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사람]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사

김주용(37·사진) 창원대박물관 학예사는 창원 이야기에서 바다를 빼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동읍 저수지 일대도 예전에는 모두 바다였습니다. 아래로는 마산만, 위로는 낙동강을 접하고 있었죠. 지금 홈플러스·지귀상가도 모두 바다였죠. 1900년대 초까지는 물이 흘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던 것이 해수면 변화에 따라 지금은 모두 육지가 된 거죠."

김 학예사는 역사적으로 사람이 몰려 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창원은 여자 자궁형 분지입니다. 차단과 개방성이 모두 가능한 곳이죠. 영남에서 가야·신라 유물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죠. 성산패총은 곧 주거지였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런데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1970년대에 성산패총 밑에서 야철터가 발견됐죠. 정부의 건설 관련 부처에서는 밀어버려야 한다고 했고, 문화재 관련 부처에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죠. 그런데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창원을 찾아 '이곳에 야철지가 있다면서요'라는 말 한마디에 정리됐다고 합니다. 야철터가 기계공업단지 건설 명분이 된 거죠. 문화재를 국가정책에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죠."

계획도시에 얽힌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들려줬다.

"창원은 호주 캔버라를 모델로 한 계획도시죠. 창원이라는 도시가 조성되고 나서 마라톤 경기가 열렸답니다. 오르막·내리막 길 없고, 일직선 코스라 기록이 좋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답니다. 길이 너무 단조로워서 오히려 경기력이 떨어졌던 거죠."

김 학예사는 역사적 관점에서 중요하다는 두 곳을 언급했다. "도계·소답동 일대, 그리고 지금 창원시청 주변이 번갈아가며 번성했던 곳입니다. 청동기시대에는 남산·가음정동 일대, 삼한시대에는 도계동 일대가 중심이었죠. 그러다 통일신라 때는 또 성산동 일대가 번성했다가, 조선시대 와서는 다시 도계동 쪽으로 넘어갔어요. 그리고 지금은 또 창원시청을 중심으로 한 성산 쪽이 번성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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