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의 길에서 생명·평화를 말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기가 센 곳이라, 왜놈들도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던 곳이었지. 그 놈들이 기를 누르려고 벨 짓을 다 했다네. 전해져 내려오기로는 실상사가 흥하면 일본이 망하고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한다는구만. 여기 땅 기운이 나라를 지킨다는 게지.”

아버지와 함께 실상사를 찾아 떠난 길이었다. 여러 번 이곳에 왔다는 아버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에서 ‘기가 센 곳’임을 강조했다. 아버지에게는 실상사는 나라의 흥망을 쥐고 있을 만큼 기운 센 곳, 지리산 자락에 있는 천년고찰, 호국사찰로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곳이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실상사라는 이름을 접하고 주목하게 된 것은 10년 여 전, 아버지와는 다른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수문장은 돌장생과 아지매들?

실상사는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에 자리 잡고 있다. 마산이나 진주에서 실상사까지는 산청 유림면에서 60번 도로를 타고 임천강(또는 엄천강)을 따라 내려간다. 문화재 명소로 이름난 용유담을 지나 함양 마천면 삼거리에 닿는다. 이곳에서 남원 산내면 방면으로 길을 틀어 달리면 산내면소재지를 몇 km 남겨두고 실상사가 나온다.

/사진 권영란 기자

실상사 입구에 놓인 다리를 건너는데 표석에 적혀있는 글자를 보니 ‘해탈교’다. 다리를 건너면 인근 동네에서 나온 아지매들이 오종종허니 앉아 길목을 지키고 있다.

“오매, 징허다 징해. 먼 날이 이리 차븐겨? 기갱 다 허고 이것도 좀 보고 가.”

볶은 메밀, 무말랭이 등 직접 삶고 말린 것에서부터 겨우살이, 느릅나무, 옻 등 산을 헤매며 따고 꺾었을 것들을 돈을 사기 위해 가지고 나와 있다. 날은 차갑고 드나드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반대편에는 크고 오래된 팽나무와 실상사 석장생이 있다. 중요민속자료 15호로 실상사를 지키는 상징적인 장승이라 한다. 눈도 왕방울만하고 코도 주먹코다. 좀 더 들어가면 일주문도 나오지만 내 눈에는 이곳이 사실상 실상사 일주문으로 보였다. 돌장생과 동네 아지매들은 일 년 열두 달 지키고 앉은 수문장 같았다.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증각대사님이 구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사문을 개산하면서 창건했다. 현재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국보 제 10호인 높이 약 5미터의 백장암 3층 석탑과 보물 11여점을 포함 다수의 문화재를 포함하고 있다’.

실상사를 짧게 소개하는 내용이다. 동종, 석등, 약사전, 관세음보살입상, 목조아미타불상, 백장암 삼층석탑, 서진암 석조나한좌상 등 한 마디로 오래된, 그리고 국가지정 보물이 그득한 절이다. 게다가 보기 드물게 평지에 자리 잡은 절이다.

“저기 저 멀리 보이는 게 천왕봉이네. 이 절과 천왕봉이 마주보고 있어.”

‘우리나라 명당이란 명당에는 초소 아니면 절이 있다’는 어느 시인의 말마따나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절은 경치가 좋은 산중턱 심지어는 기암절벽의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게 흔한 일이다. 하지만 실상사는 마을을 지나 개울을 건너 너른 들판에 자리하고 있다.

도법 스님과 생명평화운동

사대천왕이 있는 문을 들어서는데 한쪽 작은 탁자에 ‘지리산 댐 반대’라 적고 그 아래 돌멩이를 얹은 서명지가 보였다. 부처에게 합장도 하기 전에 서명부터 한다.

왼쪽 도법 스님

입구 게시판에는 ‘생명의 땅 삼화실, 지리산문화제’ 포스터가 일요법회 안내문 옆을 차지하고 있다. 아래는 민족의 영산 지리산에 50m높이 콘크리트벽-어찌할까요? 라는 제목으로 ‘지리산 댐은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 수질이 악화되고 그에 따른 낙동강 포기에 따른 부산지역 식수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다’는 요지의 자보가 붙어 있다. 댐이 건설됨으로써 지리산과 주변 생태계가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알리는 긴 글이었다.

마당 한쪽에는 ‘생명평화 국민행진 성금함’이 놓여 있다. 부처상이나 부도탑, 산신에게 시주를 하라는 함이 아니다. 대부분의 절 마당에서 신도나 방문객에게 기와불사에 적극 동참하라는 그런 시주함은 보이지 않았다. 생명평화. 개인적으로 귀동냥해서 알고 있는 사실에 따르면 실상사가 삶과 수행을 우리 사회와 함께 맞춰나가는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오래전부터 실상사를 주목한 이유이다. 이 절에 전해져오는 이야기들도 흥미롭지만 오히려 세상을 향한 실상사(또는 주변)의 발걸음이 더 흥미롭고 더 궁금했다.

실상사가 세간에 널리 알려진 것은 개인적인 기억으론 1990년대 말 쯤 이었던 것 같다. 당시 실상사 주변의 움직임과 기운은 이미 심상찮았다. 많은 사람을 일깨워 실천적 수행을 펼쳐나가는 움직임은 그로부터 몇 년 사이 생명평화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이곳을 중심으로 대안학교인 실상사작은학교와 귀농학교 등이 운영되었고, 생태적인 삶을 가꾸는 생태마을이 생겼다. 인드라망, 지리산생명연대 등 모두 이곳 실상사에서 시작되었다. 이곳을 중심으로 이원규 시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생명평화운동이 전개되었다.

“1999년 <지리산을 사랑하는 열린연대> 창립된 게 시작이었지요. 계기는 주지였던 도법 스님이 지리산평화순례를 시작하면서였지 않나 싶습니다. 전국의 많은 분들이 이 일에 참여함으로써 나중에 생명평화결사모임이 만들어진 거죠.”

지리산생명연대 운영위원이자 진주환경운동연합 최세현 공동의장의 말이다.

현재 지리산생명연대는 운영위원장으로 이원규 시인, 공동의장으로 연관스님(실상사), 임봉재(전 가톨릭농민회 전국회장·산청 단성), 성염(전 주교황청 한국대사) 씨를 두고 있다.

“2002년인가, <지리산을 사랑하는 열린 연대>와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 통합 토론회를 벌인 후 두 단체 통합으로 <지리산생명연대> 창립됐어요. 2007년에는 지리산생명연대 부설 (사)숲길 창립이 되고, 지리산 둘레길 사업이 시작된 것 같네요. 지리산생명연대가 그동안 참 많은 활동을 해왔는데,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것은 지리산살리기 댐백지화 추진, 낙동강 1300리 도보순례, 지리산 반달가슴곰 보전대책 촉구, 지리산 850리 도보순례… 최근 용유담 보존운동까지, 참 많네요.”

/사진 권영란 기자

실상사는 부처의 연기론적 세계관인 모든 것이 한 몸, 한 생명이라는 것을 대중들과 실천해나가는 그런 곳이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도법 스님이 있었다.

도법 스님. 삶과 수행을 함께 실천해나가는, 가히 한국불교 개혁의 상징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1990년에 승가 결사체 선우도량을 만들어 조계종단 개혁에 앞장섰고, 1995년 실상사 주지로 있을 때부터 실상사가 중심이 되어 삼보일배 등의 전국 순례를 주도하며 생명평화의 목소리를 일깨워 왔다. 스님은 쌍용차사태, 제주해군기지 문제 등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에서 해법을 찾는 화쟁위원회 위원장이다. 스님은 오늘도 첨예한 현장에서 평화의 길을 찾으며, 또한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대안적 세계관을 제시하고 일깨우고 있다.

약사전, 천왕봉, 동경이 일직선이다?

실상사 보광명전 앞뜰에 들어서면 두 기의 석탑과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팔각의 큰 석등이 눈길을 끈다. 보물 제 35호인 석등은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며 높이가 5m나 된다. 그래서인지 석등 옆면에는 돌사다리가 있다. 등을 켤 때 오르내리도록 하기 위함인 듯했다.

“보광전 안에 범종이 있는데 일본 열도 지도가 그려져 있어. 근데 예불 때마다 스님들이 범종을 두드리는데 아이구, 하필이면 그 자리가 일본 열도 딱 중앙인기라. 가만 보니 홋카이도와 큐슈만 선명하고, 나머지는 제대로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라는 구만. 일본에 지진이 나고 원전이 폭발하는 것도 여기서 범종을 쌔리 두드려대서 그런지 몰라. 하하하.”

/사진 권영란 기자

호국사찰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옛이야기 한 토막에 아버지의 농담까지 섞은 해설은 더욱 그럴싸했다.

보광명전 앞 동·서로 세워져 있는 두 기의 탑 주변에는 몇몇 사람들이 탑돌이를 하듯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두 기의 탑은 마치 실상사의 정기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떡하니 누르고 있는 듯했다.

“저기 좀 떨어진 곳에 약사전이 있는데 철조약사불이 있다. 여게까지 왔는데 그걸 봐야지.”

약사전은 보수공사를 하는지 처마를 받치는 절제기둥이 세워져 있고 어수선했다. 실상사철조약사불좌상은 보물 제41호이다. 전체적으로 크고 둥그스름하니 풍만한 여성적인 느낌이다.

“실상사 안에서도 여기가 가장 기가 센 데, 어쨌든 대한민국에서 가장 세다고 하데. 이곳 약사전이 천왕봉과 일본 동경하고 일직선이라네. 이곳 약사전 밑을 깊이 파면 해골들이 좀 나온다더라. 기가 좋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몰래 암장을 했던 것으로 추정하더라. 어쨌든 실상사에 얽힌 정기설은 이곳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경내를 한 바퀴 돌아 나올 때 ‘해우소’가 눈에 띄었다. 실상사에서 또 유명한 곳은 이 해우소였다. 안으로 들어가면 ‘생태뒷간’이라 붙여두고 인간과 자연의 유기순환을 자세히 밝혀두고 있다. 지금은 생태공동체나 귀농자의 집을 방문하다보면 이런 화장실을 제법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자세한 설명을 붙인 절간 해우소는 드물 것이다. 실상사에서 준비한 귀농학교 프로그램에도 생태뒷간 만들기가 들어있을 정도였다. 해우소 내부는 선남, 선녀 양 옆으로 되어 있다. 볼일을 마치고 톱밥 한바가지를 뿌려주면 된다. 질소질인 똥과 탄소질인 톱밥이 섞이면 발효가 되어 냄새도 없고 퇴비가 되는 이치다.

인간과 자연의 유기순환. 이곳 실상사에서 시작되는 생명평화의 움직임에 닿아 있다. 세상의 분노와 슬픔에 귀를 기울이고 반생명적인 것에 대항해 나가는 실상사의 행보. 산수유 나뭇가지에 맺힌 꽃망울이 노랗게 터질 때쯤이면 실상사를 중심으로 한 목소리들도 다시 커지고, 이곳으로부터 시작되는 생명평화대행진의 걸음들은 더욱 바빠질 듯하다. 나는 어느 봄날 밤, 보광전 앞마당 석등 화사석(火舍石)에 불이 환하게 켜질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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