버스를 흔들며 '김용희 감독 나오라'고 했다. 결국 감독이 차에서 내려 '앞으로는 잘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관중은 곧바로 받아들이며 비켰는데,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열리더라."

2001년 마산 개막경기를 찾은 사람들이 사인볼 던져주기 행사를 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하고 있다.

'최루탄 사건' 또한 실제 있었던 일이다. 1988년 5월 25일 빙그레 전이었다. 당시 신문 보도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밤 9시 반경 경기장 밖에서 학생·근로자 시위 저지를 위해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가스가 경기장 안으로 날아드는데 항의, 일부 관중이 빈 병을 운동장에 던짐으로써 경기가 1시간이나 중단된 끝에 속개됐다.'

다음으로 '삼겹살 불판 사건'이다. 관중석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다 불판을 경기장에 집어 던지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자 조카 신발까지 던졌다는 내용이다. 과장이 다소 섞여 있지만, 당시 경기장에서 고기 굽던 장면을 기억하는 이는 적지 않다.

'야구장 위 지붕사건' 또한 사실이다. 자리가 부족하자 일부는 포수 뒤편 특석 지붕에 올라가 관람했다는 내용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러한 장면은 흔했다. 파울볼이 지붕에 떨어지면 1·3루쪽 관중석 난간을 타고 우르르 오르는 이들이 있었다. 난간에서 떨어지면 경기장 바깥으로 추락하는 구조였다. 파울볼 하나 줍기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셈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분위기 안정 = 이 밖에 야구장 밖 지지대를 천과 연결해 경기장으로 난입했다는 '지지대 사건', 소주병 투척 위협에 외야수가 헬멧까지 쓰고 수비에 임했다는 '외야수 헬멧사건'도 사실이다. 또한 경기에 지면 무조건 선수들과의 대화를 요구하는 '패하면 면담', 그리고 '야구장 내 소주 판매'는 당시 분위기에서는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이 내용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관중 소란은 여러 형태로 있었다. 싸움난 이들이 서로 멱살을 잡은 채 내야 관중석 상단에서 하단까지 굴러떨어지는 일은 허다했다. 옛 마산야구장 관중석은 의자 없이 시멘트바닥으로만 되어 있었다. 중간에 걸릴만한 특별한 것이 없었기에 그대로 하단까지 굴러떨어지는 것이다.

불을 지른 일도 종종 있었다. 1990년 6월 8일 자 동아일보 기사 내용이다.

'경기가 끝나자 서로 싸우며 곳곳에 불을 질렀고 일부는 경품권 추첨을 하지 않은데 항의, 경기운영사무실로 몰려들어 구단직원과도 싸움을 했다.'

1995년 8월 24일 롯데와 빙그레 경기서 환호하는 관중. 본부석 지붕에 오른 사람들도 눈에 띈다. /경남도민일보 DB

이에 당시 정부는 체육회·야구위원회·치안본부 등이 모인 대책회의를 열고 운동장 내 질서문란행위에 대해 엄중히 처벌하겠다는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러한 마산 야구팬 극성은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마산야구장 문화도 조금씩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변종민 대외협력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마산은 원래 마산상고·마산고에서 걸출한 스타를 배출한 '야도'다. 야구에 대한 자존심과 갈망은 컸다. 하지만 롯데 마산홈 경기는 1년에 몇 번 열리지 않았다. 야구 관람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1990년대까지는 지역연고주의도 지금보다 훨씬 강했다. 롯데가 마산에서 유독 많이 패한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들어서는 관중이 가족·여성들로 바뀌었다. 이제 그러한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졌고 옛이야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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