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출판 불모지에 뛰어든 그는 과연 선구자인가

전자책 시장, 국내는 물론이고 도내 환경은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 중에서 과연 전자책을 구입해 읽어본 분이 얼마나 될까 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글을 쓰는 기자도 돈 주고 산 전자책은 한 권뿐이다.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직까지는 종이로 된 책을 선호하는 것 같다. 보고나서 책장에 꽂아놓을 수 있는 것이어야 비로소 자신의 소유물이 된다는 고전적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겠지만, 읽다가 잠시 쉴 때 책갈피를 접어놓기도 하고 빨간 펜으로 밑줄도 그을 수 있다는 것이 더욱 인간적이라는 생각 때문이겠다. 그래서 전자책 시대가 열렸음에도 쉽게 갈아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리라.

그런데 세계적 추세를 보면 종이책은 확실히 전자책으로 대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말 미국의 퓨리서치센터에서 조사한 것을 보면 2010년 이후 전자책을 읽는 사람이 16%에서 23%로 늘었다. 반면에 종이책은 72%에서 67%로 줄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잠시 주춤했어도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가 널리 보급되어 있음에도 급속히 확산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거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난해 3월 한국출판연구소가 조사한 전자책 출판사업 현황을 봐도 그렇다. 504곳 출판사 중에 전자책을 발행해 본 적이 있다는 곳이 70곳, 13.9% 수준이다. 전자책 출판을 하고 있는 업체에서도 전자책 출판 비율은 8.6%에 지나지 않는다. 경남도내 출판사의 전자책 발간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한 표현이 아니다.

김진근 경남전자출판협회장./박민국 기자

이러한 상황임에도 경남의 전자출판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불모지를 개척하고자 뛰어든 출판인이 있다. 지난해 6월 전국 시도 단위에서 처음으로 창립된 경남전자출판협회 김진근(51) 회장, 창원과 서울에서 출판사 두 개를 운영하며 괜찮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그가 현재로선 돈이 될 리 없는 전자출판협회의 수장으로 나선 이유가 무엇일까.

지난 5일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 상지솔리움 2층 ‘Kmc21c’라는 명패가 출입구 위에 붙어있는 그의 출판사로 찾아갔다. ‘Kmc21c’이라는 이름은 도서출판 ‘경남문화’(창원)와 ‘청암’(서울)을 아우르는 회사명이다. 책상마다 서적으로 만리장성을 쌓은 여느 출판사와는 달리 분위기가 깔끔하다. 책들은 유리문이 있는 책장에 진열되다시피 깔끔하게 꽂혀있었다. 접견실에서 김 회장과 마주앉았다.

창립 6개월 성과는 아직 미흡

-경남전자출판협회가 창립된 지 6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그동안 어떤 사업들이 진행되었는지요?

“전자출판 관련 인식 확산과 출판인 양성을 위해 제1기 전자출판아카데미를 개최한 것을 첫 번째로 뽑을 수 있겠습니다. 현재 2기 아카데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2기엔 협회가 주관을 하지 않고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료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무료로 진행되다 보니 수강생들의 적극성이 좀 떨어지는 면도 있더군요. 서울에선 한 강좌에 40만 원씩 하는데 말이죠.”

-무료였습니까? 진작 알았더라면 저도 신청할 것을 그랬습니다. 하하. 1기 아카데미 사업의 성과는 어땠습니까?

“창원대와 공동으로 진행한 1기 전자출판아카데미에는 총 30명이 수강 신청을 했는데 수료를 마친 분은 20명 선이었습니다. 썩 만족스럽게 되지는 못했습니다.”

-전자출판 불모지에서 첫술에 만족스러운 성과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겠지요. 6개월 지났는데 협회 운영은 잘 되고 있습니까?

“순조롭지가 못했어요. 처음에 제가 회장으로 추대되고 모르는 사람들이 임원으로 구성이 되다 보니까 손발이 잘 안 맞은 부분도 있고, 또 협회가 창립되면 자기 업에 도움이 될까 생각하고 참여했던 사람들은 떨어져 나가고 해서 지금 대부분 임원이 교체되었습니다. 새 임원은 제가 면접을 보면서 협회 일을 열심히 할 사람들 위주로 뽑았어요. 저를 합쳐 총 10명이 포진되어 있는데 이제 협회 활동이 힘있게 추진될 겁니다.”

김진근 경남전자출판협회장./박민국 기자

-아픔이 있었군요. 협회가 창립되고 난 이후 경남의 전자출판업계의 변화된 모습이 혹시 있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미미합니다. 출판사 참여가 거의 없다 보니 그렇긴 한데 대신 디지털 교과서라는 새로운 화두가 학교에 떠오르다 보니 대학 교수나 교사의 관심이 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지역 작가의 관심이 없다는 것이 이상해요. 1기 전자출판아카데미 수강생을 모집할 때 지역 작가들이 몰려올 거라고 기대했는데 한 명도 참여하지 않았어요. 자비 출판이라는 출판계 환경이 작가들로 하여금 아예 집필을 엄두도 못 내게 한 것 같습니다. 시대흐름에 아직 눈을 뜨지 못한 것 아닌가…, 그러니 이러한 기회가 와도 참여를 하지 않는 거죠. 지역의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콘텐츠 개발에 나서야 되는데….”

들었던 커피 잔을 다시 내려놓는 김 회장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전자출판 전문가 과정이 서울지역에선 40만 원짜리 강좌가 아니던가. 그걸 공짜로 배울 기회를 주겠다는 것인데 전자출판의 주역이 되어야 할 지역 작가들의 참여가 전혀 없었다는 것은 첫 단추부터 뭔가 잘못 꿰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게다.

-경남콘텐츠진흥원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며 공동으로 진행했던 첫 사업이 기대에 못 미쳐 속상했겠습니다. 2기 아카데미는 아예 후원으로 빠지는 바람에 협회가 주도적으로 운영하지도 못할 텐데 협회의 위상이나 역할이 위축되는 것 아닙니까?

“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1기 아카데미 사업도 사실상 협회가 주관해 운영했지만 수료증은 협회가 아니라 경남콘텐츠진흥원 이름으로 수여된 것도 그렇고 전자출판과 관련한 그간의 사업들에 협회의 이름이 배제된 것도 협회가 너무 힘이 없어서 그렇지 않나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올해엔 협회가 사단법인 허가를 받는 일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그래야 사업을 단독으로 운영할 수 있으니까요. 이와 함께 경남도에 전자출판산업 육성방안을 담은 조례제정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협회 차원에서 여러 사업을 힘있게 추진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한국전자출판협회 이사로 참여하면서 네트워크를 구성한 것도 앞으로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전자출판은 대세, 표준화 되면 급증할 것

-네, 그렇군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 아무래도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겠네요. 계획하고 있는 사업에 어떤 게 있는지 말씀해주시죠.

“아카데미 사업에 있어서 1차 목표로 전자출판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각각의 취향과 수준에 맞게 커리큘럼을 짜임새 있게 구성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도내 대학에 전자출판 관련 학과를 유치해 전문 인력을 키우는 것이고요. 현재로선 창원대와 문성대학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 아마추어 작가를 상대로 한 콘텐츠 공모전을 열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수상자에겐 무료로 전자출판도 해줄 계획인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도내 전자출판 산업이 서서히 활력을 찾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 또 협회 회원사를 대상으로 세미나나 포럼을 개최해 콘텐츠 사례집도 발간할 계획입니다.”

-경남과 전국을 비교해서 전자출판업계의 현실과 미래를 진단하신다면.

“미국의 경우 아마존에서 킨들이 나오고 나서 1년 만에 전자출판이 종이책 출판을 앞섰잖아요. 그런 점에서 국내에서 2015년까지 전자출판 표준화가 완성되면 50%이상 전자출판이 가능하리라 봐요. 현재는 굉장히 빠른 시대 흐름을 보이고 있잖아요. 이런 다양하고 복잡한 흐름을 제때에 반영할 수 있는 것은 전자출판밖에 없습니다. 이 시대 흐름의 대세라고 보는 거지요. 요즘은 10년에 한번 강산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3년마다 1년마다 바뀌는 거예요.”

김진근 경남전자출판협회장./박민국 기자

-표준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드리는 말씀인데 현재 우리나라에는 워낙 많은 종류의 전자책이 있잖습니까? 서로 호환도 안 되고. 이런 게 표준화로 해결된다면 전자책 제작비용이나 호환성 측면에서 유통비용도 절감할 수 있어 훨씬 전자출판이 활성화될 것 같은데요.

“미국은 아마존을 중심으로 킨들이라는 단말기가 전자책 출판을 주도했어요. 전자책이 종이책을 앞질렀는데 최근에 좀 주춤했다고 해요. 스마트 기기 보급이 확산하면서 미국 독자들이 전자책 단말기를 안 사기 때문이래요. 이제 전자책 단말기가 아니라 스마트 기기에 맞는 전자책 제작이 돼야 해요.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은 굉장히 유리한 위치에 있어요. 스마트폰 없는 사람이 거의 없잖아요. 전자책이 표준화만 이루어지면 더욱 빠른 속도로 전자출판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봐요.”

-혹시 국내에서 전자책 독서인구 통계 같은 거 나온 게 있습니까.

“전자책에 대한 독서 통계는 아직 없고요, 대신 한국출판연구소가 설문조사한 게 있는데 이 자료를 보면 아직 전자책 출판을 하지 않은 곳이 총 504곳 중에서 85% 이상인데 가장 큰 이유가 시기상조라고 해요. 출판사들이 아직은 전자책에 대한 매력을 못 느끼고 있다고 봐야죠. 그도 그럴 것이 아직 표준화가 되지 않아 수십 종의 전자책 단말기에 맞춰 작업해야 되고 또 서로 호환도 안 되고…, 예를 들어 삼성전자 단말기를 샀는데 새로 읽고 싶은 책은 LG에서 만든 단말기로만 볼 수 있다면 단말기를 또 새로 사겠어요? 그 비싼걸. 그러니 표준화가 필요한 거죠. 아무 단말기나 스마트폰으로도 다 읽을 수 있게 말이죠.”

-말씀 듣고 보니 전자책 읽기 프로그램의 표준화는 꼭 필요한 것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전자책의 표준화가 국제 전자책의 대세를 잘 살펴서 이루어지고 또 국내 전자출판물이 세계 시장에서도 활발히 유통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그 시대적 전환기에 회장님의 역할이 큰 것 같습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좀 사적인 것입니다만 회장님께선 어쩌다가 경남전자출판협회를 맡게 된 것인지요.

“작년 초반에 경남콘텐츠진흥원에서 전자출판 관련 세미나를 한다고 해요. 그래서 찾아 갔지요. 경남에 등록된 출판사 680개 정도 되니까 되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정작 출판을 제대로 하는 출판사가 없었어요. 그 마당에 제가 진흥원을 찾아갔던 거지요. 진흥원과 논의 과정에서 제가 추대된 것이죠.”

김진근 경남전자출판협회장./박민국 기자

경남, 전자출판 메카되려면 ‘센터’ 선점해야

-협회장 임기가 얼마인가요? 또 임기 안에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으신지.

“임기는 3년입니다. 재임을 할 수는 있는데 저는 3년 안에 최대한 열정을 쏟아 계획한 거 이루고 물러날 생각입니다. 제가 임기 내에 가장 이루고 싶은 것은 ‘동남권전자출판센터’를 유치하는 것입니다. 센터를 유치만 하면 이곳이 서울을 제외한 전자출판의 중심이 돼요. 경남이 유치 못하고 부산이나 대구로 가게 되면 경남은 힘들어질 수밖에 없어요. 부산은 시에서 영화나 해양 쪽에 관심이 많다보니 별 걱정은 하지 않는데 대구는 걱정이 돼요. 중요한 건 선점을 하게 되면 경남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지요. 경남도에서는 다른 시도에서 하고 있는 많은 문화사업을 따라하는 데 그래가지고는 경남만의 독창성을 인정받을 수 없잖아요. 전자출판은 다른 문화사업에 비하면 돈도 얼마 안 들어요. 센터를 선점하고 추진하면 금방 특화할 수 있는데 아직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아요.”

-회장님께선 출판업을 하신지 오래 되셨나요? 어떤 책들을 발간했는지 소개해주신다면.

“그렇게 오래 되진 않았어요. 1999년부터 했으니까 이제 햇수로 15년 들어가네요. 책은 주로 건강이나 역사 쪽을 많이 출판하고 있어요. 건강문고는 시리즈로 발행하고 있는데 이게 효자상품이에요. 역사 관련 책 중에는 경남대 유장근 교수의 <중화제국을 탐색하다>와 함안군청 공무원인 조정래 씨가 쓴 <사라진 뱃사공>이 언론을 통해 좀 많이 알려졌지요.”

-혹시 회장님의 출판사에서 전자출판된 작품들이 있는지요?

“없습니다. 전자책으로 만들어놓은 것은 있는데 출판은 시기가 중요해요. 그 시기를 보고 있는 거예요.

경남전자출판협회와 경남콘텐츠문화진흥원이 함께한 행사.

-마지막으로 회장님께서 출판업을 하시기 전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 출판업에 발을 들이게 된 사연이 있으신지 말씀해주시죠.

“지금도 편집 디자인 일을 하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복사가게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어요. 복사도 하고 답례품도 만드는 그런 거 있잖아요. 그 사업을 시작한 데도 사연이 있어요. 전 고등학교를 공고를 나왔는데 자격증을 하나도 따지 못하고 기계회사에 취직했어요. 그러니 적응도 잘 못했지요. 얼마 안 다니고 그만 뒀는데…, 제 고향이 충북 보은이에요. 어렸을 때 돌부처라 불릴 만큼 공부 못했던 친구가 충북대 국어국문과에 입학했다는 얘기가 들리더라고요. 거기에 자극을 받아 공부해서 경남대 역사학과에 들어갔죠. 교직을 이수해서 선생님이 되려고 생각했어요. 그땐 교사되기 어렵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군대 갔다 오니까 그것도 쉽지 않게 되었어요. 몇 년을 기다려야 되고. 그래서 서울로 가서 언론사에 시험을 쳤는데 매번 떨어졌어요. 필기에 합격해도 면접에서 떨어지고. 그래서 제약회사 홍보실로 눈을 돌렸지요. 그런 곳엔 또 연줄이 있어야 되더라고요. 하는 수 없이 눈높이를 더 낮춰 출판사에 시험을 쳤어요. 그런 곳에선 그냥 쉽게 취직이 되더군요. 3개월 정도 교정을 보다가 마산으로 왔지요. 마산의 한 출판사에 근무하다 적응을 못하고 친구와 기획사를 차렸는데 그게 지금 사업에 뛰어든 계기가 되었어요. 처음엔 다 말아먹다가 인쇄업을 하면서 돈을 벌었는데 또 출판사 하다가 말아먹고. 하하. 이젠 요령이 생긴 거예요. 어떻게 하면 돈을 버는지 또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지, 눈이 뜨이더라고요.”

김진근 회장은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을 보여줬다. 누렇게 변색되고 얇은 책이다. 책에는 수백 번도 더 봤음직 손때가 묻어있었다. 그는 이 책이 자신을 이끌어왔다고 했다. 그리고 역사의 길목을 지키는 혜안을 갖게 해줬다고 했다. 이 책이 자신에게 더 소중한 이유는 순간순간 고비 때마다 강한 열정을 불어넣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개 출판사 교정직원에서 14년 만에 경남전자출판협회 회장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그 열정 때문일 것이다. 열악한 경남의 전자출판 여건이 매 순간마다 그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그래도 김진근 회장의 열정이 식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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