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나무와 가족이 빚은 이국적 풍경

너른 마당에 있는 잘생긴 바위 앞에 선다. 서 있는 자리나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다. 한 발 뒤로 물러서면 바위 너머로 종려나무가 보인다. 야자수와 닮았으나 소금기 섞인 바람에 더 잘 버티는 나무라고 한다. 다시 한 발 뒤로 물러서면 종려나무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종려나무와 어우러진 푸르고 잔잔한 바다는 제주도 또는 나라 밖 풍경을 쉽게 떠올리게 한다. 몇 발 더 물러서면 멀리 마창대교를 비롯해 창원지역 사람들에게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지중해’라는 카페 이름은 그렇게 어색하지 않다.

바다를 등지고 카페 건물로 향하면 잘 생긴 분재가 늘어서 있다. 언뜻 봐도 값을 꽤 매길 수 있을 듯한 화분은 마당에서 카페 건물로 향하는 동선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분재 사이를 지나 건물로 들어서면 수석과 조각을 전시해놓은 공간이 있다. 조각 중에는 마산이 자랑하는 조각가 문신(1922~1995) 작품도 눈에 띈다. 상호를 수식하는 ‘카페&갤러리’라는 표현 역시 어색할 게 없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에서 카페&갤러리 ‘지중해’를 가꾸는 김정곤(65) 씨 가족을 만났다.

카페 '지중해' 전경./김주완 편집국장

느닷없이 시작한 골재 사업

김정곤 씨와 아내 박인숙(60) 씨, 아들 김주완(32) 씨를 카페 3층에서 함께 만났다. ‘지중해’ 1층은 수석과 조각을 전시한 갤러리다. 한쪽에는 커피 로스팅 기계가 있다. 2·3층은 손님들이 차를 마시는 공간이다. 건물 전체가 바다 쪽으로 창을 시원하게 뚫어 전망이 좋다. 바다로 둘러싸인 마산이지만, 깨끗한 바다를 가까이서 넓게 한눈에 보기는 쉽지 않다.

“2004년에 이곳 땅을 구입했습니다. 원래 멸치 건조장이 있던 자리인데, 부모님도 모실 겸 좋은 땅을 보러 다니다가 이곳을 찾았지요. 2005년부터 기반 공사에서 조경, 건축까지 모두 제가 했습니다. 2007년에 완공을 했지요.”

김정곤 씨는 교직자 출신이다. 창원공고, 창원고 등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학교 현장을 떠나서도 한동안 교육자로서 길을 이어갔다. 1996년부터 2010년까지 창원향토학교를 운영하며 배울 기회를 놓친 이들에게 공간과 시간을 내주었다.

“제가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했어요. 그래서 늘 마음 한쪽에 어려운 이들을 위해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가진 게 있으면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했던 일입니다.”

더듬어보면 김정곤 씨 삶은 돈을 벌 수 있는 일과는 거리가 있다. ‘지중해’는 물론, 이곳에 전시된 분재나 수석, 조각 하나조차 교직생활 수입만으로 가질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옆에 앉은 아내 박인숙 씨가 말을 이었다.

“제가 가내 공업 수입이 쏠쏠했어요. 공무원이던 남편보다 수입이 좋았지요. 그렇게 모은 돈을 친척에게 빌려줬는데 그분이 돈을 갚을 수 없는 사정이 됐지요.”

돈을 갚을 수 없었던 친척은 보유하던 건설운송기기를 팔아 채무를 해결하기로 했다. 하지만, 건설운송기기는 좀처럼 처리되지 않는다. 결국 박인숙 씨는 이 건설운송기기로 아예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건설자재 도·소매업을 시작한 것이다.

“어머니께서 포클레인을 운전하기도 하셨어요. 기사들이 애를 먹이는 부분이 있으니까 직접 나서신 것이지요. 주말에는 아버지께서 도와주셨고요.”

‘지중해’ 대표인 아들 김주완 씨가 옛 기억을 잠시 더듬었다. 박인숙 씨는 열심히 일을 하기도 했지만,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도 많았다고 했다. 어떤 면에서 마지못해 시작한 건설자재 도·소매업은 제법 큰 성공을 거둔다. 금전적으로는 남부럽지 않을 만큼….

“정말 열심히 일했지요. 제가 일이 너무 힘들어져서 그만두고 싶다고 하니까 남편이 당장 그만두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벌써 10년 정도 됐네요.”

호젓한 카페는 아들 아이디어

‘지중해’에 들어서면 넓은 정원과 바로 앞에 접한 바다가 가장 돋보인다. 김정곤 씨는 기반 공사를 할 때부터 무엇보다 이런 환경을 잘 살릴 수 있는 조경에 신경을 썼다. 오랫동안 분재를 해서 조경 관련 책을 많이 봤기에 어느 정도 자신도 있었다. 바다를 바로 접할 수 있는 공간인 만큼, 이색적인 해안지대 풍경을 만들자는 게 기본 구상이었다. 먼저 주변에 야자수를 닮은 종려나무를 심었다. 야자수를 심고자 했으나 바닷가에서는 종려나무가 더 잘 자랐다. 또 제주도 느낌을 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곳 돌을 마당 곳곳에 놓았다. ‘지중해’를 찾은 사람들은 제주도에 온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김정곤 씨 뜻이 잘 반영된 셈이다. 이 같은 조경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차가 들어오지 못해 사놓기만 한 바위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지중해는 굳이 찻집이 아니더라도 뭘 해도 잘 될 것 같은 분위기를 갖춘 곳이다.

카페 '지중해' 인근 바다./김주완 편집국장
카페 '지중해' 내부 분재 모습../김주완 편집국장

“처음에 건물을 지을 때는 가든 같은 것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가볍게 술도 팔고. 그래서 아들과 의논했는데 아들이 순수한 찻집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같은 공간이면 차를 한 잔 파는 것보다 술을 한 잔 파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차보다 음식이나 술을 팔면 당장 돈은 더 벌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압니다. 하지만, 누구나 이곳에 오면 쾌적하고 좋은 분위기 속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부모님께서 오랫동안 가꾸신 분재나 수석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었고요. 아무래도 손님이 술을 드시면 그런 것을 만져보고 싶기 마련이거든요.”

김주완 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007년부터 ‘지중해’ 대표를 맡아 이 공간을 책임진다. 처음에는 갸우뚱했던 김정곤·박인숙 씨 부부도 지금은 아들 선택을 매우 잘한 것이라고 추켜세운다. 게다가 김정곤 씨는 또 한 가지 흐뭇한 기억을 꺼내놓는다.

“여기 카페 덕에 며느리를 만났어요. 카페를 찾은 손님이 아들을 보고 마음에 들어 해서 아는 사람을 통해 연결이 됐지요. 둘이 만나기도 전에 아들이 사돈 어르신 마음에 든 것이지요.”

처가 어르신께 ‘두꺼비 상’이라며 높은 평가를 받은 김주완 씨가 옆에서 선한 얼굴로 웃었다.

김주완 씨./김주완 편집국장

같은 취미로 보장한 행복한 노후

카페 ‘지중해’에서 바다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은 분재와 수석 같은 수집품이다. 모두 김정곤 씨가 젊었을 때부터 모으고 가꾼 것이다.

“원래는 탐석을 즐겼어요. 자연에서 수석을 찾는 취미지요. 결혼하고 제가 집에서 장손이고 독자고 하다 보니 공유할 수 있는 취미가 없으면 아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탐석을 함께 다니기 시작했지요. 처음에는 좋은 돌 하나 찾으면 큰돈 된다며 데리고 다녔어요.”

“남편과 몇 번 다니니까 저도 재밌더라고요. 좋은 돌을 찾아서가 아니라 그 과정이 즐거웠어요. 아들도 어렸을 때부터 놀이터 나갔다 와도 예쁜 돌이라며 주워오곤 했지요. 아버지가 좋아하는 줄 아니까.”

꽤 오랫동안 탐석을 했으나 막상 좋은 돌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좋은 맵시를 갖춘 돌은 쉽게 눈에 띄는 게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탐석보다는 수집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그 즈음에 생긴 새로운 취미가 분재였다.

카페 '지중해' 창가 좌석./김주완 편집국장

“나무는 돌과 달리 가꾸면서 변화를 느끼는 즐거움이 있어요.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많았는데, 국내외 서적을 읽으면서 공부를 많이 했지요. 아내에게 분재 취미를 권할 때도 탐석을 할 때와 마찬가지였어요. 나무 하나 잘 가꾸면 큰 돈 된다고….”

김정곤 씨 취미는 곧 박인숙 씨 취미가 됐다. 김정곤 씨가 어여쁘게 보기 시작한 것은 박인숙 씨도 어여쁘게 볼 수 있게 됐다. 부부는 그렇게 같은 것을 좋아하며 닮아가고 있다. 김정곤 씨는 나이 들어 느끼는 큰 즐거움으로 이 같은 공감을 꼽았다.

“아내는 날마다 이곳 분재에 물을 줘요. 물주는 것만은 저보다 더 잘하지요. 분재 기본이 물주는 것인데, 분재에 따라 물 양이나 세기 등을 잘 조절해서 주지요.”

카페 '지중해' 내부 모습../김주완 편집국장

김정곤 씨는 몇 년 전까지 한국분재협회 창원지부장을 했다. 분재 모임인 ‘심향’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수석은 한국수석회 회원이며, 마산수석회 회장이기도 하다. 분재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좋은 분재를 구할 때도 있지만 완성되지 않은 나무 가운데 잘 자랄 것으로 보이는 것을 구해 가꾸는 재미가 크지요. 좋은 분재는 흔히 여성 몸매와 비교를 많이 하는데요. 분재 뿌리가 고르면서 잘 뻗고 키와 견줘 나무 곡선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게 높은 평가를 받지요.”

박인숙 씨가 두 손으로 위에서 아래로 'S'자를 그리며 “이런 S라인을 말하는 것”이라며 웃었다. ‘지중해’ 정원에는 소사나무, 소나무, 모과나무 등이 고루 전시돼 있다. 김정곤 씨는 소나무·향나무·주목 등 송백류 나무를 높게 쳤다. 그리고 좋은 분재를 만드는 조건으로 나무와 함께 환경을 꼽았다.

“나무가 자랄 때 물·영양소만큼 중요한 게 바람이에요. 바람이 없으면 아무리 다른 환경이 좋아도 좋은 분재가 될 수 없지요. 요즘 아파트에 사는 분들이 많다 보니 많이 물어보는데 분재를 아파트에서 키우는 것은 무리지요. 차라리 감상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환경 잘 갖춘 전문가에 맡기라고 권합니다.”

부부의 꿈 그리고 아들의 꿈

김정곤·박인숙 씨 부부는 같은 취미를 누리는 노년에 만족했다. 특히 카페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잘 가꾼 공간을 둘러볼 때면 그렇게 흐뭇할 수 없다. 김정곤 씨는 그런 모습이 ‘지중해’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했다.

“가족들, 특히 어르신들이 함께 오는 가족들을 보면 그렇게 좋아요. 가서 말도 막 걸고 그렇습니다. 제가 이 공간을 만들 때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김정곤 씨./김주완 편집국장

그런 점에서 김정곤 씨 꿈을 잘 가꾼 공은 지중해 대표인 아들 김주완 씨에게 돌릴 수 있겠다. 커피가 만만한 것 같아서 시작했다는 김주완 씨는 지금은 다가갈수록 어려운 커피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할수록 어렵더라고요. 다시 배우고 전문가 과정도 밟고 있습니다. 생두 수입도 직접 하지요. 좋은 커피를 조금이라도 싸게 공급할 수 있으니까요.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직원 많이 써서 손님 편하게 하고 좋은 커피 드실 수 있게 하자. 부모님 친구들이 오시지 허투루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김주완 씨는 부모님처럼 분재나 수석에 대한 관심은 없다고 했다. 오히려 그럴 여력이 있다면 커피에 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시실 한 쪽에 커피 관련 도구를 둬 꾸준하게 실험하는 것도 그런 믿음 때문이다. ‘지중해’ 한 쪽은 커피숍 운영자들이 공부하는 커피 도서관·실험실이기도 하다. 가장 훌륭한 커피를 지중해에서 대접하는 것, 김주완 씨 꿈이다.

김정곤·박인숙 부부./김주완 편집국장

“여기 오는 분들은 나이 들면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저는 행복한 노후 조건으로 같은 취미를 꼽습니다.”

김정곤 씨가 옆에 앉은 아내 박인숙 씨를 바라보며 눈빛으로 동의를 구한다.

“나무 하나, 돌 하나에 깃든 추억이 너무 많아요. 지금 남는 것은 분재나 수석이 아니라 추억인 것 같아요. 그리고 남편은 항상 꿈을 품으라고 말해요. 그러면 언젠가는 이뤄진다고….”

부부는 이제 멀리 떠나는 여행도 조금씩 계획하고 있다. 김정곤 씨는 그동안 분재에 신경 쓰느라 어디 멀리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박인숙 씨도 이제는 멀리 여행도 다녀야겠다며 웃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