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윤이상 정신 기리는 축제에 친일 작곡가 노래가

'자유…고독'(Free & Lonely)을 주제로 지난 23일부터 28일까지 7일 동안 열린 통영국제음악제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2013년 시즌은 어느 해보다 다채로운 실험 정신으로 무장해 이전에 보기 어려웠던 색다른 음악적 무대를 많이 선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13개 공식 공연 가운데 6개 공연이 매진되고 92%에 육박하는 객석 점유율을 기록하는 등 이번에도 아시아 최고 음악 축제로서 위상을 지켰다는 평이다.

하지만 작곡가 윤이상이 가진 음악 정신을 기리고 동시에 예술적 정신이 투철한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인다는 음악제 명분이 희석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세멜레 워크' 작품성 좋으나 상업적 선택 아닌가? = 올해 통영국제음악제 '주인공'은 단연 개막공연인 '세멜레 워크'였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만든 화려한 의상을, 헨델이 쓴 원곡에 전자 악기가 가미된 바로크 음악과 함께 마치 패션쇼 런웨이를 연상케 하는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매력에 많은 사람의 관심이 집중됐다. 음악제 개막 열흘 전에 표가 매진됐음에도 표를 구하지 못한 많은 음악팬의 문의가 빗발쳤다.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무대에 선 세멜레 워크는 과연 음악 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방가르드 풍의 색채감 화려한 의상이 관객들 눈을 사로잡은 점도 있지만,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한 것은 높은 음악적 완성도였다.

창원시립합창단과 한국 모델들을 섭외하고 연습한 기간이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관객들은 물론, 음악계 인사들로부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게 했다.

작품은 말하는 듯 노래하는 레치타티보, 그리고 오케스트라 반주인 아콤파냐토 부분 등을 극단적으로 활용해 신선한 자극을 불러일으켰다.

레치타티보 부분 중간에 솔리스트들이 외마디 말이나 비명을 내지르고, 아콤파냐토 부분에서 앙상블은 고(古) 음악 고유의 소리를 전자 기계음으로 뒤틀어 놓는 식의 다양한 변주는 지루하기 마련인 바로크 음악에 적절한 긴장감을 부여했다. 덕분에 극에 대한 몰입도 또한 전체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유지됐다.

특히 창원시립합창단이 선보인 안정된 앙상블은 지역 음악인들의 역량이 세계적인 수준에 절대 뒤떨어지지 않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작곡가 윤이상을 기린다는 목적으로 설립된 통영국제음악제가 상업적 성공을 인정받는 작품을 개막 공연으로 내세워 이슈 몰이에만 치중한 거 아니냐는 지적이다. 매우 실험적인 오프닝이긴 하나, 이제까지 음악제가 보여준 지향은 아니라는 점에서 나온 우려의 목소리다. 무엇보다 세멜레 워크와 윤이상 간의 연관성 또한 모호해, 철학을 잃은 손쉬운 작품 선택 아니냐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는 것을 목적으로 탄생한 통영국제음악제에 친일 문학가·작곡가의 작품이 몇몇 무대에 올라 음악제의 본래 취지를 훼손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점차 빛을 잃어가는 윤이상? = 통영국제음악제는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는 것을 목적으로 탄생한 음악제다.

한데 언젠가부터 윤이상이 가진 브랜드는 점점 옅어지고 음악제 전면에서 사라지는 현상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때 지난 이념 논란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게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윤이상이 보여 준 정신마저 때 묻게 돼서는 안 되는 것 또한 자명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이 눈에 띄었다. 친일 문학가와 작곡가가 쓰거나 이들 작품을 기린 곡들이 몇몇 무대에 오른 것이다.

지난 27일 '화음 챔버오케스트라 & 고티에 카푸숑' 연주에서 창원대 김한기 교수가 작곡한 독주 바이올린과 현악합주를 위한 '고향의 봄'이 정식 프로그램으로 울려 퍼진 것. 이어 28일 폐막 공연에서도 '화음 챔버오케스트라 & 클라라 주미 강' 앙코르로 '고향의 봄'이 울려 펴졌다.

친일 문학인이자 친일 음악인으로 논란을 빚은 시인 이원수와 작곡가 홍난파가 쓴 이 곡이 정식 프로그램으로 한 번, 음악제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으로 또 한 번 선택된 것은 윤이상을 기리는 음악제 목적상 아이러니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윤이상은 일제강점기 말엽인 지난 1943년 무장독립운동을 하려다가 체포돼 옥살이를 한 적이 있는 데다, 친일·반민족행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평생을 맞서온 관계이기 때문이다.

통영국제음악제는 윤이상 정신을 잇겠다는 의지로 지난 2002년 열린 첫 행사에서 1980년 광주의 아픔을 노래한 '광주여, 영원히!', 남경대학살을 고발하는 비파협주곡 '난징! 난징!' 등 동아시아 역사의 비극과 부조리를 표현한 음악들로 창작 초연했다. 이후에는 쇤베르크가 유대인 학살의 참상을 고발한 '바르샤바의 생존자'가 그 맥을 이은 바 있다.

아무리 봄이라는 계절적 요인과 지역 작곡가, 콘텐츠를 소개한다는 순수한 목적이 있었다 하더라도 곡 선정은 신중을 기해야 할 문제이다. 음악제가 존재하는 정신적 바탕까지 훼손하는 일은 앞으로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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